귀환자 식당 33화.
오랜만이라는 반가움보단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라미야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 들린다.
-진, 미안해. 진짜 미안해···.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미안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꺼내는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화가 나기도 하지만 평소 당차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어쩔 줄을 몰라 하니 화를 내기도 좀 어색해졌다.
“···미안하단 소리는 그만 하고,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나 말해봐.”
게이트가 뜬금없이 나타났을 리는 없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타난 거라면 라미야가 지금 이렇게까지 어쩔 줄 몰라 할 필요도 없겠지.
-그게, 코어가··· 폭주했어.
예상했던 답변.
역시나 코어가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을 하긴 했는데.
“설마, 그걸 정말 꺼낸 거야?”
-···응.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자책감이 느껴진다.
설마설마 했는데.
“대체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미야라니.
심지어 이루가 꺼냈다고 하면 이해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녀석은 원래부터 대책 없이 일부터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라미야가?
이루 녀석 역시 대화가 들리는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입으로 ‘대체 그걸 왜?’라며 뻐끔거리는 걸 보면 안다.
-사실 돌아온 뒤로 계속 압박이 있었어. 거기다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니까, 국왕의 명령을 계속 거부하기는 힘들었어.
“···공주라고?”
행동거지에서 그녀의 신분이 높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히잡을 벗지 않는 거야 종교적인 문제라고 할지 몰라도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궁중 예법을 보는 듯했었으니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코어를 꺼낸걸? 아니면 공주라는 신분을 감춘걸?
뭐가 됐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보다··· 우선 게이트 등급은?”
각성자와 게이트가 사라진 지 수십 년이 흘렀으니 제대로 작동하는 측정기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없이 드나든 게이트니 어지간한 헌터라면 대강이라도 가늠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C등급 정도야.
“···그럼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 등급인데?”
다급한 전화에 A등급은 되는 줄 알았다.
그 정도라면 라미야 혼자서도 가능할진 몰라도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니까.
하지만 C등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최후의 게이트에 들어갈 당시에도 S급 헌터로 이름을 날렸던 라미야다.
공간 계열 마법사의 정점인 그녀라면 B등급이라고 해도 쓸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을텐데 굳이 왜.
-코어를 아공간에서 꺼내는 순간 폭주를 시작했어. 주변의 마력이란 마력은 있는 데로 흡수를 하기 시작하더니, 그리곤 갑자기 게이트가 열린 거야.
“마력을 빨아들여? 하지만 지금은 그럴 마력이···.”
마력이 사라진 세상인데, 어디서 마력을 빨아들이나.
그런데 딱 하나가 있다.
마력이 사라진 세상에서도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
그리고 라미야도 그중 한 사람이고.
-내가 가지고 있던 마력 절반 이상이···.
사라졌겠지.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코어가 왜 갑자기 게이트로 변했나 싶었더니, 그런 이유였나.
게이트를 만들어내던 마왕의 심장이었던 코어.
어쩌면 코어 자체가 마왕이었던 건가?
모르겠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 방법은 결국 하나뿐이다.
* * *
“직접 가신단 말입니까?”
“네. 당분간 가게는 이루에게 맡겨둘 생각입니다.”
“···쳇. 나도 같이 간다니까! 혼자선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이루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물론 둘이라면 더 안정적인 거야 두말할 필요 없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라미야의 마력이 간당간당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나 하나를 이동시키는 것도 상당히 무리해야 가능할 텐데, 심지어 두 사람이라면 불가능할 수도 있고.
“넌 그렇게 설명을 해줘도···. 그리고 나 없는 동안 가게는 어쩔 거야.”
“어차피 저거 데워서 주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차라리 나 말고 통장님한테 부탁하는 건 어때?”
“쓰읍-.”
“아, 알았어.”
꼭 이렇게 해야 말을 듣네.
추석 연휴에 쉰 지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닫을 수는 없지.
그건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니까.
물론 최대한 빠르게 다녀올 생각이지만, 혹시나 해서 밤새도록 끓여놓은 게 있다.
아내가 친정갈 때 끓여둔 다는 전설의 음식.
꼬리곰탕이다.
강원도 횡성에서 두 벌이나 공수해 온 꼬리를 사태와 양지까지 넣어서 푹 우린 뒤에 고기도 잘게 찢어놨다.
손님이 오면 소면이나 당면을 취향껏 삶아서 넣어주고, 찢어둔 고기와 대파만 넣어서 내면 끝인 요리.
한국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거의 없는 스태디 셀러 국밥이다.
그 정도라면 이루 혼자서라도 가게를 보는 데는 문제가 없을 테고, 그사이에 나는 최대한 빨리 다녀오기로 했다.
“그럼 언제쯤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당장 전세기를 준비할까요?”
“아뇨. 비행기는 너무 느립니다.”
초음속 제트기고 나발이고,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은 따로 있지.
혼자만 이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
“텔레포트를 이용할 겁니다.”
* * *
-준비됐어?
“응. 그쪽은?”
-나도 준비됐어. 역시 우리 진은 마력 수치가 높아서 찾아내기가 편하다니까.
“···그럼 시작하자.”
남편이나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다던데, 라미야는 어째서인지 나에게만은 관대하다.
최후의 게이트 공략 당시에도 늘 게이트에서 나가면 자신과 교제하자며 졸랐었지.
처음엔 반쯤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내가 계속 거절하니 오기가 생겼는지, 구애는 점점 더 강해졌다.
결국 게이트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모두들 나와 라미야가 공식적인 커플로 생각할 정도였지.
난 끝까지 아니라고 했지만 믿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마력을 더 개방시켰다.
지구 반대편에서 느끼는 건데, 강하면 강할수록 라미야가 편해질 수 있으니까.
얼마 후 지면에서 몸이 살짝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오오-! 살면서 이런 장면을 직접 보게 되다니!”
“머, 멋져요. 이런 귀한 연구자료를 영상으로 못남기게 하시다니···. 너무해요!”
지금 있는 곳은 게이트 연구소 옥상.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도 그렇지만, 혹여라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띌까 싶어서 고른 장소다.
당연하게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달려온 안정민 과장과 신주희 박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떠오른 몸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마력이 휘감는 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접하는 라미야의 마력.
나는 서서히 내 몸을 감싸는 마력을 거부하지 않고 서서히 받아들였다.
거리가 거리인데다 라미야의 마력이 약해져서 그런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천천히 내 몸을 빛무리가 감싸고.
몇 번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공간 이동의 감각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내 내 몸이 다시 땅에 내려섰다.
짧은 순간에 순식간에 주변의 지형이 변하는 건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파스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연구소 옥상과는 달리, 바닥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모래들.
가을이 다가오는 계절, 산속의 선선한 바람이 아닌 뜨겁고 건조한 사막의 바람이 뺨을 스쳤다.
그리고 가까이서 느껴지는 수많은 인기척들 사이로 누군가가 뛰쳐온다.
“···지-인!”
“라미야. 자, 잠깐.”
대뜸 달려와 안기려는 걸 나는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그대로 안기게 뒀으면 주변에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의 탱크가 날 향해 포탄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아··· 미안. 너무 반가워서.”
“흠흠. 게이트는?”
“···저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길까 싶어서 일단 군대를 주둔시키긴 했는데···.”
만에 하나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올까 걱정됐겠지.
그녀 역시 대격변의 순간이 얼마나 끔찍했었는지 직접 경험했던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이런 군대가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알겠어.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다녀올게.”
“응? 지금 이렇게 바로 간다고?”
“왜?”
오래 끌면 끌수록 안 좋은 게 게이트다.
완전 개방형 게이트가 돼서 몬스터가 튀어나올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있다곤 하지만, 이게 무슨 수학 공식도 아니고 정해진 건 없다.
어떤 것은 하루면 튀어나오기도 하고, 어떤 것은 1년이 넘도록 조용하기도 하니까.
측정기가 있다면 그 기간도 예측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으니 서둘러야지.
“아니, 그게··· 우리 오빠. 그러니까,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께서 진을 만났으면 하셔서.”
“나를? 왜?”
질문을 하고 보니 어찌 이리 멍청한 질문을 했나 싶다.
만나고 싶은 거야 당연한 것을.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건 나중에 하자.”
“···응? 나중이라니···!”
시연이와 시은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왔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해결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 나한테 쓸데없이 국왕이나 만나서 하하 호호 담소를 나눌 시간 따윈 없다.
퍼엉-.
라미야가 황당한 표정을 짓지만, 또 뭐라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얼른 땅을 박찼다.
바닥이 모래긴 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상관없지.
파공성이 터져나가며 몸이 빠르게 사막을 가로질렀다.
금세 도착한 게이트.
“···이건 뭔가 익숙한 느낌인데?”
마치 예전에 마주했던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당연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얼른 몸을 게이트로 밀어 넣었다.
* * *
오랜만에 느끼는 게이트 안의 묵직한 공기.
전에 들어왔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딱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몬스터가 없다.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기척이나 마력 자체가 느껴지질 않았다.
“뭐지···?”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위협은 전혀 되지 않지만,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장도 조금 되고.
흐음···.
그래도 게이트는 게이트.
아무것도 없을 리는 없겠지.
나는 얼른 마력을 펼쳐 게이트 내부를 살폈다.
게임 속에서 맵핵을 켜기라도 한 것처럼 마력이 퍼져나가며 게이트 내부가 샅샅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찍이서 제법 커다란 마력 하나가 느껴졌다.
겨우 한 마리인가?
제법 커다랗다곤 하지만, 내가 가진 마력 수치와 비교하면 정말 티끌 정도의 수준.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예상보다 빨리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콰앙-.
아마 게이트 안에 다른 몬스터라도 있었다면 소리만으로 공포에 질렸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리.
모래와 땅이라는 차이도 있지만, 거리낌 없이 마력을 방출해 지면을 박차니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사뭇 달랐다.
나를 채 인식도 하기 전에 머리와 몸을 분리해주마.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만 혹시라도 전처럼 게이트 안과 바깥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나갈 셈이다.
한데 그런 다짐과 달리 막상 도착했더니 손을 휘두르질 못했다.
풍기는 마력은 몬스터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문제는 저 외형.
“···꼬마야? 넌 누구니?”
인간 아이였다.
그것도 이제 겨우 3~4살이나 될 법한.
내 질문에 아이는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선 날 올려봤다.
히끅-.
“아, 아저씨는··· 누군데요? 왜 나 죽이려고 그래요?”
긁적-.
이거 지금 내가 악당이야? 내가 나쁜 놈인 건가?
“저기, 얘. 여기··· 어떻게 들어왔니?”
정말 아이를 다루듯이 물어보곤 있지만, 긴장은 풀지 않았다.
몬스터들 중에선 간혹 인간을 현혹하는 능력을 가진 것들도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그런 몬스터들의 능력에 현혹된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또 모르지 않는가.
저러다가 갑자기 공격이라도 할라치면 죽일 수밖에.
그런데 잠시 뚱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던 아이는 뭔가를 다짐한 듯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나는···. 나는 마왕이닷!”
“···응?”
일어서도 키가 내 골반에도 닿지 않을 법한 꼬마 녀석이.
짧은 다리를 어깨보다 더 넓게 벌리고선, 한 뼘도 되지 않을 팔을 앙증맞게 허리에 올리고 소리를 쳤다.
단순히 보면 귀엽기만 한데, 어째 흘러나오는 마력은 정말 마왕이다.
내 아공간에 넣어둔 코어가 반응하는 걸 보니 확실해졌다.
이 꼬마 녀석은 분명 마왕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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