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31화.
차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시은은 자꾸만 언니가 신경이 쓰였다.
평소에도 자신과는 달리 그리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분위기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고민이 있어도 저렇게 티 나게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더 신경이 쓰인다.
“언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한테도 말 못 하는 일이야?”
“응? 일은 무슨.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내가 언니를 몰라?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언니 그런 표정 처음 보는데···.”
아침의 일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무리 털어내려고 해도, 마지막 그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
“시은아, 넌 만약··· 식당 삼촌이 진짜 우리 가족이면 어떨 거 같아?”
시연의 뜬금없는 질문에 휴게소에서 산 굴림 감자를 먹던 시은이가 미간을 찡그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야. 그게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건가?”
“그냥 물어보는 거야. 넌 어떨 거 같아?”
“나야 완-전 좋지! 삼촌 잘생겼지, 자상하지, 우리한테도 엄청나게 잘해주고···. 아! 혹시 언니, 삼촌이랑?!”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예전이었다면 당황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은이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하자.
왜냐고 물어서 돌아온 대답은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대답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울 거야. 나이가 80이나 된 당숙이 갑자기 살아 돌아온 것도, 거기다 이렇게 젊은 모습이라면.
이해할 거라고, 각성자에 대해 알아보면 분명 이해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진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80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야. 지금이야 그저 동네 식당의 친한 삼촌으로 알고 있지만, 진짜 삼촌이 되고 나서···.
그렇게 젊어 보이는데, 노환으로 죽는다고?
알지 못하면 황당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떠난 지 이제 겨우 1년 남짓.
이제야 겨우 다시 만난 삼촌마저 금방 떠나버리면 상처받을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걸까?
우린 애가 아니라고.
그런 상처쯤이야 혼자서 치유하는 법 정도는 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을 못 해드렸어.’
오전 내내 왜 그 말을 못 했을까 생각했는데, 답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자신도 두려운 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세상에 둘만 남겨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웠었는지.
다시금 떠올라서.
“또 쓸데없는 생각한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헤헤-. 그래도 난 삼촌이 우리 가족이면 정말 좋을 거 같긴 해. 맨날 맛있는 밥도 얻어먹을 수 있고.”
“밥?”
“삼촌이 해주는 음식, 왠지 할아버지가 해주시던 거랑 비슷해서 좋단 말이야.”
“···그건 나도 그래.”
“그치? 거기다 오늘만 봐도 그렇잖아. 남한테 누가 이렇게 음식도 해주고, 차도 빌려주고 하냐? 삼촌이 진짜 착해서 그런 거지.”
우리가 진짜 조카라서 그런 건데.
그 말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시연은 그저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도 앞으로 삼촌한테 잘해드리자. 알았지?”
“당연하지! 그래서 나도 맨날 가서 놀아주잖아.”
동생의 천진난만함에 시연은 또 웃어버렸다.
오전 내내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어리가 하나 치워진 기분이다.
“커피랑 우유 때문 아니고?”
“아, 아니거든? 그리고 우유는 그때 딱 한 번이었는데··· 씨이.”
두 사람은 돌아오는 내내 또 그렇게 투닥거렸다.
* * *
잠깐 생각해봤지만, 더는 올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결국 잠시 기다리다가 음복을 시작했다.
신주희 박사는 지금이 이른 아침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음복주라는 핑계로 벌써 몇 잔을 연거푸 들이켜고 있고.
이루는 안정민 과장과 무슨 그리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지, 표정이 내내 굳어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어서 귀를 기울였더니.
“아! 그쪽에 숨겨진 길이 있었어요?”
“역시, 모르셨구나. 이건 사실 고인물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비밀 퀘스트도 받을 수 있는데, 보상이 무려 강화 마석이에요. 꼭 깨고 넘어가야 해요.”
···게임 이야기였다.
이루 녀석은 자기가 각성자면서 각성자를 본떠 만든 게임을 하고 싶을까?
하여튼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녀석이다.
“···안 가세요?”
솔직히 신주희 박사에게 가족이 없는 건가는 궁금하지도 않고,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은 그저 아침에 차례를 지낸 후, 부모님을 기리며 조용히 보낼 생각이었는데, 불청객들이 찾아온 거다.
“추석이면 자고로 가족과 함께···.”
될 수 있으면 좀 좋은 말로 돌려보내고 싶었는데.
정 안되면 강제로라도 내쫓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삼초-온!”
집 마당 입구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마음을 치유해주는 유일한 소리랄까.
“왔구나. 잘 다녀왔어?”
“완전히요! 삼촌, 근데 우리 할아버지가 문어 좋아하던 거 어떻게 알았어요?”
“할아버지도··· 문어를 좋아하셨어?”
“네! 엄청나게 좋아하셨어요. 어? 근데 또 누가 좋아했어요?”
“아, 아니. 그런 사람이 있어.”
과연 남매였다는 건가? 입맛이 이리 비슷할 줄이야.
“어? 여기도 있네요? 삼촌도 차례 지내셨구나.”
시연이는 뒤늦게 가져갔던 반찬통들을 들고 오길래 얼른 나가서 받아왔다.
“차례는 잘 지냈어?”
“네···. 삼촌 덕분에요.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녀석도.”
이제는 진짜 삼촌이라는 것도 알았을 텐데, 그래도 아직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래도 표정이 전보다 더 밝아진 것이 내심 뿌듯하다.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갔던 시은이가 뛰쳐나왔다.
“언니, 삼촌네 부모님도 문어를 좋아하셨나 봐.”
“···그래?”
“응! 여기 차례상에도 문어가 있는데?”
다른 분들은 알지 못해서 신위를 부모님 두 분만 모셨다.
그걸 용케 읽은 모양인지···.
하긴, 한국 최고 명문대라는 한국대를. 그것도 의대를 간다는 아이가 한문 정도야 술술 읽어야지.
“···문어가?”
시연이가 날 슬쩍 바라보더니.
시은이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물어온다.
“···고모할머니도 문어를 좋아하셨어요?”
“그랬지. 다른 건 늘 날 먼저 챙겨주셨어도, 문어만큼은 내가 살짝 뒷전이었거든.”
풉-.
“어쩜 저희 할아버지랑 그리 똑같았을까요···. 덕분에 저랑 시은이도 문어를 엄청 좋아해요.”
“그래? ···삼촌도 그래.”
그런 시연이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쓰다듬었다.
“어?! 뭐야, 뭐야? 역시··· 두 사람 뭔가 이상해.”
시은이가 제법 날카로운 척하고 있지만,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는 걸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저, 삼촌.”
“응?”
“···저희도 인사를 드려도 될까요?”
하지만 이미 음복까지 벌인 판에.
그래도 될까?
“이미 이렇게 돼서···.”
아침인데도 벌써부터 본격적으로 술판을 벌이는 주정뱅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올해는 이미 지냈으니까, 내년 설에 할까?”
아쉽지만, 몇 달 뒤를 기약해야겠다.
어쩌면 그때는 차례상을 하나만 올려도 되지 않을까?
* * *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축제가 열렸다.
마포 한마당이라는 유치한 이름의 작은 동네 축제인데, 열기는 상당했다.
“삼촌! 빨리요. 빨리!”
딱히 보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복잡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아니라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거의 반강제로 끌려 나오다시피 했다.
“시은아, 시연이는 어디 가고?”
“언니요? 언니야 당연히 축제에 갔죠.”
그럼 같이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뭐하러 이렇게 둘이 따로···.
“언니, 오늘 거기서 일일 알바하거든요.”
“알바? 무슨 알바를 해?”
얘는 그림이나 열심히 그리라고 지원을 그렇게 빵빵하게 해주는데.
또 알바를 한다고?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귀환자 재단만큼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딱 잡아뗐는데.
솔직히 눈치를 봐서는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혹시, 그래서 더 부담스러운 건가?
그래서 아르바이트까지 다시 하려는 거고?
그럼 정말 삼촌으로서 혼쭐을 내주려고 했는데···.
“초상화 그려주는 거 해요. 하루지만.”
“···초상화를 그려준다고?”
“네. 그게 속도도 중요한데, 디테일도 잘 잡아야 하고. 아무튼, 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된데요.”
그런 거였어? 그럼 좀 다행이고.
뭐, 그렇게 끌려가다시피 도착한 곳은 동네 축제라고 생각하기엔 예상보다 규모가 상당했다.
제법 커다란 도로까지 통제한 게, 제대로 한 마당이랄까.
“닭꼬치 있어요! 매운맛 10단계 성공하면 공짜!”
“아이들이 좋아하는 솜사탕, 끈적이지 않아요. 어머니, 아이 하나 사주시죠.”
질서정연하게 주차된 푸드트럭들에서 호객행위도 활발한 게 정말 축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헤이-! 거기 이쁜 아가씨들! 이거 하나 드셔봐요! 맛이 기가 막힙니다!”
그리고 묘하게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어째 아침부터 안보인다 싶었더니.
“···저 녀석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누구···. 아! 이루 오빠도 저기서 뭐 파나 봐요? 삼촌, 우리도 가봐요.”
아니, 저 녀석 언제 저렇게 한국말을 능숙하게 하게 됐지?
“이루 오빠!”
“오! 시은이 왔구나. 이거 한번 먹어볼래?”
“이게 뭐예요?”
동글동글한 튀김 같은 것에 소스가 잔뜩 뿌려져 있고, 위에는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음식.
“이거? 이게 바로 다코야키라는 건데, 일본에서는 축제 때 없으면 안 되는 거지.”
“일본 음식이에요?”
“응? 그렇긴 한데··· 재, 재료는 다 한국에서 공수해서 만든 거야!”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하다.
서서히 일본과의 사이가 좋아지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건 맞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지 않나 싶은데.
“···주세요! 이루 오빠가 한 거니까. 나 먹어볼래!”
“너, 이거 팔긴 팔았냐?”
“···이제 곧 불티나게 팔릴 거야!”
푸드트럭은 어디서 빌렸으며, 저 전용판은 어디서 구한 건지.
월급을 한 번 주긴 했는데, 설마 이런데 쓸 줄이야.
뭔가 짠하면서도 안쓰럽고, 또 미안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이다.
“나도 한 판 줘. 오랜만에 보니까 먹어보고 싶네.”
“어? 삼촌은 이거 알아요?”
“그럼, 잘 알지. 옛날에 사이가 나쁘지 않을 때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엄청 많았···.”
아차!
“오오-! 맛있어요. 맛있다! 안에··· 문어?! 문어다! 내가 좋아하는 문어!”
시은이의 반응이 좋았던지, 주변에서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이루의 푸드트럭으로 다가서는 걸 보면서.
“시연이는 어디 있으려나?”
“언니는 메인 무대 건너편에 있는 공원에 있는다고 했어요.”
“메인 무대?”
“네. 오늘 신청한 팀만 무려 200팀이 넘는데요. 본선은 30팀만 올라왔는데, 그중에서 일등 상품이 자그마치-!”
“설마, 스포츠카?”
딱-!
경쾌한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튕긴 시은이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너 혹시.”
“헤헷-! 언니한텐 비밀이에요. 내가 꼭 우승해서!”
“너 면허도 없잖아.”
“언니 복학 선물로 줄 거에요!”
허어.
통이 크다고 해야 하는 건지, 우애가 깊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근데··· 아무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얼핏 들었던 말이지만, 근처 대학교 동아리 같은 곳에서도 엄청 신청했다던데···.
“근데, 시은아. 뭘로 나가는데?”
보통 저런 데는 두 가지 아닌가?
춤 아니면 노래.
난 시은이가 둘 중에서 뭘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쪽으로도 재능이 있었나?
“그야 당연히 노래죠.”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보니, 정말 뭔가 해낼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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