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30화.
지금 대한민국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항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 모두가 동시에 외칠 거다.
1,000조 원에 이르는 피해 보상금.
일본에서 향후 5년간, 10차례에 걸쳐 나눠서 지급하기로 한 금액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 첫 번째 피해 보상금 930억 달러가 국고에 채워졌다.
한국 돈으로는 약 10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
그리고 바로 어제.
익명의 기부자가 귀환자 재단에 30조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간격이 고작 하루 차이.
누가 보더라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정황 아닌가.
과연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그러니 확인을 해 봐야겠다.
뚜르르르-.
-하하! 이사장님. 벌써 보셨군요?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알겠다.
뭔가 ‘저 잘했죠? 얼른 칭찬해주세요!’라고 말하듯 들뜬 목소리.
“기부금··· 정말 정부인 겁니까?”
이미 확신은 하고 있었다.
다만 ‘에이, 그래도 설마?’ 하는 아주 작디작은 의심을 했을 뿐.
-네? 그야 물론이죠.
3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일개 재단의 기부금으로 사용됐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국민에게 시달릴 정부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애써 만든 재단의 존속에 태클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아니, 대체 왜 그렇게 큰돈을?”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야 이사장님께서 30퍼센트는 달라고 하셔서.
“네? 제가 언제 그런···.
30퍼센트라는 말이 왜 익숙한가 싶었더니.
하아···.
내가 유족들에게 적어도 30퍼센트는 주라고 한 말뜻을 오해한 거다.
“제가 말한 건, 유족들에게 사용하라는 의미였던 건데···.”
수화기 너머로 잠시 말이 없었다.
-···그, 그렇죠? 역시! 사장님이 그렇게 돈에 욕심이 없는 분이라고 제가 말했는데도.
“그러니, 저한테 주지 마시고. 당시 피해자분들의 유족들을 찾아서 그들에게 사용해주세요.”
또 잠시 말이 없다.
그러더니 안정민 과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이미 익명으로 재단에 기부된 거라 정부에서도 회수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냥 이번만 받으시고···.
“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큰돈을 받는 건.”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부에서도 1년 예산이 훨씬 넘는 돈을 이사장님 덕분에 갑자기 얻은 것 아닙니까. 그 정도는 받으셔도 아무도 뭐라고 못할 겁니다.
진실을 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진실이라는 걸, 밝힐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우선,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턴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제가 이사장님 의견은 상부에 확실히 전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돈을 주는 쪽이 오히려 받아 달라고 사정을 한다니.
상황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금액 자체가 너무 부담스럽긴 하다.
그래도 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여기서 더 따지는 것도 그렇고.
“그럼 그렇게···. 아, 그리고 대마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왕 전화한 김에, 궁금한 것도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정부 측에서 주민들 이주 보상에 관련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이미 일본이 실효 지배를 한 지가 상당히 지난 터라, 대마도 내에 일본 소유의 문화재들은 어떻게 할지 의견이 분분한 모양입니다.
옮길 수 있는 것들이야 옮기면 그만이겠지만, 일본인들이 지어놓은 사당이나 신사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되는 모양인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우리 문화재도 상당히 수탈한 걸로 아는데요.”
-네?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냥 그렇게 하면 되죠.”
간단한 문제 아닌가?
가져갈 수 있으면 재주껏 가져가던가.
아, 이번에 문화재까지 돌려받을걸.
그 생각을 못 한 게 못내 아쉽다.
-그, 그렇네요! 역시. 명쾌하십니다.
사회생활에 스킬 레벨이 있다면 안정민 과장은 최고 레벨일 거다.
* * *
아침부터 준비에 서둘렀다.
초벌 해둔 산적이나 제수용 조기를 한 번 더 굽고, 전이나 나물 등을 반찬통에 나눠서 담고.
이루는 굳이 깨우지 않았다.
녀석도 일본을 다녀온 뒤로 마음이 심란해서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을 텐데.
쉬는 날이라도 마음 편하게 푹 잤으면 싶어서.
“안녕하세요. 삼촌.”
평소와 달리 오늘은 시은이보다 시연이가 먼저 도착했다.
어쩐 일인가 싶었더니.
“시은이는 할아버지 보러 가는데 이쁘게 해야 한다고 아침부터 꽃단장 중이에요.”
“하하하. 왠지 시은이 답네.”
내 말에 시연이가 가볍게 웃었다.
“요즘 학원 다니면서 복학 준비한다고 바쁘다며? 그래서 좀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는데··· 괜찮은 거지?”
“저야 너무 감사하죠. 저는 전을 부쳐도 늘 실패만 하거든요. 할아버지도 오랜만에 이쁘고 맛있는 음식 드시겠네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아, 갈 때 차도 가져가.”
“네? ···정말 감사합니다. 매번 도움만 받네요.”
나도 그랬단다.
너희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것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자, 그러면 음식들 실을까?”
“네!”
과일이며 고기, 해산물에 전, 나물, 밥···.
차에 싣고 보니 양이 상당했다.
SUV라 트렁크가 제법 커서 꽉 찰 정도는 아니었지만, 얼핏 보면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이스박스 안에 온수 팩도 같이 넣어놨으니까 금방 식지는 않을 거야.”
“네. 삼촌은 어디 안 가세요? 가족들은요?”
“응? 나는 가족이 없···.”
가족이 없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데, 내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너희 두 사람이 내 가족이지.”
그런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말을 하고 아차 싶을 정도로 너무 진심을 담아서.
“···삼촌.”
“어어? 어. 그래, 늦으면 길 막히겠다. 얼른 출발을···.”
황급히 돌아서려는데, 누군가 내 옷깃을 붙잡는다.
정말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멈추어 서버렸다.
누군지야 뻔한데, 지금 이 상황···.
“삼촌··· 맞죠? 이진 삼촌···. 맞는 거죠?”
“그, 그렇지. 내 이름이 이진은 맞는···.”
시연이의 눈에 담긴 아련함.
그 눈빛을 마주 보는 순간 느꼈다.
아, 들켰구나.
* * *
시연이와 시은이가 떠난 뒤.
나도 차례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잘 몰라서 결국 인터넷의 도움을 받았다.
[추석 차례상 차리는 방법]
잠깐만 검색해도 너튜브에 즐비하게 늘어진 것 중에서 그나마 차려진 음식이 가장 비슷한 영상을 골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차리고 보니 상이 제법 푸짐하다.
“엄마, 아빠···. 너무 늦었죠?”
나이 50이나 먹고서야 처음으로 지내는 차례상이라니.
불효가 막심하다고 욕을 하셔도 달게 받아들여야지.
게다가 두 분에게는 80살이 된 아들이 아닌가.
아직도 실제 나이와 체감하는 나이가 어색하게만 느껴지곤 하는데.
두 분은 어떠실까.
“못 알아보시는 건 아니죠?”
테이블을 모두 치운 가게에서 차례상을 차려놓고 혼잣말을 하고 있자니 어쩐지 가슴이 더 뭉클해진다.
정말 저 신위神位 뒤에 두 분이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 계신 것만 같고.
하하.
실제로 오셨다면 흐뭇한 표정이실까?
그것만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오신 건지 안 오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세상에 영혼靈魂이 있다는 건 믿는다.
왜냐면 각성자 중에서는 그런 영혼을 보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없지만, 만약 있다면 데려다 묻고 싶다.
두 분께서 지금 어떤 표정으로 날 보고 계시냐고.
“하암-. 뭘 아침부터 그렇게 청승맞은 표정을···. 응? 그게 차례라는 거야?”
이 녀석이 요즘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이제 별의별 단어를 다 써먹네.
분명 좋은 일이긴 한데, 왠지 기분이 좀 그렇네?
“너도 인사 한번 드릴래?”
“···내가?”
솔직히 다른 사람이 남의 집안 차례상에 절을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린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종갓집 같은 것도 아니고.
“그, 그래도 되려나?”
머쓱해 하면서도 와서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걸 보니 왠지 고맙다.
어색한 문화라 거절할 법도 한데, 날 신경 써줘서 그런지.
아니면 이 녀석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지.
“절은 두 번?”
정말 저 앞에 우리 부모님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귓가에 속삭이는 녀석.
“응, 하고 나서 가볍게 반절.”
크흠-.
목까지 가다듬더니.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진이 형님의 친동생 같은 김이루라고 합니다!”
이번엔 솔직히 나도 좀 당황했다.
나도 실제로 지내보는 건 처음이라 모르긴 하는데.
보통 저렇게 말로도 인사를 하는 건가?
“아니 또 그렇다고 그렇게 큰 소리로 말을 할 것까진···.”
“응? 인사드리라며. 말씀 안 드리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아셔.”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
이 자식, 하여튼 말을 잘한단 말이야.
원래 다 아시는 수가 있다고 반박하려는데.
“이사장님. 저 왔습니다.”
“···과장님? 오늘은 어쩐 일로 여길.”
휴일이다.
그것도 한국 최대의 명절이라고 불리는 추석.
이런 데 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하. 오늘 차례 지내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과장님은 차례 안 지내십니까?”
“본가에서 지낼 겁니다.”
“그런 거길 가시지 않고선.”
“가족들이 다 미국에 있거든요. 큰형이 거기서 지내시기도 하고, 제 아내랑 딸도 갔으니까요. 저까지 여기서 지내면 조상님들이 어딜 가야 하나 헷갈리시지 않겠어요?”
으음. 또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럼 조상님들은 미국으로 뭘 타고 가시나, 비행기?
문득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저도 온 김에 어르신들께 인사 한번 올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어서 들어오세요.”
쪼르륵-.
술을 한 잔 새로 따랐다.
맑은 청주를 향 위에서 가볍게 돌린 뒤, 안정민 과장이 자세를 잡았다.
역시 이런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이라 그런지, 이루와는 달리 익숙해 보인다.
“어르신들, 처음 뵙겠습니다. 아드님께 늘 신세지고 있는 안정민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래 그렇게 말도 하고 그럽니까?”
“하하. 그거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저 인사드리고 싶은 사람 마음 아니겠습니까?”
이루가 격하게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뭐, 다들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자, 그럼 이제 음복飮福 해야죠!”
목적은 이거였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려는 안정민 과장의 손을 멈추게 한 사람이 있었다.
“기다려요. 저도 왔으니까.”
“어? 박사님은 또 왜···.”
아니, 이 사람들.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지?
무슨 마을회관이라도 되는 거로 생각하는 건가?
신주희 박사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대뜸 들어와서는 술부터 따르기 시작했다.
“어머님, 아버님. 신주희라고 합니다.”
아니, 저 여자가 미쳤나.
어디다 대고!
체감 나이야 나랑 비슷하다.
40대 후반인 신주희 박사나, 50인 나나.
하지만 실제 나이는 무려 30살이 넘게 차이가 난다.
거기다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나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외모인데 비해, 신주희 박사는 제법 동안이긴 해도 30대 후반으로는 보이니까.
“···두 분이 이진 선생님께 저 좀 많이 도와주라고 말씀 좀 잘해주세요. 네?”
마지막에는 애교까지 부린다.
내 눈에만 그런 건지, 정말 저 앞에 두 분이 앉아 계신 것 처럼 느껴질 정도로 살갑게.
“···하아.”
머리가 아파지는 건 단순히 향냄새가 짙어서만은 아니겠다.
이젠 진짜 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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