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29화.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명절을 앞두고 한국 전역이 들썩거렸는데.
-일본에서 1차 피해 보상금을 금일 12시를 기해 한국 측에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총 9,300억 달러의 피해 보상금은 향후 5년간 10차례에 걸쳐 분할 지급될 예정으로 정부는 피해 보상금의 적절한 사용 부처 선정을 두고 연일 회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일본 정부는 대마도의 한국 반환을 결정하면서 대마도 거주민들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어제 오후 밝혔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거주민들과 정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끊긴 후 대마도는 계속되는 주민 이탈과 경제 빈곤 등을 겪어······.
뉴스에서는 연일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중계했는데, 사실상 거의 실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렇게 즐거운 소식으로 한국이 들썩거리는 동안, 일본 역시 다른 의미로 들썩거리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조선에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현시점에서 상황을 모르는 대부분의 일본 국민 대부분은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었다.
실제로 내가 봐도 진실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고.
“이루야, 너도 내가 너무 했다고 생각하냐?”
“···아니.”
누군가는 그렇게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고작 여자 한 명 죽이려고 했다고, 나라 하나를 지워버리겠다는 것 자체가 미친놈 아니냐고.
근데,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다.
약육강식? 그런 고리타분한 원칙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힘이 있는 자는 약한 자를 핍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생각 따위도 없다.
“하긴, 내가 안 했지?”
“···치사해.”
“근데 난 정말로 그렇게까진 할 생각 없었어. 네가 너무 오버한 거지.”
“정말로?”
당연하다.
아무리 내가 시연이를 아낀다곤 하지만 나라 하나를 사라지게 할 정도까지는···.
“음···.”
“뭐, 애초에 잘못한 건 일본이니까. 대체 그놈의 코어가 도대체 뭐라고.”
“그러게. 어차피 다루지도 못할걸.”
“내 말이.”
그들은 자신들이 ‘가능’할 거란 이유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그것도 날 직접 건드릴 자신이 없으니 아무런 잘못도 없는 주변인을 공격하는 걸로.
협박용으로 쓰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
굳이 인도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건 죄악이다.
지나가는 사람 만 명을 붙잡고 물어도 제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그렇게 답할 거다.
그저 자신들이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래서 나도 똑같이 해줄 생각이었다.
왜? 나도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일본을 통째로 가라앉힐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나도 사람인데,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까지 냉혈한도 아니고.
정말 시연이가 어떻게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래. 오키나와 정도?
그것도 사전에 ‘내가 오키나와를 없앨 건데, 미리 피해’라고 친절하게 경고까지 해주면서 말이지.
그리고 따지고 보면 애초에 다 우리 거였잖아? 빼앗겼던 것들을 이제야 돌려받는 것뿐이지.
그들이 하려고 했던 짓에 대한 대가는 9,300억 달러?
오키나와 전체와 9,300억 달러 중에서 뭐가 더 아까울까를 생각하면 충분히 괜찮은 거래 아닌가?
음.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네.
미안해할 필요 없겠다.
그나저나 추석이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할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딱히 명절을 제대로 보내본 적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나마 음식을 준비할 이유가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산소에 가서 차례상을 올릴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우리 부모님은 갑작스러운 사태를 직면했고,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셨다.
당시에도 분명 누군가 주장을 하긴 했었다.
저 안에서 이세계異世界의 괴물이 튀어나올 거라고.
하지만 그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와 현실은 다른 법이니까.
전 세계 각지에 나타난 신비한 게이트에 관해 연구를 하긴 했었지만, 그것 자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실 없었다.
물론 그러자고 해도 당시에는 불가능했지만.
마력이 없는 이는 들어가지 못하는 게 게이트다.
한 마디로 각성자만 들어갈 수 있는데, 세상에 마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의 존재가 나타난 건 게이트가 완전히 개방된 후다.
그러니까 어차피 한 번은 겪었어야 했던 일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런 위험이 있을 줄 알았다면 애초에 그 근처에 다가가지도 않았을 텐데.
당시 나는 어렸고, 호기심이 충만했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호기심보단 반 아이들에게 직접 보고 왔다며 자랑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12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지만,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도 작은 사회가 이뤄지는 나이.
그리고 그 작은 사회 안에서 나는 무언가 눈에 띄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르고 졸라서, 굳이 구경하러 갔었다.
그리고··· 그게 가족으로서의 마지막 나들이였다.
* * *
홍동백서.
조율이시.
제사상을 처음 차리는 나에게 차례상 차림 법은 꽤 복잡하게 다가왔다.
대체 뭐가 이렇게 규칙이 많은지.
한국은 아직 유교문화가 근간을 이루고, 사람들은 조상들에게 제祭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요즘에야 집안에서 따르는 종교에 따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지만, 아직도 어른들이 있는 집안에서는 명절이면 대부분 차례를 지낸다.
심지어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이면서도 제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 보면 제사라는 건 이제 완전히 한국의 고유 문화 중 하나가 된 셈이다.
명절마다 대이동을 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추석에는 굳이 식당 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손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런 날은 식당에 오기보단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오손도손 즐기는 게 좋지 않은가.
그리고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딱히 거창하게 준비할 생각은 안했다.
기본적으로 준비하는 과일이나 곶감, 밤 같은 것들은 시장에서 구했다.
추석 명절인 만큼 시장에서도 다양한 전이나 나물을 팔긴 했지만, 이건 직접 만들기로 했다.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올리는 차례상인데.
과일이야 직접 재배할 수는 없어도,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야할까.
호박전이나 꼬치전, 부침과 도라지, 시금치, 고사리 등으로 나물을 무쳤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것은 딱 두 가지다.
재료 준비부터 조리까지 제법 공을 들였다.
그리고 추석 바로 전날.
드디어 그 재료가 도착했다.
조금 어설프지만 꼼꼼하게 포장된 하얀 스티로폼 박스.
뚜껑을 열어보니 확실히 물건이 좋다.
“와-. 이걸 제사상에 놓는다고?”
“너 이제 제사도 아냐?”
“일본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긴 해. 뭐, 한국처럼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올리는 건 아니지만.”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라 그런가.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는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나는 이루가 재료를 구경하는 사이 전화를 걸었다.
“선장님, 물건 지금 받았습니다.”
-허허. 일찍 도착했네요. 하긴, 비행기 타고 가는 거니까.
“늘 좋은 물건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내일 추석이라 저도 작은 선물 하나 보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받았습니다. 매번 후한 가격에 사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뭘 이런 것까지···.
“별거 아닙니다. 명절 잘 지내시고, 앞으로도 좋은 물건으로 부탁드립니다.”
-하하.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이제 나이가 있어서 배 타는 것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엄살이다.
목소리만 듣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에 일어나 조업하는 것만 보더라도 은퇴는 아직 멀었다.
전화를 끊고선 물건을 확인해봤다.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녀석은 힘도 엄청났다.
스티로폼이긴 하지만 박스에서 꺼내면서도 반쯤은 부서질 정도.
“근데 왜 두 마리야? 아, 혹시···.”
“뭘 물어. 하나는 외삼촌 차례상에 올라가는 거지.”
“···하긴.”
시연이네 할아버지가 나에게는 외삼촌이 된다는 걸 안 뒤로는 이루 녀석도 그냥저냥 이해하는 분위기다.
“근데, 오촌이면 결혼도 되지 않나?”
“···미친 거냐?”
“왜, 일본에서는 사촌끼리도 결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실제로 그런 경우도 엄청 많다고?”
사촌 사이에 결혼한다는 말에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일본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렇다고 그런 문화를 이해를 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내가 시연이나 시은이를 그렇게 볼 일도, 대할 일도 없을 테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들어가서 물이나 올려놔. 이것들 씻어서 데쳐야 하니까.”
“알았어. 근데 무슨 해산물을 이렇게 많이 올려? 저건 또 뭐야, 조기?”
문어와 조기.
한국 제사상에서는 흔히 올라가는 것들이지만 아무래도 이루가 보기엔 신기할 수도 있겠다 싶다.
조기 역시 제주도 선장님이 보내주셨는데 큰 것으로 4마리나 된다.
큰 조기를 구하기가 힘든데, 용케 어떻게 구해주셨다는 게 더 감사하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해산물을 상당히 좋아하셨다.
생선을 구우면 늘 나와 아버지의 밥 위에 올려주느라 바쁘셔서 정작 당신은 얼마 드시지도 못했지만.
둘이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늘 남은 것들로 끼니를 해결하시곤 했으니까.
당시에는 왜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어머니도 먹고 싶었을 게 당연한데···.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 드리는 게 무슨 소용이겠냐 싶지만, 그래도 마음이나 전하고 싶었달까.
아니, 어쩌면 그저 내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를 먹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는 게 되려 부끄러울 정도다.
처음으로 올리는 제사상.
내 마음 편해지자고 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이 정도는 하고 싶었을 뿐이다.
물이 끓기 시작하는 동안 문어를 깨끗하게 손질했다.
문어가 큰 만큼 빨판에 펄이나 이물질이 많을지도 몰라서 그 부분을 유독 신경 써서 밀가루와 굵은 소금으로 빨래를 하듯이 닦았다.
“형, 끓는데?”
식당 화구라 화력이 강해서 그런지 물이 제법 많은데도 빨리 끓었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천천히 삶아내고 나니 상당히 크기가 작아졌지만, 그래도 크긴 크다.
그래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뿌듯하달까.
생선은 소금과 레몬즙을 살짝 뿌려서 오븐에서 구웠다.
마음 같아선 마당에서 숯불이라도 지피고 싶었는데, 괜히 동네 사람들한테 민폐일까 싶어서.
“···이, 이거 한 마리는 우리가 먹어도 되지 않을까?”
“차례 끝나고 나면 너 다 먹어. 하지만 그 전에 건드리면···.”
“나도 알아. 제발 협박 좀 그만해.”
아침부터 일어나서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오늘 쉬는 날인데, 괜히 미안하네.”
혼자였으면 사실 엄두가 안 났을 수도 있겠다.
이루야 제사 음식이라는 걸 잘 모르니 옆에서 보조를 맞춰주는 정도였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큰 도움이 됐다.
이제, 내일이면 추석.
해가 진 뒤에 이루와 함께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달이 떠 있었다.
“너희도 추석은 있지 않아? 안 가봐도 되겠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루는 현재 한국 국적을 받긴 했지만, 명확히 하자면 귀화를 한 것은 아니니까.
나라별로 이름은 다르지만, 대부분이 가을에 곡식을 거둬들이고 축하를 하는 풍습은 있지 않은가.
“일본? 추석은 아니고···. 오봉이라는 명절이 있는데, 벌써 지났어. 우린 양력으로 하거든. 아무튼 신경 안 써줘도 돼.”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명절은 아니지만, 의미가 깊은 독립 기념일.
일본은 그날이 최대의 명절이라고 했던가.
“그래···. 그래도 다음에 쉬어야 할 일이 생기면 편하게 말해.”
“당연하지. 내가 무슨 외국인 노동자도 아니···.”
어라? 맞나?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긴 이루의 포지션이 상당히 애매하긴 하지.
별것 아닌 이야기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화가 울렸다.
“음? 강문희 과장이 이 시간에 어쩐 일로···.”
귀환자 재단에서 재정 관리를 맡고 있는 회계사였다.
하지만 7시가 넘었으니 이미 퇴근 시간은 훌쩍 지났는데?
야근할 정도로 일이 많지 않은 거야 당연하고, 그런 일이 있으면 직원을 추가로 모집해야지.
악덕 사장이 되는 건 사양이다.
“과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아직 퇴근 안 했습니까?”
-이사장님, 그게··· 퇴근하다가 급히 돌아왔어요.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익명으로 기부금이 들어왔어요!
“기부금이요?”
재단이니 기부금을 마다하진 않지만, 아직 제대로 된 활동도 없고.
알려지지도 않은 소규모 재단에 누가 기부를 해?
그래도 이왕 들어온 거면.
“그럼 좋은 일 아닙니까?”
기부하겠다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지.
-근데, 그게 금액이 너무··· 커서요. 정말 말도 안 되게 커요! 저도 혹시 오류가 아닐까 확인하러 온 건데 오류가 아니었어요!
“도대체 얼마나 되는데 그러세요.”
-그게, 놀라지 마세요···. 30조 원이에요.
“···네?”
···얼마라고?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근데, 어째서인지.
기부금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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