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28화.
이루가 돌아온 지도 벌써 일주일.
여지없이 안정민 과장이 찾아왔다.
“요즘 뉴스만 틀면 아주 신이 납니다.”
이제는 그다지 어색해 보이지 않는 파트너인 신주희도 함께.
“저야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이루 씨가 이번에 엄청난 공을 세우셨다면서요.”
“제가요? 하하하-. 뭐, 별것 아니었는데요. 하하하하핫!”
일본에서 돌아온 이루는 뭐가 그리 좋은지 온종일 싱글벙글.
오늘은 정황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찾아와서 얼굴에 금칠까지 해대니 아주 입꼬리가 귀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어휴. 공을 세운 정도가 아니죠. 이건 사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된 건 아니지만, 대마도 반환 계획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면 아마 두 분에게도 따로 보상이 나올 겁니다.”
안정민 과장이 속삭이듯이 말한다.
참나, 가게에 다른 사람이라곤 없는데도 다들 왜 이러는지.
비밀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에 뭔가 카타르시스라도 느끼나?
“보상이면 어떤···?”
이루 녀석도 보상이라는 말에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물론 난 그런 거에 관심도 없고.
“유족들 피해 보상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9,300억 달러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말로 들어서야 감이 잘 오질 않지만, 한국 전체의 2년 예산에 맞먹는 금액.
그 모든 금액이 유족들에게 온전히 100% 쓰일 거라곤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느 정도 투명성을 유지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고나 할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일 회의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국방부는 물론이고 재정기획부에서 아주 눈이 뒤집혔다는데, 솔직히 이해는 되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유족들에 대한 보상이니까요.”
말끝을 흐리면서 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안정민 과장.
여차하면 내가 개입할까 걱정되는 건지, 아니면 장민국 원장이 살펴보고 오라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30퍼센트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뜬금없었나?
하지만 내 그런 뜬금포에도 안정민 과장은 알아들은 모양이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걸 보면.
그 정도는 유족들을 위해서 쓰여야지.
이건 그야말로 목숨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지.
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던 당시에는 그야말로 각성자 한 명의 존재가 상당히 귀중한 시대였다.
아마 그 사고가 아니었다면 유족들 역시 꽤 부유한 생활을 유지했을 테니, 당연한 거다.
오히려 적은 거지.
사람들 역시 갑작스러운 국고의 충당에 무조건 환영하고 있지만,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스레 욕심을 부리게 될 거다.
자신이 사는 자치구의 생활 개선을 위한 지원이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 역시 정부의 무이자 대출 등을 바랄 테고.
참으로 이기적이고 야속하지만, 결국 사람들이라는 게 다 그렇다.
알고 있다. 그간 많이 봐왔으니까.
그들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30퍼센트.
그 정도는 유족들을 위해서 오롯이 쓰라는 의미였다.
안정민 과장의 반응을 보니 내가 말한 의미를 알아들은 것 같다.
어쩌면 그걸 묻기 위해서 장민국 원장이 보낸 걸지도 모르고.
“아직 준비되려면 좀 시간이 좀 남았는데···. 잠시 근처에서 산책이라도 하고 오시겠어요?”
식당에 왔는데, 밥도 안 먹여서 보낼 수는 없지.
치익-치익-.
오늘도 증기를 뿜어내며 열심히 딸랑거리는 압력솥의 추를 보니 앞으로 넉넉잡고 30분이면 저녁 메뉴가 완성될 것 같다.
멍하니 앉아서 기다리느니, 동네라도 한 바퀴 돌고 오면 입맛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권했다.
“그럼 그럴까요?”
두 사람 손에 커피 대신에 주스 한 잔씩을 쥐여주고 내보내고, 장사 준비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배추의 겉잎은 떼어 매콤하게 겉절이로 무치고, 속잎은 깨끗하게 씻어 준비했다.
소금에 살짝 절여서 물기를 뺀 무말랭이.
“이루야, 된장국 잘 돼 가는 거 맞지?”
“걱정 말래도. 내가 또 된장국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인다니까!”
그래,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믿어야지.
오늘 저녁 메뉴는 보쌈이다.
쌈은 상추와 김치, 배춧속이면 충분하겠지만 혹시나 싶어 깻잎 장아찌를 비롯한 장아찌류를 몇 가지 더 준비했다.
준비하는 데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 있었는데 바쁜 와중에 마침 이루가 된장국은 자기가 하겠다며 나섰다.
제대로만 해준다면 나야 좋지.
이루가 식당에서 일을 한 이후 처음으로 한 가지 음식을 온전히 맡겼다.
근데 왠지 조금씩 불안감이 스멀거리는 이유는 뭘까?
대파 향을 가득 머금은 고기가 익어가는 향기 사이로 은은하게 퍼지는 이 된장의 향기가 왠지 익숙하지 않은데.
그래도 설마 된장국이 실패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기름이 쫙 빠진 두툼한 고기가 도마에 올려지자 윤기 나는 몸을 흔들거리며 춤을 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정도로 뜨겁지만 데일 걱정을 할 필요는 없고.
얇은 비닐장갑만 하나 착용한 채로 고기를 썰어냈다.
잘 드는 칼이 고기를 가르고 지나가면 육즙이 터지며 흘러내린다.
“와- 맛있는 냄새! 사장님, 입구에 보쌈이라고 적혀 있던데, 맞죠?”
“네. 어서 오세요. 오늘 메뉴는 보쌈입니다.”
조금 전 나간 안정민과 신주희가 아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봤던.
“또 오셨네요?”
“딱 한 번 왔었는데 기억을 하시네요?”
“물론 기억하죠. 그런데 오늘은 아내분이랑 같이 안 오셨네요?”
“아, 퇴근하는 길이라서요. 마침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할까 했는데···. 메뉴판에 보쌈이 딱 보여서요. 하하. 포장도 되죠?”
환하게 웃는 남자는 전에 임신한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왔던 손님이다.
그런데 포장···?
* * *
“그래서 반찬통에 담아주셨다고요?”
“어쩔 수가 없잖아요. 포장 용기 같은 건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솔직히 처음 식당을 하려고 할 때부터 포장에 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그런 마음이 컸다고 해야 하려나.
게다가 음식이 식으면 맛없어지는 거야 당연한 일.
포장이나 배달 전문점들은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서 조리 방법에 변형을 준다는데, 난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다.
많이 파는 것보단, 맛있는 걸 팔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일을 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던 모양이다.
정말 먹고 싶어도 여건이 안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어서 사러 왔는데 포장이 안 된다는 말은 차마 못 했다.
그래서 가게에 있는 반찬통이란 통은 전부 동원해서 포장을 해줬다.
아마 음식값보다 포장에 사용된 용기의 비용이 월등히 크겠지.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영악하고 이기적인데요. 그렇게 쉽게 믿으시다간 가게에 통이 안 남아 나겠어요.”
“그건 신 박사님 말이 맞아요. 갈수록 정이 없어지는 세상이니 사장님도 조심하셔야 해요. 이젠 한국도 정이라는 게 점점 사라지니까요.”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던 남자가 그래 보이진 않았지만.
말로는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그 느낌을 전달하긴 힘들 거다.
“뭐,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죠.”
돈이 많아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내 사람 보는 눈을 믿는 거지.
“두 분은 식사··· 보단 역시 술이겠죠?”
이제 신주희 박사의 취향을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럼요! 근데, 사장님. 혹시 막걸리는···.”
처음과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신주희 박사의 표정이 조금 귀엽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귀엽다는 말이 어울릴 나이는 아니지만.
“있죠. 보쌈하는데 막걸리 준비를 안 하는 건 죄악입니다.”
“역시! 선생님··· 아니, 사장님!”
돼지고기도 두 가지로 준비를 했다.
지방과 살코기의 조합이 관건인 보쌈이지만 간혹 지방 부분을 꺼리는 사람도 있는지라.
목살과 삼겹살.
또 마침 안정민 과장과 신주희 박사의 취향이 달라서 두 가지를 적절히 섞어서 내어줬다.
반찬으로는 매콤하게 무친 겉절이와 무말랭이무침, 깻잎과 마늘장아찌며 새우젓과 막장.
거기에 상추, 깻잎, 배춧속까지 놓이자 테이블이 제법 푸짐하게 가득 찼다.
꿀렁-꿀렁-.
시장에서 급하게 사서 온 양은으로 만들어진 잔에 뽀얀 막걸리가 채워지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들이켰다.
“크으-. 역시 막걸리 첫 잔은 빈속에 마셔야 식도가 짜리릿한게···.”
누가 들으면 어디서 밭일하다가 새참이라도 먹는 농사꾼인 줄 알겠다.
근데 또 그만큼 구수하게 마시는 걸 보니 뭔가 뿌듯하기까지 하다.
“사장님도 와서 같이 드시죠?”
“···그쪽이 첫 손님입니다?”
“아··· 하하. 그랬나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된장국을 퍼다 주려고.
“···이게 뭐냐?”
“응? 뭐긴, 된장국이잖아. 맛이 끝내준다고!”
“···하아.”
주방의 천장을 올려다보는 데 뭔가 힘이 빠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내 잘못이다.
이 녀석이 일본 사람이라는 걸 그새 까먹은 건 아니지만.
설마하니···.
“네가 끓인다는 게 미소 된장국이었냐?”
“무슨 소리야. 된장국이라면 당연한 거 아냐?”
“그래. 그렇겠지···. 일본에서는.”
비슷하면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이런 데서 실감하는 날이 올 줄이야.
얼른 내가 다시 끓여야 하나 생각하는 찰나.
밖에서 안정민 과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된장국 주시는 거죠?”
“···그럼요. 보쌈에 된장국이 없으면··· 안되죠.”
돼지고기 사이로 퍼지던 된장국의 향이 조금 낯설 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묘한 위화감의 정체가 이거였나?
살짝 풀어진 맑은 미소 된장 국물 사이로 떠다니는 미역과 두부 조각들.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서빙하고, 두 사람 반응을 본 다음 다시 끓이든 말든 해야지.”
“이,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특히 매콤한 거랑 같이 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안다.
이루 녀석의 마음도 알겠고, 정말 맛있다는 것도 알겠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이 녀석이 모르는 거지.
아니지,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마도 반환에 7광구의 개발권 포기, 9,300억 달러의 피해 보상금.
독도와 위안부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이고 국제적인 사과까지.
최근 일본의 파격적인 행보에 한국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물론 아직도 ‘일본은 저러다가 뒤통수칠 거다’라며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발표 후 겨우 일주일 만에 일본 맥주의 수입이 재개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
주방에서 슬쩍 보니, 국을 받은 두 사람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설마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건 아니겠지···.
잠깐, 진짜 그럴 수도 있겠는데?
지금 한국에서 일본 제품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저 미소 된장도 이루 녀석이 이번에 일본을 다녀오면서 가져온 거니까.
두 사람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예 처음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와-. 사장님, 된장국 엄청 맛있는데요?”
“그, 그렇죠?!”
신주희가 환한 얼굴로 말하자 이루가 더 기뻐한다.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네. 정말 맛있어요. 이거 일본 음식 맞죠? 미국에서 먹어본 적 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그 말에 이루의 얼굴이 더욱 활짝 펴진다.
“미소! 미소 된장이요.”
“맞아, 미소 된장국. 진짜 오랜만에 먹어보네요. 과장님은 이거 드셔보셨어요?”
“저야 어릴 때 제법 먹어봤죠. 그때만 해도 일본이랑 사이가 나쁘긴 했어도 이 정도까진 아니어서···.”
말을 하다가 이루를 슬쩍 바라보더니.
“근데 괜찮으세요?”
“뭐가요?”
안정민 과장의 뜬금없는 물음에 오히려 이루가 갸웃하며 반문했다.
“우리야 좋은 일이지만 반대로 보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출혈이잖아요. 돈도 돈이지만 그렇지만 대마도나 다른 것들까지···.”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 아닌가요? 오래전 어긋났던 것들이 이제야 겨우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괜찮고 말고 할 게 있나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이루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선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데.
“어때? 내 된장국 반응 봤지?”
애써 밝은 척하려는 걸 알지만, 지금은 맞장구를 쳐주는 게 돕는 거겠지.
“그래. 잘했네. 어때? 이참에 다음엔 아예 일식 메뉴를 한 번 해볼까?”
“···진짜? 그래도 아직은 좀 이르지 않을까?”
“뭐, 가게 앞에 떡하니 메뉴판도 있는데. 싫은 사람은 안 오겠지.”
이루가 잠깐 고민에 빠졌다.
메뉴를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실행 자체를 두고 고민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사이에 또 다른 손님이 들어섰다.
“사장님, 계세요?”
“네. 어서 오세요!”
오늘의 보쌈은 제법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미소 된장국의 반응 역시 생각보다는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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