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25화.
식당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
불은 꺼져 있고, 주택가라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주변도 고요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야외 테이블로 향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 들이 간간이 빛난다.
마석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성할 때는 맑디맑은 하늘이었는데.
고작 30년 사이에 벌써 하늘에 별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몬스터.
그 몬스터들이 나오는 게이트.
그리고 그런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청정에너지.
딜레마였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고민도 없이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공해가 있어도, 게이트가 없는 세상을.
그리고 물론 나도 그런 이들 중 하나다.
“어? 삼촌!”
늦은 시간에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인가 싶다.
“시은아, 안자고 이 시간에 왜 밖에 있어?”
“아···. 요즘 잠이 잘 안 와요. 아니지, 안 온다기보다. 그냥 힘이 넘친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느낌이에요. 잠깐만 자고 일어나도 푹 잔 것처럼.”
“그래? 그럼 좋은 거 아니야?”
분명 좋은 일이 맞을 것 같은데, 말하는 표정은 어째 시무룩하다.
“그게 무작정 또 좋지만은 않아요. ···시간이 너무 남아서 심심하거든요.”
“···심심해?”
시간이 많이 남아서 심심하다라.
나야 인생에서 가장 시간이 부족하다는 고3 수험생 시기를 겪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시은이와 1, 2등을 다투는 아이가 이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좌절감을 느낄까.
“공부에는 끝이 없다고 하던데.”
“헤헤- 제가 너무 재수 없었죠? 근데 진짜 그래요···. 요즘은 의학 서적까지 보고 있다니까요?”
“의학 서적···. 아직 의대도 가기 전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의대에 합격할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이건 너무 앞서 나가는 거 아닌가?
“예습하는 셈 치죠, 뭐. 거기다 의학 서적들이 전부 영어잖아요. 그래서 영어 공부도 되고.”
“하, 하하-.”
부디 친구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지 않길 바라야지.
시은이가 따돌림을 당할 아이는 아니겠지만, 시기의 대상이 되는 건 별로 바라지 않으니까.
그것도 이유가 내가 준 산삼 때문이라면.
“우유라도 한 잔 데워줄까?”
“에에? 제가 무슨 애예요?”
별이 빛나는 사이로 간간이 깜박이는 비행기 불빛이 지나간다.
달은 빌딩 숲 사이에서 어느 건물에 가려졌는지, 아니면 그믐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는다.
밤하늘 아래에서 조카와 함께 앉아 있는 느낌은 나에게는 무척이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후룩-.
“어때? 맛있지?”
“네. 헤헤-.”
우유를 데우고 석웅 형님에게 부탁해서 구매한 아카시아꿀을 넣었다.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우유를 두 손으로 잡고 마시는 시은이.
“언니는 아직이야?”
“언니가 보기완 달리 은근히 술 좋아하거든요. 오랜만에 친구들 만났으니 아마 좀 늦을 거예요.”
“하긴···.”
얼핏 본 게 전부긴 하지만, 상당히 즐거워 보였으니까.
생각해보면 어릴 때 기억 속의 어머니는 상당히 술을 즐겼던 것 같다.
나쁜 버릇의 주사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그렇게 잠깐 밤바람을 맞고 있는데, 골목 어귀 초입에서 익숙한 리듬의 발걸음이 들려온다.
“어? 언니다!”
밤공기가 주는 특유의 울림 덕분인지, 시은이도 금세 눈치를 챈 모양이다.
우유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시은이.
이럴 때 보면 참으로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보통 저 나이 때의 자매는 많이 싸운다던데, 두 사람뿐이라 그런지 그런 분위기도 전혀 없이 언제나 다정한 사이의 자매.
나도 형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게도 사촌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더 친하게 지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지만 문득 그런 가정을 떠올려봤다.
“오-.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새벽이나 돼서 올 줄 알았더니.”
“얘, 얘는. 내가 언제 그렇게 늦게 왔다고···. 안녕하세요.”
제법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야심한 시각이라고 하기엔 또 이른 애매한 시간.
“친구들 만났다며?”
“네···. 복학한다고 연락했는데 고맙게도 다들 축하해준다고 모여줘서요.”
“시연이가 인복이 있나 보다.”
“아뇨. 딱히 그렇지는···.”
시연이가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이 나이쯤 되면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제법 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을 밝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법이지.
내가 보기에 시연이도 태생적으로 내성적인 아이는 아니다.
그저 살아온 환경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보니 조금 소심해졌을 뿐.
“참 신기해요.”
시연이의 느닷없는 말에 내 고개가 돌아갔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뜬금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어쩌면 이 고요한 밤 공기 덕분에 감상적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기 오면 이상하게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거든요. 해주시는 음식도 그렇고.”
“할아버지가 요리를 잘 하셨나 봐?”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식당에서 하는 음식을 먹고 떠오를 정도라면 제법 실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정집에서는 좀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조미료도 그렇지만, 소량과 대량으로 하는 음식은 그 맛이 다른 법이니까.
특히나 시은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같은 것들은 대량으로 조리를 해야 해야 더욱 맛이 나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다.
그걸 먹어보고 할아버지가 해준 김치찌개가 생각난다고 했었지.
“네. 저희가 어릴 때는 늘 할아버지가 해주셨거든요. 나이가 드신 뒤에는 잘 못 해주시긴 했지만···.”
시연이가 술을 마셔서 그런지, 평소에는 잘하지 않던 집안 이야기도 듣게 됐다.
“저희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랑 시은이한테는 할아버지가 아빠고 엄마였어요.”
“언니는 갑자기 왜 할아버지 이야기는 하고 그래···.”
괜스레 코끝이 찡해오는지, 시은이가 맘에 없는 핀잔을 하며 자리에서 슬쩍 몸을 돌린다.
“그러고 보니, 저희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가 아주 가끔 삼촌 이야기를 하시곤 했었는데. 결국 못 보고 돌아가셨네요.”
···뭐?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삼촌 이야기?”
“네. 아, 삼촌 말고요. 할아버지의 조카가 있었데요. 저희는 얼굴도 못 보긴 했는데.”
내 이야기인데.
하지만 나는 평생 몰랐던 일인데, 이게 무슨 소리지?
어머니에게서도 한 번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
그러니까, 내 어머니의 동생이자.
나에게는 삼촌이 되고, 내 오촌 조카들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의 이야기다.
“···할아버지 이야기 좀 더 해줄래?”
* * *
말복이 지나도 더위가 꺾일 줄 모르는 시기.
입추立秋가 지났지만, 가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성급한 시기가 딱 이맘때쯤이다.
땡볕을 지나, 양복을 입은 남자가 ‘공무수행’이라 적힌 차에서 내려섰다.
“어휴···. 사장님. 저 왔습니다.”
아직 문을 열기 전인 가게지만, 늘 찾아오는 몇몇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사실상 연 것과 다를 바가 없긴 하다.
“어? 통장님들도 계셨네요?”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통장님들은 한참 회의 중이다.
추석에 열리는 마을 축제를 기획하신다나.
커피 한 잔씩을 내려드리면 저렇게나 세상 기쁜 표정으로 고마워하시니, 내 마음도 뿌듯해진다.
“아아-. 이번 추석에 있는 마포 한마당 준비하시는 구나들.”
“으이그, 하여튼 눈치는 귀신이라니까? 이번에 우승 상금이 자그마치 자동차라면서요?”
“소식도 빠르네요. 아직 발표도 안 됐는데, 도대체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오호호-. 다 아는 수가 있지. 근데 진짜 스포츠카 주는 거예요?”
“스포츠카라고 해도 국산이에요.”
“그래도 그게 어디야?”
“그렇죠··· 가격으로 따지면 아마 삼사 천은 훌쩍 넘을걸요?”
“우승만 하면 대박이네, 대박이야.”
“설마 우승 노리시는 거예요? 우승은 힘드실걸요? 듣기로는 근처 대학생들 동아리까지 다 참석한다던데.”
쟁쟁한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까지 대거 참석하면 확실히···.
주방에서 저녁 재료를 손질하고 있던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홀로 나왔다.
“오셨어요?”
“네. 사장님이 부탁하신 거 말인데···. 잠깐 나가서 이야기하실까요?”
더운데 굳이 나가려는 걸 보니, 역시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가슴이 묘하게 쿵쾅거리는데.
커피 한잔과 차가운 주스를 따라와 커피를 안정민 과장에게 건넸다.
공무원 차량에 에어컨이 영 시원치 않다며 불평을 늘어놓던 그가 이번에도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사장님 예상이 맞았어요. 고故 이정수 님, 그러니까 이시연 양의 할아버지께서는 예전에 식당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게 언젭니까?”
“대격변이 일어난 직후, 그러니까 사장님이 12살 무렵일 때네요. 지금은 철거되고 없긴 하지만,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건물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 자리에서 40년이나 운영을 하셨고, 건물이 철거되면서 폐업을 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12살 무렵.
대격변에 부모를 잃고 엉망으로 살았던 시기다.
모두 각자의 삶을 정비하기도 정신이 없었던 그 시절, 유일하게 날 챙겨줬던 식당 주인이 있었지.
그저 어린아이가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그랬던 거겠지 싶었다.
게이트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내고 돌아온 뒤에야, 아- 머리가 큰 뒤에 한 번 찾아가 볼 걸 싶은 생각을 했었는데.
“사, 사장님? 지금 설마 우시는 건···.”
그 말에 문득 눈가를 훔치니 손끝에서 옅게나마 물기가 느껴진다.
내게 이런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었던가?
무심결에 눈가를 적시는 느낌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도···.
혼자가 아니었구나.
* * *
무슨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왜 삼촌은 그때 당시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까.
“거참···. 그럼 거의 10년을 매일 봤는데도 몰라봤단 거네?”
이루 녀석이 기어이 후벼파는 말을 꺼낸다.
나야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삼촌이 있다는 것 자체도 몰랐는데.
설마하니 그런 사람이 내 옆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겠나.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저 그런 의문만 남아있을 뿐이다.
“나였으면 단박에 알아봤을 텐데.”
“···그만해라.”
“나는 손녀들인 줄 알았더니 겨우 오촌 조카들이었어? 근데 뭘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줘, 학비에 생활비까지?”
“그만하라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재단까지 차려서 챙겨줘야 할 사이는 아니지 않아? 아니면 차라리 그냥 밝히고 앞에 나서서 생색이라도 내던···.”
내 손에 칼이 쥐어지는 걸 보고서야 겨우 입을 다무는 녀석.
“너, 일본에서 온 애들 이야기는 들었지?”
녀석이 조금 전까지 입을 쉬지 않았던 것도 아마 이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어지간한 정보기관을 운영하는 나라에서는 다 알아챘을 이야기.
이루 녀석도 휴대전화를 마련한 뒤로 메를린은 물론이고 하밀하고까지 연락을 하니 들었을 거다.
일본이 이번에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들었지. 이미 죽였다며.”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면, 자기가 죽을 것도 각오해야지.”
그런 일에 사정을 두진 않는다.
그 상대가 몬스터이든, 사람이든.
“···그걸로··· 끝낼 순 없겠지?”
“무기는 무기일 뿐이야. 정작 문제는 그걸 휘두르는 인간이지. 그들은 무기였다.”
“진이 형,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일본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자칫하면 국제적인 분쟁이 될 수도 있어.”
“그래서?”
이루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떨군다.
내가 한 번 이렇게 마음먹은 이상, 바꿀 수 없다는 걸 이 녀석은 아니까.
“···그럼 적어도 내가 먼저 가게 해줘.”
“아무리 너라도 내 상대편에 서면 봐줄 생각 없다.”
“내가 미쳤어? 나도 그딴 것들 때문에 목숨을 버릴 생각 없으니까 걱정 마.”
그럼 대체 왜 먼저 가겠다는 걸까.
잠깐 생각을 해보니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래. 알았다. 이번엔 맨몸으로 동해안 건너지 말고, 비행기 타고 가라.”
“하하-. 고마워. ···어쨌든 전쟁은 막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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