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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23화 (23/153)

귀환자 식당 23화.

솔직히 그냥 ‘그런 분위기’라는 말이었다.

당장 누가 시연이를 해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경호원의 감에 가까운?

근데 이 찜찜하고 더러운 기분.

“이루야. 나 아무래도 나갔다 와야 할 것 같다.”

“···지금 어딜?”

“손님들 가시면 뒷정리 좀 부탁하자.”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당장 나가려는데.

“자, 잠깐! 형이 가면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난 한국말도 못 하잖아.”

아··· 그렇지.

통역 마법을 걸어둔 채로 생활을 해서 몰랐는데, 내가 멀어지면 자연스레 마법은 해제되어 버린다.

“···뭔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형이 이러는 거 처음보는데?”

나도 모르겠다.

마법을 사용하는 각성자들의 특징 중의 하나다.

평소에는 차갑다고 생각될 만큼 냉철한 모습을 보인다는 거.

그런데 그게 요즘 흔들리고 있다.

부모님을 눈앞에 잃고 각성자가 된 후.

나는 정말 피가 차갑게 끓는다고 표현하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몬스터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없고, 심지어 사람을 상대할 때조차도 냉철 그 자체였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단지 마지막 남은 혈육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전에 네가 나한테 전화해서 조심하라고 했던 말. 기억하지?”

“···자, 잠깐만. 그럼 설마 일본에서?”

알 수 없지.

당장 내가 의심할 수 있는 게 일본일 뿐이다.

“내가 그렇게 알아듣게 말을 했는데도···!”

“무슨 소리야?”

이루의 반응을 보건대, 녀석이 그냥 도망친 건 아닌 거 같다.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알아야 할 것 같은 느낌.

“너 일본에서 건너올 때··· 무슨 짓 하고 왔냐?”

“무슨 짓은··· 그럼 나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것들을 그냥 둬?”

하아.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인가.

“그래서?”

“그냥··· 몇 대 패주고 왔지 뭐. 그래도 죽이진 않았어! 충분히 잘 알아듣게 이야기했다고!”

“잘 알아듣게?”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저쪽에서야 당연히 독기가 더 올라있을 거고.

차라리 죽이고 왔으면 모를까.

“···혹시 나 때문인 거야?”

평소답지 않게 잔뜩 주눅이 든 표정을 보니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라면 저쪽에서도 상당히 사전 조사를 많이 하고 덤비는 느낌이라는 정도.

이 녀석이 온 지도 벌써 보름이 넘어가는데, 이제서야 행동을 시작했다?

개인이 아무리 숨는다고 해봐야 국가가 나선다면 사람 하나 찾는 것쯤이야 우스운 일이지.

게다가 저 녀석도 그렇지만 나도 안이하게 행동했던 건 맞으니까.

세상에 어떤 도망자가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겠어.

“네 잘못만은 아니야.”

절반은 내 책임이기도 하다.

사람을 거두기로 했으면 책임을 져야겠지.

하지만 주변인을.

그것도 가족을 건드리려고 하다니.

이 녀석들은 선을 넘었다.

···아. 아직 확정된 일은 아니었지?

“너, 잘못한 건 알지?”

“그야···. 미안.”

“그럼 손짓을 하든 발짓하든, 알아서 해결해.”

“어? 자, 잠깐——!”

시연이가 있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학교는 마포구 내에 있는 곳, 게다가 지금 있는 곳은 그런 대학가 거리에서도 늘 사람들이 오가는 번화가 한 복판이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나라에 들어와서 깽판을 치진 않겠지.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사이가 안 좋은 나라라면 더욱.

* * *

홍대 앞 대학로 거리.

젊은이들의 상징이라고까지 불리는 거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우린 시킨 것만 제대로 하면 된다. 네 생각이나 판단 따위는 필요 없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컥-!

리더처럼 보이는 남자의 손이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우리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만이다.”

“며, 명을 받듭니다.”

털썩.

켈륵- 켈륵-.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잠시 시선을 던지지만 이내 곧 무시하고선 자신들의 갈 길을 걷는다.

“젠장, 조선 놈들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마치고 돌아간다.”

“그림자는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먼저 처리해야지. 그리고 명심해라.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물론입니다.”

어금니 안쪽에 숨겨진 독약.

반지 속에 감춰진 독침.

어느 하나라도 실행하면 끝이다.

고작 여학생 한 명 처리하면 되는 일.

그렇다고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뭐냔 말이다.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저 여자애가 도대체 누구길래?

어려서부터 오로지 명령만 따르는 무기로 길러진 이들.

일본 정부는 그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한동안 지켜본 결과, 이시연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은 평범했다.

대기업의 회장이나 한국 권력자의 숨겨진 자제 같은 것도 아닌, 정말로 그저 학교에 다닐 준비를 하는 평범한 학생.

하지만 그런 학생에게 그림자 호위가 있을 리는 없겠지.

‘분명 뭔가가 있긴 한데···.’

그게 뭔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조장은 복잡해지는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정작 부하들에게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지휘를 해야 할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하는 마음에.

“일단 3, 4호는 그림자부터 유인한다. 그사이에 나와 2호가 목표물에 접근하겠다.”

납치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척살.

“그림자 제거 후 4호는 지정된 위치로 이동해서 이동 경로상 위험 요소 확인 및 제거, 3호는 이동 수단 확보 후 대기한다.”

“네!”

몇 번이고 동선을 체크했고, 현재 목표물이 있는 장소 역시 사전에 조사를 마쳤다.

지금까지 해왔던 수없이 많은 임무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간단하게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찾았다.”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 * *

“어? 삼촌은 어디 갔어요?”

낯선 한국말에 이루의 몸이 그대로 정지해버렸다.

‘무슨 말이지? 이제 계산하고 간다는 이야기인가?’

슬쩍 테이블을 보니, 이미 친구들도 밖으로 나간 모양이고.

테이블 위에 차려졌던 떡볶이나 순대 등도 바닥을 드러냈다.

‘맞겠지?’

흠흠.

이루는 설거지를 하던 손을 멈추고 앞치마에 물기를 닦으며 자연스럽게 가게 입구 쪽에 놓인 포스기로 향했다.

“이루 오빠?”

평소와 달리 아무런 말이 없는 이루를 보며 시은이가 재차 물었다.

‘어? 이건 날 부르는 건데?’

통역 마법이 없더라도 이 정도야 알아들을 수 있다.

이루가 방긋 웃으며 시은이를 돌아봤다.

“삼촌은 어디 갔어요?”

“어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더위도 안 타는데, 등에서 땀이 흐른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전에도 몇 번이나 대화를 나눴던 자신이 갑자기 한국말을 못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섣불리 말을 하기가 두렵다.

‘만약에 내가 일본 사람이라는 걸 알면···.’

그간 다정하게 대했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지금 한국과 일본의 사이는 최악을 달리는 중이니까.

이루는 어이없게도 그게 가장 두려웠다.

고작 보름간의 한국에서의 삶, 그마저도 식당이나 시장을 오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여길 떠나기는 싫은데···.’

거의 매일같이 찾아오는 안정민 과장이나 신주희 박사도.

이진 형이 그리 끔찍하게 아끼는 이시연, 이시은 자매도.

한 번씩 찾아와 온 동네의 사건·사고 소식을 한없이 늘어놓는 한미희 통장님도 너무 좋았다.

오늘처럼 아이들이 찾아와 시끄럽게 떠드는 이 식당이라는 공간.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따듯한 감정.

그걸 이제야 겨우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데.

“어···. 오빠, 혹시 목 아파요?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건가?”

무슨 소린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시은이가 손으로 목을 잡으며 무어라 말을 건넨다.

‘목? 혹시 내 목에 문제가 있냐고 묻는 건가?’

눈치는 빠른 이루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목감기 같은 건가 보다. 에어컨을 너무 틀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어어···.”

자꾸만 길어지는 이야기에 등과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도 늘어난다.

그래도 시은이가 지금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뭔가 뭉클한 기분.

“자요. 여기, 계산해주세요.”

카드를 받아든 이루가 얼른 계산을 마치고 다시 카드를 건넸다.

“얼른 나으세요. 따듯한 물 많이 드시고.”

“아리가또! (고마워)”

무심결에 튀어나온 대답.

이루는 흠칫했지만, 시은이는 듣지 못했는지.

“저 갈게요. 삼촌 오면 잘 먹었다고 전해주세요.”

이루는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은이 테이블이 마지막이었다는 거.

“후우-.”

다리에 힘이 풀리기라도 한 건지, 옆에 있던 의자에 몸을 던지듯 앉아버렸다.

이게 뭐라고.

“요리고 나발이고···. 당장 한국말 공부부터 시작해야겠다.”

통역 마법이 없으니 이렇게 불안할 줄이야.

드래곤도 때려잡던 자신이었는데.

피식-.

어처구니없는 상황인데도,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형은 잘하고 있으려나···.”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벗어나긴 힘들 거다.

목표를 달성하는 거야 당연히 불가능할 거고.

“이 멍청한 놈들이. 내가 그렇게 알아듣게 잘 말했는데도 기어이···.”

경고 아닌 경고를 분명하게 해줬다.

세상 전부를 적으로 돌릴지언정, 이진은 건드리지 말라고.

세상을 구한 7명의 귀환자?

하밀이 그렇게 방송에 나와서 말을 하는 것도 어쩌면 진실을 알아버린 미국 정부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다.

그 아집 덩어리의 늙은이들이야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일본 전체가 멸망의 수순을 걷는 걸 볼 수야 없지 않은가.

‘제발 멍청한 짓을 하지 말길···.’

이루는 마음속으로나마 작게 기도했다.

* * *

손쉬운 일이 되어야 했다.

고작 여학생 한 명을 처리하는 일에 자기 팀이 파견된 것은 조금 이상했지만, 의문을 품거나 불복하진 않았다.

자존심이나 상황을 판단하는 건 자신들에게는 필요 없는 능력.

그저 시키면 시키는 것만 충실히 하면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실패한 적은 없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성공하리라 의심하지 않았고, 일은 잘 진행됐다.

실행한 뒤, 미리 준비해둔 경로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분명 그렇게 흘러갔어야 하는데.

갑자기 뒤에 나타난 누군가.

“뭐, 뭐야!”

뒤를 잡혔다는 사실에 놀란 게 아니다.

4명의 팀원이 모두 당황을 넘어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이··· 이게 대체···.”

“다들 침착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선 주변 상황을 살핀다.”

하지만 말을 하는 자신조차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여, 여기가 어디야···.’

흰색의 공간.

보이는 거라곤 자신과 팀원들 뿐인 세상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면 느껴져야 할 당연한 공기의 저항이나 흐름조차도.

[너희는 누구지?]

으윽!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커다란 소리도 아니고, 강압적인 말투도 아닌데.

뇌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함께, 거스를 수 없는 것만 같은 거대한 파도를 마주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크아아악. 우, 우, 우리는···.”

“나, 나는 카게로 이치노세···. 하, 하운드 부대의···.”

[무슨 목적으로 온 거냐.]

“모, 목표 대상의 제, 제거를···. 끄아아-!”

그 어떤 약물을 투약받더라도 신음소리 조차 내지 않도록 훈련받은 이들의 입에서 모든 정보가 가감 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일본 내각정보관 직속의···.”

어차피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던 사실들.

더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까.

새하얀 공간에서 울리던 소리가 마지막 말을 가볍게 내뱉었다.

[이만 죽어라.]

소름 끼치도록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가 마지막을 선언했다.

그의 마지막 말과 함께, 흰색의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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