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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22화 (22/153)

귀환자 식당 22화.

예상대로 이곳에는 국정원장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대표로 나섰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님의 모든 조건을 수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이걸 먼저 보여주는 겁니까?”

아마도 이게 최고의 기밀 사항일 거다.

소문이라도 퍼졌다가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어디까지 곤두박질칠지 모를 정도의 중대한 비밀.

“대체 이걸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 겁니까?”

게이트가 닫히면 그 안에서 나온 몬스터는 죽는다.

정확하게는 사라진다고 봐야 하겠지만,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이유로 몬스터를 유지하는 에너지원이 게이트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많은 학자가 주장했었다.

그러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몬스터는 살아있기는커녕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없어야 정상인데.

“이걸 보관하기 위해서 일 년에 들어가는 마석만 무려 30개가 넘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마석이 얼마나 비싼지를 생각한다면 놀랄 일이죠.”

“정부에서 지원을 끊은 게 아니었군요.”

“네. 하지만 이건 대한민국뿐 아니라 G20에 들어가는 국가라면 모두 비슷할 겁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게이트 연구에 목을 매는 거지?

설마 게이트가 사라져서 아쉽기라도 한 건가?

다시 열고 싶은 건가, 그 지옥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드시겠죠.”

목숨 걸고 게이트를 닫고 온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이런 걸 왜 남겼을까.

“선생님은 인간의 오랜 꿈이 뭔지 아십니까?”

“불로불사 같은 거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시간여행··· 정도일까요?”

“설마 게이트를 통해서 그런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건···.”

굳이 물음표까지 붙이지 않아도 알겠다.

저 표정을 보면 말이다.

“미쳤군.”

아까 이루가 한 말이지만, 한 번 더 반복해서 해줘야겠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하는 게 정상은 아닐 테니까.

“저희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지금 게이트 생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곳은 미국입니다. 어쩌면 이미 완성이 멀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밀이 미국 정부에 코어를 넘긴 거라고 생각합니까?”

“···거기까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최근에 연구에 박차를 가한 이유에 분명히 하밀 로넌이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게 정보분석실의 판단이긴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그렇게 매달렸던 건가?

하지만 그건 아마도 이들의 착각이다.

“신주희 박사에게는 말했지만, 코어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마력 수치가 낮은 각성자들조차도 기운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밀도 그걸 알고 있으니 코어를 제공했을 리는 없을 겁니다.”

“그 부분에서는 선생님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오시게 한 이유는 그저 지금 연구 상황을 알아두시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해서입니다.”

조언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런 중대한 비밀을 숨겼다간 괜히 나중에 알려지면 사이가 틀어질까 걱정되어서겠지.

다만 왜 이루까지 오라고 한 거지?

어쨌든 지금이야 한국인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일본인이라는 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김이루···. 아니, 히로 무야시에게 이런 걸 공개해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외국인인데?”

“오히려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김이루씨는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요.”

보내주지 않겠다는 말이군.

여차하면 죽일 수도 있다는,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괜찮겠냐?”

나야 상관없지만, 과연 이루도 그럴까?

자신이 태어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는 것과 제 손으로 손절하는 것은 다른 법이니까.

내 말에 이루가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별 상관없다는 듯이.

진심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괜찮다네요. 그럼 제가 오늘 첫 번째 조언부터 해드리죠.”

“조언이요?”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그런 표정을 짓는 신주희 박사를 향해 나는 무표정하게 말해줬다.

“만약 저게 조금이라도 깨어날 조짐이 보인다면, 무조건 도망치세요.”

연구실 지하 깊숙이 보관하고 있는 건 기껏해야 고블린, 오크 따위가 아니었다.

“당신들 저게 뭔지는 알고 잡아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저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런 연구소 정도는 10분도 안 걸려서 흔적도 안 남을 테니까.”

“선생님···. 저거 시체인데요?”

정말 모르나 보다.

아무리 게이트와 각성자가 사라졌다고 해도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나?

내 표정이 자연스레 구겨졌다.

“아무것도 모르는군. 저건 지금 게이트에서 나오던 마력이 사라져 움직이지 못할 뿐이지, 죽은 게 아니야.”

그랬다면 나나 이루가 느끼고 있는 이 마력 파장은 설명할 수 없지.

아니, 게이트에 들어가 직접 몬스터를 상대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예전에도 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지. 몬스터가 멍청하다고 말이야.”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는 걸까.

중세 시대 유물처럼 보이는 낡은 장비들을 착용해서?

아니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사자가 가젤을 사냥할 때 바람을 등지지 않는 게 과연 사자가 바람의 방향을 생각하면서 움직여서일까?

그건 본능이다.

수만 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DNA에 새겨진 강력한 본능.

그리고 그런 본능은 가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내기도 한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약삭빠르고, 교활할 정도로.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지진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지만, 하등한 생물이라고 생각하는 쥐나 새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몸을 피하듯이.

“저 녀석, 지금 잠을 자고 있는 거라고.”

마치 겨울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땅속에서 똬리를 튼 독사처럼.

* * *

서걱-. 서걱-.

대파를 큼직하게 썰고 있는데, 옆에서 멸치 똥을 따던 이루의 시선이 느껴진다.

한두 번이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는데, 자꾸만 반복되는 이유야 하나겠지.

“할 말 있으면 그냥 좀 해라. 자꾸 눈치 보지 말고.”

지가 언제부터 내 눈치를 살펴 가며 말을 했다고.

“···그럴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형, 도대체 어쩔 생각이야?”

“어쩌다니 뭘 어째?”

“지하에 있던 거, 그거 분명히 새끼 오우거아냐?”

“뭘 물어.”

저도 뻔히 봤으면서.

“···일본도 같은 짓을 하는 걸까?”

“아마도. 나름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것들은 늘 똑같지.”

그래도 게이트가 없는데, 몬스터를 가둬둘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솔직히 게이트 연구소 같은 곳을 그다지 믿지는 않았는데,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네.

“설마하니 그게 깨어날 일은 없겠지?”

“그래. 없을 거야.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이상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루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눈을 잠시 마주 보고선.

“하, 하하···.”

설마.

그럴 리가.

우리 둘은 그렇게 어색하게 잠시 웃었다.

* * *

떡볶이.

이건 사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거기다 저녁 ‘식사’로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랄까.

가게로 들어오기 전에.

이제는 이전의 담장이 서 있던 흔적만 남은 곳에 세워진 간판.

[귀환자 식당]

[오늘의 메뉴 - 떡볶이]

*쫄면, 라면 사리.

이렇게 간단하게 써두니 지나가다가 아는 사람들은 한 번씩 마음에 드는 메뉴가 있으면 들리는 가게가 되었다.

이것도 사실 이루 녀석이 낸 아이디어인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손님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

떡볶이는 ‘분식’이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다.

아니지, 이 정도면 평소보다 더 많다고 봐도 무방하다.

연령층이 현저히 낮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지.

“아저씨! 여기 떡볶이 팔아요?”

“···응. 그렇긴 한데, 엄마는 안 계시니?”

내 물음에는 답도 하지 않은 꼬맹이가 가게 앞으로 고개를 쏙 빼더니.

“야! 판대! 빨리와-!”

아마 대표로 총대(?)를 맨 아이였나보다.

적진에 깃발을 꽂은 선봉장처럼 우렁찬 소리에 아이들 몇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튀김은 없어요?”

“어? 난 순대도 먹고 싶은데! 어묵 국물도!”

긁적-.

뭐라고 해야 할까. 분위기에 적응이 되질 않는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건 조금 어색하다고 해야 하려나.

“어어···. 그러니까, 순대랑 튀김은 없는데···. 어묵도.”

내가 왜 난처해하고 있는 거지?

자신 있게 이야기하라고! 여기는 분식집이 아니라고 왜 말을 못 해!

물론 내가 이런 일로 당황하는 건 아니다.

그저 대처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지.

내가 그렇게 잠시 주춤하는데, 뒤에서 이루가 불쑥 나섰다.

“자자, 다들 들어와. 어묵도, 튀김도 다 해줄 테니까!”

와아-!

나를 지나쳐 들어서는 아이들.

“야, 갑자기 튀김이라니! 재료는 어쩌고.”

“뭘 걱정해. 오징어 있겠다. 채소 있겠다. 아, 위층에 우리가 먹으려고 사둔 만두도 있잖아?”

어? 생각해보니 또 그렇네?

기름이 없을 리는 없으니 튀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근데 이 자식이 사장은 가만히 있는데.

“자, 사장님은 어서 메인 메뉴인 떡볶이를 해주시고. 이 보조는 그사이에 튀김 준비를 해두겠습니다. 아, 그 전에 얼른 편의점 가서 어묵 좀 사 올게.”

앞치마를 한 채로 후다닥 나가버리는 녀석.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나쁘진 않은 기분이다.

떡볶이야 미리 양념장을 만들어뒀으니 사실 많이 할 것도 없다.

양배추와 파를 썰어주고, 어묵탕을 할 육수를 내고.

튀김을 할 수 있도록 기름을 달구는 사이.

“삼촌-. 오늘 떡볶이에요? 와, 애들 많다. 나도 친구들이랑 가다가 메뉴 보고 들어왔는데.”

저녁 식사를 하러 오는 어른은 없었지만, 대신 아이들이 가득 차는 건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시연이 친구라고는 예령이 밖에 못 봤었는데.

오늘은 몇 친구가 더 왔다.

음. 남자도 있었네?

“지금 형 눈에서 레이저 나가고 있는 거 알지?”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난 지금 저기 앉은 남학생 두 명의 몸을 샅샅이 훑는 중이었다.

그래도 팬티 안의 자존심은 지켜줬으니 괜찮다.

물론 상대 의사를 확인한 건 아니지만.

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니까.

서비스로 삶은 달걀이라도 듬뿍 줄까?

“···시은이는 여고 아니었어? 어떻게 이런 남학생도 알고 지내?”

“아, 얘네 둘이요? 같은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에요. 아! 얘들아, 인사해. 여긴 귀환자 식당 삼촌!”

달걀을 가져다주는 김에 슬쩍 물어봤다.

같은 학원을 다닌다고.

시은이가 다니는 학원은 주변에서 상당히 유명하다.

탄탄한 강사진과 등록비가 비싼 것도 있지만, 성적에 따라 수업을 따로 받는 시스템까지.

돈이야 그렇다 쳐도.

시은이와 함께 수업을 듣는다면 모두 공부깨나 하는 아이들이란 소리다.

공부 잘하는 게 학생의 모든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막돼먹은 양아치일 확률은 현저히 낮아질 테니까.

그 점에서는 조금 안심.

테이블을 슬쩍 보니 벌써 그릇이 비어간다.

식욕 왕성한 아이들 넷이 먹었으니 당연하겠지만,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운 건 또 고마운 거다.

나름 미안한 점이 있어서 삶은 달걀이랑 튀김도 서비스로 듬뿍 얹어줬다.

“잘 먹어줘서 고맙네."

"삼촌, 진짜 맛있었어요! 완전 배불러."

나온 배도 없으면서 배를 두들기는 모습이 새삼 귀엽다.

"시은이는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네. 그래야죠.”

“시연이는? 아직 저녁 전이라고 하면 떡볶이 좀 싸줄까 싶어서.”

“아니에요. 언니 오늘 저녁 먹고 들어온다고 했어요.”

“그래?”

"학교 친구들이랑 만난다고 했거든요."

다 큰 성인이니 알아서 하겠지.

근데도 왠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내 이 특유의 감을 잘 믿는 편이다.

실제로 이 독특한 감 덕분에 위기를 벗어난 적도 상당히 많았고.

안정민 과장에게 들어서 번호만 알아두고 걸어본 적이 없던 번호.

나는 처음으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아, 박수현 경호원님?”

-네.

단답형의 대답이지만 상관없다.

내 번호야 당연히 알고 있었을 테고,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그만.

“···별일은 없는 거죠?”

국정원에서 시연이와 시은이 두 사람에게 붙여준 경호원이다.

마음만 먹으면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미 성인인 시연이야 당연하고, 시은이도 곧 성인.

사생활은 지켜줘야 하는 법 아닌가.

그래서 간단하게 확인만 할 생각이었다.

별일이 없는지만 알면 될 일이니까.

-어떻게 아시고···.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오전부터 누군가 미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시연이를? 아니면 경호원을?

답이야 뻔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시연이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의 고민이 지났다.

내가 과연 이렇게까지 해줘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평범한 아이들에게 미행이 붙을 리가 없지.

이런 일이 생기는 건 내가 저 아이들의 삼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해결하는 게 맞다.

“···지금 있는 곳, 어딥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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