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21화 (21/153)

귀환자 식당 21화.

아침부터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긴 싫은데.

“그래서···. 코어를 넘겨준다고?”

“무슨··· 내가 미쳤냐?”

“그럼 도와준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데! 내가 대체 왜 지금까지···!”

이루는 말을 하다 말고 울컥했다.

그래.

항구고 공항이고, 죄다 정부 요원이 깔렸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맨몸으로 동해안을 건너서 겨우겨우 희미한 마력을 추적해 여기까지 왔을 테지.

마법과는 연이 없는 녀석이라 나름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너와는 다르다는 걸 다시금 확인 시켜줄 필요가 있겠다.

“혼자 상상의 나래 펼치지 마라. 도와주겠다고 한 건 코어를 준다는 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게 있으면 조언이나 좀 해주겠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냥 조언만?”

“그래. 그냥 조언만.”

“하지만 어차피 한국 정부가 원하는 것도 결국 코어 연구일 텐데?”

“그렇겠지. 너도 리안이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거 아냐.”

“당연히 들었지. 그것 때문에 이 난리인 거고···. 가만, 따지고 보면 지금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네?!”

어찌 보면 또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뭐.

이미 죽은 녀석에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구슬을 삼킨 자가 곧 기둥의 주인이 되리라.’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그 빛의 기둥이 뭔가 하는 건데. 내 생각에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단 소리야.”

“우리가 모르는 뭔가? ···설마, 형 말은 정부에서는 그걸 알고 있다는 말이야?”

“나도 그게 궁금하다. 리안이 유일한 예지 능력자이긴 했지만, 늘 맞았던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당시에도 녀석이 한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는 나라가 있었냐?”

“···없었지.”

예지 능력자라곤 하지만, 툭하면 빗나가니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곳은 없었다.

그나마 가장 잘 믿었던 게 같은 헌터들 정도였지.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다고?

“내 생각이긴 하지만, 분명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거야. 일단 그게 뭔지부터 알아야겠어.”

빛의 기둥, 그리고 구슬.

그 구슬이 우리가 나눠 가진 코어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욱 알아볼 필요가 있다.

* * *

최우형 실장은 더운 날씨에 높다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연신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가며 오르고, 또 오르고.

“와-. 뭐가 이리 높냐.”

주소를 봤을 때는 태백시라고 해서 그저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이건 그냥 산골짜기나 다름이 없다.

오르는 중에 얼핏보기에도 빈집들이 즐비한 동네.

사람이라곤 간간이 마루에 둘러앉은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을 본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10분 전부터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도대체 정말 여기에 사람이 살긴 하는 건가?

“···계세요?! 저기요!”

과장 조금 보태서 녹이 슬다 못해 부식되어 반쯤 떨어져 나간 철문.

그 안쪽으로 수십 년 전에 지었을 법한 낡은 주택 한 채.

‘역시 잘못된 정보였어···.’

올라오면서부터 느끼긴 했다.

이런 데에 사람이, 그것도 어린아이들이 살 리가 없다고.

헛걸음했다고 생각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누구세요?”

삐걱거리는 미닫이문 소리와 함께 들리는 소리.

최우형 실장은 벙찐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소년을 봤다.

교복을 입은 채로 서 있는 고등학생 소년.

“···정민욱 학생?”

“네. 제가 정민욱인데···.”

“할아버님 함자가 혹시 정, 현자 호자 되십니까?”

“그렇긴 한데···. 누구시죠?”

정민욱이라는 아이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할아버지 이름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찾아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실종되었다는 할아버지.

어머니에게서 할아버지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예전의 자료들을 찾아봐서 알고는 있다.

헌터라고 불리던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는 것도.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다.

게이트라는 것이 사라지고, 점차 그 ‘특별한 힘’을 잃어가던 할아버지는 능력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사기꾼의 말에 모든 재산을 가져가 바쳤다.

그뿐이랴 빚만 잔뜩 남겨둔 채 결국 시체로 돌아왔다.

그 뒤로 집과 재산을 모두 잃고 힘겹게 살아왔다.

그나마 아버지가 건강할 때는 나았는데,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뒤로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어머니는 정민욱이 10살이 되기 전에 이미 도망친 상태.

교복을 입고 있는 것도 학교에 다녀와서가 아니다.

옷이 없어서 교복을 입고 있을 뿐이지.

“후우- 제가 맞게 찾아왔나 보네요. 저는 귀환자 재단이라는 곳에서 나온 최우형 실장이라고 합니다. 잠깐 이야기 괜찮을까요?”

* * *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까짓 능력이 뭐라고···.”

“원래 가지고 있던 걸 잃어버리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죠. 당시의 헌터들은 평생 그 힘을 이용해 살아왔던 사람들이라 상실감이 더 컸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시기에 비슷한 사기 신고만 무려 1만 건이 넘습니다.”

안타까운 사람들 같으니.

그까짓 힘 없으면 좀 어떻다고···.

누군가는 내가 힘을 잃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정말 이깟 힘은 원치 않았다.

입맛이 쓰다.

“그중에서도 정민욱 학생의 경우는 정말 처지가 딱합니다.”

오후 2시.

아직 식당을 열 시간은 아니지만 찾아온 이는 귀환자 재단에서 대상자를 탐색하고 후보를 선정하는 일을 하고 있는 최우형 실장이다.

나는 그가 내민 보고서를 가만히 훑어봤다.

물론 최우형 실장이 허위 보고를 하거나 일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엄마라는 사람은 도망친 겁니까?”

“네. 그런데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정민욱 학생의 말로는 10살 때 짐을 싸서 나갔다고 하는데, 그 뒤로 행적이 묘연합니다.”

“현재까지요?”

“네. 마치 수증기처럼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너무 깨끗합니다. 무슨 특수 훈련을 받은 스파이도 아니고, 일반인이 이렇게까지 행적을 깨끗하게 지운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거든요.”

사람 찾는 게 전문인 사람이 바로 최우형 실장이다.

그러니 그런 일을 맡긴 것이고.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정말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음. 일단, 그 어머니 행방은 계속 알아봐 주세요.”

“네. 이사장님. 그럼 정민욱 학생의 거취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했나요?”

시은이와 같은 나이다.

“네. 지금은 아버지의 병수발 때문에 학교도 거의 나가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학생이 그러면 안 되지.

“일단, 아버지는 근처 종합병원으로 옮겨주세요. 치료 시기를 놓치긴 했지만, 불구가 되지 않길 기도해 보죠. 이 근처에서 가까운 곳으로 집도 알아봐 주시고···. 아, 그 학생 공부는 좀 합니까?”

그 말에 최우형은 살짝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공부는···.”

말끝을 흐리는 게 그쪽은 영 아닌 모양인데.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얼른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신, 다른 쪽으로 특기가 있습니다.”

“그래요? 어떤 건가요?”

“아버지가 일하실 때는 도장을 다녔는데, 중학생 때는 전국 태권도 대회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습니다. 집에 낡은 샌드백이 걸려 있던 걸로 봐서는 아직 꿈을 포기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하긴, 힘들다고 그저 인생을 포기한 채 살아왔다면 최우형 실장이 추천을 할 리가 없지.

충분히 만족스러운 후보다.

“잘하는 게 있다니 다행이네요. 그래도 3년 가까이 쉬었다면 감을 많이 잃었을 텐데, 우리가 좀 도와줄까요?”

“여기서 더요?”

집 구해줘, 생활비 줘, 아버지 다리 치료해줘.

여기서 더 뭘 해줄 게 있냐는 표정을 짓는 최우형 실장을 보면서.

“근처에 시설 좋은 도장 하나 알아봐 주세요.”

* * *

낯선 장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비교적 작지만 제법 그럴싸한 건물이 보인다.

“여기야?”

“그래. 저기 쓰여 있네.”

건물 입구에 떡하니 붙어 있는 간판.

[한국 게이트 연구소]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다소 작아 보이는 건물이기는 하지만.

뭐, 아직까지 연구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걸지도 모르겠다.

국가의 지원은 애초에 끊겼을 텐데 말이지.

“일본 게이트 연구소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데?”

“···너 근처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아··· 미안.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안에 들어가서는 입 조심해. ···아무튼, 들어가 보자. 도대체 뭘 보여줄 게 있다는 건지 나도 궁금하거든.”

하남시 외곽에 있는 조용한 산기슭.

여기까지 오는 일은 귀찮았지만 그래도 꼭 내가 봐야 할 게 있다니 오긴 왔다.

이루 녀석까지 데리고서.

어차피 나도 이들에게 받아낼 게 있으니까 거절하진 않았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셈이지.

물론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니 누군가는 조금 손해를 볼 수도 있겠지만.

정문에서 간단한 신원 확인 후 안으로 들어서자 그래도 몇몇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사실 생각보다 인원이 많아서 놀랐다.

게이트 연구를 아직도 이렇게 활발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서오십시오. 이진 선생님. 저는 신주희 박사님의 보조 연구원인 양효석이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영웅을 이렇게 직접 뵐 수 있다니 정말··· 가문의 영광입니다.”

뭘 또 가문의 영광씩이나.

말투가 어려서 꽤나 만화광이었을 것 같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신 박사님은···.”

“아! 이쪽으로 오시죠. 그렇지 않아도 다들 연구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들?

신주희 박사에게 연락하긴 했지만, 누가 또 왔나?

흠.

장민국 국정원장은 왔을 수도 있겠다 싶네.

어쨌든 신주희 박사 외에 가장 관심을 가질 사람이라면 그 정도일 테니까.

위이이잉-.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상당히 내려간다.

지상에서 점차 멀어지는 걸 느꼈는지, 이루의 표정이 살짝 굳어간다.

아무래도 처지가 처지이니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걱정하지 마. 널 넘기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 메시지 마법에 이루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예상이긴 하지만 아마 그럴 일도 없을 테고.

“···상당히 깊이까지 내려가네요.”

“네. 아무래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만약의 사태?

그게 뭔지 물으려는 순간.

띵-.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그리고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광경에 나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게이트 관리국이 없어졌다는 건 단순한 눈 가림이었던가?

그런 의문이 자연스레 이어질 정도로 지하 공간은 거대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의 결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살짝 부담스러운 눈빛.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대략 지하 200m.

솔직히 이런 시설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해봤다.

처음 건물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내가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건 단순히 깊어서가 아니다.

지하 시설 전체가 마력 차단 물질을 도포해뒀다.

이루 녀석도 그래서 더 긴장한 거였고.

각성자가 없는 세상에서 왜 굳이 시설 전체의 마력을 차단할까?

애초에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부산물과 제작 관련 이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없다면 만들 수도 없는 물질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이 시설이 만들어진 지가 적어도 30년은 지났다는 거다.

그런 곳에 보관된 무언가.

그것도 각성자가 득시글거리는 시대에서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이런 지하에 보관해야 했을 정도로 위험한 것.

“하-. 일본이나 한국이나 미친 것들이 넘쳐나는구나.”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이루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이죽거리면서 뱉은 말이지.

그리고 그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부터 느껴지는 이 익숙한 마력 파장.

도대체 어떻게 이게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어딘가에 몬스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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