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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20화 (20/153)

귀환자 식당 20화.

배와 양파를 곱게 갈고, 간장과 간 마늘을 넣고 맛을 내고 설탕과 후추, 생강 가루를 넣은 양념에 재워 하루를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갈비.

무, 감자, 당근을 둥글게 깎고 압력솥에 넣고 양념을 추가해 푹 쪘다.

청양고추도 몇 개 썰어 넣어서 살짝 매콤하게.

딸랑, 딸랑-.

치이익- 치익-!

압력솥 추가 바쁘게 연신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동안, 나는 시연이와 시은이의 하루를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고속 버스를 타면 휴게소 정차하는 시간이 짧아서 맨날 바빴는데, 오늘은 완전 여유! 역시 이래서 다들 차를 사나 봐요.”

“얘 오늘 휴게소에서 감자에 핫바에, 떡볶이에···. 너 그러다 배 나온다?”

“흥! 난 원래 많이 먹어도 안 찌는 체질이거든? 언니나 똥ㅂ···. 아악!”

한 사람은 부끄러움에, 한 사람은 고통으로 붉어진 얼굴이 우습다.

“얘, 얘가 무슨 소리를···.”

치익- 치익-!

압력솥에서 뿜어지는 수증기에서 맛있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삼촌! 갈비찜 언제 돼요?”

“저 소리가 안 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래야 고기가 부드러워 질 테니까.

어쩌면 지금이 가장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다.

맛있는 냄새와 함께 압력추가 딸랑거리는 소리마저도 그 안에서 익어가고 있는 갈비찜을 상상하게 만든다.

“운전은 어땠어?”

“자율 주행인데요. 뭐. 딱히 어려운 것도 없었어요.”

하긴. 그런가?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됐네.

게이트도 없고.

“정말 감사했어요. 보니까 완전 새 차던데요···.”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새것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조금 약하다.

살면서 지금까지 뭘 챙겨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이 아이들이 내가 살면서 챙기고 싶은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진이 형. 이거 뜸 다 들은 것 같은데.”

“어. 고마워.”

압력솥의 추가 내던 소리가 완전히 멈춰 섰다.

안에 가득 차 있던 압력이 이제 다 빠졌다는 의미.

뚜껑을 열자 푸확하고 맛있는 냄새와 함께 뿜어져 나온다.

진한 갈색빛의 고기에 양념이 골고루 배어든 감자와 당근, 무까지.

나는 커다란 접시에 고기와 채소를 듬뿍 담았다.

“···그거 아무리 봐도 2인분은 아닌데.”

“잔말 말고, 밥이나 좀 퍼와.”

‘내가 언젠간 밝혀낼 거야.’

뒤에서 이루 녀석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자, 갈비찜 나왔습니다.”

우와아-!

식탁에 그릇을 내려놓자 동시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너,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응? 한창 많이 먹을 때잖아. 식기 전에 어서들 먹어, 깍두기랑 김치도 부족하면 말하고.”

“아싸! 갈비찜!”

시연이와 달리 양팔 소매를 걷으며 준비를 하는 시은이.

가끔은 어쩜 두 자매가 이리 다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시은이가 갈비찜을 좋아하나 보네.”

“네! 전 갈비찜에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기억해둬야겠네.

“삼촌도 같이 좀 드세요. 둘이 먹기엔 너무 많아요.”

같이 밥을 먹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괜스레 두근거린다.

“···그럼 그럴까?”

조심스레 합석하려고 하는데.

“사장님.”

“···어서오세요. 또 오셨군요.”

“죄송해요. 제가 조금 끈질긴 여자라서요.”

신주희 박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로 문 앞에 섰다.

그 뒤에서는 언제나처럼 조금 난처한 듯한 표정의 안정민 과장이.

아마 반강제로 끌려온 모양인데.

아무래도 안정민 과장보다 신주희 박사의 위치가 더 높은 건가 싶다.

물론 상하 관계는 아니겠지만···.

“걱정 마세요. 오늘은 그냥 손님으로 온 거니까, 귀찮게 안 할게요.”

나는 슬쩍 두 조카를 돌아봤다.

아까부터 신주희 박사가 하는 단어들이 다른 사람이 들으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다행히 두 사람은 이쪽엔 큰 관심이 없는지,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오늘 메뉴는 갈비찜인데, 2인분 준비해드릴까요?”

“맛있겠네요. 네, 2인분 부탁드릴게요. 아,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안정민 과장은 처량한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왠지 축 처진 듯 보이는 안정민 과장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한 번 쪄둔 것에서 2인분은 충분히 남아서 새로 하지 않아도 되겠다.

“어? 생각보다 금방 나오네요?”

“마침 지금 막 한 솥 쪄둔 게 있었거든요.”

그릇을 잠시 보던 신주희의 고개가 다른 테이블 위의 그릇을 몇 번 번갈아 보더니.

“···저쪽이랑은 뭔가 조금 다르네요?”

“그런가요? 제가 볼 땐 똑같은데.”

나는 퉁명스럽게 받아쳤고.

“···제 눈이 이상한 건가요?”

“하하-. 제, 제가 보기에도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요. 박사님.”

이 여자,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이러는 거겠지.

아마 지금 이 가게 안에서 제일 좌불안석인 사람은 안정민 과장이겠지.

지금도 관자놀이 쪽에서 뭔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뭐,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가게로 가셔도 됩니다.”

목적이 있어서 찾아오는 거라면 내 쪽에서 사양이다.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 차린 식당인데 불편하게 만든다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

“그럴 리가요. 맛있어 보이네요. 잘 먹을게요.”

원래부터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만큼 감정 조절을 잘하는 건가.

테이블을 대강 세팅해준 뒤, 나는 다시 시연이와 시은이의 테이블로 돌아왔다.

“시은이 엄청 잘 먹네.”

“오움 아이쪄여(엄청 맛있어요).”

입안 가득 고기를 물고선 엄지를 치켜드는 시은이.

맞은 편에서 젓가락으로 고기를 찢어 밥 위에 얹어 먹는 시연이.

풉-.

꼭 닮은 두 사람의 이 대조적인 모습은 언제봐도 날 웃게 만든다.

“그래서, 시은이는 들어갈 학교는 정했어?”

대답이 길어질 것 같았는지, 서둘러 오물거리던 것을 꿀꺽 삼키고선.

“···네! 뭐, 제가 들어가고 싶다고 다 들어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국대 의대가 1지망이에요.”

“의대?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거야?”

“네! 어렸을 때부터 의사 나오는 드라마 엄청 좋아했거든요. 꼭 한국대병원으로 가서 교수가 될 거예요!”

의대를 지망한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솔직히 이유가 그런 단순한 것일 줄은 몰랐다.

뭔가 막 가슴 아픈 사연 같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너무 감상에 젖은 건가?

“시은이라면 정말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쵸, 그쵸?”

이렇게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데, 분명히 될 수 있겠지.

난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

“시연이도 복학 준비는 잘 되고?”

묻고는 있지만 사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귀환자 재단에는 작긴하지만 사무실도 생겼고, 직원도 세 명을 채용해서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시연이와 비슷한 사정을 가진 아이들을 찾는 것도 있지만, 지원하는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또 어떻게 생활하고,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를 점검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네. 고맙게도 재단에서 정말 좋은 학원까지 등록을 해주셔서···.”

“다행이네. 나야 그렇게까진 해주지 못하지만, 밥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언제든 찾아와.”

“나 삼촌이 해주는 음식 좋아요!”

“얼마든지 먹어.”

* * *

내가 만든 밥 한 끼를 먹었을 뿐인데, 이렇게 배가 부르다니.

음식은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중요하다더니 정말 그렇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얼른 갈비찜 한 솥을 더 쪘다.

시간이 제법 걸리는 요리다 보니 다음 손님이 혹시나 오면 오래 기다리게 할까 싶어서.

“이루야, 너도 밥 먹어야지?”

“나? 벌써 먹었지.”

“그래?”

슬쩍 주방을 돌아보니 쓰레기통에 갈비뼈가 몇 개 들어가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쪽파를 썬 흔적도.

“덮밥으로 해 먹었나 보네?”

“아무래도 난 아직 그쪽이 더 입에 맞는 거 같아서.”

뭐, 해 먹는 거야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다음부턴 나와서 먹어. 여기서 서서 먹고 그러지 말고.”

손님도 중요하지만, 이젠 미우나 고우나 함께 일하는 식구인데.

식사를 불편하게 하는 건 싫다.

“응? 나 올라가서 TV 보면서 먹고 내려왔는데. 뭐, 그 사이에 별일 없었지?”

“···응.”

역시, 이 녀석 걱정은 나랑 맞질 않는다.

시연이와 시은이가 돌아간 뒤로도 손님이 두 테이블 더 왔다.

그렇게 또 5인분의 갈비찜이 나가고 나니 솥에 남은 갈비찜은 2인분이 될까 말까 한 정도.

시간이 이제 8시를 넘어가니 더 이상의 손님이 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문제는 저 화상 둘이서 아직도 버티고 있다는 거다.

“싸좡님! 여기 소쥬 한나 더 쥬세요오오.”

“안쥬, 안쥬도!”

“아, 그러취. 갈비쮬도 하나 추가아!”

그 광경을 본 이루가 고개를 흔들었다.

“난 먼저 올라갈게.”

“···그래.”

설거지를 포함한 주방 정리는 혼자서 이미 마쳤으니 올라가서 쉬겠다는데 못 가게 할 명분도 없다.

“참. 한국 사람들 술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고개를 저으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보는데.

점차 사람의 탈을 벗어 던지려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나도 뭐라고 변명을 못 하겠다.

저기서 조금만 더 마시면 조상 중에 웨어울프가 없나 확인할 필요성이 생길 것 같은데.

두 사람이서 벌써 9병째다.

놀라운 건 안정민 과장은 주량이 1병이라는 거.

실제로 그는 지금 잔만 홀짝거리며 분위기만 맞춰줄 뿐이니 7병 이상을 신주희 박사 혼자 마셨다는 이야긴데.

완전 말술이구먼.

“술은 이제 없습니다.”

“으응?! 술집에 술이 없다는 게···. 마뤼 댑니까아?!”

“여기 술집 아니고, 밥집입니다.”

내일 아침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벽면 한 쪽에 눈에 띄게 써둬야지. 커다랗게!

‘주류 주문은 일 인당 한 병으로 제한합니다.’라고.

그래.

장사는 처음이니까, 부족한 건 이렇게 하나씩 고쳐 나가면 된다.

“도대체, 왜애! 도와주시질 않으시는 거에요오!”

이야기가 결국은 이렇게 흘러갈 줄 알긴 했다만.

막상 상황이 이리되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가 않다.

“지금 뭐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니, 솔직한 말로 짜증과 분노가 조금씩 스멀거리고 있다.

지금 날 무시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술기운을 빌려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만으로도 신주희 박사에 대한 내 평가는 지금 바닥을 달리고 있다고 봐도 된다.

“···죄송합니다.”

내 차가운 말투에 술이 깬 건 아니다.

“연기가 어설퍼요.”

나만큼이나.

“···이렇게라도 하면 뭔가 들을까 싶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거라곤 생각 못 하셨습니까?”

그 좋은 머리로 생각한다는 게 겨우 이런 거라니.

기가 막히는 건 차치하고 이건 날 바보로 만드는 짓이라는 건 생각 못 하는 건가.

“제 생각이 짧았네요. ···다신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약속드릴게요.”

저렇게 마시고도 멀쩡한 게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취하긴 했는지.

일어서는데 살짝 비틀한다.

“어멋-!”

내가 얼른 손을 뻗어 팔을 살짝 받쳤다.

“가, 감사합니다.”

한편으론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평생을 연구해왔는데 게이트는 갑자기 사라지고 관리국마저 없어진 것과 다름없이 되었으니.

그녀가 매달릴 거라곤 코어뿐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코어를 보고 싶은거냐고 물었습니다. 목숨을 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겁니까?”

“···네?”

코어를 내어줄 생각은 없다.

아니, 이건 내가 주고 말고를 결정하고 할 문제가 아니다.

이 사람들은 과연 그걸 알고 있는 건가.

“···네!”

“그 대가가 목숨이라고 해도?”

알려주는 대가로 죽이겠다는 의미?

내가 무슨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겠다며 살인을 저지르는 미치광이 살인마도 아니고.

그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은 진심이다.

“일반인은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어찌 될 지 장담할 수 없어요. 그래도 보고 싶은거냐고 물었습니다. 목숨을 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겁니까?”

꿀꺽-.

막상 기회가 왔는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고민이 되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 그건···.”

“이렇게 하죠. 연구하다가 막히는 부분에서 제가 조언을 해드리는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저, 정말이신가요?!”

뭐, 말 몇 마디 해주는 거야 상관없다.

“하지만 코어를 제공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무, 물론이죠!”

보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데.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그리고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에게는 가벼운 조언 몇 마디라도 받는 신주희 박사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금보다 무거운 보물이 될 거다.

지금은 아마 내가 그 어떤 무리한 조건을 걸어도 수락할 자세가 되어 있겠지.

내 조건이 신주희 박사 혼자서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사안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 관리국의 모든 자료에 대한 열람 권한을 원합니다.”

“···모든 자료라면.”

“당연히 기밀 사항도 포함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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