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8화 (18/153)

귀환자 식당 18화.

어딜 보더라도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들.

그래도 일단 손님이 있으니.

“좀 기다리시겠어요? 보시다시피 아직···.”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뒤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물론입니다.”

대답을 한 건 안정민 과장이 아닌, 김주일 구청장.

척 보기에도 세 명의 일행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자 아마도 대표자 격으로 온 모양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시연이와 시은이의 테이블에 죽을 쒀줬다.

육수를 빨아들이는 찹쌀들이 제 몸집을 불려 나가면서 걸쭉해지기 시작한다.

슬쩍 먹은 것을 보니 산삼은 이미 먹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누가 먹었을까?

사실 그런 건 다른 사람과 나눠 먹기보단 혼자 먹는 게 좋다.

영물靈物이 가진 기운은 오롯이 흡수해야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올 테니까.

두 사람 중 누가 먹었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석웅 형님에게 이미 다음 것도 잘 부탁드린다며 예약을 해두고 왔으니까.

오늘 먹지 못한 사람은 다음에 또 주면 될 일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누가 먹었던 걸까.

시연이나 시은이의 성향을 생각하면 서로가 두 사람에게 양보했을 수도.

어쩌면 사이좋게 반씩 나눠 먹었을 수도 있겠지.

“그, 사···인삼은 혹시 누가 먹었어?”

최대한 무심한 표정으로.

나무 주걱으로 냄비를 저어주면서 지나가는 말로 묻듯이 물었다.

“그거 제가 먹었어요!”

시은이가 힘차게 손을 든다.

휴우-.

뭐, 그래도 별수 없지만, 혹시나 예령이가 먹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혼자 다 먹은 거야?”

“네. 언니는 인삼 쓰다고 별로 안 좋아해요. 저도 사실 쓴 거 싫어하는데, 이번 인삼은 엄청 달아요. 이거 인삼 맞죠?”

“그, 그럼 인삼이지. 왜? 도라지를 넣었을까 봐?”

“아뇨. 혹시 산삼인가 싶어서.”

“하, 하하-. 어, 엉뚱하긴.”

“그쵸? 근데 난 왜 이리 산삼 같은 느낌이 들지? 먹자마자 뱃속이 막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

애가 감이 좋은 건가.

근데 뱃속이 뜨거워진다고? 삶아낸 거라 그리 큰 효과가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성웅 형님에게 산 산삼은 그 효과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그냥 둬도 기운을 흡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배출될 텐데, 이왕 좋은 거 먹인 김에···.

“녀석도. 그냥 기분이 그런 거겠지.”

나는 이제 완성되어가는 죽에서 주걱을 빼고선 휴대용 버너의 불을 가장 작게 줄였다.

그리고 슬쩍 시은이의 등에 손을 얹고.

“다 됐다. 자, 맛있게들 먹어.”

좋아. 자연스러웠어.

잠깐이긴 하지만 마력을 흘려서 체내에 기의 순환 통로를 열어뒀으니 훨씬 나아질 거다.

“오늘은 후식으로 커피 말고 수정과 어떠세요?”

통장님들과 인테리어 업체 직원들 테이블에 가서는 후식으로 수정과를 권했다.

어제 사 온 계피와 생강, 곶감을 넣어 푹 끓인 뒤 식혀둔 수정과는 맛이 제법 괜찮았다.

“크어- 이야. 사장님 진짜 못하시는 게 없네요. 이것도 직접 만드신 거죠?”

“수정과야 그저 끓이고 식히기만 하면 되는데요.”

“어머- 너무 달고 맛있다. 벌써 소화가 되는 기분이에요.”

한참을 또 수정과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 모두 돌아가고.

나는 마지막 남은 테이블에 세팅을 시작했다.

* * *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구청장이 오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신주희 박사라는 사람이 온 이유야 어차피 나 때문일 테니까.

이루의 정체야 알고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올라가 있으라고 했다.

쪼르륵-.

소주가 모두의 잔에 채워지고 난 뒤.

“게이트 관리국의 연구소장이라, 연구 분야가 어느 쪽이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딱히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대체 뭘 연구했길래 코어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잠시 말이 없길래.

“기밀 사항 같은 거라면 굳이 이야기 안 하셔도 됩니다.”

게이트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전 세계에 아마 관련 연구를 하지 않았던 국가는 없을 거다.

아프리카에 있는 극빈국이나 그 북한조차도 말이다.

그렇게 연구한 자료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국가 기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다 발견한 작은 단서 하나가 세상을 뒤집는 발견이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상 게이트가 없는 지금 관련 자료는 특별한 것들을 제외하곤 이미 폐기처분 된 수준이니까요. 다만 제가 대답을 못 한 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였어요. 제가 연구한 것··· 그건 게이트 자체거든요.”

“게이트 자체?”

“네. 게이트가 도대체 뭔지, 그 본질을 알고 싶었어요. 왜 나타나는지, 그 원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마치 나에게 답을 구하기라도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게이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를요.”

확신에 찬 표정.

신주희 박사는 이미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건 알지 못합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의미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선생님! 알고 계시잖아요!”

“바, 박사님. 일단 진정하시고···.”

안정민 과장이 살짝 흥분한 듯한 신주희 박사를 말려보지만.

“마지막 게이트에서 코어를 가지고 나오셨잖아요! 왜 숨기고 계시는 거죠?!”

이 여자가 미쳤나.

내가 가지고 나왔다고 한들, 게이트 안에서 헌터가 얻은 것은 헌터의 몫이다.

상대가 누구든, 그것에 대해 보고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

“몇 살이지?”

“···올해 49입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

“그럼 내가 게이트에 들어갈 때 19살이었단 소리군.”

“그건 맞지만···.”

“당시에 대학생이었나? 고등학생?”

이미 게이트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 와 저렇게까지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난 그게 문득 궁금해졌다.

“신주희 박사는 12살에 이미 하버드에서 게이트 연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천재입니다.”

“부모님은? 살아계신가?”

“지금은 지방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신데···. 자꾸 왜 이상한 질문을.”

갑작스러운 호구 조사에 조금 당황해하면서도 대답은 또 충실히 한다.

“난 대격변 때 부모님을 잃었다. 12살에 각성을 한 뒤로는 학교도 가지 못했지. 당신이 12살에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있을 그 나이에, 난 이미 몬스터들과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하며 살아왔다는 말이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세 사람이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제 와 동정을 바라거나 하는 건 아니다.

“게이트가 왜 생기는지,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하다고 했나?”

“···네!”

“그걸 밝히면 뭐가 달라지지?”

“그야···. 앞으로 혹시나 생겨날 수 있는 게이트를 분석할 수도 있고··· 또···.”

“분석하면? 막을 수 있나?”

“그, 그야 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장담하건대, 인간은 게이트가 생성되는 걸 막을 수 없다.

우리 7명이 코어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니까.

물론 이미 존재를 아는 이들이 있을 거라는 건 조금 예상외였지만.

그렇다고 그걸 내어줄 생각은 정말 병아리 눈곱만치도 없다.

“내가 장담하지. 만약 게이트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온다면, 인간은 절대 그걸 막을 수 없다. 코어 연구? 코어가 뭔지는 알고 연구하겠다고 덤비는 건가? ···정말이지, 인간들의 오만함은 정말 기가 막히는군.”

나도 인간이긴 하지만, 하는 짓거리들을 볼 때면 가끔 울화가 치밀곤 한다.

더 이상 해줄 말은 없다.

“안정민 과장님.”

“네, 네! 선생님.”

평소에는 사장님이라며 친근하게 부르던 그도 긴장할 정도로 지금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은 상태다.

그리고 나는 이런 분위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특히나 행복만 가득하길 원해서 만든 내 식당 안에서는 더욱.

“이런 자리는 불편하군요. 식사나 마저 하고 가시죠.”

“네, 네. 죄송합니다.”

마음 같아서야 축객령을 내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밥은 먹고 가라고.

내가 해줄 말은 그게 전부였다.

* * *

설거지를 하는데, 이루 녀석이 분위기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한국에서도 이미 코어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네. 하긴, 당연한가?”

“기가 막힌 노릇이지. 코어가 무슨 마석따위랑 동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뭐, 모르니까 그렇겠지.”

달그락거리는 소리 속에서.

나와 이루는 묵묵히 설거지를 끝냈다.

앞치마에 매단 행주에 손을 닦았다.

“술이나 한잔 할래?”

“술? 좋지.”

간단한 반찬 몇 가지를 가져다 놓고 앉으니 문득 드는 생각이.

“너랑 술 마시는 건 처음이네?”

“그렇지. 게이트에서야 술 마실 일이 없으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그전에야 서로 이름만 간간이 들어봤을 뿐, 만난 적도 없고.

“한국 소준데, 괜찮지?”

“뭘 물어. 한국인데 한국 술을 마시는 게 당연한 거지.”

지금 한국에서 일본 주류를 찾는 건 어렵다.

어지간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일본 주류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들어온 물건이라면 학을 떼며 꺼리니까.

쪼르르륵-.

이루의 잔과 내 잔에 술을 채우고 잔을 부딪쳤다.

“···너 뭐하냐?”

“응? 한국에서는 윗사람이랑 술을 마실 땐 이렇게 한다고 하던데.”

“···됐어. 그냥 편하게 마셔.”

“그럴까?”

틀었던 허리를 얼른 돌리는 녀석.

그래도 기특한 게 나름 한국 문화에 관해 이것저것 공부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무슨 말인지 알면서··· 코어 말이야.”

그래.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어줄 생각이 없는 건 물론이고, 만에 하나 준다고 한들 그걸 쓸 수도 없다.

코어는 게이트의 몬스터를 잡으면 길가의 돌멩이처럼 튀어나오던 마석따위랑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가장 안전해.”

“그건 나도 알지. 내가 여기까지 도망친 이유가 뭔데.”

그걸 꺼내 드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히 예상도 되지 않는다.

다만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지.

* * *

후우-.

꼭 몸속에 불가마 하나가 들어앉은 느낌이다.

이상하게 나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은 맑아지는 듯한 기분.

‘왜 이러지?’

집에 돌아온 뒤로 계속 이렇다.

이시은은 언니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인삼 먹고 나서부터 이러네···.’

혹시나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졌다.

간혹 인삼이 몸에 잘 받는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겪는다고 하긴 하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인삼을 먹은 게 처음은 아닌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뜨겁다기보다는 따듯한 무언가가 몸속을 휘젓고 다니는 느낌인데,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몸이 붕 뜨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시간이 12시를 넘어가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다시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

고등학교 3학년.

사실 다른 아이들이라면 잠이 들기엔 이른 시간이다.

이시은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대신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학교에 간다.

그편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느껴서.

그런데 잠이 오질 않으니 이왕 이리된 거, 공부나 더 하자.

그런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왠지 뭘 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시은이는 그간 어렵게 느껴졌던 물리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날 시은은 새로운 세계를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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