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7화 (17/153)

귀환자 식당 17화.

가장 먼저 가게를 찾은 건 통장님 일행이었다.

한미희 통장님을 포함한 4명의 여성.

“내가 말했지? 여기 사장님.”

“어서 오세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 정말 너무 잘 생기셨다. 오늘 백숙해 주신다면서요? 기대 많이 하고 왔어요.”

“최선을 다해서 몸보신 시켜드려야겠네요.”

아무래도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모두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가득하다.

이 더운 날에 기운이 빠질 법도 한데, 앉자마자 가게 안이 환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들.

“어이구, 통장님. 벌써 오셨어요?”

“어? 사장님도 오셨네요?”

“하하. 오늘 특식이 나온다고 했는데, 제가 빠질 수야 있나요.”

강영훈 사장이 직원들과 들어서며 인사를 건넨다.

북적거리는 이 느낌.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이런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

비록 오늘 나는 돈을 벌지 못하게 되었지만, 불만은 전혀 없다.

이미 끓기 시작하고 있는 4개의 커다란 전골냄비.

그 안에서는 검은 빛깔을 띈 닭이 푸욱 익어가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이 아이들은 언제 오려나.

타닥- 타닥-.

마당 밖에서 들리는 다급한 발소리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급하게 느껴지는 것보단 오히려 신이 나 덩실거리는 듯한 발걸음.

이제는 익숙한 이 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으니까.

“삼초온-! 저희 왔어요.”

가게를 들어서며 나부터 찾는다는 게 또 이렇게 즐겁다.

나는 이루에게 국물이 넘치지 않게 잘 보고 있으라고 당부한 뒤, 홀로 나갔다.

“왔어? 덥지. 얼른 에어컨 켜자.”

아닌 게 아니라 오후 6시이지만 아직도 해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온도도 높은지, 시은의 이마에 땅이 맺혀있었다.

위이이잉-.

강영훈 사장이 설치한 자동 개폐식 문이 닫히고, 커다란 에어컨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와 이루야 이 날씨에 불 앞에서 요리해도 더위를 느낄 일이야 만무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니까.

오히려 너무 늦게 켠 감이 없지 않다.

“···사, 삼촌. 안녕하세요.”

시은의 뒤를 따라 시연이가 들어오며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

항상 사장님이라고만 불렀는데,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아무래도 시은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니 자기도 그렇게 부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 건가?

그 이유야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무척이나 좋은 일이다.

사실 이미 성인이 된 시연이에게는 저런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어. 왔니? 앉아있어. 이제 다 돼가니까.”

모두 가게를 찾아온 시간은 달랐지만, 음식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으니 나오는 시간은 비슷하다.

물론 다 같지는 않지만.

킁킁-.

“와- 근데, 사장님. 오늘 인삼을 얼마나 넣으신 거예요? 무슨 삼 향기가 이렇게 진해···. 냄새만 맡고 있는데도 몸보신이 되는 느낌은 처음이네요.”

강영훈 사장이 코를 벌름거리며 묻는데, 진심이 가득하다.

그 말을 듣고선 다른 이들도 한 번씩 허공에 코를 박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 우리 남편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아하하하.

통장님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서로 꺅꺅거리며 다시 수다를 시작했다.

여기에 미성년자도 있다는 걸 잊지만 말아 주길 바래야지 뭐.

“아, 맞다! 삼촌, 예령이도 오라고 했는데. 괜찮죠?”

“그, 그럼! 당연히 괜찮지.”

여긴 식당이니까.

손님이 더 온다는데, 당연히 괜찮다.

그래···. 그래야 하는데.

어째 마음이 조금 쓰린 건 어쩔 수가 없다.

주방 안으로 들어가니 삼의 향이 더욱 진하게 풍겨온다.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싶다.

공기 중에도 산삼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조금씩 떠도는 게 느껴질 정도.

예전에도 각성자 중에서는 산삼같이 마력을 품은 식자재들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마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때문에 그렇긴 했지만 실제로 그게 얼마나 큰 효과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마력은 먹어서 보충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건 ‘마력 증진’을 위했던 각성자들의 이야기이고, 일반인들이 섭취하면 큰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불치병이나 말기 암 환자였던 이들이 각성 후 완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했으니까.

그 오랜 기간 연구를 해왔지만, 마력이라는 미지의 힘에 대해서는 아직 그 누구도 정확하게 ‘이거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물론 나도 모른다.

그저 이 산삼을 먹으면 더 건강해지고,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 음식 나갑니다.”

트레이에 올린 커다란 전골냄비를 테이블에 하나씩 올렸다.

시연이와 시은이가 앉은 테이블에 올라가는 건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둬서 아마 이루 녀석도 눈치채지 못할 거다.

“오! 사장님, 이거 오골계네요? 이야 비쌀 텐데. 3만 원으로 되겠습니까? 괜히 밑지는 것 장사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런 날은 좀 밑져도 괜찮습니다.”

“어머머, 젊은 사장님 마인드가 너무 멋있다아.”

“사장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돼요? 우리 큰 딸이 진짜 미인인데, 어떻게 한번 만나볼래요? 둘이 참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 언니 좀 봐. 여기 사장님은 우리 사윗감으로 내가 벌써 점찍었어.”

한미희 통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 지금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가게 입구에 들어오던 예령이가 붉어진 얼굴로 다급하게 달려왔다.

“예령이 왔니? 저쪽에 시은이랑 시연이 있는 테이블로 가면 될 거야.”

“네, 네···.”

‘엄마, 이상한 소리 하기만 해!’라며 으름장을 놓고서야 머쓱한 얼굴로 나를 지나치는 예령이.

“와-. 이거 무슨 향이야?”

앉자마자 향기에 놀란 눈을 크게 치켜뜬다.

“백숙에 들어간 인삼에서 나는 향기인가 봐. 엄청 좋지.”

“이게 인삼에서 나는 향이라고? 집에서 엄마가 해줄 때 나던 냄새랑은 천지 차인데? 이거 산삼 아냐?”

뜨끔-.

그냥 한 소리겠지만,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풉-. 야!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이렇게 큰 산삼이 어딨어. 이 정도면 진짜 천년 먹은 산삼일걸? 그리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백숙에 산삼을 넣어서 먹는 사람이 어디있냐.”

“헤헤- 농담이지. 기집애. 얼른 먹자, 먹자. 나 진짜 배고파 죽을 거 같아.”

시연이는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 예상과 한치도 빗나가지 않게.

“자, 여기 다리 하나씩 먹어.”

“아니에요. 언니가 먹어야죠. 그리고 저는 원래 다리보다 가슴살 좋아해요.”

“에이- 그래도 닭은 다리지. 난 괜찮으니까 둘이 하나씩 먹어.”

한국인에게 닭 다리가 주는 의미는 조금 남다르긴 하다.

가족이 3인 이상이면 누가 닭 다리를 먹느냐에 따라 집안의 보이지 않는 서열이 드러날 정도니까.

내 마음 같아서는 시연이와 시은이가 먹었으면 했지만 여기서 티를 낼 수는 없고.

마침 그때 한미희 통장님이 나섰다.

“시연아, 예령이는 진짜 가슴살을 더 좋아해. 걱정 말고 다리는 너 먹어도 돼.”

역시 통장님이다. 화이팅!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시연이는 잠시 주춤거린다.

“진-짜로 저는 가슴살 좋아한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얼른 가슴살 한 덩이를 가져가는 예령이.

그래. 이 삼촌이 다음에 맛있는 거 더 많이 해주마.

들어간 거라곤 이미 건져낸 한약재 몇 가지와 닭, 마늘, 삼이 거의 전부지만 맛은 차원이 달랐다.

“와아··· 사장님. 이거 무슨 닭이 이렇게 쫄깃해요? 장난 아닌데요?”

역시 리액션 부자, 강영훈 사장.

그 직원들도 옆에서 함께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호응을 해준다.

“토종닭이라 그럴 겁니다.”

“오골계 토종닭이라··· 사장님, 이거 진짜 팔수록 손해나는 거 아닙니까?”

아이들은 모르지만, 어른들은 알겠지.

토종닭을 그것도 오골계에 인삼을 듬뿍 넣어서 만든 백숙 한 마리에 3만 원이라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걱정 마세요. 절대 손해 아니니까요.”

“너무 잘 먹을게요. 정말 이런 거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먹는 건데···. 오늘 진짜 입이 호강하네요.”

옆 테이블에서 한미희 통장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다음에는 남편분도 함께 오세요.”

“그러다 셋째 생기면 어떡하죠? 오호호호-.”

또 건수를 잡으신 건지,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예령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 모습이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다.

주방으로 들어갔더니 안에서 이루가 멀뚱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뭔데? 할 말 있어?”

“···도대체 누군데?”

“누구냐니? 뜬금없이 뭐가 누구야.”

“아, 그 산삼 말이야! 도대체 누구한테 준 거냐고.”

혹시나 해서 주방 안으로 음성 차단마법을 미리 펼쳐두길 잘했다.

“쓸데없는 거 궁금해하지 말고, 찹쌀 불려놓은 거나 줘.”

“이야. 10억짜리 산삼을 턱 하니 내놓고선 말도 안 해줘? 적어도 생색이라도 내야 하는 거 아냐?”

아마 알고서는 절대 안 먹으려고 할 게 뻔한데.

내가 미쳤냐. 그걸 알려주게.

“쓰-읍. 찹쌀!”

“···진짜 이해를 못 하겠다. 도대체 누구길래··· 혹시 가족인가? 아닌데, 분명 그날 다 죽었다고 들···.”

선을 넘었다는 걸 자신도 깨달았는지.

아니면 지금 내가 발산하는 살기를 눈치챈 건지.

이루 녀석이 얼른 찹쌀 불려놓은 걸 건넨다.

“미, 미안해.”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가족 이야기를 꺼내면 일본보다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라.”

“···농담 한번 살벌하게 하네.”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는 건 본인이 더 잘 알 테지.

나는 건네받은 찹쌀을 한 번 더 씻은 뒤, 밖으로 고개를 살짝 들어서 상황을 살폈다.

무려 3년을 방목해서 키운 닭이라 그런지 크기가 상당했지만, 닭은 금세 뼈만 남아 있었다.

몸에 좋은 거라면 환장을 하고 덤벼들 40대 중반 아저씨들이 있는 테이블이나.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파질 한창나이의 여자 셋.

남편들에 대한 뒷담화와 은근한 자랑이 교차하고 있는 아주머니들 테이블 모두.

나는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찹쌀을 넣고 볶았다.

그리고 잘게 다진 채소들도 듬뿍.

여기서 물을 붓고 끓이면 죽이 되지만 정말 중요한 재료는 바로 저기 남아 있는 육수들.

나는 잘 볶아진 찹쌀을 들고 주방을 나섰다.

“죽 드셔야죠?”

내 말에 반색하는 세 테이블의 손님들.

모두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에 들린 그릇을 쳐다본다.

누구에게 먼저 볶아줄 것인가는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가장 먼저 닭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강영훈 사장과 직원들이 앉은 테이블.

1차로 미리 들기름에 볶아진 찹쌀이 육수 안으로 들어가고 금세 육수를 머금은 찹쌀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달걀 한 알을 까서 넣어주고.

“바닥에 눌지 않도록 젓다가 10분 정도 뒤에 드시면 돼요.”

“사장님, 이게 진국인 거죠?”

“어떻게 보면 또 그렇죠. 영양분은 아마 국물에 더 많을 겁니다. 맛있게들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아 참, 사장님. 저희 소주도 한 병만 더···. 아니다. 제가 가져올게요. 하하.”

아마 제일 단골은 이 테이블이 아닐까.

고된 인테리어 일을 끝낸 아저씨들의 마무리는 하루가 멀다고 늘 반주로 끝을 맺으니까.

찹쌀을 한 그릇 더 들고나오는 사이 이미 강영훈 사장은 포스기에서 소주 한 병을 추가까지 해두고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렇게 세 테이블 모두 죽이 보글보글 익는 사이.

드디어 마지막 손님이 도착했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익숙한 안정민 과장의 뒤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사내가 들어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포구청장 김주일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안정민 과장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뭘 또, 영광씩이나.

나는 하나 비어있는 테이블로 세 사람을 안내했다.

안정민 과장과 김주일 구청장.

그리고 나머지 또 다른 한 명은 여자였는데, 40대 중후반 정도.

그저 구청 직원 중 한 명일까 했는데.

“처음 뵙겠습니다. 게이트 관리국 연구소장 신주희라고 합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일부러 늦게 찾아온 모양이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