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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6화 (16/153)

귀환자 식당 16화.

백화점을 나온 차가 도로를 미끄러진다.

예전에 비해 확실히 도로가 넓어진 것 같긴 하지만 차가 더 많아진 느낌.

하지만 막히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마 모두 자율 주행 기능을 사용해서 차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막히지 않는 느낌.

마치 각본이라도 짜인 듯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차들을 보고 있으니 확실히 미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너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난 이런 옷을 입고 밖을 돌아다닌 적 없어.”

“애도 아니고, 그만 안 해? 한국에서는 그런 휘황찬란한 정장 입고 다니는 건 기업 회장 정도라고.”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데, 강제로라도 적응을 시킬 필요가 있겠다.

거리가 제법 됐는데도 도로 사정이 괜찮아서 그런지 제법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가 멈춰서자 내가 먼저 내렸다.

“빨리 내려. 둘러볼 곳이 많아.”

아직도 입을 삐죽거리지만 자기 처지를 인식한 건지, 두말없이 차에서 내려선다.

찾아온 곳은 경동시장.

아직까지 이곳이 남아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는데, 인터넷을 보니 오히려 예전에 비해 더 활기가 넘치는 곳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한의사들뿐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간혹 데이트 코스로 찾을 정도라니.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킁킁-.

이루가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여긴 뭐지? 한약재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데.”

“경동시장이라고, 한국에서 가장 큰 한약재 시장이다.”

“한약재를 사려고? 뭐에 쓰려고?”

“전통 한식에는 한약재가 들어가는 경우가 제법 많거든.”

“이, 일본에도 많아!”

뭔 쓸데없는 자존심인가 싶지만.

이해가 된다.

이 녀석 지금이야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얼마 전까지는 한국이라면 치를 떨던 녀석이니까.

적반하장이었다는 걸 지금은 아는 것 같으니 넘어가 준다.

“오, 이건!”

좋은 건 아는지.

녀석이 커다란 사슴뿔을 보더니 경탄을 지른다.

“질 좋은 녹각이야. 젊은 사람이 보는 눈이 있어.”

가게 주인처럼 보이는 이가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다.

하지만 저런 걸 사러 온 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식당에서 녹각을 이용한 요리라니, 들어본 적 없다.

“오오-! 벌집을 통째로 파는 거야?”

이루 녀석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한 가게 건너마다 감탄성을 내질렀다.

솔직히 같이 다니는 게 창피할 정도로.

녀석을 무시하고 가게를 둘러보다가 문득 여러 가지 약재를 파는 곳을 발견했다.

가게 입구에 내가 찾는 것들도 보였고.

“계피랑 당귀, 감초. 아, 그리고 상황버섯도 있습니까?”

“물론 있죠. 또 다른 건요?”

난 생각나는 약재들을 말하면서, 또 생각지 못했다가 눈에 띄는 것들도 간혹 바구니에 담아 넣었다.

“사장님들 식당하시나 보다. 그죠?”

“아, 네. 티가 납니까?”

“사시는 것들이 전부 음식에 들어가는 것들이니까요. 이제 손님들이 사가는 재료만 봐도 대강 뭐 하러 사는지 보인다니까요?”

하긴, 그럴 법도 하다.

지금 내가 사는 약재들은 한약에도 들어가긴 하지만 오히려 음식에 더 많이 들어가는 것들이니까.

그러다가 문득.

가게 한편에 걸린 푯말에 눈에 들어왔다.

[예약받습니다.]

“사장님, 저건 무슨 예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저거요? 산삼이죠.”

“산삼도 파세요?”

“저희 집이 이래 봬도 벌써 제가 3대째 하는 약재상이거든요. 전국에 심마니분들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왜요? 혹시 산삼 필요하세요?”

산삼이라.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거긴 한데.

“네. 혹시 구하면 연락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시다시피 이게 워낙 가격이 천차만별이라서요. 대략 얼마 정도 선에서 찾으시는지 알려 주세요. 300만 원 선이면 이미 예약하신 분들이 꽤 계셔서.”

“가격은 얼마가 되든 상관없습니다.”

“얼마가 되도요?”

“네.”

돈이야 차고 넘친다.

돈을 주고도 못 구한다는 게 산삼인데, 쉽게 구할 수 있다면야 얼마가 되든 상관없지.

“···그럼 바로 드릴 수 있는 게 하나 있긴 한데.”

“그래요? 볼 수 있습니까?”

사기인지 아닌지는 보면 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중 하나인데, 각성자들은 감각은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한다. 특히나 기氣, 마력, 차크라라고도 불리는 것에 대해선.

영물이라 불리는 것들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마력이 쌓이는데, 그걸 느끼는 거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느끼는 데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 내일 혹시 다시 오실 수 있습니까? 준비해두겠습니다. 근데 이게 가격이 조금···.”

“얼마입니까?”

내 눈치를 살짝 보는 주인.

뭔가 가격을 후려치려는 느낌은 아니다.

아무리 내가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어도 ‘설마 이 가격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담긴 표정.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참고로 저는 그냥 중개만 하는 겁니다. 심마니 영감님이 워낙 꼬장꼬장하셔서 절대 이 가격 이하로는 팔지 않겠다고···. 크흠.”

나는 다시 재촉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 말하라고.

“···10억입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현금으로 준비해서 다시 오죠.”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 내 대답에 주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떠진다.

“저,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그럼 제가 바로 연락을 넣겠습니다. 내일 오시라고.”

“정말 진짜 그 값어치를 하는 산삼이라면 사장님께도 사례하겠습니다.”

“아유! 그럼요! 그것만큼은 제가 집안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이게 벌서 캔 지가 10일이 넘어가는데, 영감님이 가격을 워낙 높게 잡아놔서는···. 그래도 물건 하는 정말 기가 막힐 겁니다!”

정말 그 값어치를 하는 거라면 아깝지 않다.

다만, 괜히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10억이라는 가격이 무색하게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오긴 했지만, 여는 순간 가게 안에 확 퍼지는 향기만으로도 비범한 물건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와··· 이거, 뭐지?”

마력을 느끼는 건 비단 나뿐이 아니다.

이루 역시 나 정도는 아니더라도 마력을 다루다 보니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형. ···이건 진짜다.”

“그래. 따로 검사해볼 필요도 없겠다.”

되려 그 가격이 제대로 된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어르신, 이거 가격이 10억이라고 했는데. 맞습니까?”

“맞아! 에잉. 못 믿겠으면 그만둬! 그냥 확 내가 처먹고 심마니 질이나 몇 년 더 하는 게 낫겠어. 염병할.”

아마 그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삼이라는 게 그렇듯, 크기와 뇌두에 따라 그 가격이 책정되는데.

이건 기존에 비슷한 값을 책정받았던 다른 녀석들에 비해 크기가 아마 작았을 거다.

하지만, 되려 나에게는 좋다.

응축되고 응축된 마력, 일반인 중에서도 마력을 느끼는 경우가 바로 그거다.

영험한 기운, 혹은 자연의 정기라고도 불리는 것처럼.

이 산삼이 가진 것은 확실히 대단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격이 너무 낮은 것 같아서 드리는 말입니다.”

내 말에 짜증스럽게 돌아갔던 노인의 고개가 다시 천천히 돌아온다.

“커험! 거, 젊은 친구가 삼을 보는 눈이 좀 있구먼?”

“어르신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이런 제가 보기에도 이게 범상치 않은 삼이라는 것쯤은 알 정도니까요.”

으허허허허-!

내 말에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심마니 영감.

“내가 심마니 짓만 벌써 60년째야. 살면서 별의별 인간들을 다 만나봤지. 그래도 예전에는 제법 볼 줄 아는 인간들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저 크기만 따지는 개뿔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이 가격이 비싸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자네는 예전에 그 녀석들이랑 비슷한 눈을 가졌네. 거, 마음에 들어!”

볼 줄 알았던 인간들이라.

아마 각성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나랑 동년배.

아니, 혹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연세가 혹시 어떻게 되십니까?”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더니.

“내가 올해 딱 아흔이지.”

처음이었다.

돌아온 뒤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를 만난 것은.

“앞으로 제가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뭐, 형님? 허허-.”

아마 그가 보기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일 텐데.

그는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신기하구먼. 이제 갓 약관이나 지났을 법해 보이는데, 어찌 저런 눈을 하고 있나···. 좋다! 까짓거. 앞으로 나도 동생이라고 부르마! 이름이 뭐냐.”

“이진이라고 합니다. 형님은 존함이 어찌 되십니까.”

“함석웅이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석웅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오냐! 어허허허-.”

이루야 당연히 내 나이를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했고, 여기서 그 말에 당황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아니···. 어르신, 갑자기 그러시면 이게 족보가···.”

가게 주인이 황당하다는 듯이 나섰지만 석웅 형님도 나도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형님, 이거 제가 제값 드리고 사고 싶습니다. 자고로 이런 영물은 제값을 주고 사야만 제대로 된 기운을 받는 법 아니겠습니까.”

“크어-. 동생, 말 한 번 기가 막히게 하네! 그래도 내 오늘 늘그막에 팔자에도 없던 동생을 얻었으니 제값은 다 받는 거나 매한가지다!”

딱 봐도 고집이 보통이 아닌 형님.

이런 날에 괜스레 더 주겠네, 덜 받겠네 아웅다웅할 필요야 없겠지.

“알겠습니다. 대신, 제가 다음에 저희 식당으로 한 번 모시겠습니다.”

* * *

“이루야, 냉장고 안에 닭 있어. 깨끗하게 손질 좀 해둬.”

나는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저녁 장사만 한다곤 하지만 오후 5시부터는 문을 열어야 하는 데다 오늘 메뉴는 제법 시간이 필요하다.

“닭? 오늘 저녁은 무슨 메뉴인데?”

“삼계탕.”

오늘은 중복이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걸 넘어서 낮에는 걷기만 해도 등에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계절.

특히나 중복은 삼복三伏 중에서도 가장 덥다는 시기.

식당을 자주 찾는 분들에게는 벌써 공지를 해뒀다.

“오, 진이 형. 이거 오골계네?”

“오골계가 아니라, 연산 오계라는 거다.”

“···그게 그거 아닌가?”

다르지만 굳이 여기서 저 녀석을 붙잡고 대한민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또 한 바탕 늘어놓기는 귀찮아서.

“비슷하지만 달라, 귀한 거니까 손질 잘해라.”

사실 오늘 할 요리는 삼계탕이 아니라, 백숙에 가깝다.

게다가 연산 오계는 일반 시중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천연기념물.

귀하디귀한 몸이다.

당연히 가격도 그 귀한 몸에 맞춰 상당히 비싸다.

솔직한 말로 동네에서 장사하는 작은 식당에서 백숙 가격으로 받기에는 닭값만 받아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냥 일반 닭으로 할까도 생각을 해봤는데.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기로 했으니까.

시연과 시은이.

물론 미리 오겠다 약속을 하고 간 강영훈 사장과 직원들이나.

근처 통장들과 온다던 한미희 통장님.

구청장을 모시고 올 예정인 안정민 과장의 테이블도 소중한 손님이지만···.

미안하지만 오늘은 재료에 조금 차별이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시연이네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평생 먹어보기 힘들다는 연산 오계를 일반 백숙 가격으로 먹을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니지 않은가.

“형···. 설마 이 산삼을 여기에 넣을 생각은 아니지? 그치?”

닭을 손질하면서 삼계탕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 모양인지, 이루 녀석이 슬쩍 묻는다.

불안한 표정으로.

“아니, 맞는데?”

나는 오늘 10억짜리 산삼이 들어간 백숙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백숙의 주인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받을 가격은 3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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