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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4화 (14/153)

귀환자 식당 14화.

시연이와 시은이에게 커피를 테이크 아웃 잔에 얼음을 듬뿍 넣어주고 돌려보냈다.

아무래도 히로 녀석과는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

하지만 그 전에.

“···너, 우선 좀 씻어라.”

“어? 으음···.”

킁킁-.

코가 마비라도 된 건지,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모르나 보다.

그나저나 아무리 정부가 공항이나 항구를 감시한다고 해도 맨몸으로 동해를 건너오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차마 상상도 못 할 일이긴 하다.

“따라와.”

2층의 욕실로 안내를 해주고선 안정민 과장이 편하게 입으라며 준 트레이닝복 한 벌도 건네줬다.

다행히 나와 체격이 비슷하니 사이즈는 문제가 없을 테고.

속옷도 새로 사두고 아직 입지 않은 게 있어서 내어줬다.

밥은 먹었으려나?

하긴, 저 꼴이라면 당연히 굶었겠지.

미운 놈 떡 하나 주는 심정으로 식당으로 내려왔다.

뭘 해줄까 생각을 하다 보니 전에 게이트에서 식사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일식을 해본 적도 없는 건 물론이고.

일본에 대한 인식이 최악 중의 최악인 시기에 자란 탓에 일식을 접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당연히 나는 한식을 준비했고, 이 녀석은 그걸 거부했었지.

아, 생각하니 또 열받네.

그랬던 자식이 상황이 불리해지니 날 찾아와?

밥이고 뭐고 그냥 확 쫓아내 버릴까?

어휴.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밥은 먹이고 보자 싶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여러 가지 재료가 있는데, 오늘 저녁 메뉴로 쓰려고 미리 사둔 닭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 손님이 많이 찾는 가게는 아닌지라 5마리만 준비해뒀는데, 한 마리는 지금 써야 할 모양이다.

나는 한 마리를 꺼내서 발골을 시작했다.

저 녀석이 혼자 게이트에서 해 먹던 음식이 떠올라 그걸 해줄 생각이다.

정확히 무슨 양념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고프면 원래 다 맛있는 법 아닌가.

칼을 몇 번 넣지도 않았는데 발골은 금세 끝났다.

사실 날개와 다리의 뼈만 제거하면 가슴살이야 손쉽게 떨어지니 별로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발골이 끝난 닭고기는 한 입 크기로 썰고 마늘과 간장, 소금, 후추를 뿌려 잠시 재워뒀다.

어차피 나도 밥을 먹긴 해야 하니, 밥도 안치고.

양파 하나를 다듬어 채를 썰고 나니 벌써 재료 준비는 끝.

이 녀석이 언제쯤 내려오려나.

아무래도 꽤 더러웠으니 씻는 것도 좀 걸리려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소금기는 좀처럼 잘 씻겨지질 않는다.

잠깐 바닷가에서 놀기만 해도 그런데, 저 녀석은 아예 소금물에 하루를 절이다시피 했으니···.

치익- 칙칙-.

압력솥의 추가 달랑거리기 시작할 무렵, 재워둔 닭을 꺼내 들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핑크빛 살에 살짝 갈색빛이 도는 게 간이 밸 정도는 된것 같다.

맛술과 간장을 섞은 물에 다시마 한 장을 넣고 끓였다.

그리고 팬을 약한 불로 달군 뒤, 간이 밴 닭고기를 올렸다.

껍질에서 나오는 기름만으로도 충분해서 더 이상의 기름은 두르지 않고 천천히.

고기가 익어가기 시작할 즈음 채를 친 양파와 끓인 간장 소스를 붓는다.

위층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제 씻고 막 나오는 참인 것 같다.

“다 씻었으면 1층으로 내려와.”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겠지.

저 녀석의 귀도 나만큼이나 밝을 테니까.

녀석이 우물쭈물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 닭이 달큰한 향기를 내며 익어갔다.

양파가 투명해지고, 간장 소스가 자작해지기 시작하자 나는 달걀물을 부었다.

그리고 팬의 뚜껑을 덮고, 넓은 그릇에 밥을 담았다.

압력솥으로 갓 지은 흰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위로 닭고기와 달걀, 양파를 소스에 조린 것을 이불처럼 덮어줬다.

그 위로 잘게 썰어둔 쪽파를 올렸다.

탁-.

“먹어. 이야기는 그 뒤에 해도 될 것 같으니까.”

“···고, 고맙다.”

사실 듣지 않아도 알겠다.

쫓기기는 하는데, 찾아갈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을 쫓는 정부 요원들을 전부 죽일 수도 없었겠지.

그랬다간 정말 자위대가 출동할 테니, 그게 아니더라도 일본 정부의 특기인 국민 선동이 시작되면 녀석은 전 일본인의 원수가 될 테니까.

멍청한 녀석.

어차피 도망쳐 올 거면 차라리 윗대가리들이라도 싹 다 죽이고 오던가.

쿨쩍-.

···내가 잘못 들었겠지? 인간들에게야 영웅인지 몰라도, 적어도 저 녀석의 칼에 썰려 나간 몬스터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악귀로 보였을 텐데.

그런 녀석이 울먹이고 있다고?

“마, 맛있다. ···이거 이름은 알고 만든 거야?”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아. 그냥 네 놈이 게이트 안에서 만들던 걸 보고 따라 한 것뿐이야.”

“그러냐···.”

고개도 들지 않는 녀석은 말없이 묵묵히 수저를 움직였다.

나도 아침을 먹어야 해서 한 술.

우린 그렇게 그릇을 비울 때까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 * *

“공항은 물론이고, 항구며 해안가까지 드론이 쫙 깔렸더군. 아마 내게 가족이 있었다면 인질로 잡혔을지도 몰라.”

“정부라는 것들이 하는 짓이 너무 치졸하네.”

“···그래. 왜 인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건지, 나도 이해가 안 된다. 그전에는 대체 왜 몰랐을까···.”

왜 몰랐긴.

알면서도 그저 억지로 이해하길 포기한 거지.

개인적으론 저게 일본인들의 특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국 사람은 예전부터 알고 있던 걸, 정작 본인들은 부정하는 사실이 한 두개여야 말이지.

이 녀석도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그런 사실들.

“그래서, 여기 온 이유가 뭔데.”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게 너뿐이어서.”

하.

우리가 친했던 사이도 아니고, 어찌 보면 원수에 더 가까운 사이인데.

그런 상황에서 생각나는 게 나 뿐이었다고?

“너 왕따냐?”

“뭐?”

“외톨이냐고. 넌 아는 사람도 하나 없냐?”

“그러는 넌? 돌아왔을 때 아는 사람이 있었어?”

빌어먹을. 할 말이 없네.

“···아무튼, 이제 어찌 된 건지 말이나 해봐.”

“별거 있나. 그저 토사구팽당한 거지.”

“결국 코어를 내어주지 않아서 쫓기는 신세가 된 거냐?”

무언은 곧 긍정이겠지.

일본도 그런지, 식사 후에 커피 한 잔을 내려줬더니 말없이 홀짝이고 있다.

참 어찌 보면 이 녀석도 안타깝긴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내가 이 녀석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

아니, 다른 동료라면 또 모를까.

이 녀석이니 더 그렇지.

“일본 정부에서 이걸 알면 당장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 빨리 떠나는 게 좋을 거야.”

“···떠나라고? 어디로 말이냐?”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우리가 서로 안부 챙겨줄 사이는 아니지 않았나? 지금 당장 밀입국자로 신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녀석이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더니 정신이 나갔나.

감히 누구 앞에서 저따위 가증스러운 표정을 짓는 거지?

“···죽고 싶은 거냐?”

“매정한 놈 같으니.”

진짜 적응이 안 되는데.

이게 30년이 지났다고 하니까 진짜로 자기가 늙은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인데, 나보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게.

진짜 이놈의 정이 뭔지.

저 자식을 어쩌면 좋을까···.

“···정말 안 되겠냐? 네가 시키는 거라면 뭐든 할 수 있어.”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다.

물론 한국 정부가 이걸 받아들이느냐 마냐에 달렸지만.

“너, 정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히로 녀석은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같은 곳으로 도망쳐봐야 금방 다시 잡혀 올 테니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는 일본의 요구라면 거절부터 하고 보는 한국이 가장 제격이겠지.

거기다 일본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나라고.

“그럼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나 좀 해라.”

“···아르바이트? 설마 나보고 지금 파트 타임으로 식당에서 일하라는 건···.”

잘 아네. 더 이상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어서 좋다.

“뭐든 한다며?”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이 녀석, 게이트 안에서 혼자 뽀스락대며 뭘 해 먹던 걸 생각하면 요리도 곧 잘하고 말이지.

물론 남자 둘이 한집에서 사는 게 심히 거슬리긴 하지만 이 녀석이 진짜 일본 게이트 관리국에 잡혀가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거 같고.

가장 사이가 안 좋은 국가라 오히려 가장 안전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뭐, 정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이민국에 전화를 해야하나···.”

턱-.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내 손을 다급하게 붙잡는 녀석.

“···내, 내가 언제 싫다고 했냐.”

“할거야? 그럼. 일단 존칭부터 써.”

“너한테?”

전에야 어차피 외국인이고 오래 이야기를 섞을 필요도 없었으니 이해했지만.

아르바이트생이 되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거기다 이 녀석 나보다 나이도 어리잖아.

“사장님은 좀 그렇고, 그냥 형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형?”

“한국에선 나이 많은 남자를 형이라고 해. 그러니까 너도 앞으론 진이 형이라고 불러.”

히로의 얼굴이 기이하게 찡그려지더니.

“지, 진이 형···?”

썩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

차츰 나아지겠지.

* * *

내가 부탁할 사람이라고 해봐야 뻔하지.

선택받은 건 결국 오후에 찾아온 안정민 과장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저 쪽바ㄹ··· 아니, 일본새ㄲ··· 일본인의 위장 신분을 만들어달라는 말씀이십니까?”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걸 알 것 같다.

물론 이해는 한다.

한국이 보여준 호의에 뒤통수를 치다 못해 아주 후려갈겨 버렸으니까.

게이트는 잊혀졌을지언정 그들이 한 짓은 아직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분노 유발의 버튼인 셈이다.

더군다나 안정민 과장은 게이트 관리국의 일원.

분명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비사도 알고 있어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네.

정 안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돕기로 했으니 조금만 더 해볼까···.

나는 슬쩍 안정민 과장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저 녀석, 제 동료입니다.”

처음엔 뚱한 표정을 짓더니, 조금씩 눈이 커진다.

그리고 이내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치켜뜬 채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도··· 동료라면! 서, 설마!”

가만 보면 이 양반도 눈치가 참 느려.

내가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곤 몇 안 되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심지어 저렇게 어려 보이는 사람을 내가 알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그걸 인제야 눈치챈 건가?

원래 저렇게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닌데.

오히려 빠른 편이지.

아마도 그런 그의 눈을 가리고 생각에 안개를 씌울만큼 일본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크다는 말이겠지.

내가 없었던 동안에도 양국 간의 골은 더 깊어졌을지언정, 메워지진 않은 모양이다.

“가능하겠습니까?”

내 물음에 안정민 과장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야죠.”

* * *

간만에 식당에 손님이 제법 몰렸다.

테이블 4개가 모두 찼고, 그중 하나는 시연이와 시은이가 앉아 있었다.

오늘은 시은이의 학교 친구이자 한미희 통장의 딸인 예령도 함께.

“아저씨, 아르바이트 뽑았어요?”

“응? 아아. 아무래도 혼자 하려니 조금 버거운 것 같아서. 아는 동생인데 마침 일을 구한다고 해서 오라고 했지.”

“아아-.”

시은이와 예령이가 주방에서 재료 손질을 하는 히로를 힐끔 쳐다본다.

“···잘 생겼다.”

“그치? 완전 모델 같아.”

시연이는 별 관심 없는 눈치였는데, 시은이와 예령의 눈에는 히로가 제법 멋지게 보였던 모양인지.

자꾸만 주방을 힐끔거린다.

뭔가 살짝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하고.

주방을 개방형으로 만들었는데, 막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근데 저 오빠는 몇 살이에요?”

“이루? 24살이지. 아마?”

안정민 과장이 만들어준 새로운 한국 신분.

김이루.

그나마 히로와 어감이 비슷한 걸로 찾은 결과다.

나이는 당연히 나보다 어린 24살로.

나랑은 2살 차이인데.

“···근데, 시은아. 나는 아저씨고, 왜 저 녀석은 오빠야?”

“그야, 아저씨는 사장님이니까. 오빠는 너무 가벼워 보이잖아요.”

특별한 의미를 두진 않았겠지만, 나도 아저씨라는 소리보단 다른 말이 듣고 싶은데.

“그 왜···. 삼촌도 있고. 크흠.”

아하하하하.

내 말에 세 사람이 폭소를 터트린다.

“알았어요. 삼촌! 됐죠?”

엎드려 절 받기였긴 하지만.

그래도 삼촌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속에서 뭔가가 찡하고 울린다.

그래.

난 이 아이들의 삼촌이지.

그런 생각이 스치자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시연이의 머리를 쓱 하고 쓰다듬었다.

무의식 중에 나온 행동에 나도 모르게 잠시 주춤하는 사이.

갑작스럽게 흘러내리는 시은이의 눈물 한 방울.

“···어어?”

나도, 시연이도.

예령이도 모두 당황했다.

“미안. 나도 모르게···.”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내 손길에서 할아버지를 떠올린다는 이 작은 조카가 왜 이리 안쓰러울까.

“···앞으론 정말 날 삼촌이라고 생각해도 돼.”

당장 떠오르는 말이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시연이는 그 말에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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