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3화 (13/153)

귀환자 식당 13화.

히로 무야시.

그는 자신의 조국이 좋았다.

주변 국가들이야 제국주의니, 선민사상에 길든 민족이라 삿대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황국신민으로서 느끼는 자부심은 오래전 있었던 사건 하나로 인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뒤집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때의 일본 정부에서 보인 행동은 그야말로 같은 일본인으로서도 당황스러움을 느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가 정말 완벽하게 갈라지게 되던 순간.

일본 정부가 정상화를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 때.

한국은 그보다 조금 더 빨리 ‘게이트’의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스위스 이후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게이트 관리’의 전담 기관을 설치하고 각성자들의 등록, 편제를 마친 뒤.

혼란을 급속도로 잠재웠다.

당시 한국인들은 마치 나라 전체가 군대가 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친 단합력을 보여줬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게이트를 정복해 나갔다.

마치 세계를 상대로 ‘게이트 관리는 우리를 보고 따라 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선구자 그 자체였다.

그저 다른 유럽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도 한국에게 기관 창설에 대한 조언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일본은 ‘이웃 국가’라는 명목을 앞세워 좀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고자 했다.

어쩌면 무시했어도 될 일을.

한국은 외면하는 듯하다가 결국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줬다.

다른 국가들이 하나둘 게이트를 정복하며 정부 기능을 급속도로 회복하고 있을 때도, 일본은 자위대의 통제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자존심에 상처가 났었다.

일본 국민은 다른 국가들은 모두 제쳐두고서 오직 한 가지 사실만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다.

자신들이 한국인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라의 안정화를 위해서, 일본 정부가 선택한 것은 최악의 수였다.

한국에서 도움을 주고자 날아온 한국 헌터들.

그들을 게이트로 밀어 넣은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도움을 주기 위해 왔으니 거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그들을 당시에는 공략이 불가능한.

또 굳이 공략이 필요하지 않았던 게이트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무려 100명에 달하는 헌터들.

그들은 대다수 한국 국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도와주러 온 이들이었다.

일본 정부는 그들을 왜 사지로 몰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바로 일본 정부다.

히로 무야시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했었다.

뼛속까지 사무라이 정신을 외치던 자신이었기에, 그런 사실을 외면해야만 일본 황국신민으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왔는지.

지금까지 이진이 어떤 기분으로 자신을 마주했을지···.

그걸 늦게나마 깨달았다.

일본 게이트 관리국.

대부분 국가에서 자취를 게이트 감춘 관리국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처음에는 역시 자신의 조국이구나.

목숨을 마쳐 신민을 지킨 헌터들의 후손을 지원하기 위해서 기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은 그저 관리국이 가진 부와 권력.

그것을 놓기 싫어하는 몇몇 이들에 의해 억지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관리국의 폐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몇몇 우익들을 선동해 여론을 만들고, 시선을 돌리며 이어온 더러운 명맥.

“당신들은 미쳤어.”

히로 무야시가 경멸이 차오르는 눈으로 앞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게이트 관리국장.

일본 게이트 연구소장.

동아시아 헌터 연합회장.

동아시아 헌터 연합이라곤 하지만 가입국은 일본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저들은 한국이 가입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퍼부었었지.

이제 와 생각하니 정말 기가 막힌다.

얼마나 자신이 눈과 귀를 막고, 그저 정부의 선동에 휩쓸려 살았는지 느껴진다.

“히로군. 말이 심하네. 우리는 자네의 상관이야!”

히로 무야시는 생각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미쳐버린 늙은이들을 상대로 과연 무언가를 할 수는 있는가?

“히로군? 내 나이가 70인데 ‘군’이라니.”

“···게이트에서의 시간과 여기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지. 자네에게는 30년이 없었던 것이고. 나이란 사람이 살아오며 겪는 지혜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토대 같은 것으로···.”

저런 말들이 예전에는 듣기에 괜찮았는데.

지금은 그저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겨우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관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역겹다.”

“뭐, 뭐라고?! 이 미친 작자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 여기가 어디지? 알량한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치는 늙은이들이 모여 작당모의나 하는 냄새 나는 뒷방 아닌가?”

처진 볼살이 부들거리는 관리국장을 보며 히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더는 여기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당신, 지금 그렇게 나가면 후회할 텐데. 국가를 적으로 돌릴 셈인가.”

“네놈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잘 아는군. 그럼 받아들여라. 어차피 너에게 선택지는 없어.”

이젠 자신들이 악惡이라는 것조차 부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 안의 대화는 외부에 흘러나가지 않을 거란 자신감의 발로인가?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지금 이 방을 둘러싼 이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저들의 꼭두각시.

“혹시 지금 숨어 있는 것들을 믿고 이러는 거면 후회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하게 될 텐데.”

“···이번 일만 성공하면 일본은 분명 다시금 아시아의 절대적인 맹주 자리로 올라설 수 있다. 그 일등 공신이 되면 부와 명예를 얻게 될 거다.”

이미 50년 전부터 소수민족들의 독립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이 아니더라도, 그게 가능할까? 한국은 이미 일본이 쉬이 어찌하지 못하는 강대국이다.

저들은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걸까.

“다른 요구는 없다. 그저 가지고 있는 코어만 넘겨라.”

“···헛소리. 그건 내가 넘기고 말고 할 정도로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아공간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작은 코어 조각.

7명이 마지막 최후의 게이트를 공략한 뒤, 7개로 나누어 가지고 나온 것이다.

마석과는 다른,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소름끼치는 마력이 흘러나오는.

하지만 저들은 모른다.

7개로 나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모두 균등한 크기로 나누어 가진 게 아니란 사실을.

“하나만 묻자. 너희들, 도대체 코어가 뭔지나 알고 달라고 징징거리는 거냐?”

하도 기가 막혀서 그런지.

이제는 말투에서 경멸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물론이다. 우리가 일개 헌터인 너보다 코어에 대해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일본 게이트 연구소장.

걔중에서는 그나마 지금까지 점잔을 빼고 앉아있던 이도 결국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7개가 전부 모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달라는 건, 다른 것들도 노릴 생각인 거냐?”

“물론, 모든 준비는 이미 완벽하다.”

“잠깐. 너희들··· 서, 설마 한국에도 사람을 보내거나 한 건 아니겠지? 아니지?”

제발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그게 히로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의 그런 간절한 마음을 짓밟았다.

“한국이면 혹시 이진을 말하는 건가? 최후의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유일한 A급 헌터···. S급도 아닌 주제에 운이 좋았던 건가? 첫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너무 최적의 조건이지. 건방진 조선인 놈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 말을 들은 히로 무야시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이, 이 병신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 * *

히로의 전화를 끊은 나는 다시 가게로 들어와 앉았다.

-미안하다. 결국 네게 불똥이 튀게 만들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녀석 때문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힘을 욕심내는 것들이 문제지.

어째서 코어를 노리는 거지?

코어는 다른 게 아니다.

최후의 게이트.

그 안의 군주였던 마왕의 심장이 바로 다름 아닌 우리가 말하는 코어다.

흘러넘치던 소름끼치던 마력.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알아챘다.

세상에 게이트가 열리는 이유가 바로 코어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각자가 나눠 가진 후 다시는 세상에 꺼내놓지 않기로 맹세한 거다.

그런데 그걸 노리는 자들이 있다.

왜?

설마, 다시 게이트를 열고 싶어서? 모르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무슨 이유에서든 코어를 내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날 공격한다면 그게 누구든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도.

멍청한 녀석.

물론 아무리 각성자라도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할 수는 없다.

사람인 이상 지치기 마련이고, 피륙으로 이뤄진 몸이니 눈먼 총알이라도 맞으면 다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도망자 신세라니?

한심하기가 이를 데 없는 선택이다.

만약 나였다면?

이런 사태를 만든 게이트 관리국의 윗 대가리들을 죄다···.

어차피 명령을 내린 것들만 숙청하면 그 아래는 조용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녀석은 그마저도 못하는 거다.

“쯧-. 멍청한 놈.”

듣지도 못하겠지만 괜스레 한 번 혀를 찼다.

혹시나 싶어 나에게도 경고차 연락을 한 모양인데, 그런 일이 안 생기길 바란다.

날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자신을 위해서 말이지.

* * *

화창한 아침.

일어나 창문을 걷었는데 푸른 하늘이 맞이하는 날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화창한 날씨를 좋아하니까.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기도 한 향기의 커피를 한 잔 내려서 가게 문을 나선다.

마당 한편에 놓은 작은 테이블에서 여름 아침의 따스함을 만끽하고 있으면 잠시 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겠지.

짧은 인사지만 아침마다 주고받으니 이제는 하루라도 건너뛰면 하루가 허전할 정도다.

오늘은 날씨도 따듯해서 커피에 얼음을 잔뜩 넣어서 나왔다.

아침부터 햇살이 제법 뜨거워지는 것이 정말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사장님.”

하하.

밝은 햇살에 햇살이 더해지는 느낌이 이런 걸까.

온 마당이 환해지는 기분이다.

“어? 근데 시은이 오늘은 교복이 아니네?”

방학 기간이긴 해도 3학년이라 수업을 나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보충 수업도 이제 끝이에요! 진정한 여름 방학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후후후-.”

“그래? 그럼 아침부터 어디가?”

“오늘은 제 미술용품 좀 사러 나가보려구요. 시은이도 집에만 있기 답답할 것 같아서 같이 나왔어요.”

시연이의 얼굴에 조금 남아있던 구김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다 환해지는 것 같다.

“그래. 잘됐네. 날씨 더운데, 아이스 커피 한 잔씩 내려줄까?”

“진짜요?! 좋아요!”

“매번 너무 민폐만 끼쳐서···.”

“민폐는 무슨. 잠깐 여기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어. 금방 내려올게.”

우리 집 커피야 두 사람은 몇 번 마셔봐서 그런지.

살짝 기대하는 눈빛이다.

내가 내려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향 하나는 끝내주거든.

우웅-.

커피 머신이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가는데, 골목 입구에서 익숙한 감각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직 보이지도 않는 곳이지만 이 기운이 말하는 건 하나다.

“이 자식이 여길 왜···.”

일본에서 정부 요원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했던 녀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갈팡질팡 도망이나 치고 있을 녀석이 여길 왜?

아니, 어떻게가 먼저인가?

커피를 내려주고, 혹시나 아이들이 놀랄까.

마당을 가로질러 입구로 향했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아니. 친구가 오는 것 같아서.”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르고, 거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영락없는 거지.

고작 하루 만에 사람이 이 지경이 될 수가 있나?

아니, 일본에서부터 저런 꼴로 지냈던 건지도 모르지.

“···미안하다. 갈 곳이 없어서.”

히로 녀석의 몸에서 비릿한 짠 내음이 물씬 풍긴다.

이 녀석, 설마.

“너 설마,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온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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