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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2화 (12/153)

귀환자 식당 12화.

저녁에 아주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아저씨! 우리 대박! 대박!”

“어어?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본데?”

활짝 핀 두 사람의 얼굴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특히나 언제나 한 구석에 그늘이 있던 시연이의 표정은 다른 때와 사뭇 달리 정말 밤에 핀 양귀비꽃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아.

이래서 사람들이 기부를 하는 건가.

“언니랑 저랑 이번에 무슨 재단에서 장학금 받기로 했어요!”

“장학금? 와아. 그거 공부 잘하는 사람한테 주는 거잖아. 시은이가 공부를 굉장히 잘하나 보다.”

내 말투가 어색했던가.

두 사람이 살짝 묘한 표정으로 찡그려진다.

“아, 아저씨 말투··· 지금 되게 이상했어요. 알죠? 그 국어책 읽는 것처럼. 와.아-. 이러고. 무슨 로봇인 줄.”

“내, 내가 언제···.”

크흠!

나 때는 그 흔한 드라마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던 시기니까.

감수성이 조금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스스로 그렇게 위로했다.

“흠흠. 그래서, 둘이 그거 축하하려고 나온 거야?”

“네! 왠지 모르겠는데, 여기 식당 생긴 뒤로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서요. 아저씨한테 자랑도 하고 싶고. 헤헤-.”

“시은이 말대로 정말 그런가 봐요. 사장님 음식이 입에 잘 맞아서도 그렇고, 또 좋은 소식도 전해드릴 겸 왔어요.”

“이렇게 찾아와주니 나야 고맙지. 가만, 내가 이런 날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일단 얼른 들어와 앉아봐.”

어린아이를 동반한 세 가족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손님들도 얼핏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지, 두 조카를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고.

“어디 보자···. 오늘 뭘 해주면 좋을까.”

“아저씨! 저 김치찌개 또 먹고 싶어요.”

오늘도 김치찌개부터 찾는 시은이지만 그래도 이런 특별한 날에는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걸 해주고 싶은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침 눈에 띄는 게 하나 들어왔다.

오늘 새벽에 제주도 선장님께 주문했던 옥돔과 함께 온 것인데, 양이 너무 적어도 메뉴로 내놓기에는 힘들었던 재료다.

“혹시 오징어 회 먹을 줄 아니?”

해산물은 내 입에 아무리 맛있어도, 호불호가 늘 갈리기 마련.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었는데.

“그럼요! 없어서 못 먹죠!”

“둘 다 알러지는 없어요. 근데, 오징어 회도 뜰 줄 아세요?”

오징어 회야 정말 회라고 할 것도 없지.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무늬 오징어를 꺼내 들었다.

선장님께서 친절하게도 회로 먹을 수 있게 신경마비까지 해서 보내주신 녀석들.

제법 묵직한 것으로 두 마리다.

서울에서는 돈이 있어도 좀처럼 구경도 하기 힘든 녀석들.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선장님께 감사를 드린 후.

손가락을 통해 마비된 녀석들에게 마력을 슬쩍 흘려보냈다.

신경이 절단되어 하얗던 몸통이 순식간에 초콜릿 색으로 변하는 걸 확인한 후에야 마력을 거둬들인다.

신선함이야 눈으로만 보더라도 확연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조카들이 세상 기쁜 얼굴로 함께 축하하자며 온 날인데, 조금이라도 더 신선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

물론 오징어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몸통을 분리하고 촉완은 중간부위까지 모두 잘라냈다.

자르기 전에 몸통의 절반은 끓는 물에 아주 살짝 데쳤다.

제법 큰 녀석들이라 반은 회로, 반은 데침으로 먹어서 두 가지의 맛을 모두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간장과 초고추장을 종지에 담고, 고추냉이를 따로.

한 마리중의 절반은 옆 테이블에도 맛을 보라며 건네줬다.

“오늘 저 친구들이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요. 메뉴는 아니니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무늬 오징어라고 제주도에서 오늘 올라온 녀석들인데 맛이라도 보세요.”

슬쩍 접시를 내밀자. 남편으로 보이는 이가 알은 채를 한다.

“무늬 오징어요? 알죠. 어휴 그 귀한 걸 이렇게···. 이거 다음에 또 오라는 소리 맞죠? 하하.”

“학생들 고마워요. 학생들 덕분에 우리도 귀한 거 먹고 가네요.”

“진짜. 무슨 일인지 아까 대충 들었는데, 장학생이라니. 축하합니다. 우리 딸도 커서 나중에 학생들처럼만 자라면 소원이 없겠네요.”

이제 겨우 서너 살도 안되어 보이는 딸에게 벌써 부담을 주는 아버지라니.

저렇게 반듯하게 자라기가 얼마나 힘든 건데.

따듯한 밥도 잊지 않았다.

상추와 함께 얇게 채를 썬 당근과 양파를 넣고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것도 꿀맛이니까.

가게에는 두 테이블뿐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은 충만한 시간이다.

무늬 오징어 데침을 넣은 비빔밥과 회.

단일 메뉴에 가까운 음식이지만 다양한 채소들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물리지는 않는다.

“맥주 한 잔 줄까?”

“음···. 아뇨. 소주로 한 병주세요.”

호오.

역시 외갓집의 핏줄이라는 건가.

내가 소주 한 잔을 따라주자, 고개를 돌리고 가볍게 마시는 시연이.

소주도 먹을 줄 알고, 다 컸네.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소주잔을 내려놓은 시연이가 날 빤히 쳐다본다.

“사장님, 혹시···. 오전에 뭐하셨어요?”

“···응? 오, 오전에? 뭐 했더라···. 뭐, 가게 청소도 하고. 인터넷도 보고···. 그냥 이것저것.”

진짜 심장이 덜컹한 기분이다.

모습을 바꿨으니 알아봤을 리가 없는데?

갑자기 그걸 왜 묻는 거지?

“그건 왜?”

“음··· 아니에요. 그냥 좀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아서요···. 제가 착각했나 봐요.”

뭔가 이야기가 길어지면 티가 날 것 같다.

난 아무래도 연기는 서툰 모양이니까.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럼 아르바이트는 인제 그만두는 거야?”

“네. 복학 준비를 하려면 아무래도 그래야 하는데···.”

“그런데?”

“당장 아르바이트를 그만둬도 생활비는 주신다고 하셔도 아무래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지원해준다고 덥석 일부터 그만두는 게···.”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착해빠진 것도 정도가 있지.

지원 다 해주겠다는데도 미안해서 일을 하겠다니.

“미대면 복학하기 전에 학원도 다니고 그러면서 다시 감각도 살리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일하면서 그림도 제대로 못 그렸을 거 아냐.”

“그건 그렇죠. ···어? 근데 제가 미대 다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잠시 사고회로가 멈췄다.

어디서 들었지? 어디서 듣긴, 당연히 안정민 과장한테서 들었지.

그런데 그걸 이야기할 수는 없고.

죄송합니다. 통장님.

“응? 아아, 아마 한미희 통장님한테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크흠!”

“그래요? 아주머니도 참···.”

워낙에 오지랖으로 동네에서 유명하신 분이라 그냥 넘기는 모양인데, 이거 심히 마음에 찔린다.

다음에 만나면 뭐라도 드려야겠다.

다행히 딱히 비밀이라고 할 문제는 아니기에 그냥 넘어갔다.

“사실 다니던 옷가게는 벌써 그만뒀어요.”

“그래? 하긴, 결정했으면 빨리 실행에 옮기는 편이 좋지.”

“재단 분이랑 이야기하고 다시 가게로 갔더니 문이 닫혀있지 뭐예요. 그리고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고 문자만 하나 왔더라고요. 그동안 일한 급여도 바로 통장으로 보내주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래?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안정민 과장에게 뒷일을 부탁했는데, 제법 잘 처리했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영업 정지라도 먹였나?

* * *

“와. 그 오징어, 진짜 맛있었다. 언니, 그치?”

“그러게. 나도 그런 오징어는 처음 먹어봐. 이름도 희한했는데.”

“무늬 오징어!”

“그래. 잘 기억하네?”

그 말에 이시은은 헤헤거리며 웃었다.

“아저씨한테 다음에 또 해달라고 하려고!”

“으음. 그렇게 자주 들어오는 재료가 아닌 것 같던데.”

옆 테이블 사람의 반응을 봤을 때도 상당히 보기 드문 해산물인 건 맞는 것 같다.

-나도 서비스로 받은 건데, 손님한테 돈을 받을 수는 없지. 대신 다음에 또 오기.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는 고집에 결국 포기하고 왔지만, 마음에 걸리긴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양은 비록 적을지언정 옆 테이블 손님들에게도 서비스로 나갔던 음식이기도 하고.

자기들 일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데, 그 모습에 거짓이나 가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식사 시간이 즐거워졌던 것 같고.

“언니.”

“···응?”

“히히. 언니, 혹시··· 아저씨한테···.”

그 뒤에 무슨 말이 올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여고생답지 않은 음흉한 아저씨 표정을 흉내 내는 동생을 보면 말이다.

“얘, 얘는! 정말 그런 거 아니야.”

“···그래? 흐음.”

아직도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않는 동생을 향해 시연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가게로 왔던 재단 직원 말이야. 어쩐지 식당 사장님이랑 느낌이 비슷해서.”

“응. 그 사람이 왜?”

“딱 꼬집어서 뭐라고 하기엔 잘 모르겠는데, 느낌이 정말 이상했단 말이야. 특히 그 눈빛이···.”

“눈빛이? 아, 뭔데. 얼른 이야기해 봐.”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선 혼자 회상에 잠긴 시연을 향해 시은이 칭얼댔다.

“꼭 날 아는 사람 같았어. 되게 따듯하고, 부드럽게 바라보는 게 꼭···. 그래. 우리 할아버지처럼.”

“할아버지?”

“그래. 기억나? 어릴 때 우리 쳐다보던 할아버지 눈빛 있잖아.”

“그러니까, 식당 아저씨도 언니를 그렇게 본다고?”

“···어? 그,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시연에게 공주병 환자냐고 놀리던 두 사람은 결국 집까지 술래잡기를 해야 했다.

* * *

“사장님, 너무 잘 먹었습니다. 이 가격에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정말 놀랍네요. 특히 그 오징어는 뭐···.”

계산하던 아이 아빠가 아직도 입에 그 맛이 감도는 모양인지 살짝 입맛을 다신다.

“차만 없었으면 한잔하는 건데, 너무 아쉽네요.”

그 기분 나도 알지.

“멀리 사시나 봅니다?”

손님들 대부분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차를 가져와서 의아하던 참이다.

“아뇨. 그렇게 멀지는 않은데, 아내가 임신 중이라···.”

“아, 둘째인가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딸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둘째라.

“이번엔 아들이면 300점이네요.”

“어? 젊은 사장님이 그런 것도 아세요?”

요즘 사람들은 그런 말을 모르는 건가?

앞으론 모른 척해야겠다.

“다음에 오실 때는 네 명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예정일은 멀어서요. 아마 그사이에 아내가 또 여기 밥맛이 그립다고 할 것 같은데요?”

임산부에게 생각나게 하는 맛이라.

이런 극찬이 또 없다.

그렇게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까지 떠나고 나자 가게가 휑하니 비었다.

딱히 쓸쓸한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면 정말 누군가 한 사람은 여기서 함께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네.

어차피 방이 남기도 하고, 함께 일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뭐, 언젠간 구해지겠지.”

구인 사이트에 올리긴 했는데, 그리 급한 것도 아니고 해서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옵션은 전혀 넣질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한 통도 없네.

슬금슬금 혼자 청소를 시작해 본다.

바닥에 떨어진 것도 없건만, 그래도 사람들이 오가면 먼지가 쌓이는 법.

식당은 늘 청결해야 하는 법이니까.

쓸고, 닦고.

주방에서 식기세척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 리듬에 맞춰서 몸을 움직여 본다.

가끔 그냥 클린 마법으로 해결해버릴까 싶은 생각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 가게니까.

귀찮아 하면 안 되겠지.

그렇게 슥삭슥삭 거리고 있는데, 앞치마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전화가 온 건데, 발신인의 번호가 제법 길다.

해외 전화.

그리고 기억에 남아있는 번호라 상대가 누군지도 알겠다.

“···아직도 볼 일이 남았냐?”

히로 무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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