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0화 (10/153)

귀환자 식당 10화.

상쾌한 아침이다.

어쩐지 기분이 좋다.

새벽에 택배로 산지에서 갓 도착한 싱싱한 식자재들을 봐서 그런가.

귀환자 식당.

어쩌면 드디어 이 간판이 걸려서 기분이 좋을 걸지도 모르겠네.

이름이 조금 유치한 면이 없긴 하지만···.

“어, 식당 아저씨! 안녕하세요.”

마당에 나와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는데, 두 사람이 알은 채를 해온다.

사실 이것 때문에 일부러 잘 즐길 줄도 모르는 커피를 매일 아침이면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 시은아. 학교 가니?”

“네! 아- 언니, 빨리 좀 와!”

조금 뒤쪽에서 언니인 시연이 천천히 내려왔다.

두 사람의 걸음 속도가 달라서 그런가.

“안녕하세요.”

나를 보고선 다소곳하게 인사를 건네는 이시연.

내 조카라서가 아니라 정말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미모다.

물론 시은이도 그렇긴 하지만, 시은이는 아직 뭐랄까.

앳된 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응. 시연이도 좋은 아침. 출근하는구나?”

개업식 이후로 몇 번 마주치다 보니 이제 말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됐다.

어떻게 보면 한미희 통장님 덕분이기도 하고.

“네. 근데 사장님은 저녁 장사만 하시는데, 늘 일찍 준비하시네요.”

“응? 아아··· 뭐 일찍 일어나는 게 버릇이 돼서.”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머릿결이 살짝 젖어있다.

급하게 나온 건가?

“시연이는 늦잠 잔 모양인데?”

장난스럽게 말을 걸자, 살짝 얼굴을 붉힌다.

그게 뭐가 그리 창피한 일이라고.

사람이 살다 보면 늦잠도 좀 자고 그러는 거지.

“언니 어제 엄청 늦게 들어왔거든요. 회식이라나 뭐라나. 무슨 아르바이트생들까지 회식을 하고 그러나 몰라요.”

“회식?”

그래. 한국에는 그런 문화가 있었지.

그런데 그게 보통 아르바이트생들도 하고 그러는 건가?

나야 잘 모르겠다.

그런 자리에 참석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으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얼른 가자, 버스 놓칠라.”

“아저씨, 저 갈게요. 또 봬요!”

“그럼. 수고하세요.”

“응? 어어, 그래. 너희도···.”

처음에는 그저 이렇게 웃으며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자꾸 욕심이 생긴다.

더 오래 이야기하고 싶고, 저 아이들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저녁 식사를 하며 함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후우- 조바심 내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또, 확 정체를 드러내 버릴까?

하는 생각도 이따금 들곤 한다.

어쩌면 그냥 처음부터 정체를 숨기지 말았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미 지난 일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일까.

그때는 나도 생판 얼굴 모르는 조카들 앞에 갑자기 ‘내가 너희 당숙이다.’라고 나서는 것도 이상했다.

80이 넘은 나이인데 이 얼굴로 나타나 갑자기 당숙이라니.

오히려 지금보다 더 어색해졌을지도 모르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향이 부드러운 커피 한 잔을 마저 마시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얼음이 가득 채워진 아이스박스를 열자, 기다란 은빛 생선들이 패션쇼라도 하듯 아름다운 자체를 뽐낸다.

제주산 은갈치.

오늘 저녁 메뉴로 정한 건 갈치조림이다.

밥도둑인 건 물론이고, 안주로도 기가 막힌 메뉴.

새벽에 제주 바다에서 주낙으로 낚인 녀석들이라 그런지 온몸에 상처 하나 없이 은빛으로 빛난다.

[항상 감사합니다.]

선장님이 배 위에서 직접 적은 듯, 삐뚤삐뚤한 글씨의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선, 손질을 시작한다.

아니, 하려고 했다.

우우웅-.

앞치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몸을 떨기 시작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여보세요.”

-사장님. 저 안정민 과장입니다.

“네.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요?”

어차피 오후가 되면 찾아올 사람이 전화라니.

급한 일인가 싶었는데.

-점심시간에 찾아뵐까 합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하루가 멀다 하고의 수준도 아니고, 정말 매일같이 찾아오는 사람이 갑자기 이러니 어색하다.

-오늘은 긴히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아니,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이젠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두렵기까지 하다.

간간이 보이는 가벼운 행동이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려고 했던 건 안다.

제법 진중한 사람이라는 것도.

다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니 적응이 안 되는 것뿐.

“알겠습니다. 그럼 점심에 뵙도록 하죠.”

어차피 장사는 저녁만 하는 가게.

제주산 은갈치의 손질은 오후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그때까진 조금만 더 냉장고에서 넣어둬야겠다.

* * *

가게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다.

잘 관리된 잔디가 깔린 것까진 아니고, 그저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그런 흙바닥.

아마 이전 가게의 주인이 운영하던 식당 시절에는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은 느낌.

그래봐야 2~3대가 한계일 정도로 작은 마당이다.

나는 그 한구석에 작은 야외 테이블을 하나 뒀다.

딱히 야외에서 식사할 목적으로 둔 게 아니라, 그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지금처럼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쓸 요량으로.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가 정보원 게이트 방지 및 대책팀의 팀장 안정민입니다. 그간 본의 아니게 사장님을 속인 점 사죄드립니다.”

당연히 대강 눈치는 채고 있었다.

평범한 구청 복지과 과장이 국정원장이랑 통화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신분이 위장일 거라곤 생각 못했다.

사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고.

“위장 신분이었다는 겁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전 정말로 지금 마포구청의 사회복지과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파견 근무 형식인 거죠.”

내가 정말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는 건가? 보통 국정원 소속이던 요원이 구청 복지과로 파견을 가거나 하는 건가?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할지···. 저는 본래 게이트 관리국 소속이었습니다. 게이트 연구학과의 거의 마지막 졸업생이었죠.”

어쩌다 보니 안정민 과장의 인생 이야기가 시작됐다.

20년 전, 그나마 아직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멈춘 거라는 게이트 연구학자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던 시기.

안정민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 중이었다.

어려서부터 초자연 현상을 좋아했고, 실제로 그가 초등학교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게이트는 실존했으니까.

크면 반드시 게이트를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겠다고 다짐했다.

당시의 꽤 많은 아이의 꿈이 헌터나 게이트에 관련되곤 했으니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중학교를 입학할 즈음, 게이트가 사라졌다.

태평양 공해상에 나타난 초대형 게이트에 들어간 헌터들이 돌아오지 않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남아있던 각성자들의 힘이 점차 사라지면서 게이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점차 희미해져 가기 시작하고.

안정민 과장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고민했다.

사실상 무의미해진 게이트 연구학과의 마지막 세대.

안정민은 결국 자신이 어려서 원하던 게이트 연구를 위해 대학을 진학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갈 곳은 마땅히 없었다.

그나마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게이트 관리국에 입사했고, 얼마 뒤 게이트 관리국은 국정원의 작은 부서로 편제됐다.

“하지만 이미 관리할 게이트가 없었던 지라, 결국 관리국 직원들 대부분은 그만두거나 저처럼 각지의 지자체로 파견이란 명목하에 좌천됐습니다. 행정이라곤 쥐뿔도 모르던 사람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완전 애물단지 취급이었죠.”

안정민은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듯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별로 궁금하진 않았지만 참고 듣기로 했다.

“그러다가 아내를 만났습니다. 당시 저는 구청 소속의 말단 직원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잡일이나 하던 시기였는데···. 정식 공무원이었던 아내의 조언으로 시험을 준비했고, 굳어버린 머리를 다시 돌리는 데만 3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게 벌써 12년 전이다.

안정민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이제는 이름만 겨우 남은 국정원 게이트 방지 대책팀의 팀장이자.

또 하나의 신분인 마포구청 사회복지과의 사무관이 된 셈이다.

“그러게, 게이트 연구학과인지는 왜 들어가서 그 고생을 합니까.”

“···지금 그게 중요하십니까?”

억울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을 짓는데.

이건 그냥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서 던진 농담이고.

“그래서. 갑자기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한 가지 제안이 있어서입니다.”

제안이라.

최근 안정민 과장과 이야기를 나눴던 주된 주제는 재단 설립에 관한 것들.

아마 그것과 관련이 있나 싶었는데. 역시나다.

“재단 설립 목적을 ‘게이트 관련 피해자 지원’으로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그렇게 된다면 재단의 운영에 대한 관리를 저희 게이트 방지 대책팀에서 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있을지도 모른다?

확신도 없는.

이건 그저 개인적인 희망 사항에 가까운 것 아닌가.

거기다 문제는 또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시연이와 시은이에 대한 지원이지 대한민국 국민 전부 잘 살아보세가 아니다.

그저 곁다리로 비슷한 아이들이 있으면 좀 도와줄 수도 있고 정도.

“게이트 관련  피해자는 범위가 너무 방대한 것 같은데요.”

“그에 관한 지원 대상 선정은 전적으로 사장님의 의견에 따르도록 정관을 작성하면 가능합니다.”

흐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감이 잘 오질 않는다.

무엇보다 이제 이름만 남아있다는 게이트 방지 어쩌고 팀이 재단의 관리를 맡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지?

“···게이트가 다시 열릴지도 모릅니다.”

내 고민이 길어지는 듯싶어지자, 대뜸 던지는 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좀 더 들어보겠다는 듯 쳐다봤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리안 네필스’라는 헌터가 있었습니다.”

기억난다.

이곳에서야 30년 전이겠지만 나에게는 고작해야 4달 전의 이야기.

전 세계 유일무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리안을 모를 수가 없지.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조금 있었고.

“그 녀석이 또 무슨 말을 남겼습니까.”

예지 능력자.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맞진 않았다.

-미래는 현재의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 변할 수 있어.

리안 녀석이 늘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해 그냥 예지가 빗나가니까 하는 변명이라고 치부했지만.

안정민 과장은 아무래도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부류다.

그러니 더는 나타나지도 않는 게이트를 연구하겠다고 대학까지 진학한 거겠지.

“깨어진 8개의 구슬 조각이 합쳐지는 날 거대한 호수에서 빛의 기둥이 솟아나고, 구슬을 삼킨 자가 곧 기둥의 주인이 되리라. ···그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하아.”

그냥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도 되건만, 그 녀석은 마치 ‘예언자라면 자고로 수수께끼 하나 정도는 남겨야지.’라며 늘 쓸데없이 예언자 흉내를 내곤 했지.

“과장님, 그 자식 말 절반은 구랍니다.”

이런 나도 모르게 상스러운 말을 써버렸네.

“···네?”

“그 녀석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매번 그렇게 거창한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말하는 게 취미였어요. 다 속은 겁니다.”

“네? 아, 아니. 사장님. 잠시만요. 물론 그런 의견들도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근데 정말 우연치곤 이상하지 않습니까. 거대한 호수라는 건 아마도 태평양을 말했던 겁니다. 그리고 거대한 빛의 기둥이란 것도 역시 사장님과 동료분들이 게이트에서 빠져나올 당시의 현상을 말하는 걸 지칭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거다.

게이트가 처음 나타났을 당시에 각종 종교단체에서 들고나왔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성경에 나온 요한 계시록이 실제로 일어나는 거라며, 바다에서 열린 게이트에서 나오던 해양 몬스터를 증거랍시고 들이밀 정도였으니까.

한 마디로 그 상황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제 입맛대로 바뀔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저런 예언들이다.

“호수면 그냥 호수지, 왜 바다를 가져다 붙입니까.”

게다가 우리가 나눠 가진 코어의 조각은 모두 7개니까.

처음부터 틀린 예지의 뒷부분을 억지로 끼워 맞춰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러니 그 예언가 놀이에 빠진 녀석의 말대로 게이트가 다시 열릴 일은 없다.

그게 내 결론이다.

“사장님.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사실 모르겠습니다만···.”

해도 될지 안 될지 판단이 가지 않을 때는 하지 않는 게 좋은데.

연장자로서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저 심각한 표정을 보니 하지 말란다고 하지 않을 것 같진 않다.

“묻고 싶은 게 뭡니까. 혹시 예언이라고 믿는 말에 등장했던 구슬···. 그러니까, 코어에 관해 묻고 싶은 겁니까?”

히로의 말론 일본 게이트 관리국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이라고 모르고 있을 리는 없겠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 질문에 안정민 과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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