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9화.
내 물음이 조금 뜬금없었던 건가?
안정민 과장이 잠시 눈을 끔벅거리더니 역으로 다시 나에게 묻는다.
“혹시 조카들을 지원하실 생각이십니까?”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나.
내가 그런 표정으로 답을 하자.
“가능합니다. 마포구 사회복지과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저소득층 및 장애인 시설, 국가유공자와 한 부모 자녀들의 학비 지원은 물론이고···.”
“과장님.”
쓸데없는 잡소리가 길다.
내가 원하는 건 되느냐, 되지 않느냐. 그것뿐이다.
“그게, 사실은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째서요?”
사실상 소녀 가장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시연의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무슨 기준이 그따위지.
“일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서울 시내에 자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매가 현재 살고 있는 빌라는 낡긴 했지만, 소득환산액으로 계산하면 매달 120만 원 정도, 거기에 이시연 양의 경우 아르바이트로 년 2,500만 원 가량의 소득 신고가 되어 있거든요. 2인 가구이다 보니 국가에서 정한 중위소득 기준으로만 따지면 저소득층에 해당하진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 사람, 공무원이 맞긴 맞구나.
“저도 포함되면 3인 가구였을 텐데요?”
2인 가구와 3인 가구는 다르니까.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사장님의 존재였습니다.”
“저요?”
“···위난 실종 상태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워낙 경우가 특이해서 사망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는 건 말씀드렸었죠?”
이곳에 돌아와서 가장 처음 들은 말이 그거였지.
분명히 기억이 난다.
얼마나 황당했었는지도.
“잠깐만요. 설마 제 계좌에 있던 돈 때문에 그랬다는 건 아니죠?”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맞습니다. 사장님의 소유로 되어 있는 금액이 워낙에 큰데다 법적으로는 동거인 상태였기 때문에···.”
이게 말이 되나?
내가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
게이트 관리국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헌터 본인이 아니라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계좌.
그리고 정작 계좌의 주인은 실종 상태임에도 3인 가구로 처리되는 이 어이없는 행정 실태가.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그게 현행법상 어쩔 수 없는···.”
“잘못된 법도 법이라 이겁니까?”
울분이 터지지만, 지금 나랑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기획재정부나 행정부 장관도 아니고.
여기서 따져야 의미가 없다.
“그럼 차라리 집을 팔고 전세로 가거나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좀 더 삶이 여유롭지 않았을까?
“알아본 바로는 이시연 양도 교육 급여 수급 때문에 신청을 했었던 모양입니다. 당시에 저희 복지과 직원도 시연양에게 그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런데요?”
“할아버지와 함께 산 추억도 있고, 그···.”
말끝을 흐리는 안정민 과장.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채근했다.
“뭔데요? 자꾸 뜸 들이지 마시고···.”
“사장님 때문이었답니다.”
이번에도 나 때문이라고?
하지만 난 저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실종 상태인 사람이었는데?
“저요?”
“네. 이제 세상에 하나 남은 가족인데, 혹시라도 돌아올 수도 있다면서···. 이사가서 집을 못 찾으면 어쩌냐고···.”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린다.
누가 뒤통수라도 때린 것같은 기분으로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런 거야 알아보면 금방 찾을 수 있는걸···.”
“두 자매에게 사장님은 이미 80이 훌쩍 넘은 노인이잖습니까. 못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겠죠.”
도대체 얼마나 올바른 심성을 가져야 거기까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로선 도무지 상상이 힘들다.
“이거 참, 저도 부하직원에게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사장님, 정말 착한 조카들을 두셨어요.”
“···네. 정말 그렇네요.”
얼굴도 모르는 날 기다려줬다니.
이게 뭐라고, 왜 이리 서글퍼지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마음은 슬픈데도, 어째선지 입가에는 자꾸만 미소가 그려진다.
* * *
이왕 시작하는 거.
화끈하게 하자 싶었다.
“네? 어, 얼마요?”
“깔끔하게 절반 뚝 떼서 넣겠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키다리 아저씨처럼 뒤에서 조용히 지원할까 생각했었다.
뭐, 바지사장처럼 대리인 하나를 내세우면 될 일이니까.
그리고 그 편이 이것저것 잴 것 없이 간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생각을 바꿨다.
임의 위임식 투자라고 했었나?
비록 내 동의도 없이 멋대로 가져다가 투자를 했지만, 상당한 수익을 올렸던 게이트 관리국의 시스템.
비록 내 돈으로 투자를 해서 벌어들였다곤 하지만 무려 20배가 넘는 수익을 냈다.
그러니 그 부분에서는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고맙지.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돈은 모두 국가로 귀속되었겠지.
그러다가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흘러왔다.
“정말 재단을 만드실 생각이세요? 그것도 2천억이나 들여서요?”
“네. 어차피 2천억이나 4천억이나 죽기 전에 다 못 쓰는 건 똑같잖아요. 좋은 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왜 다 못씁니까.’라고 중얼거리는 안정민 과장.
그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조금 당황한 모양이지만 어차피 며칠 전 이야기 했던 것과 큰 골자는 같다.
이시연과 이시은을 지원하는 것.
이 재단의 주요 타겟(?)은 두 사람이다.
다만, 정말 이왕 하는 김에.
다른 사람들도 조금만 도와줄까 하다가 결국 다다른 게 바로 재단이다.
1차 목적은 내 조카들을 알게 모르게 돕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아이들과 비슷한 아이들을 찾아서 지원하는 거다.
나와 같은 경우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
굳이 최후의 게이트에 들어간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대격변이 있었던 이후에 세상은 한참이나 혼란스러웠으니까.
엄청난 수의 고아들이나 실종 아동이 나타났었다.
분명히 있을 거다.
비슷한 사정을 가진 채,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하지만 사장님. 재단 운영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까딱 잘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돼버릴 수도 있어요. 처음 설립 자금이야 사장님이 출연한다고 하셔도, 이후에도 재단이 계속 운영되기 위해서는 분명 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상관없습니다.”
“···네? 상관없다뇨.”
“밑 빠진 독에 물 부어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날 쳐다보는 안정민 과장의 눈에 힘이 빠졌다.
지금 속으로 날 욕하고 있겠지?
하지만 정말 상관없다.
본래도 돈에 욕심이 그다지 없긴 했지만 최근에는 더 심해졌다고나 할까.
너무 큰돈이 갑자기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설마 제가 죽기 전에 2천억이 전부 쓰이진 않을 것 아닙니까.”
아직은 시연이가 무슨 학교를 다니는 지도 모르고.
시은이가 무슨 과를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지도 자세히 모르지만.
“애들 학교 보내는 것쯤이야 삼촌으로서 해줘도 되죠. 아니, 이 정도는 해줘야죠.”
“···사장님. 사장님은 삼촌 아니고, 오촌 당숙이십니다.”
“그건 너무 정 없어 보이잖습니까.”
술집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도 삼촌 소리를 하는 게 한국 사람들인데 말이지.
* * *
정관을 작성하고, 주무관청을 찾는 게 처음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정관이라는 건 그러니까, 앞으로 사장님이 세운 재단에서 하고자 하는 설립 목적이나 재단의 재산 운용 등에 관한 기본 원칙 같은 것들을 정리한 겁니다.”
“음···.”
안정민 과장의 말대로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해야 할 게 생각보다 많았지만,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그건 과장님께 일임하겠습니다.”
역시나 하는 표정.
작게 한숨을 내쉰 안정민 과장은 이번에는 다른 문제를 꺼냈다.
“이번엔 주무관청을 정하셔야 합니다.”
“주무관청이라면, 재단을 관리하는 기관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무턱대고 안정민 과장에게 맡기는 건 아니다.
나도 나름대로 재단 법인의 설립에 대해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긴 했었다.
물론 제대로 이해하는 건 적어서, 안정민 과장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네, 알고 계셨네요?”
기특하다는 눈길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젊어 보이긴 해도 나이는 훨씬 더 많은···. 그만두자.
“네. 대강 알아보긴 했는데, 근데 그걸 제가 정할 수도 있는 겁니까?”
“물론 재단의 성격에 따라 정해진 주무관청이 다릅니다. 선택을 하는 건 아니라고 봐야죠.”
“근데 방금 저보고 정하라고 하신 건 무슨 소립니까?”
평소에는 잘 쓰지 않던 안경까지 쓰고 온 안정민 과장이 신청 서류를 들어 보인다.
“원래 일반적인 방법으론 정할 수 없지만, 이번 경우는 특별해서요.”
“장학 재단이 그렇게 특별한 겁니까? 생각보다 많던데요.”
“사장님이 만들고 싶은 게 정확하게 장학 재단인 겁니까?”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를 못 들어서 저런 말을 할 리는 없고.
무슨 뜻인가 잠시 고민을 해보니 답이 나온다.
“그렇군요. 제가 원하는 건, 시연이나 시은이 같은 환경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거지. 그렇다고 그게 굳이 장학 재단이 될 필요는 없겠네요.”
“맞습니다. 단순히 장학 재단으로 등록하신다면 교육부가 주무관청이 되겠죠. 그리고 만약 생활환경의 개선을 원하시는 거라면 보건복지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리 잡는 걸 돕겠다고 하시면 고용노동부가 주무관청이 될 수도 있겠죠. 한 마디로 재단의 성격을 어디로 두실지에 따라 달라지는 셈입니다. ···사장님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별것 아닌 문제일 수도 있지만, 주무관청의 성향에 따라 재단이 하는 일에 다양한 제약이 걸릴 수도 있다니 신중해야 한다.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보죠.”
내 대답이 조금 아쉬웠던가.
안정민 과장은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 * *
“재단을 설립하신다고?”
“네. 처음엔 단순히 조카들만 챙기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드신 모양인지 재단을 만드신다고 합니다.”
장민국 국정원장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수염도 없지만.
“뭐, 재산이야 여느 재벌 못지않으시겠지만. 그래서, 무슨 재단을 만드시는 건지는 정하셨고? 조카들 지원이면··· 장학재단인가?”
짧게 드는 생각으로는 가장 타당성이 높아 보이는 방향이다.
“장학 재단이나 복지재단이 될 것 같긴 한데, 솔직히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안정민 과장의 말에 장민국의 고개가 갸웃했다.
“신 박사님이 그러셨잖습니까. 그게 다시 세상으로 나오면··· 게이트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고요.”
“그랬지. 하지만 7명이 나누어 가졌다고 했고, 그분의 성격으로 봐서 그게 다시 세상에 나올 일은 없을···.”
안정민을 보고 장민국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물었다.
그가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건 분명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서, 네가 걱정하고 있는 건 뭔데?”
“원장님. 어쩌면 코어는 이미 세상으로 나온 걸지도 모릅니다. 7명이 게이트를 나왔을 때부터 말입니다.”
“···그게 나눠져 있다고 해도?”
“저도 이게 제발 제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우리 부서가 아직 존재하는 것도 그걸 위한 게 아니었습니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거···.”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그냥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해.”
이제 안정민 과장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꺼낼 때가 됐다.
“저는 이진 선생님이 설립하시는 재단의 담당 주무관청이 우리 부서가 됐으면 합니다.”
“···무슨 소리냐. 게이트 대책팀은 이제 그저 국정원 소속의 작은 부서일 뿐이야. 뜬금없이 주무관청이 되겠다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 게이트나 헌터에 관련된 건 모두 우리 부서에서 담당하잖습니까. ···이젠 거의 없긴 하지만.”
장민국이 다시 턱을 쓰다듬었다.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려면 한 가지.
“너 이거 추진했다가 나중에라도 알려지면 여론이 상당히 시끄러울 거다. 지금 당장이야 내가 손을 써보겠지만··· 감당할 수 있겠어?”
“맡겨주시면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이후에 벌어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라도, 다른 주무관청에 이진이 만든 재단의 관리 권한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게 안정민 과장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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