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7화.
컴퓨터라는 게 그냥 인터넷이나 하고, 게임만 좀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거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네요.”
“요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설마, 계산도 일일이 다 하려고 하셨던 거예요?”
하하.
이거 참, 머쓱해서는 괜스레 뒷머리를 정돈해본다.
빌지에 주문한 메뉴를 적고, 나갈 때 그 금액에 맞춰서 계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니.
“자, 여기 보세요. 여기를 이렇게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면 그 테이블에서 뭘 주문했는지 볼 수 있어요. 또, 손님이 추가로 주문을 하면 이렇게···. 추가 버튼만 눌러주시면 돼요. 나갈 때도 당연히 여기 계산만 누르면 알아서 금액이 나옵니다. 카드로 할 때에는 한 번에 결제까지 됩니다. 참 쉽죠?”
설명을 다 해준 뿌듯함이 얼굴에서 보인다.
어쩐지 곱슬머리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네.
“···한 번 봐선 잘 모르겠네요.”
아, 컴퓨터랑 좀 더 친하게 지낼 걸 그랬나 보다.
나름 스마트폰 좀 사용한다며 신세대라 자부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진다.
“음, 혹시 가게에 젊은 친구는 없나요? 아르바이트생이나···. 아, 물론 사장님도 젊으시지만 아무래도 직접 주방을 담당하시면 계산이나 서빙을 하는 친구가 주로 다룰 것 같아서요.”
내 불안한 눈빛을 읽은 모양.
“···직원은 아직 없어서요.”
“···그렇습니까.”
서로의 눈이 다시 어색하게 마주치고.
“···여길 보시면.”
설명이 반복된다.
좀 더 집중을 해보자.
* * *
음.
그러니까, 테이블 번호를 먼저 정한다.
달랑 네 개뿐인 테이블이니 그것까진 쉽다.
주문받으면 와서 테이블 번호를 누른 뒤, 추가할 메뉴를 선택한다.
주류나 음료의 경우 자동으로 합산이 되니 어렵지 않았다.
몇 번의 예행연습을 해보니 조금씩 익숙해진다.
뭐,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네.
후우-. 으차차차차!
포스기 업체에서 철수한 지 두 시간이 지나고서야 일어나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데.
익숙한 사람이 가게로 들어선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어김없이 찾아온 안정민 과장.
그리고 출입문 옆에 놓인 기기를 보면서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 포스기 들여놓으셨네요. 잘하셨습니다. 요즘 이런 게 없으면 가게 운영하기 힘들어요.”
“네. 인터넷 카페에서 보니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들이긴 했는데 이게 생각 보다 다루는 게 까다롭네요.”
“그냥 이참에 똘똘한 아르바이트 하나 뽑으시지 그래요? ···어차피 돈도 많으시면서.”
뭐지?
마지막 말에서 조금 질투와 시기가 느껴지는 건···.
에이- 기분 탓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그럴까 봐요. 구인 사이트에 등록하려면 사업자 등록증 같은 게 필요하다던···.”
저 서류 가방은 아무래도 아티팩트가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마침 서류가 나와서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여기 받으세요. 이건 원본이고, 이건 사본인데 액자에 넣어서 가게 한 쪽에 걸어두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그래야 하는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사업자 등록증.
처음 보는 형식의 서류였지만, 복잡해 보이진 않는다.
간이과세자라는 글자와 열 자리의 숫자로 적힌 사업자 번호.
그리고.
상호 : 귀환자 식당
성명 : 이진
“상호는 일단 임의로 생각해서 신청했습니다. 아, 물론 마음에 안 드시면 나중에 변경하실 수도 있어요.”
“···좋네요.”
이름에서 너무 티가 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생각해보니 굳이 숨길 일인가?
내가 뭐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하밀 녀석이 7명의 이름을 죄다 공개했다지만, 그걸 일일이 외우고 다닐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런 뉴스조차도 그저 ‘아주 오래전에 꽤 멋진 일을 했던 사람들’ 정도로 기억할 텐데.
“귀환자 식당이라. 전 마음에 듭니다.”
나는 귀환자니까.
그리고 그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고, 감추고 싶은 과거는 더더욱 아니다.
* * *
가게 오픈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달했다.
“사장님. 다 됐어요. 개폐식 스위치도 설치했고, 조명도 모두 교체 끝났습니다.”
마음에 든다.
이전에도 가게의 전면부 전체가 개폐식이긴 했는데, 수동인데다 녹이 슬어 여닫을 때마다 쇳소리가 간혹 들리는 게 너무 거슬렸는데.
위이잉-.
허, 확실히 돈을 들이니 편하다.
스위치만 누르면 알아서 열고 닫히니.
약간은 어두운 듯했던 조명도 무려 5단계로 조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어이구,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이번 공사를 저희 업체에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영훈이 약간은 과장되게 인사를 하는 사이.
차가운 커피를 석 잔을 준비해왔다.
요즘은 이걸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한다고?
정말 별걸 다 줄이는 세상이네.
“드디어! 이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장님!”
인테리어 수리를 시작한 지 삼 일째.
이제는 얼굴이 익숙해진 업체 직원들도 이 커피 맛에 중독된 듯, 환하게 웃음을 짓는다.
“후우- 날씨가 슬슬 본격적으로 더워지네요.”
“정말, 이제 진짜 여름이네요.”
벌써 7월 중순이 넘어간다.
내가 돌아온 지도 10일이 훌쩍 넘었다는 이야기다.
“참, 사장님. 개업 날짜는 이제 정하셨어요?”
사실 준비하던 것 중에서는 이번 인테리어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니 드디어 길고 긴 준비가 끝난 셈이다.
“네. 모레로 정했습니다.”
“모레면···. 어? 금요일이네요?”
토요일에 할까 생각을 했는데, 어차피 번화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
그저 지금까지 도와준 몇몇 사람만 초대해서 간단하게 알릴 참이다.
그래서 주말은 피했다.
모두 주말은 쉬고 싶어 하니까.
“네. 저녁에 와서 저녁 식사나 한 끼하고 가시죠.”
“물론이죠! 당연히 와봐야죠. 이 가게 절반은 저희가 수리했잖습니까.”
절반씩이나?
하긴, 그 사이에 알게 모르게 수리한 것들이 제법 되긴 한다.
그래도 설마 그 정도까지는···.
“···그렇죠.”
저렇게 뿌듯한 얼굴로 내가 내려준 커피를 세상 어떤 꿀물보다 달게 들이키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야 없지.
“그나저나,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가게에 메뉴는 따로 없는 겁니까?”
사실 메뉴를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정한 게 바로 ‘주인장 마음대로’다.
아주 예전에 술집을 가면 그런 이름의 메뉴들이 간간이 있곤 했었는데.
“네, 뭐···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어서요. 하하하.”
심히 좋게 이야기하면 이것저것 다 잘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다는 말과 같다.
그래도 뭐?
내가 어차피 맛집으로 유명해져서 돈을 벌 목적도 아니고.
그저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
물론 그를 위해 최소한의 실력은 갖춰야겠지만.
“그래도 고사는 지내실 거죠?”
이런 걸 보면 나도 그렇지만, 강영훈 사장도 옛날 사람이긴 한 것 같다.
고사라니, 누가 요즘 그런 걸 지낸다고.
“···아무래도 지내는 게 좋겠죠?”
“그럼요. 안 했다가 괜히 나중에 찜찜해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딱히 후회 같은 걸 하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왕 하는 거, 할 수 있는 건 하는 게 좋겠지.
떡과 술.
과일 몇 가지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까.
* * *
완전 잘못 생각했다.
이 개업 고사라는 거, 절대 간단하지가 않다.
떡을 준비하는 건 물론이고, 과일도 정해진 종류를 구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냥 밥이랑 술, 떡만 올리면 되는 줄 알았다고요?”
비웃는 건 아닌데.
뭔가? 저 오묘한 표정은.
“사장님은 저보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르냐는 뒷말이 들려오는 기분인데.
“제일 중요한 게 사실 이건데. 역시나 준비 안 하셨을까 봐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돼지머리.
오지랖 넓어 보이던 아주머니에게 빌린 상 하나에 떡과 술, 밥.
그리고 안정민 과장이 가져온 돼지머리를 올리자.
“얼추 됐네요. 얼른 하나만 더 준비하시면 되겠네요.”
“알아요. 준비는 해뒀으니까···.”
시간을 슬쩍 보니 어느새 5시가 넘어간다.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고, 인테리어 업체에서 강영훈 사장과 직원들이 오기로 한 시간이 다가온다.
따다닥-.
불을 켜고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손질해둔 것들 몇 가지를 올리자 슬레이트 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간단하지만 실패 없는 전.
두부 부침과 동그랑땡, 호박전.
그리고 미리 무쳐둔 나물 몇 가지를 접시에 나눠 담았다.
“그래도 급하게 준비했는데 이 정도면 훌륭하네요.”
그래. 안정민의 말처럼 그리 나쁘진 않다.
구색은 다 갖췄으니까.
“사장님. 계세요?!”
고사상을 잠시 정돈하고 있는데, 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화환 배달 왔는데요. 여기가 귀환자 식당 맞죠? 여기 서명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화환?
그런 걸 보낼 사람이 있었던가?
축 개업.
마포구청장 김주일.
구청장이 이런 것도 신경을 써주나 싶기도 하다가.
뭐, 내가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네.
스슥-.
간단하게 서명을 했다.
이번엔 한문이 아니라 간단하게 한글로.
“계십니까? 화환 도착했는데, 어디로 놔 드리면 될까요?”
“······.”
뭐냐고 이거.
그래,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국무총리 오주석.
국정원장 장민국.
국회의원 박주원.
줄줄이 늘어선 화환을 누가 보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 개업인 줄 알 판이다.
그나마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저, 사장님. 꽃집인데요. 혹시··· 이, 이분이랑 아는 사이세요?”
남자 둘이 들기도 버거워 보일 정도로 커다란 화환 하나.
이렇게 크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구나 싶은 화환에 달린 화려한 리본.
축) 개업을 축하드립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민재영.
연타로 두들겨 맞다가 마지막에 크리티컬이 터진 느낌이다.
* * *
“어? 야, 여기 드디어 뭐 하나 본데?”
“그러네. 전에 보니까 어떤 아저씨 혼자 멍 때리고 있던데. 전처럼 식당 하려나?”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친구의 말에 두 사람의 대화가 자연스레 꽤 오래전부터 비어있던 집으로 이어졌다.
예전에 가족들이 식당을 했었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는 곳.
딱히 유명하거나 맛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에 가까워서 간혹 언니와 함께 찾았던 기억은 있다.
그 건물에 다시 사람이 들어왔다.
꽤 오래 비어있길래 허물고 다시 지으려나 싶었는데.
“와. 근데 이게 뭐야?”
“뭐긴, 화환들이네. 개업식 하나 보지 뭐.”
“아니. 그게 아니라, 보낸 사람들 이름이···. 세상에 대통령도 있는데?”
“···대통령이 왜?”
“아는 사람인가 보지.”
“말도 안 돼. 무슨 대통령이 식당 개업한다고 화환을 보내냐. 이거 막 그런 거 아냐?”
“그런 거?”
“왜, 괜히 허세부리고 싶은 사람들이 자기 돈 내고 유명한 사람들 이름 적어서 깔아두고 그런 거.”
“글쎄. 미치지 않고서야 대통령을 사칭한다고? ···당장 잡혀갈걸?”
“···그런가?”
이시은은 김예령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가게 안을 흘끔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어? 예령아, 저기 너희 엄마도 있는데?”
“그래? 뭐, 집 앞이니까. 거기다 우리 엄마가 오지랖이 좀 넓냐. 동네에 무슨 일 생기면 안 끼는 데가 없잖냐.”
왠지 모르게 납득이 가버린다.
“하긴···.”
몇몇 사람들이 가게 안에서 절을 하는 걸 보니 고사라도 지내는 모양.
“참나, 요즘 세상에도 고사 같은 걸 지내는 사람이 있네.”
그냥 별 뜻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내가 좀 옛날 사람이라서.”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손에 소주 상자를 들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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