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6화.
다행히 병원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평일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그런 모양.
“이진 환자분.”
잠깐 기다리고 있자, 곧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보건증 발급 때문에 오셨다고 했죠? 자, 이거요. 화장실 가셔서 항문에···.”
“알고 있습니다.”
“네. 그럼 확실히 2.5센티까지는 넣어주세요.”
민망해서 그 말을 듣기 싫었던 건데, 결국 끝까지 말을 하고야 마는 간호사.
그게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야속하다.
잠깐의 수치심과 민망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면봉을 작은 통에 넣고 간호사에게 돌려줬다.
“검사는 대략 5일 정도 소요됩니다. 검사 완료되면 발급은 인터넷으로도 받으실 수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컴퓨터가 한 대 있어야겠다.
이전에도 딱히 사용을 즐겨하진 않았지만, 가게를 시작하려니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컴퓨터가 사용되는 걸 느끼고 있다.
당장 위생교육 필증이나 보건증 발급부터 각종 민원 신청을 하는 것도 대부분 컴퓨터로 하는 데다.
생각해보니 가게를 운영하면서 모든 걸 수기로 계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거 참.
컴퓨터라곤 써본 적이 별로 없어서, 대체 뭘 기준으로 사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데.
컴퓨터는 가격이 얼마나 하려나.
하고 생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그러고 보니, 나 돈은 얼마나 있지?
가게에 물건을 채운 것도, 옷을 산 것도.
모두 안정민 과장이 우선 쓰라고 준 카드로 결제를 하긴 했는데.
당연히 그 돈을 날름 받아먹을 생각은 없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도 나름 최후의 게이트의 공략대 참가 신청을 할 정도는 됐었으니, 돈은 제법 있었다.
딱히 신경을 쓴 적은 없지만, 적어도 물건을 구매하면서 통장의 잔액을 걱정한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30년이 지나지 않았나.
그때와 지금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은 확인해둘 필요가 있겠다.
* * *
“오셨어요? 심심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었는데···. 괜찮죠?”
작동법은 언제 익힌 건지.
하긴, 커피 머신 다루는 거야 곁눈질로 몇 번 봤으면 금방이지.
나름 컴퓨터로 일하는 공무원인데.
“괜찮습니다. 그보다 별일 없었습니까?”
“뭐, 별일이라고 할 건 아니지만 아까 어떤 여자분이 찾아오셨었는데요. 근처 주민이시라고.”
아. 누군지 알겠다.
오지랖이 상당해 보이던 그 아주머니였을 것 같다.
“누군지 알겠네요. 그보다 과장님.”
“네, 네?”
갑자기 왜 긴장을 하는 건지.
“혹시 제가 가지고 있던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됐나요?”
설마하니, 그것도 조카들에게 넘어갔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도 들긴 했지만 어쩐지 그건 아닐 것 같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가지고 계시던 것들 말씀이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 온 이유는 그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언제나처럼 가방에서 꺼내 내미는 서류.
잠시 쳐다보긴 했지만 이런 건 역시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나는 추가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는 눈으로 안정민을 쳐다봤다.
“이번엔 확인하는데 애를 좀 먹었습니다. 사장님 소유의 계좌가 이전 게이트 관리국의 보증을 받는 계좌였던지라 본인을 제외하고선 접근이 불가능하더군요.”
그랬지.
대부분의 헌터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았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재산에 비해 헌터들은 사회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아서 그걸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헌터들의 계좌는 대부분 게이트 관리국과 연동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내 경우에도.
“집은 원래 어머니 소유였다가 사장님이 따로 신청하지 않으셔서 친족에게 명의 이전되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헌터들의 계좌는 그렇지가 않더군요. 계약 내용에 따르면 게이트 관리국의 보증을 받는 계좌의 경우엔 따로 상속인을 지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약 헌터가 사망, 혹은 실종될 경우 국가에 귀속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어이가 없긴 하지만, 공중에 붕 떠버린 눈먼 돈이니 국가에 귀속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가 싶어 넘겼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안정민 과장에게 따질 이야기도 아니고.
“제가 돌아왔으니 다시 찾을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금액이 조금···.”
이제는 안다.
저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짓는 건 안정민 과장의 특징이라는 거.
“금액이 왜요?”
물어보면서도 조금 걱정이 된다.
30년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동시에 세계 경제의 기반이 뒤집혔었다.
솔직한 말로 화폐 개혁이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다.
30년 전에는 큰돈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어떨지.
“···그게 너무 불어났습니다.”
“네?”
아까 옷을 결제했던 게 얼마더라.
바지와 셔츠 몇 장을 구매하면서 결제한 금액이 80만 원 정도였다.
백화점에서 산 것도 아니고, 그저 번화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작은 옷가게.
그 정도라면 내가 살던 시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무슨 주식이나 투자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런 쪽에서야 그야말로 일자무식이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었으니.
그런데 돈이 불어나?
갑자기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게이트 관리국이 사라진 지 이제 15년이 지났습니다. 게이트가 나오지 않게 된 이후로도 어떻게든 15년은 기관을 유지했던 셈이죠.”
15년이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일본에는 아직도 관리국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봤을 때, 한국은 제법 빨리 없앤 편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렇군요. 근데, 그거랑 제 돈이 불어난 거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사장님 계좌가 국가에 귀속됐다고 조금 전에 말씀드렸었죠?”
“그랬었죠.”
찾을 수 있다고도 했고.
“문제는 게이트 관리국이 남아있던 15년 전까지는 국가가 아니라 계좌 관리 자체를 게이트 관리국에서 했었다는 겁니다.”
작은 단어의 선택 하나가 주는 약간의 위화감.
계좌에 있는 ‘돈’을 귀속시킨 것이 아니라, ‘계좌’를 관리했다.
그 말은 즉.
“나라의 지원이 급속도로 줄었지만, 관리국의 유지에는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관리국에서 선택했던 건, 투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꽤 성공했습니다.”
“혹시 그 투자금이라는 게···.”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예상된다.
나도 이런 걸 보면 완전 무식쟁이는 아닌 모양이야.
“네. 게이트 관리국에서 관리하던 헌터분들의 돈이었습니다. 관리국은 그 돈으로 투자를 했고, 수익금 중 일부를 ‘보호비’ 명목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국가에서 대부분 지원금을 중단한 이후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었죠.”
허허.
이건 뭐, 조폭도 아니고.
“보호비라니.”
“정식 명칭은 게이트 관리국의 ‘임의 위임식 이익 창출 투자 방안’이라고 합니다.”
임의 위임이라.
이건 그냥 말장난 아닌가?
“아실지 모르겠지만, 게이트가 사라진 뒤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급성장을 이룬 업계가 있다면 바로 매니지먼트와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엔터테인먼트면··· 연예인들 있는 회사 아닌가요?”
에너지도, 신소재도 아니고.
뜬금없이 매니지먼트와 엔터테인먼트라니.
“각성자들이 힘을 잃어가긴 했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반면 ‘각성자’라서 제한이 있었던 모든 분야에서 제한이 풀리는 건 금방이었습니다.”
아아-.
설명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몸매 하나는 끝내주던 각성자들.
일자리를 잃은 그들이 과연 어디로 흘러갔을지.
각종 스포츠 업계와 연예계가 바로 그들의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게이트 관리국은 전前 각성자들을 모아 만들어지는 매니지먼트와 엔터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겠군요.”
“···네, 제가 조금 전. 꽤 성공적이었다고 했지만, 그거론 설명이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요.”
나는 그냥 내가 가진 돈이 얼마나 되나, 그게 궁금해서 물었던 질문인데.
생각보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너무 커졌다.
“게이트 관리국이 사라지면서 사장님의 계좌는 국가로 귀속되긴 했었지만 돌아오셨으니 응당 돌려받으셔야 마땅하겠죠. 그리고···.”
또다시 서류를 꺼내 드는데, 이번엔 상당히 두껍다.
“이게 그 30년간 사장님의 계좌에 있던 금액이 ‘위임 투자’되었던 내역들입니다.”
“···두껍네요.”
솔직히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숫자와 백분률이 가득한 서류를 꼼꼼히 읽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마지막 장을 펼쳤다.
보통 이런 건 마지막에 잔액이 쓰여있지?
“···이게 얼마죠?”
나도 나름 유명하긴 했다.
워낙에 언론이나 매체를 피해 다녀서 당시에도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낭중지추라고 하지 않는가.
내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상당히 잘나갔다.
그러니 당연한 말로 돈도 제법 벌었다.
재벌 수준까진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돈 때문에 걱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는 됐었지.
그래도 이건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귀속되었던 금액을 돌려받으면서 15년 사이의 금리도 함께 적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받으실 금액은···.”
혹시나 싶었던 건지.
다시 그 금액을 보고 싶었던 건지.
안정민은 내 손에 들린 서류의 마지막 장, 가장 하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선.
“총 4천 57억 3천···.”
“그 뒤는 그냥 생략하시죠.”
“···그럴까요?”
405,738,175,000원.
서류의 가장 아래 적힌 숫자를 보면서.
나는 조금 현실 감각을 잃어버렸다.
이걸 어떻게 할까.
하지만 크게 고민할 필요가 있나?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물론 아닌 경우도 많겠지만.
“그래서 아무래도 약속드렸던 연금 부분에서 태클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연금이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매달 나온다는 연금.
지구를 지킨 영웅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했었나?
그런데 아무래도 그 부분에 대해 누군가가 딴지를 걸어오는 모양인데.
“어, 음···.”
와, 근데 지금 여기서 매달 나오기로 한 몇백만 원의 연금을 기어코 받아내야 하는 걸까?
당장 통장에 삼 대는 먹고 놀아도 될 돈이 들어있는데?
“무, 물론. 사장님께서 해주신 일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감사해야 마땅한 일이죠.”
“사실 안 받아도 상관은 없어요.”
“그, 그렇습니까?”
조금 얼굴이 펴지는 안정민 과장.
그래. 그깟 연금.
안 받아도 그만이다.
하지만, 말이지.
못 주겠다고 하면 더 받고 싶어진단 말이야?
누가 못 주겠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돈은 애초에 내 돈이고, 연금은 연금이지.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월급 안 주고 부려 먹을 수는 없잖아.
“그런데요. 과장님.”
적어도 내가 한 일에 대한 대가라면 받아낼 거다.
그게 비록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푼 돈이라고 해도 말이지.
“···네?”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것이 바로 인지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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