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5화.
강영훈이 돌아간 뒤, 가게를 정리했다.
이미 식기세척기를 들여놓긴 했지만, 겨우 한 사람 몫의 식사량.
저 커다란 기계를 돌리는 건 에너지 낭비지.
그릇을 씻어 식기 건조대에 올려두고 2층으로 향했다.
오후에는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옷을 갈아입어 한다.
안정민 과장이 가장 먼저 해달라고 한 것.
그건 위생교육과 보건증 발급이다.
위생교육이야 스마트폰으로 보면 그만이었지만, 보건증은 직접 가서 검사받아야 한다.
세균 배양을 통한 검사라 무려 5일 가까이 소요된다고 해 오늘은 신청하러 갈 생각이다.
아마 돌아온 뒤 혼자 하는 첫 외출인가 싶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이상하게 뭔가 어색하다.
돌아오기 전에도 게이트에서 살다시피 하는 터라 자주 찾진 않았었다.
이름만 집이지 한 달에 한 번을 찾아올 정도는 됐던가?
그래도 내가 살던 곳 근처이니 익숙해야 하는데.
동네 전체가 너무 변해버렸다.
30년이라는 세월이 새삼 실감이 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길은 그대로라는 정도일까?
시장은 한 번 다녀와 조금 익숙해졌고, 번화가로 향하는 건 그 반대쪽이다.
보건증 발급을 위해 미리 알아둔 병원이 있는 방향과 같은.
그곳으로 가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거다.
40대에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의 옷을 빌려 입었으니 어쩔 수 없나.
사실 나이야 내가 더 많으니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외모 덕에 늘 젊게 살아왔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이제 공식적으로도 젊어진 상황.
막상 나가려니 영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는지, 전혀 감이 안 온다.
그간 마주친 사람이래야 안정민이나 강영훈.
모두 40대 아저씨들 뿐이니.
흐음.
어차피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대강 입고 갈까 싶던 찰나.
-사장님, 계세요? 저 왔습니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아직 오픈은커녕 개업도 하기 전인 가게에 저렇게 당당하게 들어오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오셨어요?”
어쩌다 보니 이젠 나도 익숙해져 버렸네.
“안녕하세요. 어? 근데 어디 나가세요?”
어떻게 알았나 하고 생각해보니.
안정민이 외출할 때 입으라고 빌려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나마 몇 벌 없는 옷장에서 가장 멀쩡해 보이는 걸 고른 결과다.
“네. 보건증 발급 신청을 할까 하고요. 지금 막 병원으로 가려는 참입니다.”
“아아···.”
어딘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그저 커피가 그리워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어딘가 달랐다.
그냥 내 느낌이 그런 걸 수도 있지만.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예상이 맞았던 모양인지.
안정민의 표정이 조금 오묘하게 일그러진다.
이건 뭐,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빠 보이지도 않는 그런 표정.
“사장님. 그게 조금···. 우려를 했던 일이 결국 외국에서 터져버렸습니다.”
“터지다뇨?”
어디 동네의 도시가스가 터졌다는 말은 아닐 테고.
“혹시 하밀 로넌이라고 아십니까?”
“하밀이요?”
모를 리가 있나.
3개월 동안 게이트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료 중 하나인데.
아휴-.
터졌다는 소식과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놈의 자식이 결국 사고를 쳤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딱히 취미는 없어서 TV를 들여놓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한 대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은 알아야지.
“이걸 좀 보시죠.”
안정민 과장이 내미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사진 하나가 떠올라 있고.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인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무테안경을 걸친 채 다리를 꼬고 앉은 녀석.
전체적으로 봤을 땐 무척이나 스마트한 인상을 주는, 마치 월스트리트에서 출퇴근하는 주식 전문가같이 보이는 모습이다.
“···하밀 이 자식.”
방송 출연까지 할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하밀 로넌이라고, 미국에서 아예 대놓고 지구를 구한 영웅이라고 홍보 중인 사람입니다. 그가 나온 방송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있는 토크쇼라 온라인에서 벌써 난리가 났습니다.”
“한국에서 왜 난리가 나요?”
설마.
아닐 거라고 믿는다.
“···그가 7명의 이름을 모두 언급해버렸습니다. 당연히 사장님 성함도요.”
이 빌어먹을 자식아!
* * *
이미 터져버린 일.
고민하고 있는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뭐 애초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사진은 없다면서요. 그럼 됐죠. 뭐.”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네티즌들의 힘을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경찰도 포기한 사건을 인터넷만 이용해 범인을 특정하고 찾아낼 정도의 능력자들이 우글거리는 곳.
그게 바로 인터넷 세상이다.
“그보다 이런 옷은 어떻습니까?”
옷 가게를 둘러보다가 문득 괜찮아 보이는 옷 하나를 들고 물었다.
안정민은 잠시 고개를 뒤로 빼서 쳐다보더니 슬쩍 고갤 끄덕인다.
“···괜찮아 보입니다.”
“음, 그렇다면 이건 아니고.”
안정민의 마음에 들었다? 그럼 패스다.
“어? 제가 볼 땐 괜찮은 것 같은데 왜요?”
당신이 봐서 괜찮다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할 수도 없지.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손님, 제가 좀 봐 드릴까요?”
난항을 겪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행이다 싶어서 등을 돌렸더니.
“···이시연?”
“네? 제 이름을··· 아, 맞다. 명찰이 있지.”
가슴에 달린 명찰을 가리며 민망한 듯 살짝 웃는 이시연.
아직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오촌 조카다.
하필 온 곳이 저 아이가 일하는 가게?
당연히 그런 말도 안 되는 확률이 실생활에서 벌어질 리가 없지.
나는 자연스럽게 안정민 과장을 쳐다봤다.
이 가게는 그가 추천해서 온 곳이니까.
흠흠.
‘이야- 이것도 괜찮네’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피하는 안정민.
내 강렬한 눈빛을 느끼고 있을 텐데?
모른 척하시겠다 이건가.
“저···. 손님?”
“아, 네. 크흠- 그럼 좀 도와주실래요?”
“네. 물론이죠. 혹시 어떤 스타일을 찾으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스타일이라.
사실 그런 걸 따지고 입고 다닌 적은 없는데.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아무거나 대충 걸쳐도 다 잘 어울린다는 말만 들어와서 말이지.
뭐, 헌터들이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비슷했다.
항상 몸을 움직이니 뚱뚱하긴커녕 모델 뺨치는 몸매는 기본이고, 각성 이후로는 일반인들과는 신체의 시간 흐름이 달라진다.
피부는 늙지 않고, 눈빛은 청량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맑았으니까.
“와. 근데 정말 몸이 좋으시네요. 남자분들이 딱 원하는 비율이랄까? 정말 아무거나 입어도 멋지실 것 같은데.”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정말이에요. 여기서 일한 지 그렇게 오래 안 되긴 했지만, 손님처럼 비율이 좋으신 분은 처음 봐요.”
이거 참.
나도 알긴 아는데, 자꾸 이야기하니 뭔가 쑥스럽다.
게다가 이 녀석은 몰라도 나는 알지 않은가.
내 조카라는 사실을.
“그냥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입는 스타일로 대강···.”
“네? 풉-.”
뭔가 내가 실수를 했나?
“아, 죄송해요. 갑자기 너무 아저씨 같은 말투를 쓰셔서···. 젊은 친구들이라뇨. 손님도 충분히 젊으신데요.”
“그런가요?”
외모는 이래도 알맹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
이시연은 그렇게 웃고선 금세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간혹 나와 옷을 번갈아 가며.
“이건 어떠세요? 댄디한 스타일이 잘 어울리실 것 같고, 이제 곧 더워질 시기라 이런 리넨 소재가 시원-.”
“네. 그걸로 주세요. 그리고 이왕 온 김에 몇 벌 더 샀으면 하는데. 좀 더 도와주실 수 있죠?”
“···네? 네, 뭐 그야 물론.”
딱히 조카가 일하는 가게라고 매상을 올려줄 생각은 아니다.
그저 정말로 옷이 제법 필요했기에 사는 것뿐이지.
“제가 한 두벌은 추천해드릴 수 있긴 한데···. 얼마나 사시려고요?”
“제가 외국에 오래 있다가 돌아와서 입을 옷이 하나도 없어서요. 일단 아래위 10벌 정도?”
태평양도 외국은 외국外國 이니까.
“네? 10벌이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이런 옷 가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많이 팔면 더 많이 버는 시스템.
사장은 많이 팔아서 좋고, 일하는 사람도 하는 만큼 받을 수 있으니 의욕이 생기는 일석이조의 시스템이랄까.
“그, 그럼 이런 건 어떠세요? 손님께선 비율이 좋으셔서 이런 스타일의 옷도-.”
“그것도 주세요.”
이시연이 골라주는 옷은 대부분 무난하고 가볍게 입을 수 있으면서도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조카라서가 권해주는 데로 마구 산 게 아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들로 추천을 해줬다.
마치 예스맨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통에 쇼핑은 생가보다 빨리 끝났다.
물론 이시연의 센스도 한몫했고.
“과장님, 뭐하고 계세요? 이제 가시죠.”
“어? 벌써 다 사셨어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안정민 과장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리고 양손에 가득한 쇼핑백을 보고선 잠깐 헛웃음을 짓는다.
“어때요? 괜찮은 가게죠?”
알면서 이러는 게 조금 얄밉긴 하지만.
그의 말대로 가게가 나쁘지 않다.
특히나 직원이.
“근데··· 그거 다 들고 병원으로 가실 생각이에요?”
아. 그걸 생각 못 했네.
다시 집에 들러서 놓고 가야 하려나? 싶은 와중에.
“이리 주세요. 제가 댁에 가져다 놓을게요.”
“네? 그래도···.”
“괜찮습니다.”
미안한 것도 그렇지만, 나도 없는 집에 누군가가 들어가는 건 별로인데.
안정민 과장이 딱히 뭘 훔쳐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만, 그의 은밀한 전화를 들었건 걸 생각해보면 다른 부분에서 조금 걸리는 게 있다.
도청 장치 설치라던가?
흠. 하지만 과연 그런 짓을 할까?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그의 신뢰성을 한 번 시험해봐도 될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부탁드릴게요.”
“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돌아가는 안정민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도 병원으로 향하기 위해 가게를 나섰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문까지 열어주며 밝게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살짝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
너무 비약이 심한가?
어머니에게는 조카 손주일 텐데.
이렇게 잘 자란 모습을 보실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네. 손님.”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선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야? 아는 사람?”
“아니. 나도 오늘 처음 보는 손님인데.”
“와. 비율 장난 아니다. 모델인가?”
“그런 것 같진 않고···. 아까 들으니까, 같이 있던 온 아저씨가 사장님이라고 부르던데?”
“뭐야. 잘생긴데다 능력까지 있는 거야? 아아- 저런 남자 만나는 여자는 진짜 행복하겠다.”`
“얘는. 사람이 겉모습만 보고 어떻게 알아, 인성이 바르고 착해야···.”
“네네-. 아무튼 이시연, 무슨 말을 못 해요. 근데 저 손님, 너한테 은근 관심 있어 보이는 눈치던데?”
“아, 아냐. 관심은 무슨.”
“왜? 널 이렇게 지-긋이 쳐다보던데. 다음에 오면 번호 물어보는 거 아냐?”
그 뒤로 꺅꺅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들려오다가 점차 잦아들었다.
어느새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모양.
그리고 눈앞에 병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이것까지만 안정민 과장에게 부탁할까 싶을 정도로 말이지.
아무래도 엉덩이 사이에 면봉을 집어넣는다는 게 조금···.
하지만 그래도!
음식은 첫째도 청결, 둘째도 청결이라고 했는데.
이런 일에 편법을 쓸 수야 없지.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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