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4화.
인테리어는 따로 하지 않기로 했다.
가게를 여는 목적 자체가 상업적인 것보단 그저 개인적인 만족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이 가게의 여기저기에 닿아있는 손길이 제법 나쁘지 않았다.
전 주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아마 꼼꼼한 사람이었던 모양이지.
그래도 손을 볼 곳은 제법 됐기에 나는 수리할 곳들을 점검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곳이나, 습기에 젖은 채 방치되어 조금 뒤틀려버린 문틀 같은 것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제법 지나간다.
슬쩍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마도 출근 시간인 모양.
정장을 입은 사람부터 교복을 입은 아이들까지.
골목이 상점가보다는 주택가와 가까워서 그런지 골목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단 나가는 사람의 수가 제법 많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명은 교복을 입고, 한 명은 가벼운 차림을 한 채로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만 얼핏 보긴 했지만, 기억에는 분명히 자리해서 그런지 알아보는 게 어렵지 않다.
이시연과 이시은.
내 조카들이다. 정확히는 오촌 조카.
두 자매가 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 먼 거리에서의 첫 만남.
아이들도 걸으며 잠시 이쪽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생전 처음 보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한데도.
왠지 아릿한 이 마음은 뭘까?
후룩-.
괜스레 어울리지도 않는 원두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믹스와 원두커피의 차이도 잘 모르는 내가 내렸지만, 맛이 제법 괜찮네.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들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흐음.
복잡한 마음이 커피 향에 섞여 은은하게 퍼진다.
* * *
이 사람은 일이 없나?
이러니 공무원들이 월급 도둑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은데.
“흐음-. 갈수록 커피 맛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장님.”
호칭은 선생님에서 사장님으로 바뀌었다.
아직 가게를 정식으로 오픈한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이란 소리보단 나은 것 같아서 나도 그러라고 했다.
“안 바쁘세요?”
하루에 한 번.
매일같이 찾아와 커피를 축내는 안정민 과장을 보며 물었다.
눈치가 있다면 이게 축객령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안 바쁘긴요. 저 엄-청 바쁩니다. 없는 시간 쪼개서 겨우겨우 오는 거라니까요? 그리고 사장님은 아직 사회복지과의 도움이 필요하시기도 하고.”
내가?
으음···. 잘 모르겠는데?
“자요. 이거 신청 안 하셨죠?”
그것보라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내미는 서류.
[사업자 등록 신청서]
아, 수리만 한다고 깜박하고 있었다.
워낙 어려서부터 몬스터들 사냥만 하고 다녔더니 이런 행정적인 업무는 완전 젬병이라.
“···감사합니다.”
“인터넷으로 해도 되지만 사장님은 이게 더 편하실 것 같아서요. 허락해주시면 제가 대리로 신청하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확실히 이런 건 생각도 못 하는 부분이라.
의외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네.
“네. 그래 주시면 저야 좋죠. 그럼 좀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제가 좋은 세무사도 소개해드릴게요. 아무래도 가게 운영하려면 그런 부분은 놓치기 쉽거든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뒤를 이어서 가방에서 나오는 서류들.
식품 영업신고서, 위생교육신청서를 비롯한 별의별 서류가 줄줄이.
“보건증도 받으셔야 하고, 오픈 전에는 소방시설이나 임대차 계약서. 아, 이건 필요 없으시겠고···. 가스 사용시설 검사도 받으셔야 합니다. 거기다 만약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실 생각이면···.”
···인정해야겠다.
이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나로서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이유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분명 어떠한 이유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이 도움은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면 되지 않을까.
“커피 한 잔 더 드릴까요?”
“엇? 그래도 됩니까? 한 사람당 한 잔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과장님은 손님이 아니잖습니까.”
내 숨은 조력자.
커피 머신이 가동되는 소리와 함께 진한 커피 향이 한 번 더 가게 안으로 퍼져나간다.
* * *
과연, 구청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심지어 구청에서 간간이 외주를 준다는 인테리어 업체까지 불러줬다.
딱히 돈을 아끼려고 업체를 부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왠지 내 손으로 직접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정해야 했다.
난 부시는 건 자신 있을 지언정, 수리에는 재능이 없구나. 라고.
“이걸 혼자 하려고 하셨어요? 하하, 이런 건 전문적인 공구가 없으면 어지간해선 못해요. 막상은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얼마 못 가서 또 틀어지고 그러거든요.”
투둑-.
내가 직접 수리한, 삐걱거리던 소리를 내던 계단 발판이다.
나름대로 치수를 꼼꼼하게 재서 자르고 교체를 했는데, 전문가의 손길에 너무나 쉽게 떨어져 나온다.
보고 있는 게 민망해질 정도로.
“어이구, 큰일날 뻔하셨어요. 일반 가정집도 아니고 이런 식당 같은 곳은 습기가 많아서 합성 방부목을 쓰셔야 하거든요. 고정 못도 이런 식으로 직각이 아니라 45도로-.”
탕! 탕!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조금씩 사라지는 못.
사내의 손에 들려 내려쳐지는 망치가 마치 예술 도구처럼 느껴진다.
무슨 무슨 도료를 칠해둔 뭐시기 합판을 가져다 쓴단다.
한참을 들었는데도 기억이 나질 않네.
내가 원래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닌데, 관심이 없는 분야에 관한 내용은 참 기억에 오래 남질 않는다.
원래 머리도 써야 좋아지는 법이라는데.
12살 이후로는 학교를 가본 적이 없으니 안 좋은 게 당연한가?
각성을 핑계 삼아, 복수를 방패 삼아.
그렇게 떠돌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 뿐이 아니라 제법 많은 이들이 그랬다.
그 당시.
대격변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세상은 혼란스러웠고,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시기다.
특히나 나 같은 고아에게는 더욱더 말이지.
삼촌이라는 사람이 왜 그때는 나타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던 이유와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이미 물어볼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일.
마음에 담아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그나마 나는 조금 나았다.
12살이라곤 해도 각성자였으니까.
집안일이라곤 내 방 정리 정도가 고작이었던 내 삶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건 자주 찾던 식당 주인 덕이었다.
그 아저씨도 이미 돌아가셨겠지.
게이트를 학교처럼 다니던 아이를 유난히 신경 써 준 사람.
이제 와 생각하니 나이가 들고나서 찾아뵙지 않았던 게 참으로 죄송스러워진다.
이런저런 옛 생각에 잠겨있는데.
“자, 다 됐습니다.”
확실히 전문가는 다르네.
나도 나름 손재주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비교하니 극과 극이다.
도료인지 뭔지를 발랐다는 밟음 판은 새로 교체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잘 어울렸다.
혼자만 신입 티를 내던 조금 전과는 달리.
“수고하셨습니다. 수리 비용은 어떻게 됩니까?”
“아, 그건 구청에서 이미 처리해주기로 했습니다. 복지과 안 과장님이 특별히 잘 좀 부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이거 참.
너무 받기만 하면 부담스러운데.
하긴, 나도 맛있는 커피를 몇 잔이고 대접했으니 받기만 한 건 아닌가?
“혹시 더 손보실 건 없습니까? 이왕 온 김에 손 보실 게 있으면 더 봐 드리고 갈게요.”
“그럼 너무 죄송해서.”
“하하-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이미 구청과 다 이야기가 됐으니까요. 어디 보자-.”
그러면서 1층을 슬쩍 둘러보더니.
“어? 저기 문틀도 안 좋아 보이는데···.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습기 때문에 뒤틀려 제대로 닫히지 않던 안쪽 미닫이문.
봐준다면 고맙지.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비용처리는 알아서 하는 모양이네.
다시 생각해도 내 숨은 조력자가 맞는 것 같다.
어차피 구청에서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그래서 뭐라도 해줄까 생각해보다가.
마침 오후 1시가 되어가는 상황.
짐작이긴 하지만 아마도 점심은 아직이겠지.
정식 오픈 전이라 제대로 된 재료는 별로 없지만, 내가 먹으려고 기본적인 것들은 조금 사둔 게 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니 문제가 되진 않겠지.
그저 함께 밥 한 끼를 먹는 것뿐.
* * *
사실 이렇게 큰 냉장고까지 필요할까 싶었다.
식당이라곤 하지만 사이 공간을 넉넉하게 잡아 배치해서 테이블이라곤 고작 4개.
대신 혼자 와도 편히 있을 수 있도록 주방 앞에 바 테이블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위에 처음으로 반찬이 하나둘 올려졌다.
“사장님. 이게 다 뭡니까?”
마침이 일이 끝난 시각.
“아직 식사 전이실 것 같아서요. 가게 수리를 도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차려봤는데, 괜찮으시면 한 술 드시죠.”
그 잠깐 사이에 미닫이 문틀까지 완벽히 수리를 해줬다.
구청에서 주는 돈은 돈이고, 이건 그저 내가 고마워서 준비한 한 끼 식사.
정말 별것 아닌.
“어유. 이런 감사할 때가··· 잘 먹겠습니다. 안 그래도 사무실로 가면 짜장면이나 배달 시켜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아직 정식으로 오픈한 게 아니라 그냥 제가 먹으려고 사둔 것들로 간단하게 차린 겁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정말 간단한 것들이다.
늘 가까이에 두면서도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
아니,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익숙하다는 것조차 잘 깨닫지 못하는 그런 음식들.
“이건··· 김치찌개 정식인가 보네요.”
“정식까진 아닙니다.”
그렇게 거한 이름을 붙이기엔 다소 민망한 차림이다.
당근과 대파를 다져 넣은 계란말이.
참치 한 캔을 넣은 김치찌개.
어제 담아서 하루가 지나 적당하게 간이 밴 오이무침이 전부.
집에서야 엄마에게 부탁만 하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그런 간단한 반찬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모든 어머니라면 모두 저마다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자부하는 반찬이기도 하다.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나는 밥을 펐다.
어느 정도나 주면 맞을까?
상대는 아직은 입맛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을 초여름에 땀까지 한바탕 흘린 건장한 남성.
자고로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돈을 받을 것도 아니니, 주는 것도 내 마음.
나는 고마움 마음도 듬뿍 얹었다.
“사장님, 정말 잘 먹겠습니다.”
단순히 멥쌀로만 흰밥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엔 흑미를 조금 넣어 밥을 지었다.
흰 멥쌀에 검은색 흑미의 물이 덧씌워져 전체적으로 진한 자줏빛이 매끄럽게 맴도는 밥.
사내는 밥보다 노란빛의 계란말이를 먼저 집어 들었다.
두 젓가락 사이에서 조금은 탱글탱글하게 흔들리는 게 입속으로 들어가고.
“으음!”
의례적인 표현일까?
그래도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리 나쁘진 않아 보여서 다행이다.
그리고선 이내 물수건의 희생으로 깨끗하게 변한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운다.
꿀꺽.
사내의 목울대가 크게 흔들리더니 환하게 웃는다.
“와.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엄청 부드럽네요!”
“입에 맞으신다면 다행이네요.”
“이야- 역시 요리를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계란말이 하나도 다르네요. 가정집에서는 이렇게 만들기 어렵죠?”
사실 어렵지 않다.
그저 계란물에 우유만 조금 섞어줬을 뿐이니까.
“생각보다 쉽습니다. 계란 3개에 우유만 두 수저 정도 넣으시면 되니까요. 그럼 부드러워져요.”
이건 굳이 우리 엄마만의 비법은 아니다.
우유나 맛술.
두 가지의 방법은 많은 엄마들이 알고 있는 조리법이니까.
“그런가요? 이거 남자 혼자 살다 보니 먹는 거라곤 맨 라면이나 배달 음식 뿐이라···.”
간만의 따듯한 밥이었던 건가?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 조금이나마 됐다니 다행이네.
“사장님. 이 김치찌개도! 와아-! 진짜 맛있습니다. 정말로요.”
계단 수리를 하면서 이것저것 알려주길래 그리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대강 느꼈지만.
“제가 참치김치찌개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우움!”
생각보다 더 리액션이 풍부한 사람이었네.
“김치찌개는 먼저 들기름에 김치를 볶아준 뒤에 끓이면 됩니다. 그것도 간단하죠.”
사내가 이것저것 알려준 답례라고 하긴 그렇지만.
나도 계란말이나 김치찌개의 조리법에 대해 간단하게 알려줬다.
커다란 그릇에 동그랗게 퍼온 밥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적당히 담았었으면 부족할 뻔했다.
“아, 그리고 이건 혼자 사신다고 하셔서 조금 싸놨습니다.”
어차피 오이무침은 오래 두면 물이 생겨서 맛이 없어진다.
그리 많이 담은 건 아니지만 독신인 남자 한 명에게 조금 내어줄 정도는 된다.
“어유,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았거든요.”
꽉꽉 눌러 담은 밥을 두 공기나 비운 남자가 이제 와 갑자기 어색한 척은.
“참, 오픈은 언제 하십니까?”
“글쎄요.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아서요. 아마 조금 더 걸릴 것 같네요.”
“이거 제 명함인데,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사장님 가게는 제가 전담으로 특별 관리로 모시겠습니다. 하하!”
강영훈.
명함에 쓰인 이름을 잠시 마음속으로 읊어본다.
“개업식 하시면 꼭 연락하십시오.”
“네.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직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가게 개업일을 기다린다는 사람만 벌써 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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