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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3화 (3/153)

귀환자 식당 3화.

이렇게 빨리 나에게 연락을 해온 건 누구일까?

벨이 울리는 그 짧은 사이에 몇 사람의 얼굴이 지나쳐간다.

잠깐의 기대감과 함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진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건너편에서는 조금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튀어나왔다.

[진. 나 히로다.]

7인의 생존자.

그중 동양인은 단둘이었다.

일본인 히로 무야시.

그리고 나.

처음부터 동양인이 둘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가장 헌터의 수가 많았던 곳은 중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자신감이 지나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나라 헌터들에 대해 배타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은 늘 그들끼리만 뭉쳤고, 늘 독선적인 결정을 내렸다.

결국 그래서 모두가 한날한시에 가버렸지만.

아무튼, 생존자 중 남은 동양인은 나와 히로.

하지만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쉽게 친해지기 힘든 조합 아닌가.

그런 그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것도 이렇게 빨리?

“무슨 일이지?”

어쩌면 아까 떠올렸던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떠오르지 않았던 사람이 아닐까.

그런데 그 예상이 보기 좋게 깨진 셈이 됐다.

그렇다고 이 녀석이 다정하게 내 안부가 걱정되어서 전화할 녀석도 아니고.

게이트에서 나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순간에도 녀석과는 별다른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을 정도니까.

물론 그건 히로 녀석도 마찬가지고.

[문제가 생겼다.]

그래.

우리가 사적으로 통화를 할 일은 없지.

하지만 문제라···.

“나랑도 관계가 있는 일이냐?”

게이트는 사라졌고, 각성자도 더는 남아있지 않은 세상.

이런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한들, 그게 나랑 관련이 있을까?

그것도 일본에서 생긴 문제라면···.

일본 열도가 당장 내일 가라앉는다고 하고 심지어 오직 나만이 그걸 막을 수 있다고 해도. 글쎄?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오래전 독도나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시대보다 더 심하다.

게이트가 처음 일어났을 때, 일본이 한국에 한 짓을 생각한다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거다.

적어도 한국 사람이라면 말이지.

[···아마 너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갈 거다.]

“당장은 없다는 소리네.”

수화기 너머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거지?

젠장, 궁금해지고 말았네.

“무슨 일인데. ···들어나 보자.”

[한국은 게이트 관리국이 없어졌다지?]

“일본은 아직도 있는 건가?”

게이트가 사라진 지 30년이나 지났는데도?

[뭐, 예전 헌터들의 복지 문제 때문에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하더군. ···기가 막힌 일이지.]

전통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나라.

하지만 이제는 전통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알량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만 득시글거리는 곳이 바로 지금의 일본이다.

히로도 아마 그런 부분에서 진절머리가 난 거겠지.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일본인들이 예전 헌터들의 생활권 보장을 위해 게이트 관리국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든 말든.

[일본 게이트 관리국에서 나에게 코어를 요구했다.]

“코어?”

히로가 이야기하는 코어가 뭔지, 난 곧장 눈치챘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건 우리 7명뿐인데?

“그들이 어떻게 코어에 대한 안거지? ···설마, 네가 말했을 리는 없고.”

히로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지.

[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아.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코어는 세상에 나와서는 안 돼.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물론, 내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걸 넘겨줄 일은 없다. 그건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다만···.]

뭘 부탁하려는 거지?

히로답지 않게 뜸을 들인다.

“다만 뭐냐.”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 경우에···. 단 한 번만 일본을 용서해줄 수 없겠나?]

용서해달라? 무슨 짓을 해도?

그건 쉽게 답해줄 수가 없지. 게다가 대상이 그 일본이라면 더욱.

“···생각은 해보지.”

[그걸로 충분해. 고맙다. 그리고··· 일본을 대신해 그간의 일을 사죄한다.]

솔직히 이 말은 조금 놀랍다.

그런다고 지난 과거가 없던 것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와 의미 없는 일이다.”

[알아. 겨우 나 따위의 사죄, 한국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그저 개인적으로나마 너에게는 용서를 빌고 싶었다.]

“···네 마음이 편해지자고 비는 용서. 받을 생각은 없다.”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

‘죽음을 각오한 건가?’

아무래도 홀가분하게 눈을 감고 싶은 모양인데, 난 별 관심 없다.

그런다고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 ···이만 가 봐야겠군.]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찜찜한 감정이 차올라서 그런지, 술이 당긴다.

* * *

그 뒤로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른 동료들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세상의 시간이 우리를 버려두고 흘러버려 고민이 있어 보였지만, 모두 어떻게든 적응을 시작한 모양이다.

특히나 유리 녀석은 돌아왔더니 손녀가 생겼다며 기뻐하기까지 했다.

조금이나마 걱정했던 게 억울할 정도로 말이지.

뭐, 알아서들 잘 살겠지.

언젠가 또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7인이 다 모이는 일은 어째선지, 다시 없을 것 같네.

이제 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제법 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댈까, 싶던 때.

“사장님, 사장님 계십니까?! 업소용 냉장고 배달 왔습니다!”

드디어 주문했던 주방기기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냉장고나 밥솥, 각종 냄비부터 작게는 식기들까지.

2층에 있는 집에도 여러 가지 가구들을 들여놨다.

따로 주방은 만들지 않았다.

1층이 식당인데, 굳이 공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간단하게 차 정도만 끓일 수 있는 정도만 준비해뒀다.

“어머. 새로 이사 오셨나 봐요.”

한참 가구와 기기들이 들어오는 북새통 속에서 근처에 사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가게를 찾았다.

딱히 사람들과 깊은 교류를 나누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웃과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야겠지.

“네. 안녕하세요. 엊그제 이사 왔습니다.”

“너무 잘생긴 총각이 왔네. 총각 맞죠?”

하하-.

나이가 80이 넘었는데, 총각이라.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있으니···.

게다가 따지고 보면 결혼도 안 했으니 총각은 맞으려나?

잘생겼다는 부분은 인정하고 넘어가도 되겠지.

“네. 아직 미혼입니다.”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근데 여기 또 식당 하시려나 보다. 그쵸?”

뭐가 잘됐다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뒤의 질문에 답하는 게 대화가 편하게 흘러갈 것 같아서.

“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작은 밥집이나 해볼까 합니다.”

“젊은 총각이 부자시네. 여기 매물로 나온 지 꽤 됐어도 가격이 비싸서 잘 안 나가는 것 같던데. 세는 아니죠? 매매만 한다고 들었는데.”

나라에서 보상이랍시고 준 거긴 한데, 영 어쭙잖은 걸 주진 않은 모양이네.

안정민 과장이 하도 더 받아야 한다고 하길래 버려지는 걸 내준 건가 싶었는데.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어머머, 잘 생긴데다 능력까지 있나 봐요. 동네 처녀들이 죄다 단골 되겠다. 오호호-.”

넉살이 상당한 아주머니.

어색하긴 하지만, 이런 분과의 대화는 그리 불편하지 않다.

아직 정신이 없는 와중이긴 하지만, 간단하게 커피 한 잔을 내려왔다.

새로 들여온 커피 머신을 제일 먼저 청소해두길 잘했네.

“으음. 커피 향도 너무 좋다. 그래서 가게 오픈은 언제예요?”

“보시다시피 아직 정리할 게 너무 많아서요. 집 정리도 하고···. 아마 다음 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요. 아, 식당 한다고 했죠? 어떤 종류? 한식? 중식? 그것도 아니면 일식? 아, 요즘에 일식은 좀 그러려나?”

음.

그러고 보니, 그걸 생각을 안 해봤네.

애초에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도 없는 데다, 자격증도 없으니 당연하지.

하지만 어떤 스타일의 식당이 될지는 정해져 있다.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들, 내가 그리워했던 요리들이 차려질 식당.

“그냥··· 집밥이죠.”

메뉴 같은 건 없다.

누구나 부담 없이 와서, 가볍고 따듯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으니까.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혹은 내 기분에 따라서.

즐겁게 만들고 맛있게 먹으며 즐길 수 있다면 된다.

딱히 돈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니니까.

“엄마가 해주는 집밥 같은 그런? 그런 거 너무 좋겠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아, 나는 이 옆에 있는 빌라에 살아요. 개업식날 와봐도 되죠?”

“그럼요. 대환영입니다.”

처음으로 동네에 이웃사촌이 생겼다.

어쩐지 이 아주머니와는 자주 마주칠 것 같은 예감도 들고.

* * *

안정민 과장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도 손에는 서류를 잔뜩 든 채로.

“와. 벌써 준비를 다하신 겁니까?”

식당 입구를 들어서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 안정민.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다.

오늘은 급하지 않구나 하는걸.

손에 든 서류와 눈빛에 가득한 호기심만 제외하면 어디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느긋한 발걸음.

“커피라도 한잔하실래요?”

“어휴, 감사하죠. 주신다면 잘 마시겠습니다!”

이러다가 누가 찾아오기만 하면 커피를 내주는 게 습관이 되겠네.

이거 나름 비싼 원두인데.

앞으론 돈이라도 받아야 하려나?

흐음-.

눈을 감은 채 코로 향을 한껏 음미하는 안정민.

아무리 봐도 커피믹스와 원두커피의 차이도 모를 것 같은데.

“오! 선생님, 이거 혹시 블루마운틴인가요?”

왜지? 어떻게 아는 거냐고.

내 눈빛이 조금 당황했던 게 느껴졌던 모양인지.

“하하. 제가 생긴 건 이래도 나름 커피 마니아거든요. 매달 보내주는 돈 때문에 자주는 못 마시지만, 마실 일이 있으면 꼭 좋은 커피를 마시려고 노력합니다.”

“입에 맞으니 다행이네요. 맞습니다. 블루마운틴.”

나는 커피를 잘 모른다.

어쩌면 커피믹스와 원두커피의 차이를 모르는 건 나일지도 모르겠네.

그런데도 굳이 저 이름도 희한한 커피를 산 이유는 하나다.

“흐음. 이야-. 향이 너무 좋네요. 블루마운틴 중에서도 품질이 좋은 걸로 구하셨나 봐요.”

커피 한 잔이라도 내가 타주는 거니까.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어준다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한 잔 이상은 못 드립니다.”

나름 정해진 규칙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식당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정도는 서비스.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맛있다고 주구장창 먹어버리면 원둣값이 감당이 안 될 수도 있거든.

딱히 돈을 벌 목적은 아니라도 내 돈을 퍼주며 장사할 생각도 아니니까.

손님 한 명에게 커피 한 잔.

그게 내가 정한 최소한의 규정이다.

“설마, 이렇게 좋은 커피를 무료로 주실 생각이세요?”

“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찾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요.”

카페에 가면 어지간한 밥값보다 비싼 게 요즘 커피값인데.

그걸 무료로 제공한다는 말에 안정민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뭐, 정 가게 운영에 문제가 되면 추후 개선해 나가면 될 일.

나는 그보단 오히려 안정민이 언제쯤 본론을 꺼낼까, 그게 더 궁금해진다.

“아 참. 오늘은 이것 때문에 왔습니다.”

내 눈빛을 봤는지, 그제야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안정민.

그리고선 내가 서류를 읽을 때까지 커피를 계속 음미한다.

“···확인했습니다.”

손에서 서류를 내려놨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던 것들.

다만 그것을 공식적인 서류로 옮겨온 것뿐이다.

후룩-.

“이 건물에 대한 서류는 이미 지난번에 처리가 됐습니다. 이건 앞으로 받으실 연금과 전에 추가로 요청하셨던 것들을 정리한 겁니다.”

이미 내용은 확인했다.

하지만 이런 쪽의 전문가가 아닌 내가 확인해봐야, 난해하게 꼬아놓은 문장을 잡아낼 수는 없을 거다.

“제가 몇 번이고 확인해봤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 함정 같은 건 없다고 장담합니다.”

“···티가 납니까?”

내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했던가?

후룩-.

안정민은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선.

“역시 이쪽 지역을 고르신 건··· 그 두 사람 때문인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두 사람.

나는 아직은 얼굴도 본 적 없는 조카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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