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2화.
혜택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나름 지구를 구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하겠다는 의지가 조금이나마 보인다.
게이트 관리국이 사라진 마당에 헌터의 이권을 위해 나서줄 단체가 없어진 게 조금 아쉽지만.
딱히 상관은 없다.
내가 언제부터 게이트 관리국에 의지했다고.
“선생님, 여깁니다. 근데 정말 이것만으로 되겠습니까?”
조금은 허름해 보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2층짜리 단독 주택.
조금 떨어진 곳에 시장과 작은 번화가가 있다.
그리고 그 조금 안쪽으로 위치한 새로운 보금자리.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곤 해도 요청하면 이것보단 훨씬 더 지원받으실 수 있을 텐데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분이시잖습니까.”
“이거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앞으로 연금도 나온다면서요.”
어째선지 나보다 더 열을 내는 구청 사회복지과의 안정민 과장.
“연금 정도야 당연한 거죠! 어제는 너무 당황해서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자그마치 세계를 구한 영웅이시잖아요. 그런 분을 겨우 이런 곳에 모셔야 한다는 게.”
말을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는 게 정말 답답한 모양이다.
“조금 낡긴 했어도 서울에 이런 단독 주택, 거기에 먹고 살 걱정 없을 정도의 돈도 매달 꼬박꼬박 나오겠다. 게다가 저것도 저 주신다면서요.”
집 앞 공간에 주차된 SUV 한대.
“농담이 아니라 진짜 전용 비행기라도 드려야 하는 건데···. 아니, 그것도 부족하죠. 사실!”
“하하-. 활주로는 어떻게 합니까.”
여긴 미국이 아니니까.
어쩌면 미국으로 돌아간 하밀 녀석은 정말 그 정도를 받아낼지도 모르겠네.
미국은 그런 복지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치 대단한 나라니까.
‘흐음, 다른 녀석들은 어쩌고 있으려나.’
헤어진 지 고작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소식이 궁금해지다니.
내가 이렇게 살가운 사람이었나?
아마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조금은 더 나중에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지.
녀석들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뭐, 알아서들 잘하고 있겠지만···.”
“네? 방금 뭐라고···. 그렇죠? 역시 이거론 안 되겠죠? 제가 당장 상부에 보고해서-!”
“그런 말한 거 아닙니다. 아무튼 전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합니다.”
30년.
누군가에게는 이미 잊혀졌거나, 또 누군가는 아예 기억에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다.
현시대에서 일꾼의 주역이 되는 30대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그저 ‘오래전에 제법 대단한 일을 한 사람’ 정도겠지.
특별한 감흥은 없을 거다.
더 많은 것을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반드시 나란 사람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그건 사양이다.
뭐, 당시의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여기 1층은 원래 뭘 하던 곳인지 아세요? 마당이 개방형인데다 출입문의 형태로 봐선 일종의 가게 같은 걸 했던 것 같은데.”
집을 빙 둘러 감싸고 남아있는 담벼락의 흔적.
제법 많은 사람이 드나들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요? 음···.”
마포구청 사회복지과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안정민은 다시 서류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식당이었네요.”
“···식당입니까?
“네. 서류상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들으니 조금 이해가 간다.
무너져 버린 담장이야 그렇다 쳐도, 1층은 가정집이라고 하기엔 맞지 않는 개방형 창이 달려 있었으니까.
“···좋겠네요.”
“네? 좋다니··· 뭐가 말입니까?”
“식당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단 말이었습니다.”
3개월.
이곳에서야 수십 년이 지났던 말든, 내가 지냈던 건 3개월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요리는 대부분 내 담당이었지.
풉-.
괜스레 웃음이 난다.
“갑자기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예전 생각이 떠올라서요.”
“그러시군요. 그럼··· 여기서 혹시 식당을 하실 생각이신···.”
아직 정한 건 아니다.
그저, 그런 일을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을 것 같기도 한 정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음. 정말 식당을 하실 생각이시면 사업자 등록이나 세금 감면 부분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아뇨. 괜찮습니다.”
눈에 띄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 정도는 정부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내야 하겠지.
적어도 이 시대에 맞춰 살려면.
“혼자 해결하겠습니다.”
* * *
와우-.
집에 들어와서 처음 내뱉은 한 마디다.
이렇게까지 엉망일 수가 있나?
-여긴 3년 전에 구청으로 이관된 건물인데, 상당히 낡았습니다. 이것 말고 차라리 제가 다른 물건을···.
안정민 과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설마 했는데. 이 정도였나?’
구청 소유의 건물이라도 이렇게까지 방치를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철근이나 콘크리트가 들어가서 무너질 염려는 없겠지만···.
푸확-.
콜록-.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확 다가오는 이 오래된 먼지는 어쩔 수가 없다.
이건 신체의 강함을 떠나서 본능적인 거부감에 가까운 거니까.
“콜록-콜록-. 어후우···. 머, 먼지가 심하네요.”
뒤따라 들어오던 안정민 과장도 연신 손부채를 흔들며 들어온다.
“정겹네요.”
“···네?”
대놓고 이야기는 못 하겠는지.
‘여기에 대체 무슨 정이 있는 거지’라며 중얼거리던 안정민 과장은 좀 더 안으로 발을 옮겼다.
“크흠. 선생님? 아무래도 여기가 주방이었던 것 같네요.”
아직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건물.
조금은 어두운 문을 지나 안정민 과장의 목소리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제야 들어오는 안쪽에 마련된 주방.
“마음에 듭니다.”
“···이, 이게요? 정말, 진심으로요?”
뽀얗게 쌓인 먼지, 곳곳에 널브러진 주방 기기들까지.
마치 30년은 방치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꼭 나와 같지 않나?
“네. 정말로 마음에 듭니다.”
하아.
어디가 또 답답한지, 안 과장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결국 서류를 내민다.
“그러면 여기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후회하셔도 전 정말 모릅니다?”
펜과 함께 건네진 서류.
서명을 어떻게 했더라?
아, 나는 그런 게 없었지.
“···그냥 이름만 적어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10여 장에 달하는 서류였지만 딱히 볼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냥 그가 내민 서류의 가장 마지막 장에 내 이름을 적었다.
이진.
안정민 과장은 내가 또박또박 적어낸 서류를 잠시 보더니.
“···옛날 사람 인정.”
“네?”
이진李陳.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라는 뜻에서 지어주신 내 이름.
나는 그걸 한자로 적었다.
* * *
안정민 과장은 이진이 서명한 서류를 챙겨 들고 차에 올랐다.
구청의 업무용 승용차.
그리고선 차 안에 앉아 잠시 이진을 지켜봤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서 전화기를 꺼냈다.
평소 그가 사용하던 신형 스마트폰이 아닌, 구형의 2G폰이었다.
“···접니다.”
조금 전, 이진과 대화할 때와는 다른.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네. 국··· 아니, 원장님 말이 맞았습니다. ···네. 일단 신 박사님의 의견대로 준비해두는 편이···. 네, 알겠습니다.”
안정민 과장은 한참이나 휴대전화를 더 들고 있었다.
간혹 고개를 끄덕이고, 뭔가를 생각한다.
“그런데, 원장님. 그럼 전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는 겁니까?”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대답에 안정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에겐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르릉-.
휴대전화를 다시 품에 넣은 안정민이 차를 타고 떠났다.
* * *
흐음.
왜 바로 안 떠나나 싶나 했더니.
“···누구였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청력을 가진 나였지만, 차 안의.
그것도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 듣진 못했다.
그건 분명 누군가에게 보고한 거였어.
누굴까?
원장님이라고 했지만.
어딘가에 있는 보습 학원 같은 곳의 원장님은 아닐 테지.
그렇다면 생각나는 곳이 하나 있다.
30년 전 사라졌던 헌터의 동태를 파악해야 하는 곳.
원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기관의 장으로 있는 곳.
역시 아무래도 국정원인가.
당장은 생각해봐야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다.
애써 상념을 털어냈다.
국정원이야 그럴 수 있지.
각성자들이 사라진 세상에 느닷없이 나타난 초인超人이니까.
이해한다.
그보단 지금 내 새로운 보금자리를 둘러보는 게 먼저다.
나는 잠시 둘러본 2층을 뒤로하고, 1층으로 내려왔다.
“···식당이라.”
나쁘지 않네.
아니, 오히려 잘 됐다 싶다.
애초부터 뭘 할지 딱히 생각해둔 것은 없었지만, 음식이라면 나름 자신이 있다.
식당을 해보는 것도 좋겠지.
하필 또 1층이 식당을 했던 건, 마치 이렇게 되라고 누군가가 끌어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흐음.
하지만 텅 비어있다.
간간이 굴러다니는, 이제는 사용하기 어려워 보이는 몇몇 주방 도구들을 제외한다면.
당연하지만 이전 주인이 값나가는 물건들은 그대로 두고 나갔을 리는 없으니까.
커다란 업소용 냉장고가 있던 자리.
손때가 묻긴 했지만, 무척이나 관리가 잘 된 듯한 낡은 찬장들.
식당을 열자면 사야 할 것들이 제법 된다.
식기며 주방에서 사용할 각종 도구들부터, 손님들을 맞이할 테이블이나 의자들까지.
내가 돈이 얼마나 있었나.
나는 안정민 과장이 개통해 준 새 스마트폰을 들었다.
처음 보는 기종이었지만 사용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난 나이가 든 것도 아니고, 세상의 문명 수준도 그 전과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
간단하게 조작법을 익힌 뒤.
인터넷을 들어가 본다.
몇 가지를 검색해보니 금세 회원 가입으로 유도하는 창이 나타난다.
이런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질 않았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개인 정보.
이름은 그대로 이진.
나이는 올해 26이 된 고아 출신의 한국인 남성.
이게 내 새로운 신분이다.
아직은 낯선 주민등록 번호가 익숙하지 않지만, 차차 익숙해질 터.
나는 서류상의 번호를 재차 확인해가며 회원 기입란에 정보를 입력했다.
완전 백지에서 시작하니 가입할 것도 제법 됐다.
포털 사이트에 가입해 메일 주소를 받고, 온라인 몰에 가입하고.
가입만 했는데도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아직은 텅 비어있는 집이라 잘 곳도 마땅치 않지만 나는 굳이 당장 오늘부터 이곳에서 지내겠노라 했다.
기러기 아빠라 혼자라곤 하지만 언제까지 안정민 과장의 집에서 신세를 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내기 불편하다.
어차피 생긴 집이니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굳이 고집을 부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 게이트 안에서 먹고 자고 했던 덕에 아무것도 없는 바닥이라고 불편하진 않을 거다.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도 잠을 잤던 우리니까.
우리.
그래···. 다른 녀석들은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다른 녀석들도 그렇지만 특히나 유리코프가 걱정이네.
그 녀석은 아내와 딸이 있었는데···.
금방 돌아가겠다 철석같이 약속하고 왔을 텐데 30년이 훌쩍 지나버렸으니.
그를 향한 원망이나 미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는 딸이 유리코프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씁쓸해진다.
우리가 그 죽을 고생을 했던 이유가 뭔데.
나처럼 복수가 아니라, 자신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들어갔던 이들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더 지옥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띠링-.
팔을 베개 삼아 맨바닥에 누워있는데 휴대전화가 짧게 울린다.
간이 창에 떠오른 것을 보니 문자 메시지다.
[이진 선생님. 저 안정민 과장입니다. 해외에서 선생님의 동료였다는 분이 연락처를 알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내 존재를 알고 있는 건 아마도 극소수.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연락처를 물을 곳이면 뻔하다.
게다가 날 동료라고 부른다면야.
7인 중의 한 명.
마침 나도 궁금하던 차였는데 잘되었다 싶어서.
[알려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스마트폰에서 처음으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