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98화 (298/300)

# 298

라니르는 놀라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롭다니.”

상엽의 시스템이 가동되고 나서 차원에는 작은 분쟁조차 사라졌다.

그녀는 재판관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지만 재판조차 열리지 않았다.

“어떻게 신들이 협력할 수 있지?”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신의 대륙이 평화로운 것은 신들의 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차원에서 발생하는 문제보다 독단적인 신들의 행동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한 건이라도 발생하면 해결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신들의 분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함께 여행을 다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여행객 같은 복장으로 차원을 구경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새로운 차원을 만드는 프로젝트 팀이 생겼다.

-세상에서 가장 조화롭고 완벽한 차원을 만들자.

그런데 이건 정상 업무가 아니라 취미였다.

시간이 남아도는 것이다.

라니르가 참지 못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 송연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공무원들이니까 당연하죠.”

라니르는 이 말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쨌든 그녀도 할 일이 없어져서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할 처지였다.

“나도 출근이라는 걸 할까?”

최근에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역사적인 신이 탄생한 거네.”

상엽이라는 절대신에 대한 평가는 최고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간.

상엽은 절대신의 방에서 인간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거울을 통해 지인들의 생활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잘 살고 있네.”

아무도 모르게 시간이 날 때마다 상엽이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단 한 명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레나는 잘 살고 있겠지?”

사실 상엽이 누나 다음으로 보고 싶은 인물은 레나였다. 그런데 레나는 이미 복구가 시작된 한국에서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클럽의 DJ를 할 수는 없지만 낮에는 공사판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하며, 밤에는 음악을 만들었다.

그녀의 음악은 최근 들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공사판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귀한지는 상엽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모든 힘을 다해서 살고 있는 거야.’

남들은 열심히 산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엽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에이씨. 못 만나니까 더 보고 싶네.”

화장기 없이 땀을 흘리는 레나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계속 보고 있으면 심장이 뛰기도 했다.

상엽은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누나를 만나러 갔다.

상엽은 누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누나도 이제는 삶의 목표를 잡았다.

“아프리카에 봉사 활동 하러 갈 거야.”

“위험하면 언제든 불러.”

“괜찮아. 지금은 위험한 시기가 아니니까.”

그녀는 인권 운동가가 되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상엽이랑 맞설 수도 있어. 인간의 인권이 침해를 당하면.”

“쉽게 져 주진 않을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야 내가 더 열심히 하고 간절해지지.”

누나는 이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상엽이를 돌봐 줄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어. 시간이 꽤 걸렸네.”

“난 여전히 누나한테 위로를 받는데?”

“그럼 너무 다행이고.”

그 후로 남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누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상엽아.”

“응?”

“너 나 보러 온 거 아니지?”

“무슨 말이야?”

“내가 널 도와줄 수는 없지만 내 동생이 무슨 생각 하는지 정도는 알거든.”

누나는 따뜻한 눈빛이었다.

“쳇. 아이가 된 기분이네.”

“그러기에는 너무 큰 사람이잖아.”

누나의 웃음에 상엽도 웃고 말았다. 마음을 들켰다는 민망함은 금세 사라졌다.

“만나고 와.”

“그래도 될지 모르겠어. 내가 끼어들기에는 너무 완벽히 살아가고 있거든.”

“그렇다고 네가 그 삶을 깨트리진 않을 거 같은데.”

“그럴까?”

“넌 위로가 되는 사람이야. 내가 보증할게.”

“용기가 나는데.”

“그럼 어서 가 봐.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운 사람인 거 같은데.”

상엽은 용기를 얻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레나는 노을이 진 저녁에 연장을 내려놓고 공사판을 나서고 있었다.

남자들이나 할 수 있을 법한 일을 그녀는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최근에는 중장비까지 운전을 하면서 누구도 그녀를 무시하지 못했다.

상엽은 먼지도 제대로 닦지 않고 귀가하는 그녀의 앞에 섰다.

레나는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 상엽을 마주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간단히 인사를 건넸다.

“늦었네.”

그 한마디가 상엽의 고민을 날려 주었다.

“기다렸어?”

“조금.”

“다행이네.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퇴근했잖아. 퇴근 후에는 괜찮아.”

이런 일상적인 대화가 상엽으로서는 오랜만이었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했다.

“빨리 가서 샤워부터 해야겠어.”

“지금도 꽤 멋져.”

“난 언제나 멋져. 내가 찝찝해서 그래. 땀을 많이 흘렸거든.”

“땀은 항상 많이 흘리잖아.”

“그러니까 샤워를 해야지. 그래야 다시 시작하니까.”

레나는 상엽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먼저 길을 걸었다. 이 세상에서 상엽에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상엽은 거절하지 않고 레나와 함께 걸었다.

얼마 되지 않아 방 하나에 좁은 화장실이 있는 원룸 건물이 나타났다.

그나마 3층까지만 존재하고 그 위는 모두 무너져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건물이었다.

당연히 주인도 없고 월세를 낼 필요도 없었다.

주변 인부들의 거처가 모두 이런 식이었다.

전기 대신 촛불을 사용하고, 수돗물은 일을 하고 공급받는 생수통으로 해결했다.

“같이 샤워할래?”

샤워기가 있지만 물이 나오진 않았다.

“좋지.”

“물은 네가 좀 만들어. 오랜만에 시원하게 샤워하고 싶으니까.”

당당한 요구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상엽은 좁은 화장실에 결계를 만들고 물을 반쯤 채워 버렸다.

“수영도 하겠는데?”

“절대신과의 데이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화장실을 가득 메웠던 물은 좁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물이 뻗어 나가는 벽을 자연스럽게 통과해서 파도에 휩쓸리듯이 공중을 떠다녔다.

물은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으로 올라갔고, 레나는 욕조에 들어간 듯이 구름 위에 누웠다.

그리고 구름 위에 또 하나의 구름이 떠올라 레나에게 물을 뿌려 주었다.

“여기라면 아무도 못 볼 거야.”

“넌 보잖아.”

“같이 샤워하자고 한 건 너야.”

“좋아. 말만 하지 말고 어서 와.”

레나의 아름다움의 실체는 이런 당당함이었다. 다른 여자에겐 없는 매력이었다.

본연의 매력에 자신이 있기에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도 당당했다.

“오늘 내가 미칠지도 모르겠는데.”

“당연히 날 미치게 해 줘야지.”

“그럼 같이 가 보자고.”

둘은 구름 위에서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 * *

신의 도시가 완성되었다.

스트라인버그가 모든 능력을 동원해 만든 도시였다.

신의 대륙에 휴일을 선포한 상엽은 모두 함께 도시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도시는 모두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곳은 거대한 유적지 같았다. 그러면서도 현대 도시의 모든 편리함을 갖추고 있었다.

건물을 이룬 벽돌부터 바닥의 타일까지,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 길을 걷고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다.

이런 도시를 단 6개월 만에 만들어 낸 것은 스트라인버그가 있기에 가능했다.

도시는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호주 중앙의 메인 시티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해안 도시가 있었다.

중앙 도시와 해안 도시까지는 완벽히 정돈된 도로가 펼쳐졌고, 이 길을 따라 각종 휴양 시설들이 늘어섰다.

“전부 다 보기도 어렵겠네.”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면 걸음을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 시간이면 20층 건물을 만들어 내는 장인이 6개월을 투자했으니 이 정도 퀄리티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떠십니까?”

“훌륭해. 상상 이상이야.”

스트라인버그는 칭찬을 원했고 상엽은 아낌없이 그의 만족감을 채워 주었다.

“아직 1차입니다. 앞으로 2년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전부 맡길 테니까 잘 부탁해.”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자신감에 넘치는 말투지만 스트라인버그의 표정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 동안 푹 쉬어. 필요한 건 전부 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평소보다 말을 짧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제가 안내해 드리고 싶습니다.”

“직접 자랑하고 싶다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좋아. 그렇게 해.”

결국 스트라인버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신의 도시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신의 도시는 말 그대로 인류 문명의 상징이었다.

도시 중앙에는 상엽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1킬로미터 석상이 있었고, 20만 명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석상이 마주 보는 곳에는 상엽의 거처이자 도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시청이 자리했고, 주변으로는 잘 정돈된 상업 지구가 형성되었다.

애초에 모든 것이 계획된 도시였고, 용소까지 참여하면서 그 공간은 하나하나가 전부 예술적인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상엽의 석상에서는 동희가 참여해서 만든 무한의 분수대가 있었다.

무한의 분수대에서 시작된 물은 호주 전체로 뻗어 나갔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물보다 깨끗했다. 그리고 단순히 깨끗한 것을 넘어서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힘이 있었다.

신의 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병원을 갈 필요가 없었다.

“여기가 절대신의 거처입니다.”

5층 건물의 시청은 신전처럼 지어졌다. 시청 외부는 고대 유럽풍의 웅장함을 뽐냈고, 반대로 내부는 최신의 시설로 꾸며졌다.

4층과 5층이 상엽의 거처였는데 4층은 휴게실과 응접실, 5층은 오롯이 상엽의 개인 공간이었다.

“이건 집이 너무 좋은데?”

신의 대륙에 있는 상엽의 거처를 넘어서는 퀄리티였다.

“절대신에 어울리는 곳을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상엽은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 후로도 신의 도시에 대한 구경은 계속되었다.

해안 도시까지 둘러보는 데 하루가 소요되었으며 해가 질 무렵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부활한 테니아의 주민들과 상엽의 대면이었다.

상엽은 석상이 있는 광장에서 주민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상엽은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금 그는 절대신이 아니라 테니아의 왕으로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고마워요!”

상엽이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자 한 주민이 외쳤다.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여러 응원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숙였지만 상엽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그의 죄책감도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상엽이 그 소식을 듣기 전만 해도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었다.

“테니아에 선물을 주고 싶은데…….”

지나치지 않고 주민들이 기뻐할 수 있는 선물을 생각하느라 루시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고민을 깬 것은 전화 한 통이었다.

-담비다.

“누구?”

-네가 날 그렇게 불렀지. 담비 대장이라고.

“너 전화도 할 수 있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바로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담비 대장의 목소리는 평소답지 않게 다급했다.

-지금 당장 설악산으로 와 줄 수 있겠나?

상엽의 질문도 무시하고 담비 대장은 바로 본론을 말했다.

“무슨 일인데?”

상엽은 담비 대장이 전화를 했다는 사실보다 이런 상황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동희가 죽었다.

그 말에 상엽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창조물에 의해서 사망했다. 지금 당장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상엽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새로운 창조물들이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고 있다. 시간이 없다.

상엽은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