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97화 (297/300)

# 297

숙청이 이루어졌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상엽은 천 명이 넘는 잔당들을 하나하나 독대했다.

독대라고 해 봐야 그들의 얼굴을 빤히 보는 것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상대의 기억을 읽고 성향과 최근 행동을 살폈다.

“넌 가능성이 없어.”

그렇게 판별되면 그 자리에서 즉사였다.

“억울해하지 마. 너희들은 원래 죽어야 하는 놈들이니까. 전쟁에서 졌으니 당연한 거잖아.”

직접적으로 전쟁에 나섰던 자들이었다.

“그래도 조금 더 살았으니 이제 감사히 죽어. 먼저 간 동료들에게 안부나 전해 주고.”

400명을 제외한 절반 이상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피투성이가 된 건물 안에서 상엽은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을 보았다.

“너희들은 힘을 가질 자격이 없어. 그냥 살려 주는 것에 감사해.”

상엽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들의 몸에서 빛이 빠져나왔다.

갓코인으로 얻은 능력이 회수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끝나자 생존자들은 모두 평범한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위험한 인물인 것은 여전했다.

스킬과 근육은 일반인이지만 전투 경험이라는 것은 맨주먹으로도 상대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착하게 살아. 조금이라도 법을 어기거나 의심스러운 짓을 하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릴 테니까.”

상엽은 그들에게 분명한 경고를 했다.

지금 살아남은 자들은 그나마 전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상엽과는 직접 상대한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지난날을 후회하며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평생을 숨어 살겠다고 다짐한 자들이었다.

“이제 전부 꺼져.”

상엽이 손을 저었고 생존자들은 단숨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더러워졌네.”

상엽은 의지만으로 물을 만들고 바람을 일으켜 피범벅이 된 바닥을 말끔히 치워 버렸다.

“라면 더 먹을 사람!”

상엽의 말에 블랙 해머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좋아. 오늘은 내가 전부 끓여 준다!”

그들의 기억에 방금 전의 처참한 광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라니르는 방문자의 숙소에서 상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엽을 선두로 100명의 인간이 나타났다.

라니르는 그들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녀는 이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 창조한 종족은 100여 종이 넘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생물을 제외하고 생각과 이성을 가진 종족만 이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성장에 따라 신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신의 대륙이 융성할 때는 70종족의 신이 존재했다.

그중에 인간은 겨우 7명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라니르를 제외한 모든 신이 인간 출신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절대신을 뵙습니다.”

“인사해. 신입들이야.”

상엽은 100명의 아군들에게 라니르를 소개했다. 그런데 적설이 노골적으로 경쟁심을 표출했다.

라니르 역시 그 시선을 받더니 눈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나 피곤하게 하지 마.”

상엽의 한마디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가자.”

100명의 인간들이 방문자의 숙소를 통과했다. 숙소에 자리하던 문지기도 신이라는 신분을 확인하고는 앞을 막지 않았다.

“라니르, 지도.”

“여기 있습니다.”

라니르는 상엽의 지시로 인해 새로운 신의 성향을 파악해서 대륙에서 자리할 위치를 배정했다.

신의 제단이 중심으로 옮겨졌고 라니르의 영지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

루시의 자리 역시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라니르의 반대편에 위치했다.

모두들 성향에 맞춰 배치가 되어 불만이 없었지만 단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신입 주제에 예의가 없네.”

적설의 위치가 문제였다.

적설의 신전은 가장 남쪽으로, 제단에서 가장 멀 뿐만 아니라 영지 내의 환경도 가장 열악했다.

바로 방문자의 숙소 앞이었다.

“왜? 빨리 신전에 가서 쉬라고 배려해 준 건데.”

그들의 위치는 적설의 영지 바로 앞이었다.

“여기 빈 땅도 많잖아.”

대륙의 크기에 비해 신의 숫자가 적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아직 공석이 많았다.

“적설, 네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 라니르, 그렇게 처리하고.”

“네, 군주님.”

결국 상엽이 상황을 정리했다.

“자, 그럼 각자의 위치로 가. 설명을 해 줄 조언자는 이미 배치해 뒀으니까.”

이레라핌 중에서 뛰어난 자를 뽑아 비서로 임명을 해 두었다. 이것은 임시직이라 신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그럴 경우 해임된 이레라핌은 상엽에게 돌아오라고 명령을 해 둔 상태였다.

그렇게 인간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시작되었다.

성향은 바로 드러났다.

일단 기본적으로 사하르를 필두로 한 블랙 해머들은 명령을 받은 군인처럼 일을 열심히 했다.

반면 송연지와 사공강, 박광신은 신중하게 큰 그림을 그렸다.

“이 두 녀석이 문제인데.”

적설과 추종자였다.

“이것들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데.”

둘은 행동파였다.

“가끔씩은 게으른 게 나을 때도 있구나.”

상엽은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일단 루시가 좀 다녀와.”

“네. 알겠습니다.”

루시가 조언자로서 필요한 것들을 조율하면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루시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된 상엽은 커다란 의자 위에서 기지개를 켰다.

“여긴 지루해. 신들이 왜 자꾸 뭔가를 창조하는지 알겠어.”

상엽은 엄청난 업무가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며칠만 집중하자 대부분이 정리가 되었다.

“신을 더 안 뽑아도 될 것 같은데. 어디로 놀러나 갈까?”

그때였다.

라니르가 갑자기 상엽 앞에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신에 도전하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벌써?”

“지난번에 위험하다고 했던 자이언트들입니다.”

상엽은 눈살을 찌푸렸다.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는 그놈이 주동자야?”

“그렇습니다.”

“알았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일어나는 상엽을 보며 라니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왜? 문제 있어?”

“제가 이레라핌을 동원해서…….”

“됐어.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뭐.”

상엽은 손을 저으며 차원문을 열었다.

“금방 돌아올게. 기다려.”

그 말을 남기고 상엽은 차원문을 통과했다.

1분이 흘렀다.

라니르의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 채 정리도 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상엽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제가…….”

“처리했어.”

“네?”

“그냥 처리했다고. 뭘 놀라?”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상엽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찾아가서 잡았어. 그리고 자이언트들이 보는 앞에서 죽였고.”

1분이면 충분했다.

지도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는 것을 보며 자이언트들은 신의 힘을 분명히 보았다.

“덤빌 놈은 언제든 받아 준다고도 했고.”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준 탓에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자이언트들은 오랫동안 신의 자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다.

“빠르시군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그러는데 얘기 좀 할까?”

“말씀하시지요.”

“도대체 신들은 얼마나 게을렀던 거야?”

“네?”

라니르는 일격을 당한 표정이었다.

“아니. 일이 밀리고 있다고 해서 급하게 왔더니 별거 없잖아. 다른 신들도 밀린 업무 끝내고 할 일이 없어서 안 해도 될 일을 하고 있다고.”

“그건…….”

사실 이 부분은 라니르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대답했다.

“인간 출신들의 일 처리가 너무 빨라서…….”

“신들이 게을렀던 건 아니고?”

“죄송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다. 당연히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간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이 천 명이나 있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지금 인원도 솔직히 많아. 알지?”

“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신의 업무 방식을 바꾼다.”

상엽은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라니르는 자신의 착오를 인정하기에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 업무를 하나를 모아서 팀을 만들 거야. 전문 업무를 만들어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가.”

기존의 신들은 이 방법을 쓸 수 없었다. 하나가 완전한 존재라 믿었기에 자신의 일이나 재산, 권한과 권능을 절대적으로 지켰기 때문이다.

다른 신들도 절대 그것을 침범하려 하지 않았다. 상엽은 이것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서 효율적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시스템이 하나 더 있어.”

상엽은 이 시스템의 핵심을 말했다.

“3교대 근무로 간다.”

그 한마디로 신의 대륙에 존재하던 모든 시스템이 변했다.

여유가 생겼다.

이것은 놀 시간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스템이 구축되자 상엽은 할 일이 없어졌다. 신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절대신의 업무가 없는 것이다.

라니르는 하위 신들이 생기면 업무가 많아질 것이라 했다. 한 건에 대한 중재만 해도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엽이 선발한 신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작은 분쟁이 생기면 상엽이 당사자를 모두 불러서 10분 안에 합의를 이루어 냈다.

라니르는 인간들의 시스템에 놀라서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더니 자신도 시스템에 섞이기 시작했다.

“난 놀다 온다.”

최근 들어 상엽은 다른 차원을 여행하는 취미를 가졌다.

이것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형, 준비됐지?”

“물론이지, 동생.”

사적인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예전과 같은 말투를 사용하는 상엽과 박광신은 동시에 차원문을 만들었다.

차원문을 통과해서 도착한 곳은 우거진 숲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신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했다.

하얀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들의 복장은 숲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상대에게 불쾌함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차원을 여행할 때는 신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권능도 사용하지 않았다.

숲에 들어선 그들은 그저 평범한 두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어? 온다.”

숲에 들어서자 예상대로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헤헤. 난 여기가 천국이라 생각해.”

“나도 그래. 동생, 그냥 여기서 살까?”

그들 앞에 나타난 존재는 하얀 살결에 신비한 느낌의 얼굴을 가진 종족이었다.

“안녕하세요, 엘프 아가씨.”

엘프.

그 미모는 인간이 어떻게 꾸미더라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길게 뻗은 다리와 잘록한 허리는 물론, 나뭇잎으로 주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려 놓아서 시선을 고정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선물을 좀 드리려고요.”

상엽과 박광신은 엘프들을 향해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엘프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식물의 씨앗이 있었다.

현재 엘프들이 사는 대륙에서는 극히 드문 것으로, 좋은 치료제이기도 했다.

이를 본 엘프는 웃으며 상자를 받았다.

그 미소는 어두운 숲의 나뭇잎을 뚫고 따뜻한 햇볕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친구들이여, 저를 따라오세요.”

엘프는 뭔가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했다.

“형, 가자.”

“동생, 이건 우리들만의 비밀이야. 알지?”

“당연하지. 나도 걸리면 곤란해. 그렇지 않아도 루시가 계속 의심하고 있어. 한 가지 차원에 너무 많이 간다고.”

“갓 컴퍼니도 여기까지 손을 뻗칠 모양이야. 어떻게든 막고는 있는데 송연지가 너무 똑똑해서 막을 수가 없어.”

“괜찮아. 내가 혹시나 해서 라니르한테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신은 괜찮대. 인간의 규율은 과거니까 잊어버리래.”

“죄책감이 사라졌어. 라니르 만세.”

현재 엘프들이 살고 있는 차원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서 신들이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송연지가 상엽과 박광신의 방문 기록을 발견하면서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거네.”

“그렇지. 동생, 후회 없이 즐기자고.”

그들은 의지를 다지며 엘프 숲의 중앙으로 갔다.

빛 가루가 떨어지는 생명의 나무 아래에는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중한 선물을 받은 엘프족은 상엽과 박광신을 가장 좋은 자리에 앉히고 신선한 과일과 깨끗한 물을 대접했다.

그곳에는 200여 명의 엘프들이 있었고, 전통에 따라 모두 다가와 새로운 친구를 향해 볼에 키스를 해 주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엘프의 키스는 단순히 입술이 닿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머리가 맑아지고 은은한 향기가 오랫동안 남았다.

그리고 오늘은 이걸로 끝나지 않을 분위기였다.

“그대들은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고 신뢰를 얻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기쁨에 보답을 하고 싶으니 원하는 것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상엽과 박광신은 이를 마다하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엘프들은 그 말을 듣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이 허락했고, 곧바로 축제가 벌어졌다.

엘프와의 축제가 끝난 뒤.

박광신은 잠시 상엽의 거처에 머물렀다. 한참 지난 시간을 회상하던 그는 상엽에게 물었다.

“동생, 나 신이 되길 잘한 거 같아. 상상력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어.”

“그 상상력은 항상 나한테 먼저 보여 줘야 하는 거 알지?”

“당연하지. 절대신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보여 줄게. 그리고 동생, 이제 밝힐 때가 된 거 같아.”

박광신은 심각한 표정으로 상엽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엘프만 있는 것이 아니야.”

“그런 비밀이…….”

“서큐버스라고 들어 봤어?”

“들어는 봤어. 전문가 중에서도 톱이라고 들었어.”

“내가 그녀들을 찾아냈어.”

“사랑해.”

상엽은 거칠게 박광신을 안았다. 그들의 우정은 그렇게 함께할수록 더욱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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