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
“우와, 이게 다 뭐야?”
상엽은 이상한 공간에 앉아 있었다.
본인의 권능으로 만들었음에도 그 모습은 기괴하기만 했다.
무수히 많은 별이 박힌 우주와 같은 방이었다.
가운데에 화려한 조각과 문양이 새겨진 의자가 있었고, 주변에는 수백 개의 거울이 떠 있었다.
“차원이 이렇게 많아?”
각각의 거울에는 상엽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절반 정도는 생명체가 없이 자연만 존재하기도 했다.
“지금 보시는 것은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절대신의 방.
라니르가 설계를 하고 상엽의 권능으로 완성된 방이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차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간계는 그저 수많은 차원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렇게 작은 존재인데 참 아등바등 살았네.”
“그 치열함이 절대신을 만들었습니다. 군주님은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든 이런 기회는 있어야지.”
상엽은 SF 영화를 처음 보는 아이처럼 전혀 다른 차원의 모습을 감상했다.
그런데 라니르는 상엽이 그저 감상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여길 보시죠.”
라니르도 차원을 볼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이는 상엽이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상엽의 의자 앞에 거울 하나가 다가왔다. 그리고 거울은 점차 커지더니 방 전체의 배경을 바꿔 놓았다.
거울로 보던 차원으로 직접 들어온 것이다.
그곳은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가 있는 곳이었다. 다만 인간계와는 다른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그곳의 동물들이었다.
“뭐가 이렇게 커?”
호랑이를 닮은 맹수는 길이만 20미터에 달했다. 그런데 이에 맞서는 거대 구렁이는 100미터에 육박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두 생물체의 가운데에 몽둥이 하나가 떨어졌다.
단 한 방에 20미터 호랑이의 머리를 깨트리고 100미터 구렁이의 머리를 뜯어 버리는 생물체는 놀랍게도 인간과 유사했다.
“자이언트들입니다.”
키만 50미터에 근육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피부는 철갑처럼 단단했다.
작은 산이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에 상엽은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곳이네.”
“인간계와는 만날 일이 없는 차원입니다. 하지만 군주님께서는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왜?”
“최근 그들의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되었습니다. 야토르라는 인물인데 그는 신앙을 믿지 않습니다.”
“그게 왜?”
“야토르는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며, 자신이 신이 되어 종족을 번영시킬 거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신에 도전할 만큼 강력한 자입니다.”
상엽은 그제야 라니르가 그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이유를 알았다.
“견제라도 하라는 거야?”
“군주님께서는 견제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아니라 절대신이니까요.”
라니르는 특유의 관능적인 웃음을 보이며 설명을 계속했다.
“군주님께서 결정하시면 저 차원에는 종말이 시작될 것입니다. 바다가 육지를 덮을 것이며, 견딜 수 없는 혹한이 시작됩니다. 군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생명체는 누구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신에게는 종말조차 이처럼 쉬웠다.
일반 신이라면 메시아를 정해서 천천히 계획에 따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저항하는 생명체에 의해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절대신은 달랐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듯이 단 한 마디만 하면 종말이 시작되는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저항할 수도 없었다.
“됐어. 내버려 둬.”
“제가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그 후에도 상엽은 여러 차원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 눈에 띄는 다른 차원을 발견했다.
“외계인이 진짜 있었어.”
작은 체구에 인간과 흡사한 외모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카바크라고 불리는 종족입니다.”
카바크는 평균 신장이 1미터가 조금 넘지만 엄청난 수준의 과학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의 지나친 발전으로 신체는 오히려 약해졌습니다.”
상엽은 라니르와 함께 카바크의 문명을 직접 보았다. 그러다 라니르가 막 제조가 끝난 식량 공장에서 작은 알약 하나를 집어 상엽에게 건넸다.
“드셔 보시겠습니까? 가끔씩 신들이 간식으로 먹기도 합니다.”
“이게 뭔데?”
“카바크인의 하루 식사입니다.”
알약 하나로 식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배만 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약은 입에 닿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맛을 선사했다.
일반적으로 요리한 음식의 맛을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영양도 충분한 것 같은데 몸이 왜 이렇게 된 거야?”
“운동 부족입니다. 그리고 몸이 커질 이유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진화가 되었습니다. 2천 년 전만 해도 인간계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였습니다.”
2천 년 만에 인류가 이렇게 진화해 버린 것이다.
“엄청나긴 하네.”
그들은 집 안에서조차 걸어 다닐 필요가 없었다. 침대와 소파, 이동 수단을 대체하는 휠체어 모양의 자가용이 있었고, 이것은 시스템으로 제어되어 외출에까지 이용되었다.
도시는 땅과 공중, 하늘을 포함한 수백 개의 도로가 형성되어 있었고 단일화된 네온사인으로 인해 멋진 풍경이 연출되었다.
“지금 이곳은 감정을 제어하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감정과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하는 감각이라면…….”
“뭐든 가능합니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고, 잠자리의 쾌락도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것도 수십 배로 강렬하게 말입니다.”
상엽은 그 감각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시도하진 않았다.
“낭만이 없잖아.”
“낭만을 뛰어넘은 편리함 때문입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안 서네.”
신체의 진화를 역행할 정도로 과학이 발달해 버렸다. 그나마 대량 학살 무기는 제어가 되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여기 지식은 꽤 쓸 만하겠어.”
“지식을 옮기실 생각이십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제한된 공간에만.”
상엽은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인간계에 신의 도시를 만들 거야.”
“비난하는 자도 생기겠군요.”
“특권층이 생기는 거니까. 그런데 인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네?”
“군주님에 대한 당연한 관심입니다. 인간계도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인간계에는 그런 이벤트가 필요해. 너무 절망적인 상황이라.”
그동안의 전쟁으로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서민 경제는 최악의 수준이었다.
상엽은 자연스러운 회복보다는 빠른 복구를 원했다.
“여긴 나중에 따로 살펴봐야겠어. 누나랑 약속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상엽은 라니르와 함께 차원의 방을 나섰다.
신의 도시.
인간계에는 원동력이 필요했다.
이미 존재하는 모든 언론은 상엽이 절대신이 되었음을 보고한 후였다.
루시는 이 부분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렸다.
-전쟁이 끝났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상엽이 절대신이 되었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가졌다. 이젠 그 희망에 대한 보답을 할 차례였다.
“여기로 결정하셨습니까?”
상엽은 완전히 폐허가 된 호주를 둘러보고 있었다.
호주는 어떤 생명체의 흔적도 없는 죽음의 땅이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죽음의 땅이 신의 도시로 바뀔 거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루시는 상엽의 결정에 대해 어떤 이견도 없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누군가는 훌륭한 선택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하하하! 절대신을 믿은 보람이 있군요.”
스트라인버그였다.
그에게 죽음의 대지는 하얀 도화지와 같았다. 마음껏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최고의 도시로 만들어. 필요한 건 전부 줄 테니까.”
“필요한 게 있지요.”
스트라인버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인구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야 도시가 되지 않겠습니까?”
“인구는 충분할 거야.”
상엽은 이미 생각한 바가 있었다.
“테니아 시민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지.”
“그들을 전부 되살릴 생각이십니까?”
상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스트라인버그는 그제야 잠시 말이 없었다.
상엽은 항상 그렇듯이 청바지에 무늬가 없는 티셔츠를 입고 편안한 말투를 사용했다.
가끔씩 스트라인버그가 친구처럼 가벼운 말을 해도 그냥 받아 주었다. 오히려 함께 장난을 치는 경우도 많았다.
“제가 절대신께 무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돼. 내가 절대신이 된 것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지 너희들이랑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절대신에 어울리는 아량이시군요.”
“알면 제대로 만들어.”
“어떤 차원에도 존재하지 않는 최고의 도시가 될 것입니다.”
“기대할게.”
스트라인버그는 곧바로 신의 도시 건설에 착수했다.
신의 도시는 특별한 도시였다. 이곳의 주민들은 당연히 선택받은 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엄청난 넓이였고 여기에는 꽤 많은 인구가 상주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는 오히려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의 코드 제로 지부로 돌아온 루시가 단둘이 있는 틈을 이용해서 상엽에게 말했다.
코드 제로는 덴마크 본부를 중심으로 30개의 지부가 있었고 베이징도 그중의 하나였다.
코드 제로는 이미 세계 정부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 집단으로 올라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경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발전이 될 것입니다.”
상엽은 이런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걸 알았다.
“코드 제로에서 당연히 보완책을 준비했을 거 같은데?”
상엽의 질문에 루시가 웃었다.
“여기 있습니다.”
“내가 너무 솔직하게 반응해서 재미없었지?”
“조금 실망하긴 했습니다. 당황하는 코드 원을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신이 된 상엽은 수많은 지식을 가졌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직접 할 필요는 없었다.
코드 제로는 신의 도시를 중심으로 균형 있는 발전이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상엽은 그중의 하나를 고르기만 하면 됐다. 물론 발전한 지식을 바탕으로 몇 가지 변경 사항을 지시하면 그것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빠른 속도로 보완책을 결정한 상엽은 잠시 소파에 앉으며 루시가 내어 주는 차를 마셨다.
“루시, 너한테 선택권을 줄게.”
“무슨 선택권 말씀이십니까?”
상엽은 질문을 기다리는 루시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신이 좋아, 대통령이 좋아?”
무엇이든 그녀가 원하는 걸 줄 생각이었다.
“미리 말하지만 이 제안은 네가 첫 번째야.”
상엽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루시였다.
“명령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해도 되는 것입니까?”
“맞아.”
“그렇다면 둘 다 거절하겠습니다.”
이건 상엽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잘못 이해한 거 같은데. 내가 널 신으로 만들어 준다니까? 그리고 원한다면 신의 도시를 대표하는 대통령 자리를 줄 거야.”
“거절합니다.”
그녀의 대답은 야속할 정도로 단호했다.
“왜?”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저도 여유롭게 쉬고 싶습니다. 코드 원의 비서 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상엽이 절대신이 되면서 루시의 업무가 대폭 줄어들었다. 치열한 전쟁이 끝났고, 코드 제로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스스로 하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룹 테리아가 코드 제로와 함께하면서 루시가 할 일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스스로 움직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위험이 없기에 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을 거절하겠다? 잘 생각해 봐. 여신이 되는 거잖아. 많은 사람들이 신전을 만들어서 루시를 찬양할 텐데?”
“죄송합니다. 그래 봤자 공무원이지 않습니까?”
“너…….”
상엽은 실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눈치챘구나?”
상엽에겐 다급한 숙제가 있었다.
-신을 선발해야 돼.
그러지 않으면 신의 업무에 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알았어. 사하르 좀 불러 줄래?”
루시는 인사를 하더니 집무실을 떠났다.
5분 후.
“거절하겠습니다.”
“야! 신이라니까? 신 몰라?”
“전 신이 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지금 이대로 대장님을 믿으며 살겠습니다. 제 신앙은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신이 되게 해 준다니까…….”
“죄송합니다.”
사하르도 신이 되길 원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