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92화 (292/300)

# 292

데스 서클.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궁극의 스킬이 펼쳐졌다.

그 스킬을 쓰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미안해.’

상엽의 눈에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수많은 동료가 보였다.

그들을 향해 스킬을 펼쳐야 했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상엽은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 최고의 스킬을 펼쳤다.

평소보다 범위가 좁아진 데스 서클은 그만큼 압축된 힘을 선보였다.

우우웅!

데스 서클이 발동되면서 그 공간이 완전히 사라졌다.

블랙홀.

그 공간은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하지만 상엽을 제외하고는 이미 빨아들일 생물이 없었다.

허무한 공기를 빨아들이던 블랙홀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한 공간으로 재생되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은 남았지만 존재하는 자가 없었다.

남은 건 상엽 혼자였다.

쓸쓸한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간질였지만 상엽은 한참 동안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주인님.

추종자가 상엽의 정신을 깨웠다.

-해내셨습니다.

전투가 끝났다.

신의 대륙에 남아 있던 모든 신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가자. 친구들을 빨리 살려야 돼.”

절대신의 자격을 얻은 상엽은 이 생각밖에 없었다.

무너진 신의 제단 앞에 서서 상엽은 눈을 감았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았지만 그 방법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제단에 들어오면서 자연히 획득한 지식이 있었다.

상엽이 눈을 감는 동안, 무너진 제단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제단은 곧 완전한 모습으로 되돌아왔고, 상엽을 환영한다는 듯이 하얀 빛을 뿌렸다.

하얀 빛은 따듯했다. 그 온기에 상엽은 눈을 떴다.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그러다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상엽은 빛을 뿜어내는 제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상엽의 손이 다가올수록 제단은 더욱 강렬한 빛을 뿌렸다.

툭.

그렇게 상엽의 손이 닿았다.

슈유육!

제단의 빛은 심장에서 분사된 피가 몸을 돌듯이 자연스럽게 상엽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마지막 남은 빛마저 모두 흡수되었을 때, 상엽은 한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절대신.’

상엽은 드디어 절대신이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신이었고 모든 지식과 권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라니르.”

상엽은 가장 필요한 이름을 불렀다. 절대신으로서의 행보를 가장 잘 도와줄 이였다.

“절대신을 뵙습니다.”

그저 살린다는 의지와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충분했다.

소멸한 신을 되살리는 것이 지금 상엽에겐 이처럼 간단했다.

“축하드립니다.”

“너도 축하해. 네가 원하는 대로 2인자가 됐으니까.”

“감사합니다. 저 스스로에게도 축하하고 있어요.”

라니르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웬일인지 상엽과 눈을 마주치진 않았다.

“내가 못생겨졌어?”

“감히 절대신에 대해…….”

“하던 대로 해. 그게 내 규칙이야.”

“네.”

그제야 라니르는 웃으며 상엽을 보았다.

“키스해도 될까요?”

“짧게 해. 할 일이 많아.”

라니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상엽과 긴 입맞춤을 했다.

“명령보다 길었어.”

“죄송해요.”

“이번만 봐준다.”

상엽은 축하 인사를 충분히 받고 할 일을 시작했다.

“데빌과의 전투에서 죽은 자들을 전부 살릴 거야.”

“뭐든 가능하십니다. 제한도 없고, 후유증도 없습니다.”

“절대신은 참 편하네.”

“다만…….”

라니르가 말끝을 흐리자 상엽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뭐가 있는 거야?”

“균형을 잘 맞추셔야 합니다. 무조건 살리고 죽이는 것은 균형을 무너트려 많은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주 귀찮아지실 것입니다. 때로는 원치 않는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신의 의무라는 건가?”

“천 명의 신이 하던 일을 절대신 혼자서 해야 하니까요.”

상엽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

“그 말은 엄청난 업무를 이야기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업무 처리를 대신할 신을 만드시면 됩니다. 하지만 신을 창조하는 것은 꽤 복잡한 작업이라 노력이 필요하십니다. 물론 대충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방법은 오히려 절대신을 더 귀찮게 할 것입니다.”

상엽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이를 본 라니르는 고개를 숙이며 숨겼던 이야기를 했다.

“물론 쉬운 방법은 있습니다.”

“뭔데?”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를 신으로 만들면 됩니다. 물론 그의 성향이나 야망은 잘 파악하셔야 합니다.”

“에이, 그럼 쉽잖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군주님의 장점입니다.”

라니르까지 인정하자 상엽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데빌과의 싸움에서 나와 함께 싸웠던 모든 존재를 살려.”

상엽이 빛을 잃은 제단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라니르의 뒤에 수만 개의 빛기둥이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만 개의 빛기둥은 상엽조차 놀랄 정도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빛기둥이 사라졌을 때는 불과 30분 전에 소멸한 모든 이들이 상엽 앞에 서 있었다.

“산적 오빠!”

반응은 송연지가 가장 빨랐다. 그런데 그녀는 예전처럼 빠르게 달려오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상엽이 먼저 뛰어가서 그녀를 안아 주었다.

“제가 약해지니까 오빠가 친절해지네요.”

“절대신 오빠잖아. 절대 친절해서 절대신이야.”

“헤헤. 이대로 쭉 있었으면 좋겠네요.”

송연지는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즐기기에는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내 차례야. 비켜.”

적설이었다.

송연지가 불쾌하다는 듯이 고래를 돌리자, 적설은 안기는 것 대신 키스를 해 버렸다.

긴 키스를 끝낸 적설이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상엽에게 물었다.

“안 피했네.”

“절대신이라니까. 절대 친절한 신. 피하는 건 친절하지 못해.”

“변태 산적!”

결국 송연지가 화를 내며 돌아섰다.

“성질 죽여. 다시 살아났잖아.”

그 후로도 상엽은 다시 살아난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을 하기 전에 그들에게 말했다.

“힘은 다시 돌려줄 거야. 물론 조금 다른 힘일 수도 있어.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이 많을 테니까 심심할 걱정은 없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동료들은 모두 웃음을 보였다.

“대장님! 축하드립니다!”

블랙 해머 중에 누군가 외쳤다. 그제야 모든 이들은 축하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오빠! 축하해요!”

토라졌던 송연지가 뒤를 이었다. 그 후로 이레라핌까지 가세해서 일제히 상엽을 찬양했다.

“절대신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레라핌의 대장이 무릎을 꿇으며 충성을 표했다. 이를 시작으로 5만 명의 병사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 앞에 있던 블랙 해머들 중에서는 사하르가 먼저였다.

“대장님께서는 저희들의 신이십니다.”

사하르답지 않게 긴 말이었다. 그 의미를 아는지 블랙 해머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사공강과 송연지, 적설, 라니르도 이 순간만큼은 친분보다 예의를 선택했다.

“차라리 술이나 가지고 와서 퍼질러지게 마셔.”

상엽은 이런 의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령이야! 마음껏 놀아! 이 세상은 전부 우리 거니까!”

그 말에 블랙 해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환호성은 순식간에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환호성을 듣자 상엽은 그들이 살아왔음을 진심으로 느꼈다.

“다들 고마웠어.”

그 인사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축제가 준비되고 있었다.

-전 잠시 물러나 있겠습니다.

라니르는 제대로 된 축제를 위해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언제든 부르면 나타날 것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녀는 동희를 초대할 것을 알기에 스스로 자리를 피했고, 상엽도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게 될 테니까.”

라니르의 도박은 성공했고 상엽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였다.

“유령아, 잠시 혼자 있고 싶어.”

축제가 준비되는 동안, 상엽은 추종자마저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신의 제단을 떠나서 진실의 신전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혼자 있기에는 쓸쓸함이 느껴질 정도로 큰 공간에서 상엽은 걸음을 멈췄다.

“후우.”

왠지 긴장이 되었다.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기 때문이다.

“누나.”

그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다.

“누나를 살려.”

상엽의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

사랑이라는 간지러운 단어를 선뜻 말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였다.

어느새 상엽의 앞에 반짝이는 빛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빛은 서서히 하나로 뭉치더니 사람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인간이 부활했다.

청초한 모습으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 인간.

치열했던 싸움에 비해서는 너무나 약하고 평범한 인간이었다.

“누나.”

드디어 누나가 부활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금세 흐려졌다.

누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상엽의 눈에 눈물이 고여 앞을 가린 것이다.

크게 눈을 깜빡이자 다시 누나가 보였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함에도 상엽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상엽은 천천히 다가가 누나를 안았다.

“악!”

그런데 누나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다 쓰러지려 했다. 이에 상엽이 빠르게 움직여 넘어지는 누나를 잡았다.

“누, 누구야?”

누나는 당연하게도 상엽을 알아보지 못했다. 상엽의 품에서 몸을 떨며 두려움을 보였다.

“누나. 나야, 상엽이.”

상엽은 그런 누나가 조금도 섭섭하지 않았다.

“사, 상엽이?”

“응. 내가 많이 변했지?”

상엽이 친절히 설명을 했지만 누나는 믿지 못했다.

“괜찮아. 천천히 해. 전부 알게 될 테니까. 대신 조금만 이대로 있자. 조금만.”

상엽은 그제야 누나를 힘껏 안았다.

두려움에 떨던 누나는 어느 순간 긴장이 풀렸는지 굳었던 몸이 편안해졌다.

“내 동생이라고…….”

누나는 그 말을 되뇌었다.

같은 시간.

송연지와 적설은 상엽처럼 개인적인 공간에 있었다.

“아빠!”

송연지는 아이처럼 울었다. 그녀는 50대 초반 사내의 품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상엽이 그녀의 아버지를 살려 준 것이다.

이미 갓코인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던 송연지의 아빠는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네가 날 살렸구나.”

“아니야. 산적 오빠가 해 줬어.”

“산적 오빠라니?”

“있어. 변태이긴 한데 많이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야.”

송연지는 그렇게 말하며 아빠 품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송연지의 아빠는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 시간만큼은 기다려 주기로 했다.

적설 역시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나.”

그녀의 동생은 작고 귀여웠다. 큰 혼란을 겪는 듯했지만 적설을 보자 양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모든 문제가 생길 때면 누나가 거짓말처럼 나타나 해결해 주었다.

지금도 그랬다.

누나의 품에 안기자 더 이상 아무것도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저 따뜻하고 편안했다.

“잘 돌아왔어, 내 동생.”

적설은 동생을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축제 시작이 코앞이었다.

그때까지도 상엽은 누나와 함께 있었다.

무려 3시간이 지나서야 누나는 상엽을 믿기 시작했다.

죽기 전의 고통이 컸던 탓에 믿음보다 불신이 컸기 때문이다.

그 상처도 상엽의 기다림과 노력으로 결국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상엽이 걱정할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누나가 널 두고 가서…….”

“괜찮아. 이제 이렇게 만났잖아.”

누나는 열아홉 살의 모습이었다. 상엽에겐 가장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누나는 반대였다.

20대 후반의 건실한 청년이 된 동생을 보자 많은 감정들이 뒤엉켰다.

많은 이들이 절대신이 된 상엽의 겉모습이 신비롭고 강하다고 느꼈지만 누나는 아니었다.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구나.”

오직 전투를 위해 단련된 상엽의 몸을 보면서 누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안타까운 사연들을 떠올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한마디에 상엽은 진짜 누나가 돌아왔음을 알았다.

“누나, 이제 행복하자. 우린 그럴 자격이 있잖아.”

“그래. 누나가 뭐든 열심히 할게.”

누나는 아직 절대신이라는 단어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모든 과정을 믿지 못했다.

“천천히 해. 누나는 이제 세상 위에 존재할 테니까.”

“그런 거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

욕심을 버린 누나의 말에 상엽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그 세상 위에 나도 있을 테니까.”

상엽은 다시 누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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