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상엽의 이름이 지워진 것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아침 뉴스의 메인 기사로 언급이 되며 위기 상황으로 몰아갔다.
실제로 상엽이 사라지면 한국을 지키는 가장 막강한 방어벽이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 살아 있어. 걱정하지 마.”
상엽은 갓랭킹을 확인하고 10분도 되지 않아 박광신의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 터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산적 오빠!
박광신에 이어 오랜만에 송연지까지 전화가 왔다.
“난 잘 살고 있어. 걱정하지 마.”
-시크릿 유산을 완성한 거예요?
송연지는 트레저 헌터답게 유산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대단하네요. 전 오랫동안 찾다가 포기했는데.
“그랬어?”
-어쨌든 무사하니까 다행이에요.
“넌 어떻게 지내?”
-매일 똑같아요. 유물 찾으러 다니고, 완성되면 신전에 들어가고.
“신전이 무슨 노래방이냐? 용돈 받으면 가는 애들처럼 말하네.”
-뭐 나한테는 다르지 않아요. 이번에 들어가는 신전만 통과하면 10번째예요.
상엽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벌써 9개의 신전을 통과했다고?”
-기다려요. 앞으로 3개만 더 통과하고 당당히 오빠한테 결투 신청할 거니까.
“왜 12개나 필요한데?”
-제가 완벽한 전사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목록을 정했거든요. 이제 3개 남았어요.
송연지의 갓랭킹은 현재 480위로 기록되어 있었다.
예전에 비해 많이 상승했지만 최고 수준의 랭커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상엽은 그녀의 실력이 상위 랭커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신전의 스킬과 유산만 강화를 했다면?’
갓랭킹의 한계 중의 하나였다. 만약 송연지가 모든 코인을 신전에서 획득한 스킬과 유산에만 투자했다면 그 위력은 랭킹을 무시할 것이다.
“역시 넌 똑똑해.”
-그걸 알고 있는 오빠도 대단해요. 다들 저한테 멍청하다고 하거든요.
실제로 한국을 지키기 위해 트레저 헌터를 떠난 송연지는 많은 이들에게 비운의 여인으로 불리고 있었다.
꽃길을 마다하고 자갈밭을 선택한 여인으로 불렸고 현재는 그 이름조차 잊히고 있었다.
“어쨌든 조심해.”
-걱정 마세요. 이제 진짜 노래방 가는 거 같으니까.
“알았어. 그래도 조심해.”
상엽은 몇 번이나 조심하라고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신전 중독자.”
상엽과 함께하던 친구들은 전부 특이한 방향을 선택했다.
송연지는 신전 전문 탐험가가 되었고, 동희는 연금술에 빠진 괴짜 박사가 되고 말았다.
“나만 정상이야. 그래서 내 이름이 정상엽이지.”
혼자 스스로의 길에 만족하던 그는 본부를 떠나기 전에 코드 제로의 창설자와 만났다.
“준비됐습니다.”
상엽이 먼저 요청한 자리였기에 늦지 않게 준비된 차량에 올랐다.
테리아 그룹 부회장 레노.
그는 상엽이 먼저 요청할 때까지 만나자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날 잊은 줄 알았어.”
“그럴 리가요. 이미 우리 그룹의 마스코트가 됐는데.”
레노는 직접 차를 따라 주며 웃음을 보였다.
“언제 만날 수 있나 기다렸습니다.”
“그 정도는 마음대로 해. 그 정도 도움은 받고 있으니까.”
“상엽 씨의 중요한 시간을 빼앗으면 안 되지요.”
쪼르르.
상엽의 찻잔에 차가 채워졌다. 무심코 찻잔을 들던 상엽은 잠시 손을 멈추고 한 곳을 응시했다.
“왜 그러십니까?”
“이 마크 말이야.”
레노의 책상뿐만 아니라 찻잔에도 테리아 그룹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월계관처럼 나뭇잎이 원형으로 엮여 있고 그 중앙으로 빛이 비치는 마크였다.
단순화되긴 했지만 상엽은 이 마크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많이 단순화시켜서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이거 내가 아는 마크 같은데.”
“이제 눈치채셨습니까?”
“테리아의 은총. 내가 가진 유산이잖아.”
상엽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려 주었던 회생 스킬이 있는 유산이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같은 것은 우연입니다. 마크는 제가 직접 변경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테리아 그룹은 갓코인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사용하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마크는 테리아라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레노가 직접 변경을 지시했다.
“속죄의 신 테리아. 그때 저는 그게 필요하던 때였습니다.”
“아픈 사연이면 말하지 않아도 돼.”
“하하. 아프긴 했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로 수천 명이 죽어 버렸으니까요.”
“무기를 말하는 거야?”
“아닙니다. 신기술 개발 현장에 폭발 사고가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원자력 에너지의 수백 배쯤 되는 발전소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결국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말았지요.”
그 당시를 떠올린 레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도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게 속죄하는 길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결국 용기가 부족해 살게 되었는데 테리아라는 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크도 바꾸게 되었지요. 겉으로는 죽자고 했지만 살고 싶어서 안달 난 이기적인 인간이 어떤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인연을 가져온 것이지요.”
말을 끝맺는 레노의 표정은 허탈함이 있었다.
“아직도 많이 아픈가 보네.”
“그래도 이젠 거의 잊었습니다. 여전히 이기적이지요.”
“뭐 그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을게. 그런데 날 찾은 것도 테리아와 관련이 있어?”
“왠지 정이 가긴 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유산을 가진 사내가 후보 명단에 있었으니까요.”
상엽을 직접 찾아온 것은 단순히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상엽 씨가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길 바라긴 했습니다. 물론 평가는 객관적으로 했지만 말입니다.”
레노는 과거의 이야기를 할 만큼 상엽을 믿고 있었다.
“테리아의 특수 스킬이 회생이야. 어떤 상처든 전부 회복하는 거지.”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속죄했으니 지금처럼 회생한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그렇습니까?”
그 말이 레노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는 잠시 사라졌던 특유의 웃음을 다시 보이며 빈 찻잔을 다시 채웠다. 그때부터 그들은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분위기를 풀었다.
“그 당시 상황을 좀 자세히 말해 주시겠습니까?”
레노는 상엽의 무용담을 듣고 싶어 했다. 특히 코드 제로와 함께 일한 부분을 아이처럼 동공을 빛내며 들었다.
“마치 영화 같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해남도에서 루시와 펼쳤던 작전을 들을 때는 할아버지를 조르는 아이처럼 상엽을 재촉하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 있는 시간을 이야기로 채우던 그들은 거의 동시에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인지했다.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있지 않으십니까?”
“아. 맞다. 그것 때문에 만나자고 했는데.”
상엽도 정신을 차리고 본론을 꺼냈다.
“운남 말이야. 제대로 운영해 볼 생각 없어?”
“아. 그것 때문이십니까?”
“내가 국가 운영에 재능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
깔끔하게 부족함을 인정하자 레노는 웃고 말았다.
“테리아 네트워크라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국가 건설 프로젝트입니다.”
“그래? 하지만 지금 운남을 운영하는 정도로는 부족해.”
“알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코드 원과 저도 의논을 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잘됐어. 그럼 나랑 의논하지 말고 마음대로 해.”
“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상엽은 레노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널 믿어. 뒤에 가서 간섭하지 않는다고는 말 못 해. 하지만 적당한 수준만 넘어가지 않으면 관여하지 않을 거야.”
“그 적당한 수준이라는 게 누구 기준입니까?”
“당연히 국민이지. 악덕 정부는 안 돼. 그러면 내가 죄책감에 잠도 못 잘 거야.”
“불면증에 걸릴 일은 없으실 겁니다.”
레노도 이미 상엽과 비슷한 기준을 정해 놓았다.
“지금까지는 일부러 코드 원의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적으로만 접근했습니다. 테리아 네트워크가 시작되면 국가로서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미리 준비했던 거야?”
“코드 원을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레노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정식 정부가 코드 원의 이름 아래 들어설 것이고, 각 부서장 아래로 책임 간부들은 운남 소속으로 뽑겠습니다. 그리고 테리아 그룹의 공장 이전과 자원 개발이 확장되면 자연히 일자리가 늘고 경제가 돌아갈 것입니다.”
그 후로 복잡한 이야기들이 30분이나 계속되었다.
경제뿐만 아니라 치안과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상엽이 원하는 주제가 아니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들었다.
“어떻습니까?”
“훌륭해.”
“감사합니다.”
상엽은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믿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하는 거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그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운남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모든 권한은 코드 원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겠습니다.”
“알았어. 그거면 됐어.”
서로의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 할 이야기 없으면 이제 갈게.”
“이야기가 없길 바라는 것 같군요.”
“맞아. 중간에 그만둘까 수십 번은 생각했어.”
“하하. 그럼 이제 그만 보내 드리겠습니다.”
상엽은 그제야 웃으며 레노의 사무실을 나왔다.
오랜만에 운남에 복귀한 상엽은 도시가 안정되어 있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치안이 안정되었을 뿐, 경제 수준이나 사회 시스템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나마 일자리가 늘어서 도시에 활기가 넘쳤지만 체계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레노가 직접 나설 거야.”
“연락받았습니다. 이제 코드 원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부분을 묻는 거야?”
“중국 전쟁에 관해서입니다. 동력을 많이 잃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중국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앙숙이던 자들은 이미 전쟁을 치러 승패를 결정지은 상황에서 강력한 중국 정부가 부활을 예고했다.
게다가 인간 변종까지 끼어든 상황이라 중국 전쟁은 예전만큼 치열하진 않았다.
“이제 전쟁에 나서면 결국 중국 정부와 싸우게 되는 거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길드들이 중국 정부가 내민 손을 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냥 넘겨줄 수는 없잖아. 중국 정부가 예전처럼 운영을 하면 이 땅은 영원히 가난해질 테니까.”
“그럼 영토 확장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 싸움은 결국 갓코인 유저끼리의 경쟁이야. 운영은 정부가 하지만 싸움은 갓코인 유저가 해야 하니까.”
상엽은 이미 운남으로 오기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신의 상점을 봐야겠어.”
상점의 자격을 채우는 데까지 단 한 가지 목록이 남았다. 독일에서 많은 변종을 잡았지만 여기서 획득한 코인은 유산 비밀 기록을 10단계로 강화하는 데 모두 소모했다.
‘감각만 10단계까지 가면 신의 상점이야.’
상엽은 남들보다 앞서기를 원했다. 결국 그것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지켜 주는 기반이 될 것이다.
“1억 코인만 모으자.”
그는 목표를 잡았고 이를 위해 바로 행동에 나섰다.
상엽이 도착한 곳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너무 위험합니다. 어떤 길드도 그곳을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대형 길드 3개가 공략에 나섰다가 실패한 지역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세계 10위권이라 평가받는 길드가 전면전을 나섰다가 일주일 만에 전멸하기도 했다.
그 후로는 아무도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인간 변종에게 점령당한 나라.
이젠 이런 지명도 의미가 없었다. 나라 전체가 변종에게 장악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곳에 남은 인간은 곧 변종이 될 후보이자 변종 인간의 노예들뿐이었다.
타락한 신도.
진실의 신 성아는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1억 코인만 모으면 돼. 그 전에는 안 나올 거야.”
상엽은 루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으로 접근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코인을 가장 빠르게 모을 수 있는 지역이었고, 두 번째는 성아의 성장을 위해서였다.
-타락한 신도들을 처리하면 제가 힘을 빨리 되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지금 사태의 비밀을 알고 있을 수도 있어요.
신의 상점.
그리고 비밀에 대한 접근.
두 가지의 목표를 위해 상엽은 인간 변종의 국가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