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
상엽의 신의 대륙 점령은 계속되었다.
다섯 번째 상대는 라니르와 달리 전투를 택했다.
세 번째 상대였던 벨로테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법과 같은 공격에 자신이 있던 자였다.
결국 그는 벨로테가 상엽을 몰아붙였던 것을 상기하며 전투를 택했다.
상엽을 소멸시키면 대륙을 통일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싸움은 치열했다.
상대는 끝까지 거리를 유지하며 강력한 마법으로 상엽을 압박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다. 방패를 앞세운 상엽이 마법을 뚫고 결국에는 상대의 허리에 해머를 꽂은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신을 죽이는 공식으로 인해 상대는 그대로 소멸하고 말았다.
“라니르.”
“네, 군주님.”
상엽의 명령에 의해 뒤로 물러나 있던 라니르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뭐해? 정신 차려.”
“죄송합니다.”
라니르는 상엽의 전투를 보고 넋을 잃었다.
‘내 선택이 옳았어.’
그녀가 상엽을 선택한 것은 이길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불리하긴 해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절대신이 될 사내야.’
이런 판단을 했고, 애초에 그녀는 절대신이 될 생각이 없었다. 2인자로 충분히 만족하는 성향이었다.
그런데 상엽의 전투를 보고 나자 그런 자신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전투를 위해 태어난 인간이야.’
본능과 이성을 오가며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모습은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키스해도 될까요?”
“어울리는 상황이 아니야.”
상엽은 그녀의 감정을 단박에 거절했다. 라니르는 그런 단호한 모습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이에 사적인 감정을 지우고 필요한 말을 했다.
“군주님께서는 이제 충분히 신의 권능을 얻을 자격이 되셨습니다.”
“신의 권능?”
상엽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모든 신은 가진 바의 힘에 따라 권능을 가집니다. 그리고 차원을 직접 관리할 수 있습니다.”
성아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권능은 그냥 가지게 되는 건가?”
“아닙니다. 신의 제단에서 그 자격을 증명해야 합니다. 절대신이 되는 것도 신의 제단에서 판단합니다.”
“지금 내가 어떤 권능을 가질 수 있지?”
“이미 군주님께서는 현존하는 신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장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선언하시면 많은 권능을 가지시게 됩니다.”
신들의 대륙은 단순히 경계를 나누는 의미가 아니었다.
각 지역마다 차별화된 권리가 있고, 영역의 확장은 권능의 획득으로 이어졌다.
대륙 자체가 시험 무대인 것이다.
‘그래서 영토에 집착하는 거구나.’
힘에 따라 영토가 배분되어 있는 이유였다.
‘성아는 왜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은 거지?’
당장 추종자의 지식에도 이런 부분은 빠져 있었다.
“영역을 가져야 한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권능이라는 것이 지식도 포함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권능은 곧 권한이며, 권한에 따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창조는 물론이며 소멸과 새로운 신을 인정하는 권리와 방법까지 있습니다.”
“절대신은 모든 권한이겠지?”
“그렇습니다. 신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신을 창조한다?”
상엽이 상상도 못 했던 말이 나왔다.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예상했던 것이지만, 그 안에 신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절대신에겐 신도 그저 피조물일 뿐이었다.
“좋아. 일단 가져서 나쁠 건 없겠어.”
“제가 모시겠습니다.”
상엽은 라니르의 안내를 받아 처음 전투를 펼쳤던 파구스의 신전으로 갔다.
“이거 곧 무너지겠는데?”
파구스 신전은 곳곳에 금이 가서 아슬아슬한 모양으로 서 있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상엽이 라면을 먹던 곳임을 감안하면 빠른 변화였다.
“주인을 잃은 신전은 사라져요. 군주님께서 다시 점령하지 않으시면 완전히 흩어질 거예요.”
“뭐 내 집도 아닌데 내버려 둬.”
상엽은 신전의 존재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쪽입니다.”
라니르는 상엽을 신전 뒤뜰로 안내했다. 화려하게 자라던 꽃이 급격히 시들고 있는 장소였다.
꽤 큰 규모의 정원은 수백 가지의 꽃들이 각자의 색을 바탕으로 향기를 퍼트렸고 1미터 높이의 정갈한 나무들이 길을 사이에 두고 늘어섰다.
신만의 산책로인 것이다.
산책로의 중앙에는 작지만 정교한 조각들이 떠받치는 분수대가 있었다.
열여섯 방향으로 물을 뿜어내는 조각의 끝은 파란 보석으로 되어 있어 흩어지는 물방울에 색깔을 입혔다.
“여기입니다. 증표를 잡으시면 영역을 선언하게 됩니다.”
상엽은 분수대 끝에 있는 보석을 잡았다. 그러자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시들어 가던 꽃들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파구스의 신전 역시 균열이 사라지며 다시 웅장한 기운을 뿜어냈다.
“이제 이곳은 군주님의 영역입니다.”
전쟁의 신 파구스의 영역이 사라지고 진실의 신 상엽의 빛이 퍼졌다.
‘음.’
상엽은 정수리 쪽이 조금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곧 사라졌고 대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지식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마치 당연히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금 상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식들이 스며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상엽은 신들의 대륙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긴 애초에 전장이었구나.’
신들의 대륙은 본래부터 신들의 전장이었다. 그리고 승리하는 자는 절대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 누구도 절대신이 되지 못했다.
이곳은 전장이지만 치열한 정치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존재가 있으면 견제를 받았고 연합으로 무너트리기도 했다.
단순히 전투로만 무너트리는 것은 아니었다.
감정을 이용하고, 과거를 파헤치기도 했으며 현재의 연인을 배신하기도 했다.
그 방법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일 큰 전쟁이 벌어졌구나.’
인간의 시간으로 무려 오천 년이었다.
신들의 전쟁은 오천 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이백 년 전부터 거칠어졌다.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다. 그래서 결국 지금의 신만 살아남은 것이다.
“다음 영지로 가시죠.”
지식을 살피던 상엽은 라니르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눈을 감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더 많은 지식들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 그가 얻은 지식은 파구스의 기억과 세력에 따른 율법이었다.
여기에는 숨겨진 지식과 역사도 있었다.
‘조각은 더 모으는 게 좋지.’
상엽은 라니르의 제안대로 자신이 처리한 신들의 영역을 모두 획득했다.
라니르를 제외한 4개의 영지를 획득하자 그는 대륙의 7할을 가진 신이 되었다.
절반을 훌쩍 넘어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가진 존재가 된 것이다.
“정리를 좀 해야겠어.”
“전 그럼 다른 신들의 동태를 파악하겠습니다.”
라니르는 상엽에게 시간을 주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섰다.
덕분에 상엽은 여유를 가지고 현재 일어난 신들의 전쟁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랫동안 역사를 살핀 상엽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자기들끼리 적당히 싸우고 있다가 싸움이 커진 거네.’
여기에 한 가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신들을 죽이는 공식이 시발점이었다니.’
연금술사 제하드가 완성한 공식은 신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다.
이것에 대한 감정은 두 가지였다.
-반드시 소멸시켜야 한다.
-반드시 내가 가져야 한다.
균형을 단번에 무너트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공식을 가지면 절대신이 된다.
이 역시 불가능한 말이 아니었다.
전쟁은 그때부터였다.
조용하던 신들의 대륙에 피바람이 몰아쳤다.
공식의 완벽한 소멸을 의심하던 신들이 서로를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이것이 실제 싸움으로 이어졌다.
공식은 소멸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관계가 틀어진 신들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유일하게 멈출 수 있는 신이 바로 프로토였다.
그런데 프로토는 오히려 싸움을 부추겼다.
중재의 역할을 포기하고 서로의 말을 옮겨서 전쟁을 크게 만들었다.
‘프로토는 절대신이 될 생각이었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최고가 되고자 했던 욕심은 결국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상엽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역사를 이해한 상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이 아니었다.
‘성아는 그냥 인간계로 올 수 있었어.’
지식 중에는 신들의 권능에 대한 부분도 있었다.
신들이 인간계에 강림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아 정도면 충분했다.
‘굳이 조각이 되어서 올 필요가 없는데.’
성아는 스스로의 힘을 조각으로 나누었고 상엽은 이것을 하나로 합쳤다.
‘그리고 내가 성장해야 자신의 힘도 완성된다고 했지.’
그 말 자체로 보면 사실이었다.
신들의 권능 중에서 후계자를 시험하는 과정이 있었고, 성아는 이것을 조각이라는 특별한 수단으로 만들 자격이 있었다.
‘그런데 힘을 되찾는 건 이상한데.’
이것도 방법이 있었다. 율법을 어기는 것이다.
‘일부러 율법을 어기고 힘을 잃은 다음에 그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있었다?’
현재 상엽이 가진 지식을 종합하면 이런 결론이 나왔다.
‘일부러 그렇게까지 했다고?’
아직까지는 전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라니르가 돌아왔다.
“군주님, 이제 신들의 제단으로 가시면 됩니다.”
“거기에 가면 권능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상엽은 마다하지 않고 신들의 제단으로 갔다.
신의 권능.
신이 가진 진짜 힘을 의미했다.
7할의 대륙을 차지한 상엽은 떨리는 마음으로 제단 앞에 섰다.
제단이라고 부를 뿐, 상엽이 볼 수 있는 것은 직사각형의 기둥뿐이었다.
하늘을 뚫고 솟아오른 제단은 그 높이를 알 수가 없었다.
상엽은 손을 내밀어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제단의 옆면을 만졌다.
그러자 모든 문양들이 푸른빛을 뿌렸다.
빛은 상엽의 몸으로 옮겨 가며 모든 것을 조사했다. 그러다 천천히 다시 제단으로 돌아갔다.
빛을 잃은 상엽의 몸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상엽의 눈은 달랐다.
그의 동공에는 지금까지 없던 신들의 언어가 새겨져 있었다. 상엽은 이를 직접 보고 있었다.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상엽은 이미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권능을 얻었다. 물론 이것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권한을 가진 것이다.
다른 신들은 능력이 있어도 이런 권한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인간계를 포함한 차원의 자연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존재의 과거를 볼 수 있고, 어디서든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감정을 변화시켜 아군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를 노예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엽은 다양한 신의 권능을 모두 제쳐 두고 단 한 가지 능력에 주목했다.
-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를 되살릴 수 있다.
인간을 살리는 것은 절대신이 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제한도 없어.’
신에게 인간은 그런 존재였다. 굳이 제한을 둘 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전부 다 살릴 수 있어.’
상엽은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원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러자 의문이 뒤따랐다.
‘성아는 말해 주지 않았어.’
인간을 살리는 신의 권능은 대륙의 3할만 차지해도 얻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것은 처음 상엽이 파구스를 잡으면서 자격이 되었다는 뜻이다.
성아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계속 싸우기를 원하는 거야.’
이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질 않았다.
상엽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제쳐 두었다.
‘누나를 살릴 수 있어.’
드디어 그 힘을 얻었다. 갓코인을 알게 되면서 언제나 꿈꾸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상기하면 별로 훌륭한 방법이 아니었다.
-누나를 이용하려고 할 거야.
신들에겐 다양한 능력이 있었다. 당장 상엽이 가진 권능만 해도 최고 수준의 갓코인 유저가 아니라면 전부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누나,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아직 3할이 남았다.
남은 30퍼센트를 점령하면 절대신이 되는 것이다.
권능은 그런 일을 더욱 쉽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서두르자. 이제 기다릴 이유가 없어.”
원하는 능력을 얻었다. 이제 남은 건 절대신이 되어서 후환을 없애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