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81화 (279/300)

# 281

“왜 타협하지 않나요?”

성아는 이렇게 물었다.

상엽이 칼로프를 처리한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타협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랑 하는 거야.”

“대화를 해 보지도 않았잖아요.”

“충분히 했어. 그 녀석은 날 무시했고, 결코 날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아.”

이 말에는 성아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평화를 원하는 신이 있는지 두고 보자고. 그때는 나도 생각을 해 볼 테니까. 물론 나는 없다고 확신하지만.”

상엽은 푸른 신전에서 깨끗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음 계획을 잡았다.

“이제 29명 남았지?”

“맞아요.”

“현재 상황에서 제일 강한 놈이 누구야?”

“파구스. 전쟁의 신이에요.”

“가자.”

“설마 그를 죽이겠다는 건가요?”

성아는 놀란 표정으로 상엽의 정면에 섰다. 어떻게든 말리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당신이 절대신이 되도록 돕겠어요. 하지만 방법은 신중해야 해요. 먼저 세력을 모으고 전쟁으로 끌고 가야 해요.”

“왜?”

“그래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상엽은 성아의 조언이 미덥지 못했다.

“너도 신이구나.”

“무슨 뜻인가요?”

“인간의 강함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잖아. 정말 내가 파구스라는 놈을 죽이지 못할 것 같아?”

“여긴 신의 대륙이에요. 신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요.”

“하라고 해. 그 전에 죽일 테니까.”

상엽의 자신감은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아는 무작정 걱정돼서 그를 말리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알아. 난 인간이야.”

“신을 죽인다고 해서 신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 말은 당신이 절대신이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 부분은 상엽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절대신이 되지 못하면 누나를 살릴 수 없다는 거지?”

“맞아요. 신을 죽인 전설의 주인공이 되긴 하겠지만.”

“옛날이야기는 관심 없어. 내가 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정식으로 인정받든지, 정식으로 싸워야 해요.”

“정식으로 인정받는 건 틀린 것 같고, 정식으로 싸우는 건 어떤 방식이야?”

“신이 도전을 받아 줘야 해요. 하지만 받아 주지 않을 거예요.”

“방법이 없다는 거야?”

“있어요.”

성아는 잠시 말을 멈춘 채로 상엽을 빤히 쳐다보았다.

“설마?”

“저도 신이에요.”

성아는 진실의 신이다.

“전 당신을 신으로 인정할 권한은 없어요. 하지만 후계자로 선정할 권한은 있죠.”

“네가 가진 신의 자리를 주겠다는 거야?”

“당신이 약속을 지켜 준다면요.”

“어떤 약속?”

“절대신이 된 후에 제 위치를 보장해 주세요.”

“그건 당연한 거야. 넌 우리 편이니까.”

상엽은 진실을 말했다. 절대신이 되고 성아를 다시 진실의 신으로 지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약속은 조금 달랐다.

“진실의 천칭을 살펴보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상엽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진실의 천칭에 집착하는 거지?”

“제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담겨 있거든요. 인간일 때부터 신이 된 이후로, 모든 것이 있어요.”

상엽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해.”

성아는 그 말을 듣자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전 당신에게 모든 걸 걸겠어요.”

“훌륭한 선택이 될 거야.”

“신의 자리를 물려주면 전 이 신전을 떠날 수 없어요.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게 될 거예요.”

“안내를 받을 수 없다는 건가?”

“진실의 새가 가진 지식을 당신의 추종자에게 넘겨드리죠. 익숙한 방식일 테니까.”

성아는 상엽을 위한 배려를 해 주었다.

“그럼 시작해.”

성아는 상엽을 신으로 만드는 절차를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피부로 감각을 느끼고 근육의 힘으로 움직였지만 자신의 몸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영혼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신이 되신 걸 축하해요.”

“잠시 자리를 빌리는 것뿐이야.”

상엽은 진실의 신이 되었다. 동시에 성아는 은퇴한 신의 자격으로 진실의 신전에 머물렀다.

“유령아, 끝났어?”

-네.

파란 새와 접촉하고 있던 추종자는 필요한 지식들을 모두 넘겨받았다.

“나 이제 진실의 신이다. 거짓말할 생각 하지 마.”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분위기 못 맞추냐?”

-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진실만 말하겠습니다.

“좋아.”

신이 된 상엽은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파구스, 전쟁의 신이라는 놈을 잡으러 간다.”

진실의 신이 되었음에도 상엽의 계획은 바뀌지 않았다. 성아도 더 이상 말릴 수 없음을 알았다.

‘좀 더 안정적으로 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인간계에서 상엽은 거칠지만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이기는 데 너무 익숙해졌어.’

성아는 이 점이 걱정스러웠다.

‘그가 무너지면 나도 가혹한 최후를 맞이하겠지.’

그녀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그 생각은 상엽으로 인해 멈추고 말았다.

“지금 속으로 무식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네?”

“표정으로 대답을 해 버렸네.”

“미안해요. 난 좀 더 신중할 거라 생각했어요.”

“이게 제일 신중한 거야.”

“무슨 뜻이죠?”

“신을 죽이는 공식. 이게 알려지면 분명히 어떤 대책을 세울 거야. 아직 비밀일 때, 제일 강한 놈을 잡아야지. 그리고 그놈을 잡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성아는 고개를 저었다. 예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강자를 인정해 버리면 전쟁은 소강상태로 들어가. 그런데 그 강자가 사라지면 다시 욕심을 부리게 되지. 그리고 그 욕심의 중심에 내가 있을 거야.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지지.”

“아…….”

“자, 이제 생각보다 똑똑하다고 말해.”

“대단해요.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성아는 진심으로 상엽의 생각에 감탄했다.

“그럼 여기서 팝콘이나 먹으면서 기다려. 좋은 소식만 전해 줄 테니까. 내 생각도 좀 하고.”

“네, 믿고 있을게요.”

상엽은 손을 흔들어 주고는 진실의 신전을 떠났다.

“공기 어때?”

푸르!

지옥마는 투레질을 하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새로운 대륙의 하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기분 풀어. 곧 신나는 일이 벌어질 테니까.”

-20분쯤 남았습니다.

추종자는 이미 대륙의 지도를 기억에 새겨 넣은 상태였다.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가이드라도 해 보는 건 어때?”

-주인님 곁이 더 재미있습니다.

“평생 날 감시하겠다는 거야?”

-물론입니다.

너무 당당해서 상엽은 말문이 막혔다.

“싸우기 전에 힘 빠지게 할래?”

-죄송합니다. 진실만 말해야 해서.

상엽은 진실의 신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여기부터 전쟁의 신 영역입니다.

신의 대륙은 하늘 위에 원반형으로 펼쳐진 대륙이었다. 그럼에도 행성에 위치한 지구와 넓이는 비슷했다.

지구를 열매로 가정할 때, 땅이라는 껍질만 깎아서 펼쳐 놓은 것이다.

“파구스가 이 전쟁에서 얼마나 유리한 거야?”

-지금까지 대륙의 3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세력이 큰 자가 주인님 손에 소멸했으니 가만히 두면 절반까지 확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쁘지 않네. 의도대로 되겠어.”

-제가 획득한 기억 속의 파구스는 아주 강한 신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전쟁의 신이니까 약하진 않겠지.”

상엽은 인정을 하면서도 자신감은 여전했다.

“모든 변수를 생각해도 이 싸움은 내가 이겨. 그것도 아주 쉽게.”

-계획이 있으십니까?

“있어. 최대한 무모하게 들어갈 거야.”

-그게 작전이십니까?

“너 지금 날 의심하는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 진실의 신이야. 거짓말은 다 보여.”

-죄송합니다.

사과를 받은 상엽은 추종자에게 그제야 진짜 의도를 말했다.

“어설퍼 보여야 돼. 그래야 날 더욱 무시하고 깔볼 테니까. 신의 힘을 직접 보여 주고 싶어 할 거야. 다른 신들이 그랬듯이.”

현존 최강 신의 자존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프로토를 잡은 인간을 직접 처리한다. 타이틀이 멋지잖아. 그게 그 녀석을 소멸시킬 테지만.”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추종자조차도 상대가 그렇게 반응할 것이라 예상했다.

20분 후.

10만 명의 병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빛의 콜로세움이 만들어졌고 파구스와 상엽이 마주 섰다.

파구스의 특수 스킬로 특수한 공간에서 둘만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파구스는 5미터 거인에 철제 방어구와 철퇴를 든 전사였다.

방패를 앞에 세우고 철퇴를 휘두르며 상엽을 압박했다.

‘멍청하긴.’

상엽은 전투를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세 번의 공방이 교환되었다.

파구스는 철퇴로 속임수를 쓰고 방패로 상엽의 몸을 밀어붙였다.

힘에는 자신이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상엽은 일부러 그 공격을 맞아 주었다. 그리고 뒤로 밀리는 순간에 다가오는 철퇴를 보았다.

상엽은 파구스의 팔을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파구스는 예상을 했는지 철퇴를 거두고 방패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의 팔을 노렸던 해머는 금색이었다.

파이어스의 망치였던 것이다. 순간, 상엽이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으로 다시 한번 해머를 휘둘렀다.

그는 스트라이크로 밀려나는 힘에 균형을 맞추고 악마성의 기둥으로 거인의 발등을 노렸다.

쾅!

발끝이 살짝 스쳤다.

파구스는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고 다시 반격을 준비했다.

‘다 보여 줄 필요는 없지.’

상엽은 파구스의 찢어진 신발 안쪽에서 검은 가루가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냥 놔둬도 파구스는 흩어질 것이지만 이것을 구경꾼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파괴전차로 돌진을 선택했다.

파구스는 능숙하게 방패로 파괴전차를 막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충격이 드디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멈춰 버린 신의 가슴으로 파괴전차가 작렬했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파구스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최고 지점에 닿기도 전에 흩어져 버렸다.

소멸이었다.

콜로세움이 사라졌고 사방은 막 시작된 새벽처럼 고요했다.

10만 명의 병사들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한 표정이었다.

이를 보며 상엽은 해머를 높이 들었다가 바닥을 쳤다.

엄청난 충격파가 고요를 밀어내며 주변을 폐허로 만들었다. 일부러 힘을 조절해 병사들이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내 군대가 될 놈은 남고, 나머지는 꺼져.”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지옥마의 등에 올랐다.

방금 자신이 저지른 사건에 대한 충격파를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전쟁의 신이 죽었다.

대륙에서 가장 승리에 가깝던 두 명의 신이 상엽에게 소멸당한 것이다.

게다가 상엽은 진실의 신이 되면서 정식으로 상대 신의 영역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상엽은 어떤 것도 빼앗지 않고 사라졌다.

그것이 많은 신들을 더욱 두렵게 했다.

다음 차례가 누가 될까?

처음에는 이런 공포가 퍼졌다. 그리고 그 공포가 사라지기 전에 또 한 명의 신이 소멸했다.

15퍼센트의 세력을 가지고 있던 세 번째 강자였다.

그는 상엽과 꽤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오히려 전쟁의 신보다 더욱 격렬했고 신의 영역 대부분이 소멸되는 박빙의 전투였다.

조화의 신 벨로테는 직접 공격이 아니라 마법을 쓰는 형태의 스킬이 많았다.

도주에 능했으며 거리를 유지하며 끝까지 상엽을 괴롭혔다. 덕분에 상엽은 꽤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결국 상엽의 한 방이 등에 꽂히면서 벨로테도 소멸하고 말았다.

그 소식은 공포를 의문으로 바꾸었다.

-벨로테는 정상엽을 이길 수 있었다.

여러 의문이 남았다. 그리고 이 의문을 풀기 위한 열쇠로 많은 신들이 한 존재를 주목했다.

-은퇴한 진실의 신.

바로 성아였다.

성아가 머물고 있는 진실의 신전에 은밀한 요청들이 날아들었다.

진실의 신전을 직접 찾아가면 정상엽이 알게 되기에 만날 약속만 정한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성아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성아가 진실의 신전을 나와서 도착한 곳은 무지개 숲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성아가 허락한 다섯 명의 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들은 혹시나 함정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성아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며 그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에게 신을 죽이는 공식이 있어요.”

신을 만난 자리에서 성아는 인사 대신 폭탄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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