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79화 (277/300)

# 279

콜렉터 길드원 데스.

그는 천재 소년으로 불렸다.

제멋대로의 성격이라 트러블이 많아지자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샌디르는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망자들의 신.

이를 바탕으로 전투력만큼은 길드장인 샌디르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신이 된 소년.

그만큼 길드 차원에서 많은 투자를 했고, 데스는 3급 신의 상점에 닿았다.

샌디르가 상엽과의 싸움에서 자신감을 가진 것은 데스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데스는 상엽이 아니라 블랙 해머에 의해 완전히 봉쇄를 당했다.

그것도 블랙 해머 전체가 아니었다.

다섯 명의 아마존 전사, 그리고 적설과 송연지, 사공강까지 이렇게 8명은 데스를 완전히 묶어 버렸다.

“호호. 꼬맹아, 여기야.”

데스는 자신의 바로 뒤에 나타난 적설의 목소리에 놀라 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것은 환영이었고 이에 반응한 틈에 다섯 개의 화살이 그의 급소를 찔렀다.

다행히 망자들의 갑옷이 화살을 막아 주었다. 그런데 화살은 애초가 급소를 뚫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충격과 함께 부서진 화살은 주변에 진한 연기를 만들어 그의 시야를 가렸다.

그러자 강력한 창이 바람을 꿰뚫으며 그의 이마를 노렸다. 이를 겨우 피하자 다시 사방에서 다리를 노리며 공격이 들어왔다.

데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지만 본래 목표였던 상엽은 쳐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시끄러워!”

결국 데스는 망자들을 충격파와 함께 튕겨 냈다. 살아 있는 총알이 된 망자들은 빠르게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충격파가 시작됨과 동시에 8명의 전사들은 이미 멀리 떨어져서 각각의 방어 태세를 갖췄다.

마치 데스의 반응을 모두 예측하는 듯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었다.

게다가 완벽한 합격술을 펼쳤고 동희에 의해 신의 상점 못지않은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데스는 상대를 죽여야 했지만 8명의 전사는 애초에 묶어 두는 것이 목표였다.

임무의 난이도가 다른 만큼 여유가 있는 쪽은 8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짜증 나!”

결국 데스가 감정을 폭발시키며 거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소멸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었다.

“으악!”

비명이 들리며 공중전을 벌이는 또 한 명의 동료가 사망했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비명도 지르지 못한 희생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공중전은 희망이 없었다. 8명의 전사를 제외한 블랙 해머들이 전투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데스는 분노했다. 망자의 칼이 거대한 거인 형태로 변해 8명의 전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이 거칠어질수록 상대방은 여유를 가졌다.

“호호. 꼬맹아, 술래잡기에는 소질이 없나 봐?”

적설은 외나무다리를 오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계속해서 데스를 도발했다.

결국 데스는 화려하고 강력한 스킬들을 난발했지만 이것은 목표에 닿지 못했다.

오히려 그동안 상엽과 블랙 해머에 의해 공중전이 막바지에 치달았다.

모든 길드원이 소멸하고 남은 건 단 한 명, 샌디르뿐이었다.

“자, 잠시.”

이미 샌디르는 전투 의지를 잃었다. 상엽을 정면에 두고 블랙 해머가 후방을 포위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무기를 바닥으로 던졌다.

“항복하겠습니다.”

“안 받아.”

“절 죽이면 레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안 통한다니까.”

상엽은 고스트 실드를 만들며 공중을 걸었다. 여유로운 걸음이지만 그것이 샌디르에겐 죽음이 다가오는 공포였다.

“그냥 죽어. 귀찮으니까.”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그러기는 너무 늦었지.”

상엽은 이미 샌디르와 한 발 거리까지 접근했다.

“그래도 기회는 줄게.”

“가, 감사합니다.”

“레나는 어디 있어?”

“여기서 10분 떨어진 감옥에 있습니다.”

그는 전부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엽에겐 이 정도로 충분했다.

“제가 직접 안내…….”

쾅!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상엽의 해머가 머리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야.”

상엽은 샌디르를 처리하고 아래를 보았다.

데스가 여전히 폭주해서 북극을 폐허로 만드는 중이었다.

“모두 물러서.”

상엽은 그 광경을 보며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스카이다이빙을 하듯이 데스를 향해 뛰어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거친 스킬이 난무하고 있었다.

진한 죽음의 냄새에 숨을 쉬기도 어려운 전장이었다. 그런데 상엽은 어떤 방어 수단도 없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날뛰던 데스의 스킬이 사라졌다.

망자들은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소멸했고 안개처럼 퍼져 있던 파편이 사라지자 전장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단 한 명만이 그곳에 서 있었다.

“시끄럽기는.”

상엽이었다.

난동을 부리던 데스는 이미 소멸하고 없었다.

“사하르.”

“네.”

“피해 상황은?”

“없습니다.”

“수고했어. 지금부터 10분 거리에 있는 모든 지역을 수색해. 의심스러운 곳은 전부 확인하고.”

블랙 해머들이 흩어져서 수색을 시작했다.

그렇게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사하르가 눈으로 입구가 막혀 있는 철문을 발견했다.

상엽의 힘으로 철문이 부서졌다.

내부는 타고 남은 촛불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석실이었다.

그리고 한 여인이 오래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홀로 내부로 들어간 상엽은 그 여인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살아 있어.’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함정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그곳의 기운은 여러 위험을 암시하고 있었다. 콜렉터 길드가 마지막 수단으로 준비해 둔 것이다.

“아무도 접근하지 마.”

상엽은 명령을 내리며 모든 방어 스킬을 동원했다. 그리고 단숨에 앞으로 뛰어갔다.

순간, 수십 개의 트랩이 발동하며 상엽을 덮쳤다. 하지만 트랩이 몸에 닿기도 전에 상엽은 레나의 곁에 닿았다.

쾅!

그리고 천장 벽을 뚫으며 상승했다.

벽 위로 엄청난 높이의 얼음과 눈이 있었지만 상엽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꺼운 천장에 그렇게 구멍이 뚫렸고 석실은 무너졌다.

“음.”

상엽은 맑은 하늘 아래 서 있었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레나는 석실을 벗어나자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상엽은 그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레나는 잠시 동안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상엽의 얼굴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전부 기억하는 거야?”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점 졸업을 하면서 기억을 잃었지만 콜렉터에 의해 전부 되살린 것이다.

“넌 참 이상한 여자야.”

“왜?”

“아파 보이는데도 왜 이렇게 매력적이냐?”

그 말에 레나가 웃었다. 그러더니 상엽이 원하는 도도한 표정을 했다.

“더 노력해. 조금 부족했으니까.”

“넌 날 노력하게 하는 여자지. 어쩐지 내 열정이 타오르질 않더라고.”

상엽은 지옥마를 불렀다.

“나한테 한 달간의 휴가가 있어.”

“노력할 시간은 충분하네.”

“네가 여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여자인지 증명해.”

“어렵지 않겠네.”

상엽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작전 종료!”

그의 선언과 함께 북극에서의 작전이 마무리되었다.

콜렉터 길드의 붕괴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이름조차 사라져 버렸다.

모든 위험 요소가 제거되고 상엽의 일인 천하가 확정되는 순간이었지만 정작 주인공은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일정을 취소한 상엽은 진짜 휴가를 떠났다.

열흘 동안, 누구도 상엽과 만나지 못했다.

성아마저도 배제한 채로 상엽은 레나와 여행을 떠났다.

-주인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홍대의 오피스텔에서 추종자는 걱정스럽다는 듯 상엽을 보았다.

“내가 왜?”

-땀을 흘리시는 걸 오랜만에 봤습니다.

“진짜? 내가 땀을 흘렸어?”

-호흡도 거칠었습니다.

샤워를 하던 상엽은 뒤를 돌아보았다.

가려진 유리문 너머로 레나가 있었다.

“역시 대단한 여자야.”

-좀 쉬셔야 할 듯합니다.

“그럴까?”

상엽이 그렇게 말할 때, 욕실의 문이 열렸다. 추종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레나는 웃으며 상엽 앞에 섰다.

“같이 씻을까?”

“씻기만 할 거지?”

“설마 겁먹은 거야?”

“너랑 일주일을 보낸 적은 없으니까, 이렇게 무서운 여자인지는 몰랐어.”

“내가 무서워? 이제 시작인데?”

상엽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날 죽일 수 있는 게 동희만 있는 게 아니었어?”

“무슨 말이야?”

“혼잣말이야.”

“혼잣말?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닐 텐데. 지금 필요한 건 감탄사와 의성어, 둘뿐이야. 이런 대화도 의미가 없잖아.”

상엽은 신의 힘도 한계가 있다는 걸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열흘이 지난 상엽은 테니아로 돌아왔다.

-난 다시 평범하게 살 거야. 언제든 다시 와.

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홍대의 복구 현장에 인부로 지원을 했다.

상엽은 만류했지만 레나의 뜻이 워낙 확고해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클럽을 복구하고 다시 DJ가 되기로 했다.

-무용 할 때보다 DJ 레나가 더 즐거웠어. 레나로 살 거야.

레나가 선택한 삶이었다. 상엽은 그저 응원해 주기로 했다.

‘이제 20일.’

신의 대륙으로 가는 공사가 막바지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개인적인 휴가가 아니라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국민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상엽은 중국과 한국, 일본 영토를 모두 포함한 테니아를 직접 둘러보았다.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디서든 당당하던 상엽도 테니아 안에서는 이 말을 반복했다.

오랫동안 지켜 주지 못하고 외면했던 사과를 이제야 하는 것이다.

더 빨리 하고 싶었지만 행동으로 먼저 보여 주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렸다.

전 세계의 힘이 집중된 복구 작업은 이미 많은 결과를 이루어 내는 중이었고 테니아 시민들이 다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나마 남은 국민들을 상엽은 직접 만나며 희망을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민들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웠다.

본래 있던 땅에 거주 중인 사람들을 우선으로 했고, 그들에겐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빨라도 20년은 걸릴 것입니다.”

“상처가 그만큼 컸으니까.”

20일은 긴 시간이 아니었다.

정상 회담을 마무리하고 테니아를 모두 둘러보자 어느새 약속했던 시간이 되었다.

-건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스트라인버그는 그 말을 남기고 잠이 들었다.

“코드 원.”

출발을 하루 앞둔 밤이었다.

루시가 모든 보고를 끝내고 상엽을 불렀다.

“꼭 가셔야 합니까?”

많은 이들이 이 질문을 하려 했다. 다만 누구도 그렇게 물을 자격이 없었다.

“가야지, 누나를 살려야 하니까. 그리고 살리겠다고 약속한 사람도 많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모두 이해할 것입니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전부 말입니다.”

“알아.”

상엽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신들의 대륙.

그것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신이 된 것도 결코 작은 결말이 아니었다.

“가야 돼. 지금 끝내지 않으면 이 세상은 다시 침략당할 테니까.”

루시는 그 말을 듣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들의 대륙으로 가는 명단이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코드 원.

단 한 명이었다.

사하르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함께 가겠다고 나섰지만 상엽은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여길 지켜. 너희들이 없으면 다시 어지러워질 거야.

이 말은 사실이었기에 누구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송연지와 사공강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상엽의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신의 대륙으로 가는 건 상엽 혼자로 결정되었다.

“코드 원…….”

눈물이 고인 눈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루시를 보며 상엽은 소파에서 일어나서 그녀와 마주 섰다.

“내가 널 믿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말해.”

루시는 천천히 허리를 깊이 숙였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 말을 꾹 참아 왔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 아래로 굵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에 상엽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나도 고마워.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결국 루시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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