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
신의 힘이 북극을 강타했다.
구름을 뚫고 떨어진 거대한 해머는 비밀 기지를 덮고 있던 얼음을 때렸다.
그 한 방으로 수천 년을 버티던 얼음이 하얀 파편이 되어 흩날렸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리고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악마의 손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아수라장이 된 설원에서 작은 점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많은 상처를 입은 모습이지만 치명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모두 20명.
그중의 두 명이 재빨리 상엽에게 다가왔다.
“멈추십시오!”
“그만두세요!”
먼저 다가온 이는 콜렉터 길드의 길드장 샌디르와 성아였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콜렉터 길드원들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이 사방으로 흩어질 뿐, 공격을 하진 않았다.
“우리는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지랄한다.”
상엽은 해머를 휘둘렀다. 그러자 바람에 의해 성아의 몸이 흔들렸다.
성아를 밀어낸 상엽은 곧바로 샌디르를 향해 돌진했다.
순간, 샌디르의 눈빛이 변했다.
수호신이 강림한 것이다.
그의 수호신은 상엽의 돌진을 바위를 잡듯 양팔로 버텨 냈다. 몸이 밀리긴 했지만 충격에 버텨 내는 것이다.
이에 상엽은 샌디르의 후방에 거산을 소환했다. 거산을 이용해 폭발을 일으키려고 하자 샌디르는 재빨리 몸을 띄우며 공격을 피했다.
“그만두십시오!”
샌디르는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이에 상엽은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레나는?”
상엽의 짧은 질문에 샌디르는 말문이 막혔다.
“레나를 내버려 두라고 했을 텐데.”
“우리가 그녀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뱀파이어에게 당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치사한 변명인지 스스로 알고 있지?”
졸업한 상점을 프로토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콜렉터가 레나를 납치한 것은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었다.
“할 말이 그것뿐이면 용서할 이유가 없어.”
“그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당신을 멈출 수 있다면 뭐든 할 것입니다.”
상엽은 샌디르를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 방법은 안 통해.”
화르르!
상엽의 몸이 불꽃으로 타올랐다. 악마성의 기둥에 검은 빛이 몰려들었고 주변으로 불꽃 폭풍이 몰아쳤다.
분노한 것이다.
상엽의 분노에 샌디르는 오늘 싸움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때, 지상에서 갑자기 수십 개의 유령이 튀어 올라 상엽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정상엽~ 정상엽~
망자의 분노는 어찌하리.
망자야. 불쌍한 인생아.
복수의 끝이 행복하리라 믿진 않겠지?
울지 마오. 망자여.
슬퍼 마오. 망자여.
그 길을 내가 가리.
그대들의 길을 내가 안내하리.
망자여. 망자여.
날 따라 웃어 주오.
망자여. 망자여.
마지막 웃음을 즐겨 보오.
“데스! 그만둬라!”
말릴 틈도 없이 유령들이 상엽의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공중에 고스트 실드를 밟고 떠 있던 상엽을 중심으로 원형의 유령 진형이 만들어졌다.
“불쾌한 노래네.”
유령들은 서늘한 음성으로 같은 노래를 합창했다.
“너희들이었어?”
유령들은 분노했다. 그 눈빛이 상엽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두 번 죽여 달라는 거지?”
자신에게 죽었던 자들이었다. 그 분노는 북극을 덮은 공기보다 차가웠다.
“데스!”
“그냥 죽이면 되잖아요. 어차피 대장도 그럴 거라고 했고.”
“데스! 그만!”
“힘이 있는데 왜 아껴요? 일단 죽이고 보자고요.”
데스는 자신 있다는 듯이 유령을 만들었다. 이를 본 샌디르도 더 이상 작전을 쓸 수가 없었다.
“제거한다.”
이를 악물고 명령을 내리자 흩어졌던 콜렉터의 길드원들이 각자의 신을 소환했다.
“재미있네.”
20명이 모두 수호신을 가지고 있었다.
상엽은 졸지에 20명의 신과 전투를 하게 된 것이다.
“성아, 너도 이제 결정해. 어느 쪽이야?”
남은 건 성아뿐이었다. 그러자 성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으로 상엽 곁으로 왔다. 그리고 샌디르를 보고 마주 섰다.
“당신은 약속을 어겼어요.”
샌디르는 성아의 말에 변명을 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우리 쪽에 선다면 받아 주겠습니다.”
그의 말에는 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저는 제 수호자를 선택하죠.”
“우리 헤어진 거 아니었어?”
“잠시 떨어졌던 걸로 하죠.”
“원래는 절대 안 되는데 상황이 상황이니까 받아들일게. 운 좋은 줄 알아.”
“전 진실의 신이에요. 운은 믿지 않아요.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죠.”
“신치고는 너무 적극적이야.”
외로운 위치에 있던 상엽에 아군이 합류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설사 성아가 상대편에 섰다고 해도 상엽은 싸움에 진다는 생각이 없었다.
서로가 이긴다고 확신하는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기다림은 없었다.
끼아아!
합창을 하던 영혼들이 상엽을 감싸던 원을 급격히 좁혔다.
그저 영혼일 뿐이라고 넘어가기에는 그 살기와 기세가 매서웠다.
상엽은 유령이 움직임과 동시에 샌디르를 향해 뛰었다. 회피와 동시에 공격을 선택한 것이다.
쾅!
우선 앞을 막는 유령들의 벽을 파괴전차로 뚫은 상엽은 곧장 해머를 휘둘렀다.
샌디르는 유령의 벽 덕분에 충분히 대비할 시간이 있었고 아군들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상엽은 그를 뒤쫓다가는 포위당하는 꼴이라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었다.
‘골치 아프네.’
20명의 신의 강림했다.
그들은 이미 콜렉터가 아니라 신이 인간의 몸을 지배하는 상태였다.
20명의 신들은 다양한 무기를 꺼내 든 채로 상엽을 향한 공격을 시작했다.
“그래 봐야 반쪽짜리.”
상엽은 수호신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힘을 회복했다고 해도 인간의 몸을 빌려서 움직이면 기껏해야 절반 정도의 실력만 발휘할 수 있었다.
“쪽수만 믿고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지.”
상엽은 일부러 그들을 쫓지 않는 대신 빠르게 스킬을 압축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진형을 갖췄을 때, 상엽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뛰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유령의 벽이 상엽을 막았다. 마치 물결처럼 펼쳐진 벽은 상엽의 몸을 붙잡을 것처럼 손을 뻗었다.
-주인님!
“알아.”
상엽의 눈을 가린 영혼들의 벽 뒤에서 엄청난 스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대가 상엽인 만큼 그들은 처음부터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예상했어.’
상엽은 드디어 압축한 스킬을 펼쳤다.
-신의 스킬, 시라드라의 방패
상엽이 압축한 스킬은 공격이 아니라 방패였다.
압축된 시라드라의 방패는 끝이 안쪽으로 휘어지며 상엽을 더욱 철저히 보호했다.
그 상태에서 상엽은 강렬한 돌진을 시도했다.
쾅!
유령의 벽이 깨지자 지척에 있는 수십 개의 빛이 보였다. 20개의 신의 힘이 펼친 스킬은 하나하나가 맹렬했고 때로는 시너지를 발휘해 더욱 강렬해진 것도 있었다.
콰콰쾅!
상엽의 방패에서 끝도 없이 폭발과 충격파가 발생했다. 그런데 상엽은 멈추지 않았다.
어떤 스킬도 상엽의 방패를 뚫어 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상엽은 순식간에 한 명의 지척에 닿았다.
쾅!
해머를 꺼내지 않았다. 상엽은 방패를 벽처럼 이용해 상대를 들이받았다.
그 충격이 워낙 커서 방패와 충돌한 길드원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상엽은 잠시지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길드원을 향해 악마의 마수를 뻗었다.
푹!
그의 심장이 꿰뚫리며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녀석들 전투 경험이 별로 없어.”
꼭꼭 숨어서 힘만 키운 자들이었다. 사냥보다는 수집으로 코인을 습득했고, 신의 상점이 아니라 수호신을 통해 힘을 얻었다.
단순히 드러난 힘으로는 막상막하로 보이지만 실제 전투는 그것과 달랐다.
“바보같이.”
유일하게 지상에 있던 소년 데스는 동료가 소멸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동료가 흩어진 자리로 나뭇가지를 뻗었다.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억울함으로 가득한 영혼을 자신의 군대로 흡수한 데스는 다른 스킬을 펼쳤다.
벽을 이루던 영혼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칼 모양으로 변했다.
길이만 20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칼이 된 영혼들은 움직일 때마다 귀곡성을 뿌리며 상엽의 몸을 향해 떨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이 칼을 휘두르는 듯했다.
상엽은 만만치 않은 기세에 등 뒤를 덮치는 칼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속도에서 자신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방패를 이용해 공격을 하려 했다.
그런데 칼이 두 개로 갈라지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상엽의 앞과 뒤를 전부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골치 아픈 놈이 있었네.’
두 개의 칼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한 상엽은 방법을 바꿨다.
‘친위대.’
상엽은 지상에 있는 소년의 주변에 친위대를 소환했다.
‘유령아, 꼬맹이 정도는 확실히 처리해.’
-맡겨 주십시오.
추종자가 유령 군대를 이끌기 시작하자 상엽을 쫓던 칼의 속도가 확실히 느려졌다.
“자, 너희들은 다시 나랑 놀아야지.”
상엽이 다시 돌진하려 하자 상대도 대응 방식을 바꿨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다양한 스킬이 펼쳐졌다.
상엽의 주변의 공기가 화염으로 변하고 중력이 달라지기도 했다.
정신 공격이 이어졌지만 이 부분은 상엽의 방어가 워낙 단단해 통하지 않았다.
‘성아, 일해야지.’
상엽의 주변 공기를 이용하는 것도 성아가 나서자 무용지물이었다.
‘너무 단단하다.’
샌디르는 이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느 정도 감안은 했지만 정신 공격이 모두 실패하고, 방패가 이처럼 견고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2급 방어 신을 완성한 상엽의 견고함이 십분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콜렉터의 길드원들은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20명의 신이라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는 그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우리가 오만했다.’
샌디르가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상엽이 돌진 방향을 멈추고 방패를 거둬들인 후에 몸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상엽의 해머에서 시작된 악마의 손길이 사방으로 퍼지고 단숨에 다섯 명이 빛으로 흩어졌다.
“공격하라.”
수하들이 소멸하는 순간에 샌디르는 어울리지 않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를 들은 상엽의 생각은 달랐다.
‘나름 훌륭하네.’
소극적으로 움직이면 상엽의 공격력에 자연스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공격을 하는 것이 희생이 발생하더라도 상엽을 위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전투 경험이 없어.’
이 사실이 다시 한번 약점으로 드러났다.
찰나의 순간에 샌디르는 훌륭한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동료의 죽음을 경험한 수하들은 자신감이 없었다.
주저했고 공격보다는 수비를 우선시했다. 상엽의 압도적인 위용 앞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격 명령이 먹힐 리가 없었다.
‘죽으라는 명령이잖아.’
공포심이 충성심을 넘어선 것이다.
본래부터 자유로운 집단이라 길드장의 명령이 절대적이지도 않았다.
결국 그들은 타이밍을 놓쳤다.
반대로 상엽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쾅! 쾅!
파괴전차가 두 명을 들이받는 순간, 지금까지와 다른 패턴의 공격이 시작됐다.
악마의 마수를 뻗는 지옥의 축제가 파괴전차와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파괴전차에서 화살처럼 튀어나오는 악마의 마수는 순식간에 다섯 명을 처리했다.
수세에 몰린 콜렉터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숫자가 줄었고 결국 샌디르를 포함한 일곱 명만이 남았다.
상엽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더욱 강력한 스킬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의 돌진을 막는 거대한 칼이 나타났다.
옆으로 그어지는 영혼들의 칼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벌써?’
친위대가 전멸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두 개의 거대한 칼이 분노한 울음소리를 토해 내며 상엽을 노렸다.
상엽이 돌진을 멈추고 이를 피하자 칼날은 크기를 줄이는 대신 네 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훨씬 빠른 속도로 상엽을 노리기 시작했다.
데스가 전장에 다시 합류하자 샌디르의 표정이 변했다.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때, 전장에 또 다른 소음이 들렸다.
멀리서 시작된 소리는 비행기 소리였다. 그리고 소리가 급격히 가까워지더니 백 명이 넘는 전사들이 뛰어내렸다.
잠시 희망을 가졌던 콜렉터의 생존자들은 이 장면을 보고는 다시 표정이 굳었다.
블랙 해머의 등장.
“전멸시켜.”
상엽은 짧은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