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77화 (275/300)

# 277

진실의 천칭.

‘도대체 이게 뭐야?’

상엽은 그 점이 궁금했다.

태백산으로 돌아온 상엽은 성아에게 직접적으로 이에 대해 물었다.

“진실의 천칭에 대해 물어볼 게 있는데.”

“어떤 신도 그럴 권한은 없어요. 설사 절대신이라 하더라도요.”

“신들의 기밀문서라는 거지? 그런데 절대신도 못 본다고?”

“맞아요. 저조차도 진실의 천칭을 볼 권한은 없어요.”

상엽은 이 말이 이상했다.

“권한이 없다는 거야? 볼 수 없다는 거야?”

“권한이 없어요.”

“볼 수는 있다는 거지?”

권한이라는 것은 말장난이었다.

“어차피 네가 가진 기밀문서잖아. 네가 본다고 누가 처벌할 수는 없는 거 같은데.”

성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신들의 기밀이 뭔지는 관심이 없지만, 억울하게 죽은 내 친구의 스승에게서 빼앗아 간 건 찾고 싶은데.”

“전 권한이 없어요.”

성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지금까지 이런 느낌은 상엽도 받은 적이 없었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공유할 사이는 아닌 모양이네.”

“제 존재 가치에 대한 부분이에요.”

“알았어. 인정할게.”

상엽은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신을 죽이는 공식. 그게 다른 방식으로 완성됐다면 어때?”

“그게 무슨 말이죠?”

성아의 표정이 다시 한번 변했다. 지금껏 상엽은 그녀가 이처럼 놀라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게 그렇게 위험한 공식이야?”

“신들이 종말할 수도 있어요.”

“그래?”

상엽은 웃었다. 그런데 성아는 상엽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더니 동공이 커졌다.

“진실이군요.”

“기대했던 로맨스를 실현할 분위기는 아닌 거 같네.”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예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나도 고마웠어.”

결국 그들은 뜻밖의 이별을 맞이했다.

성아는 다급하게 그 자리를 떠났고 상엽은 붙잡지 않았다.

“신의 종말이라…….”

상엽은 순식간에 사라진 성아의 자리를 보며 그 말을 되뇌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다시 담비가 나타났다.

“이제 진실을 말해 주겠어?”

-거짓말이었다.

“역시.”

공식을 완성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성아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엽이 진실이라 믿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대장 담비의 거짓말이었다. 상엽은 이 부분을 약간 의심했지만 그냥 믿기로 했고 성아에게 아는 대로 말을 했다.

성아는 이 부분에서 속은 것이다.

-주인님의 기억에서 진실의 신은 가장 야비한 신이었다. 진실을 자신의 뜻대로 해석하고 원하는 대로 활용했지.

상엽이 대장 담비의 작전에 동의한 것은 한 가지 말에 의해서였다.

“거기까지. 판단은 내가 직접 할게. 아직 성아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거든.”

-소중하다니. 이유를 알 수 있나?

“전우니까.”

전장을 함께 누빈 동료.

대장 담비는 그 대답에 더 이상 성아를 비난하지 못했다.

-진실의 천칭은 금기가 아니다. 진실의 신이 힘을 모으는 방식이지. 널 선택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진실의 신은 우연을 믿지 않으니.

“알았어. 주의할게.”

의심스러운 부분이 생겼지만 대장 담비의 말은 객관적이지 않았다.

-공식을 진짜 완성할 수도 있다.

“무슨 뜻이야?”

-그는 천재니까.

“동희를 말하는 건가?”

-그는 주인님을 닮았다. 그리고 주인님보다 뛰어나다.

“제하드가 들으면 섭섭해하겠는데?”

-주인님도 인정할 것이다. 주인님은 다른 이들을 믿지 못했으니.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그것이 공식을 완성시켜 줄 것이다.

세 명의 장인을 말하는 듯했다.

그들의 시너지는 상엽도 직접 느낀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내 친구가 대단하긴 하지.”

상엽은 이 정도로 대화를 끝내려 했다. 그런데 대장 담비는 뜻밖의 질문을 했다.

-친구라는 말.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당연하잖아.”

-믿는다.

상엽은 그 말이 왠지 찜찜했다. 하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생각할 것이 많았다.

‘아직 소식이 없네.’

두 달간의 휴가.

그 안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다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콜렉터.’

모습을 감춘 그들을 찾아내는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정치적 협상에도 이 부분이 포함되었다.

‘그놈들만 제거하면 끝이야.’

이 세상은 온전히 상엽의 것이 된다.

‘곧 소식이 있을 거야.’

상엽은 한국에서 뜻밖의 사건을 겪고 다음 일정을 시작했다.

늦은 밤.

상엽은 이집트의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머물고 있었다.

블랙 해머와 코드 제로 요원들 역시 같은 호텔에 배정되었다.

호텔은 상엽의 방문단을 위해 영업을 중지하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어떤 귀빈이 와도 이런 적이 없었다.

상엽의 방문단이 꽤 규모가 되긴 해도 최고급 호텔을 전세 낼 정도는 아니었다.

“걸리는 게 있겠지.”

상엽은 최고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생수 하나까지 일반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이었다.

“루시, 이 물 한 병에 2천 달러래.”

“히말라야 눈을 녹여서 직접 정제했다고 하더군요.”

“이걸 믿어도 돼?”

“거짓말은 아닐 것입니다.”

상엽은 직접 물을 마셨다. 왠지 흘리지 말아야 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컵에 따라 천천히 들이켰다.

“그냥 물맛인데.”

“다른 맛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긴.”

루시는 웃으며 상엽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 하지만 상엽이 직접 살필 필요는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루시가 간단히 정리를 해서 보고를 했다.

“관저 방문은 내일 저녁으로 잡았습니다.”

“좀 늦네.”

“압박을 좀 줄까 합니다. 이곳에 갓코인 유저들의 모임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야?”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정식으로 치안대에 등록하지 않으면 조금 위협을 해 줄 생각입니다.”

“알아서 해.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요즘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근질근질해.”

“알겠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내일 아침에 보고드리겠습니다.”

루시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러다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상엽에게 말했다.

“언제든 필요하시면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그러고 있어.”

“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응?”

상엽이 그 말을 확인하기 전에 루시는 나가 버렸다.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한 말 같았다.

“이제 여유가 생겼다는 건가?”

상엽은 그녀가 떠난 자리를 잠시 지켜보다가 당연한 상상을 했다.

“이렇게 뜻밖의 로맨스가 시작되는 건가?”

오랫동안 참았던 본능이 폭발하려 했다.

“참 가지기 어려운 남자네.”

상엽의 등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상엽도 대충 알고 있었지만 내버려 둔 것이다.

“나 들으라고 한 소리지?”

나타난 이는 적설이었다.

“내가 질투할 거라고 기대하진 마. 같이 즐기는 것뿐이니까.”

“즐기는 거 나도 좋아해.”

“그런데 기분을 잡쳤어. 오늘은 안 되겠어.”

상엽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뭐야? 아쉽지 않다는 거야? 두 번 다시 밤에 찾아오지 않아도 좋아?”

“에이. 그건 너무 심하지. 단지 오늘 내가 평소보다 좀 덜 야성적일 뿐이야. 컨디션이 별로라서.”

“컨디션? 그게 너한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해? 당장 지구를 박살 낼 수도 있으면서?”

“왜 이렇게 흥분하고 그래?”

상엽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살짝 안아 주려 할 때였다.

똑. 똑.

평소보다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적설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들어와.”

상엽의 대답에 방금 문을 나섰던 루시가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지금 상황만 봐도 일반적인 보고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콜렉터의 은신처를 찾았습니다.”

그 말에 상엽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전까지의 능글맞던 웃음이 사라지고 서릿발 같은 한기마저 느껴졌다.

“어디야?”

“북극입니다.”

“묘한 곳에 숨어 있었네.”

그들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이유였다.

“최근 프랑스에 은밀히 접근한 모양입니다. 이걸 토대로 추적한 결과 북극의 버려진 연구 시설로 밝혀졌습니다.”

“준비해. 바로 갈 거니까.”

상엽은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스위트룸을 나섰다.

가능한 모든 위성이 북극의 버려진 연구 시설을 비추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 지어진 오래된 연구 시설은 꽤 규모가 큰 컨테이너였다.

그리고 큰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눈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건물이 있었다.

이것으로 지금까지 여러 눈을 속인 것이다.

상엽은 충분히 거리를 유지하고 목표 지점을 지켜보았다.

‘레나가 있을 거야.’

레나의 생사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콜렉터와 함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디까지 왔어?”

-30분 안에 도착합니다.

현재 블랙 해머를 실은 수송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20분 후에 시작한다.”

10분 먼저 공격을 시작하고 블랙 해머가 도착해서 잔당까지 모두 소탕하는 게 작전의 목표였다.

그렇게 20분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상엽의 눈에 뜻밖의 인물이 보였다.

눈과 얼음에 묻힌 비밀 통로를 통해 누군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성아?’

바로 며칠 전까지 그의 수호신이었던 성아가 콜렉터 길드의 기지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곁에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는데 상엽도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의심을 키웠다.

-주인님.

“아니야. 기다려. 작전대로 간다.”

추종자는 아직 정찰에 나서지 않았다. 접근하면 발각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10분 남았어. 넌 레나만 찾아.”

공격을 시작함과 동시에 추종자의 정찰도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성아라는 변수가 생겼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성아는 제하드가 남긴 신의 사망 공식을 두려워했다.

‘그게 어느 정도 위력이길래.’

상엽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남은 10분 동안, 상엽은 오히려 뒤로 물러나서 동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희야, 신의 사망 공식에 대해서 알아?”

-신의 종말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그래, 그거. 한국에 갔다가 대장 담비를 만났거든. 거기서 들었어.”

동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평소와 달리 조심스럽게 말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이 몇 개나 될 거 같아?

예상치 못한 질문에 상엽은 상식적으로 대답했다.

“아주 많지.”

-맞아. 극소량으로도 죽일 수 있지. 그런데 신에게는 그런 물질이 없거든.

상엽은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제하드가 그걸 만든 거야. 극소량으로도 신이 사망하는 그런 물질. 그런데 실현하지는 못했어.

“그건 무슨 소리야?”

-재료가 부족했거든.

상엽은 허무한 결론을 예상했다. 그런데 동희의 이어지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난 그 재료를 구했어. 용소와 스트라인버그를 통해서.

대장 담비는 교류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완성한 거야?”

-아니. 몇 가지 실험이 남았어. 그런데 이 실험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왜?”

연구라면 요리만큼 좋아하는 동희였다. 갑자기 멈춘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너도 신이 됐잖아.

“아…….”

대장 담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배신.’

절대신조차도 죽일 수 있는 물질이 있다. 이것은 상엽이 절대신이 되었을 때, 유일한 위험 요소였다.

동희는 그래서 연구를 포기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 안 만들 거야.

“동희야.”

상엽은 침울한 음성의 동희를 불렀다.

“만들어. 대신 보관만 잘해.”

-정말? 만들어도 돼?

“네가 하는 일은 뭐든 돼. 난 한 번도 막은 적이 없어.”

-알았어! 대신 만든 건 너만 줄게. 신의 대륙에 가서 마음대로 사용해.

양날의 검이었다.

의외로 신을 쉽게 제거할 수 있게 되지만 상엽 자신이 당할 수도 있었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해.”

-헤헤. 너한테 최강의 무기가 될 거야.

동희는 웃었다. 하지만 상엽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신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럼 여기 있는 신들부터 전부 제거해야지.’

상엽은 콜렉터와 함께 있는 여러 신들을 떠올렸다.

‘한 놈도 놓치면 안 돼. 동희가 위험해질 거야.’

북극 공략이 더욱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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