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76화 (274/300)

# 276

하늘까지 치솟은 기둥이 세워졌다.

기둥의 끝에는 구름이 걸려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서 스트라인버그는 신중하게 문양을 새기는 중이었다.

-신의 대륙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상엽의 명령에 의해 차원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신을 위해서!”

한창 문양을 새기던 스트라인버그가 직접 만든 위스키를 들이켜더니 하늘을 보며 외쳤다.

“꽤 괜찮은 절대신이 될 거야.”

그는 상엽을 인간적으로 믿고 있었다. 그래서 명령 같은 요청을 모두 들어주었다.

“앞으로 석 달!”

그는 다시 한번 위스키를 들이켜고는 작업에 몰두했다.

석 달이라는 시간은 상엽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휴가였다.

그동안 상엽은 좋든, 싫든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핵심은 정상 회담이었다.

상엽은 각 나라의 정상들을 만날 계획을 세웠고 그 시작은 최근 가장 사이가 좋은 영국이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 국빈 대우를 받았고, 말 한 마디가 정책으로 실현되고 협상으로 발전했다.

-라면 좋아합니다.

그 한마디를 했다고 정상 회담 첫날 저녁 식사 자리에 스무 종류가 넘는 세계 각국의 라면이 차려졌다.

좁고 긴 테이블의 옆면에 상엽과 50대 후반의 영국 총리가 마주 앉았다.

요리사들은 막 뽑아낸 면발의 탄력을 위해 분주히 그릇에 면을 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영국 총리는 조심스럽게 상엽의 반응을 살폈다. 상엽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엽은 묘한 감정에 빠졌다.

“아무리 그래도 라면에 캐비어라니…….”

라면이라는 기본 음식에 세계 각국의 값비싼 재료들이 투입되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요리사들의 모든 행동이 멈췄다.

모두들 긴장한 분위기를 보이자 상엽은 애써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하던 거 계속하세요.”

하지만 팽팽해진 긴장감은 좀처럼 녹지 않았다.

“루시, 분위기가 왜 이래?”

“좀 더 유지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엽의 곁에 있는 아군은 루시와 사하르가 전부였다. 나머지 요원들은 회의실에서 협상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번 협상은 앞으로 전 세계의 판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코드 제로가 국가에 어느 정도 간섭을 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질 것인지가 이번 협상을 기준으로 했다.

게다가 첫 국가와의 협상이라 전 세계가 이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요원들은 뭘 좀 먹었어?”

상엽의 질문에 루시 대신 영국 측 보좌관이 재빨리 대답했다.

“최고급 음식으로 이미 제공되었습니다.”

“블랙 해머들은?”

블랙 해머들은 공관으로 들어오지 않고 가까운 호텔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것은 루시의 계획으로 은근히 상대측에 압박을 주려는 의도였다.

현재 정세를 보면 블랙 해머가 모든 국가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강력했기 때문이다.

“우리 애들이 라면 진짜 좋아하는데.”

그 한마디로 영국 측이 분주해졌다.

곧바로 상엽의 발언이 어디론가 전달되었고 요리사 중에 몇 명이 눈치를 보더니 빠르게 음식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사하르가 먼저 했다.

“그러지 말고 사하르도 같이 먹어.”

“아닙니다.”

사하르는 자리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상엽은 완고했다.

“음식이 많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은 그럴 자격이 있어. 루시도 앉아.”

상엽의 명령으로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다른 분들도 같이 드세요. 음식 남기면 벌받아요.”

뒤에서 대기 중이던 많은 사람들이 상엽과 영국 총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상엽의 말대로 넓은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먹어요. 딱딱하게 그럴 거 없어요.”

상엽은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때부터 모든 이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특히 사하르가 맛있게 먹었다.

“사하르, 어때?”

“대장님의 라면이 훨씬 맛있습니다.”

그건 진심이었다. 사하르는 면만 빠르게 먹더니 다시 상엽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 아까운 국물을 남기다니.”

“그걸 마실 가치가 있지는 않습니다.”

“냉정한 놈.”

영국 최고의 요리사가 그 한마디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상엽은 나름대로 독특한 라면들을 먹은 것에 만족했다.

“나머지는 저희들이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상엽은 협상에 직접 나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매끄러운 협상이 되길 바라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말이 협상이고 정상 회담이지 이미 코드 제로가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영국의 총리와 협상 팀은 애초에 허락할 수 있는 최종 방어선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최종 방어선이라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립 경제 체계의 유지 정도였다.

상엽은 잘 차려진 식탁에서 일어나며 좌중들을 둘러봤다.

“안심하세요. 전 여기를 지옥으로 만들 생각이 없으니까요. 저도 평화가 제일 좋아요.”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총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관광 좀 다녀올게.”

“그럼 전 호텔로 복귀하겠습니다.”

“빨리 가서 라면 먹으려고 그러지?”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럴 생각입니다.”

“맛있게 먹어.”

상엽은 공관을 나서면서 사하르를 먼저 돌려보냈다.

그의 앞에 최고급 자동차가 대기 중이었지만 별로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알아서 갈 테니까 일 보세요.”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높이 뛰어올랐다.

히잉!

지옥마가 떠오른 상엽을 태우고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그곳에 모여 있던 많은 이들은 이를 보며 상엽과 자신들의 차이를 분명히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

그것이 바로 상엽이었다.

테리아 그룹이 오랜 침묵을 깨고 공식적으로 부활을 선언했다.

시작은 국가 테니아 재건이었고 영국의 발표로 날개를 달았다.

-국가 복구 사업의 총책임을 테리아 그룹에 맡긴다.

이것은 당장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영국과 코드 제로의 협상은 사흘간 지속되었고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생겼다.

코드 제로는 의외로 국가의 존립에 대한 부분은 결코 건드리지 않았다. 다만 군사 분야에서 많은 양보를 요구했다.

어차피 기울어진 힘이라 영국 입장에서는 고집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

그 외에는 모두 허용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성공적인 협상이었다.

영국은 의외로 자신들의 피해가 적은 부분에 환호했고 코드 제로도 이를 인정해 주었다.

이런 모든 결과는 사실 상엽이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국가에서 조금씩만 양보를 받아. 예전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낄 정도로. 대신 군사력에 대한 권한은 확실히 해. 누가 대장인지는 분명히 알아야 하니까.

상엽은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는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모든 나라를 이렇게 관리하면 엄청난 이익을 받게 된다.

-그걸로 충분해.

상엽은 테니아가 부유한 국가가 되길 원했고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때부터는 협상과 정상 회담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가이드라인이 세워진 덕에 하루 만에 협상이 마무리되기 시작했고, 한 달 만에 유럽과의 협상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상엽은 공식적으로 테니아의 영토를 선언했다.

중국과 한국, 일본.

이미 주인을 잃거나 폐허가 된 땅을 전부 테니아에 소속시켰다.

그때부터 전방위적인 공사가 시작되었고 전 세계적인 원조를 받았다.

협상을 끝낸 국가들은 선물이었고, 아직 상엽을 만나지 못한 국가는 뇌물의 성격이었다.

어쨌든 모든 힘이 모인 덕분에 도시는 빠르게 복구가 되고 있었다.

상엽은 바쁜 일정에서도 짬을 내어 한국의 복구 상황을 지켜봤다.

상점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이제는 지옥마를 타고 직접 이동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상엽은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을 떠나 강원도 원주로 갔다.

아주 오래전에 버려진 원주는 단 한 사람의 생존자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돌봐 주지도 못했네.”

소장님의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도 듣지 못했다.

원주를 시작으로 태백산에 도착했다.

행여나 변종이 남아 있는지 살펴봤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이. 재미없네.”

추억의 장소에 들러 봤지만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동안의 삶이 너무 치열했다.

“아직 끝난 것도 아니고.”

잠시 휴가가 생겼을 뿐이었다.

“두 달 남았어.”

두 달 후에는 신들의 대륙으로 갈 것이다.

“절대신이 돼서 전부 살려야 돼.”

이제 누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신이 되는 것밖에 없었다.

“가자.”

상엽은 추억 놀이를 포기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의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군.

“뭐야? 설악산에 있는 거 아니었어?”

-여기 올 거 같아서.

말을 걸어온 이는 대장 담비였다. 담비는 상엽의 무릎에도 닿지 않는 작은 몸이었지만 목소리의 힘은 여전했다.

“산신령답네.”

-신의 대륙으로 갈 것인가?

“그래야지.”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설악산으로 같이 가겠나?

“그 전에 네가 누군지 알았으면 좋겠는데?”

상엽이 예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주인님의 창조물. 그저 하찮은 존재다.

“그 정도로는 부족한데.”

-주인님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주인님의 모든 생각에 동의한다.

그 정도로 충분했다.

연금술사 제하드의 마지막 창조물이 바로 대장 담비였다.

그는 죽었지만 창조물을 통해 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았어. 가자.”

-갈 수 있는 건 너뿐이다.

상엽은 담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성아는 내 편이야.”

-난 신을 믿지 않는다. 주인님의 죽음에 진실의 신도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상엽도 이 부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단순히 신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면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었다.

“직접 해명하는 게 어때?”

-진실이에요. 그의 죽음을 결정하는 회의에 저도 있었으니까요.

“그의 죽음에 동의한 거야?”

-네. 그는 율법을 어겼으니까요.

그 대답을 하는 성아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다.

“그럼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난 인간인 주제에 절대신이 되려고 하는데.”

-당신은 이미 여러 신들의 후계자예요. 자격이 있어요.

“편한 해석이네. 어쨌든 이번에는 나 혼자 가야겠어. 이해하지?”

-저도 떠날 때가 되었으니까요.

프로토가 죽었다. 그렇지만 성아의 이별 선언은 꽤 의외였다.

“알았어. 그동안 수고했어.”

상엽은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의 계약은 오래전에 끝났고, 강요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상엽의 대답에 성아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섭섭하군요. 아쉬운 내색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붙잡으면 안 갈 거야?”

“깊게 고민할 수도 있어요.”

상엽은 왠지 웃음이 났다. 성아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다려. 금방 다녀올 테니까.”

“명령인가요?”

“맞아. 듣고 안 듣고는 네 자유야.”

상엽은 성아의 선택을 기다렸다.

“좋아요.”

결국 성아는 상엽과 또 한 번의 만남을 받아들였다.

“돌아오면 기대해. 내가 산에서는 뜨거워지는 남자니까.”

그 말에 성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상엽은 그 표정을 보며 담비와 함께 설악산으로 갔다.

설악산에는 담비들이 만든 동굴이 있었다.

“나 인신매매하는 거야?”

-농담인가?

“쳇. 알면 좀 웃지 그래?”

-재미가 없다.

냉정한 평가를 받으며 상엽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동굴의 가장 안쪽에 도착했을 때, 상엽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게 다 뭐야?”

상엽은 멍하니 동굴 벽을 보았다.

“하나도 못 알아보겠어.”

-그런데 왜 놀란 거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흠. 지나치게 솔직하군.

동굴 벽에는 상엽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공식들이 적혀 있었다.

깨알 같은 문자와 숫자들이 벽 전체를 가득 메운 것을 보자 상엽은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신을 죽이는 공식이다.

“뭐?”

-주인님께서 만든 공식이다. 그런데 실현하지는 못 하셨다.

“이걸 왜 동희가 아니라 나한테 보여 주는 거야?”

-이 공식의 마지막 수식이 지워졌다.

결국 이 공식은 미완성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의외였다.

-진실의 신이 그 공식을 지웠다. 그리고 그것은 저울에 묻혀 있지.

진실의 천칭.

신을 죽이는 공식이 그 안에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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