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69화 (267/300)

# 269

페러독은 평생 겪어 보지 못한 고통을 느꼈다.

뼈가 부러지고 몸속에서 가루로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몸은 고장 난 기계처럼 말을 듣지 않았고, 정신은 혼미해졌다.

단 한 번 공격을 허용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심장이 놀랄 것처럼 크게 뛰어서 다른 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칼을 들어야 할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무너졌고, 심장을 지키던 뼈는 가루가 되었다.

하지만 본능적인 대응은 있었다.

-신의 스킬, 칼날 뼈

그의 내부에서 가루가 되었던 뼈들이 기괴한 모양으로 재생되었다.

투둑!

수십 개의 칼날이 그의 몸 밖으로 튀어나오며 무너지는 몸을 바로 잡았다.

뼈는 완벽히 재생이 되었고 본능적으로 쥐고 있던 검도 다시 움켜잡았다.

끼릿!

그는 땅속에 칼날을 꽂으며 밀려나는 몸을 진정시켰다.

“늦었어.”

몸을 재생했지만 상황이 나빴다.

회복을 하고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그 시간이 상대에겐 충분한 여유가 되었다.

그가 반격을 준비했을 때, 상엽과는 충분한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 공간은 이미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의 넓은 원형 파동이 보였고, 급격히 상승하는 기류를 만들었다.

-신의 스킬, 데스 서클.

피를 닮은 붉은빛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으아!”

결국 페러독은 비명을 질렀다.

데스 서클의 빛은 모든 것을 녹이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있는 페러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페러독의 칼날이 무뎌지더니 결국 붉은 액체가 되어 상승하는 기류 속에서 흩어졌다.

털썩.

데스 서클이 끝났을 때, 페러독의 몸이 무너졌다.

무릎을 꿇은 그의 몸은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만신창이였다.

피부는 모두 녹아서 근육이 모두 드러났고, 대부분이 드러난 뼈도 멀쩡한 곳이 없었다.

“대단하네.”

상엽은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칼을 쥐고 있는 거야?”

무릎을 꿇었고 죽음을 앞뒀지만 그는 여전히 칼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칼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반격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상엽은 이를 보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끝내자.’

그는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먹구름이 형성되더니 뭔가가 빠르게 떨어졌다.

워낙 강렬한 기세라서 상엽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프로토!’

그 이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먹구름에서 떨어진 원형 기둥은 상엽을 뒤로 물리고 페러독을 감쌌다.

이를 보며 상엽은 프로토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페러독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단순히 라이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었다.

갓코인 시스템의 파괴.

페러독이 무너지면 갓코인의 균형이 사라진다. 블랙 유저 중에서 더 이상 화이트 유저를 막을 자가 없어지는 것이다.

-신의 스킬, 절망의 파동

상엽은 빛이 시작되는 먹구름을 향해 절망의 파동을 쏘았다.

바닥으로 떨어진 빛과 절망의 파동이 만들어 낸 균열이 서로 엇갈리며 곧 폭발이 일어났다.

쩌어엉!

절망의 파동이 공간을 파괴했지만 먹구름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페러독의 몸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옥아.’

상엽은 지옥마를 불러 직접 먹구름을 향해 돌진했다.

지옥마가 순식간에 최고 속도에 달했고, 상엽은 스트라이크로 다시 한번 속도를 높였다.

‘파괴전차.’

콰쾅!

상엽은 모든 힘을 다해 먹구름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먹구름에 닿았을 때, 상엽은 바위에 맨몸으로 부딪치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먹구름도 멀쩡하지 못했다.

땅으로 연결된 빛의 기둥이 흔들렸고, 먹구름 전체에 강렬한 스파크가 뒤엉키며 불안한 모습이 되었다.

‘한 번 더 간다.’

상엽은 같은 방식으로 다시 한번 먹구름을 향해 돌진했다.

콰쾅!

스파크는 강렬해지고 먹구름은 얕아졌지만 완전히 소멸되진 않았다.

‘마지막.’

상엽도 멀쩡하지 못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스파크가 튀면서 피부 곳곳이 찢어졌다.

혀를 적시는 핏물의 비릿함을 느끼며 상엽은 이를 악물었다.

빛의 기둥에 의해 상승하는 페러독은 이미 먹구름에 닿을 듯이 가까워져 있었다.

‘이번에 끝내야 돼.’

상엽은 해머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마지막 돌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파괴전차 대신 직접 타격을 선택했다.

악마의 기운이 해머에 모여들고 검붉은빛이 스파크와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상엽의 해머가 먹구름을 때렸다.

쩌어엉!

하늘이 무너지는 굉음이 들렸다. 먹구름 내부에서 전기 폭풍이 몰아치며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그때, 또 한 번의 타격이 이어졌다.

유령 잔상.

콰콰쾅!

곧바로 이어진 타격에 먹구름이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툭.

상승하던 페러독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고 하늘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저 맑기만 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쳇. 도망갔나?”

사라진 먹구름에 다른 흔적은 없었다.

이를 확인한 상엽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정신을 잃은 페러독이 있었다. 프로토의 구출 작전이 실패한 것이다.

상엽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페러독을 보았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도 이렇게 될 수 있겠지?”

그 모습을 보는 게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잘 가.”

의미 없는 인사를 하며 상엽은 해머를 들어 올렸다.

쾅!

페러독이 허무한 빛으로 흩어졌다.

* * *

챙!

하늘까지 솟은 거대한 거울이 깨졌다.

“큭!”

동시에 프로토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하늘의 눈이 깨지다니…….”

세상의 모든 곳과 연결되는 거울.

오직 중재의 신만 가지는 유산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깨졌다.

상엽의 타격으로 깨져 버린 것이다.

그는 하늘의 눈을 통해 먹구름을 만들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차원을 넘을 수도 있었고, 무엇이든 지켜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거울이 상엽으로 인해 깨진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프로토의 인자하던 인상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분노에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당장 이 세계를 무너트릴 것처럼 독기를 뿜어냈다.

“내가 인간을 과소평가했는가?”

상엽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늘의 눈이라는 거울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블랙 해머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했다.

스트라인버그의 은신처를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프로토에게 꽤나 충격적인 현실이었다. 그런데 상엽으로 인해 그 충격이 배가 되었다.

“주인님…….”

이하나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프로토가 분노를 드러내며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이하나는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인간이었지?”

“그렇습니다. 미천한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을 믿을 수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전 인간이지만 이미 노예입니다. 주인님께서 의심할 가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

프로토는 이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윽!”

이하나는 손이 닿지도 않았음에도 목을 움켜잡으며 어딘가에 매달린 것처럼 몸이 떠올랐다.

이하나는 목을 죄는 고통과 금방이라도 뼈가 부서질 것 같은 공포 속에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프로토는 분노한 눈으로 손에 더욱 힘을 쥐었다.

프로토가 주먹을 움켜쥐기 시작하자 이하나의 목에 선명한 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하나는 그럼에도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이하나가 소멸 직전까지 갔을 때, 프로토는 힘을 풀었다.

“컥. 컥.”

이하나는 거칠게 숨을 토하면서도 다시 무릎을 꿇었다.

“주, 주인님…….”

그녀는 프로토가 뭔가 결정을 하기 전에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할 말이라도 있느냐?”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남았단 말이냐? 갓코인은 실패다. 더 이상 경쟁이 불가능하게 되었단 말이다.”

“아닙니다.”

이하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이건 기회다.’

위기일수록 이를 극복하면 보상이 큰 법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일의 성공을 위해 미리 힘을 줄 것이다.

이하나는 이를 알기에 소멸을 각오하고 분노한 프로토를 불렀다.

“아직 한 명이 남았습니다.”

“페러독과 비교할 자가 있단 말이냐?”

“실력은 좀 부족할 수 있으나 정상엽을 막기에는 더욱 괜찮은 자입니다. 주인님께서 조금 도와주신다면 아마 훌륭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자가 누구냐?”

이하나는 프로토의 분노가 누그러드는 것을 보며 준비했던 이름을 말했다.

“김만득입니다.”

모든 이에게 잊히고 있던 이름.

어느 순간 갓랭킹에서 사라졌고 소문조차 들리지 않던 자였다.

프로토 역시 그 이름을 몰랐다. 하지만 상엽에 대해 모든 것을 조사한 이하나는 다른 이들보다 적극적으로 그를 찾고 있었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

“신전에 갇힌 것 같습니다. 주인님께서 손을 내밀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 판단됩니다.”

“어느 신전이냐?”

“죽음의 신전입니다.”

죽음의 신전이라는 말에 프로토의 눈빛이 흔들렸다.

“거길 찾아낸 인간이 있다니…….”

“특별한 자입니다. 화이트 유저를 극도로 싫어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막바지 경쟁을 유도하기에 가장 적절한 자로 판단됩니다. 다만 현재 죽음의 신전에 들어간 후로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입니다. 한시바삐 상태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이하나가 기회를 잡아 빠르게 상황을 설명하자 프로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라.”

“아닙니다, 주인님. 전 이 자리가 어울립니다.”

“내가 총명한 노예를 아프게 했구나.”

“전 그래도 되는 존재입니다.”

그 말에 프로토가 웃었다.

“날 배신하지 않는다면 세상 하나쯤은 가지게 해 주마.”

“감사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전 주인님 옆이 가장 좋습니다.”

프로토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 * *

상엽은 2급 화이트 상점을 찾아갔다.

페러독을 죽이면서 규칙에 따라 코인이 모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모은 코인까지 합치면 2급 화이트 신을 완전히 완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신의 상점에서 소모한 코인은 10퍼센트가 죽인 자에게 넘어갔고, 보유 코인은 원래 규칙대로 절반이 넘어갔다.

페러독이 가지고 있던 엄청난 코인과 유물을 처리하자 2급 신을 완성할 수 있는 수치가 된 것이다.

‘1급은 안 돼.’

상엽은 뱀파이어 로드를 통해 1급 상점에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그 비밀을 밝혀내지 않는 한, 상엽은 1급 상점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갓코인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강해져야지.’

그래서 상엽은 페러독을 처리한 후에 곧장 신의 상점을 찾았다.

그의 앞에 단 세 명의 신이 보였다.

선택할 수 있는 2급 철벽 신의 숫자였다.

2급 신은 모두 인간의 형태였다. 이번 역시 상엽은 성아를 통해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시라드라.”

상엽의 선택에 갑옷조차 입은 않은 채로 오직 커다란 방패 하나만을 든 신이 앞으로 다가왔다.

4미터 거인은 자신의 신장과 같은 크기의 은빛 방패를 들고 있었다.

정확한 직사각형 형태의 방패는 시라드라 특유의 문양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시라드라는 신체 능력이 뛰어난 신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의 방패는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어요. 그가 평균적인 전투 능력만 있었더라면 결코 2급 신으로 분류되진 않았을 거예요.

신들의 대륙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방패였다. 다만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단지 이것만으로도 2급에 분류될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상엽은 이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충분한 코인이 있군. 그의 힘을 완성하겠나?”

“네.”

짧은 대답과 함께 시라드라의 힘이 완성되었다.

이미 힘에 대해 욕심을 버린 상엽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신의 힘을 흡수하자 상엽은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갓코인 시스템을 유지하는 거지?’

상엽은 사막의 유일한 연구원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점을 보았다.

프로토가 갓코인을 포기했다면 분명히 상점의 운영을 중단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프로토는 내버려 두었다.

‘1급까지 가길 바라는 건가?’

프로토는 상엽이 1급에 의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음에는 1급 상점이구먼.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둘러보고 가겠나? 내가 친절히 설명해 줄 테니.”

여전히 수다스러운 사막의 상점 루소가 상엽을 유혹했다.

“거절할게요.”

“왜 그러나? 무려 1급 신의 상점이란 말일세.”

“바빠서요.”

상엽은 루소의 유혹을 거절하고 상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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