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68화 (266/300)

# 268

겨우 탐색전이 끝났을 뿐이지만, 주변은 죽음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었고, 이는 인간과 자연에게 모두 공평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이는 단 두 명.

땅을 제외한 모든 환경을 파괴한 신의 힘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별다른 말 없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또 한 번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땅도 멀쩡하지 못했다.

해머와 검이 교차한 상태에서 상엽과 페러독은 서로를 보았다.

그들의 표정에 분노나 긴장감은 사라져 있었다.

감정을 드러낼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누구도 물러날 수 없고, 한 명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었다.

이를 알기에 그들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쉽게 끝나진 않겠어.’

상엽은 오랜만에 긴장감을 느꼈다.

자신감은 여전했지만 자신이 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싸움이었다.

그릉!

해머의 손잡이와 검신이 마찰음을 일으키며 둘은 다시 멀어졌다.

본격적인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도시를 날려 버린 파괴력은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힘을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힘이 아니라면 서로를 무너트릴 수가 없었다.

다만 서로가 원하는 방향은 확실히 달랐다.

해머를 쓰는 상엽은 상대를 파괴해야 했고, 칼을 쓰는 페러독은 상엽의 급소를 찔러야 했다.

서로 성격이 확연히 다른 무기인 만큼 전투 방식도 달랐다.

쾅!

상엽이 땅을 밟을 때는 파괴력 증가를 위해 언제나 강한 도약을 했다.

스슥.

반면 페러독은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다 한순간 힘을 모으는 스타일이었다.

선공은 상엽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상엽은 날카로운 창의 숲으로 뛰어드는 기분이었다.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페러독은 독을 품은 독사처럼 한 번의 기습을 노리고 있었다.

이를 알기에 상엽은 접근만 할 뿐, 함부로 모든 힘을 쏟지 않았다.

챙! 챙!

상엽은 해머를 최대한 가볍게 휘두르며 접근에 성공했다. 오히려 강력한 스킬보다 더욱 자신 있는 포지션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상엽은 접근전에서 압박감을 느꼈다.

페러독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는 상엽의 공격을 능숙하게 흘려 냈다.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궤도를 바꾸며 옆으로 피하는 형태였다.

그 동작이 워낙 능숙해서 공격을 할 때마다 불편하게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느낌은 페러독도 똑같이 받고 있었다.

‘반격을 할 수가 없다.’

보통 공격을 흘려 내면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상엽은 공격이 실패하면 바로 위치를 바꿔서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없애 버렸다.

이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긴 전투가 되겠군.’

페러독은 더욱 집중했다. 상엽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마치 스킬이 없는 무사들처럼 무기만으로 전투를 이어 갔다.

금속음이 계속해서 발생했지만 누구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렇다고 체력도 고갈되지 않았다.

공방은 빨랐지만 누구도 이득을 취하지 못했다. 그러다 먼저 변화를 준 이는 상엽이었다.

펑!

반발 정도 뒤로 물러났던 상엽이 늑대인간으로 변했다.

해머 대신 길게 늘어난 손톱을 사용했고, 힘보다는 속도 위주의 공격으로 변했다.

츳!

처음으로 페러독의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

힘을 상대하는 데 익숙했던 그는 양팔을 끝도 없이 휘두르며 방향을 바꾸는 늑대인간의 공격에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도 있었다.

‘틈.’

작은 틈을 노리고 페러독이 반격에 나섰다.

어깨를 내주고 목을 찌르려 한 것이다. 위협을 느낀 상엽은 공격을 포기하고 몸을 숙인 이후에 거의 앉듯이 낮은 자세에서 팔을 휘둘렀다.

상대의 정강이에 다시 상처가 생겼지만 페러독도 만만치 않았다.

손톱이 정강이를 스치는 순간, 그의 검 끝이 아래를 향하며 상엽의 정수리를 노렸다.

완벽한 반격에 상엽은 어쩔 수 없이 바닥을 구르며 옆으로 물러났다.

푹!

허공을 가른 검이 바닥에 꽂힌 순간, 상엽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페러독의 심장으로 손톱을 뻗었다.

챙!

이번에는 페러독이 검이 아니라 팔을 이용해 손톱을 막았다.

페러독은 검을 쥐지 않은 왼손에 방패 대신 팔뚝부터 손가락을 전부 감싸는 금속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를 이용해 손톱을 막은 페러독은 바닥에 있던 검을 뽑으며 상엽의 턱을 노렸다.

위기에서도 다시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상엽의 반응이 지금까지와 달랐다.

이번에는 상엽이 상처를 감안하고 페러독의 심장을 노렸다.

결국 페러독은 모든 반격을 포기하고 급히 옆으로 몸을 굴렸다.

상엽은 재빨리 이를 뒤쫓으려 했지만 페러독의 몸은 긴 잔상을 남기며 생각보다 훨씬 멀리 달아났다.

치열한 공방전을 끝낸 그들은 다시 서로를 보았다.

상엽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페러독은 검을 아래로 내리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번 역시 그들은 서로 대화가 없었다.

상엽은 처음과 달리 천천히 페러독에게 다가갔다. 페러독은 검을 늘어트린 그대로 상엽의 접근을 기다렸다.

그리고 두 번째 충돌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처음과 달랐다.

접근전이지만 스킬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움직임은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페러독의 몸이 다섯 개로 늘어나는가 하면, 상엽의 폭발이 불꽃 회오리를 만들기도 했다.

누가 봐도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하늘까지 치솟은 불꽃 회오리가 구름마저 집어삼켰고, 모든 대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반면 페러독의 칼은 소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칼을 휘두르고 난 뒤에 공기를 찢는 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음속을 돌파한 것이다.

그럼에도 상엽은 이를 피해 내고 반격까지 했다. 하지만 페러독의 행동이 잔상을 남기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소리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야까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페러독의 모든 행동은 스킬로 인해 진한 잔상을 남겼고 이는 진짜를 구분하는 데 불편함을 주었다.

워낙 치열한 접전이라 그 작은 변화가 균형을 이루는 저울추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수세에 몰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

상엽은 계속해서 페러독의 칼이 피부에 닿기 시작하자 방법을 바꿨다.

아직은 피부가 버티고 있지만 통증이 발생하고 있었다. 페러독이 공세를 잡으면 피부가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온다.’

현란하게 눈을 속이던 페러독의 잔상 안에서 갑자기 진검이 튀어나왔다.

상엽은 본능적으로 이를 간파하고 급히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어 해머를 내려쳤다.

페러독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콰르릉!

그는 밟고 서 있는 땅을 해머로 때렸다. 순간 지진과 같은 울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페러독의 중심이 흔들린 것도 그때였다. 해머만 가능한 패턴이라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 상엽은 공세에 나섰다.

페러독은 짧은 흔들림을 어느새 바로 하고 다가오는 상엽의 목을 향해 칼을 뻗었다.

그 역시 수세에 몰리지 않기 위해 반격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상엽의 해머는 목표를 향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상엽은 해머를 크게 휘둘러 페러독의 검이 몸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무기가 없는 상태로 돌진했다.

쾅!

속이는 데 성공한 상엽은 결국 페러독을 들이받았다.

페러독은 왼손의 금속 장갑으로 이를 막았지만 엄청난 힘에 밀려나고 말았다.

처음으로 정확히 공격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페러독은 이를 악물고 몸이 떠오르는 것을 막았다. 그 결과 바닥에 깊고 긴 도랑을 만들며 50미터 이상을 밀려났다.

기회를 잡은 상엽은 페러독을 향해 아껴 두었던 스킬을 퍼부었다.

지옥의 축제가 펼쳐졌고 수백 줄기의 검은 마수가 페러독을 향해 뻗어 갔다.

악마의 기운이 닿기 직전, 페러독은 검까지 바닥에 꽂으며 밀려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수천 개의 칼날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펼쳐졌다.

그가 자랑하는 최강의 공격이자 방어 스킬이었다.

신의 스킬-칼날 숲의 폭풍

순식간에 펼쳐진 칼날 회오리는 수천 개의 칼날이 하나하나 긴 잔상을 남기며 완벽한 벽을 만들었다.

그렇게 두 기운이 충돌했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회오리에 검은 기운이 맹수의 이빨처럼 거칠게 들이닥쳤다.

까랑! 까랑!

격렬한 쇳소리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그 소음이 끝났을 때, 상엽은 눈살을 찌푸렸다.

‘막는다고?’

악마의 기운이 처음으로 스킬에 막혔다. 회오리가 다가오는 기운을 모두 튕겨 낸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스킬을 펼치며 달려들던 상엽은 모든 스킬을 거두고 오로지 힘으로 회오리를 뚫었다.

칼날 회오리는 금방이라도 상엽을 찢어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상엽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츳! 츳!

상엽의 강력한 피부도 칼날 회오리로 인해 균열을 보였다. 하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통과한 탓에 완전한 균열로 이어지진 않았다.

‘잡았다.’

결국 회오리를 뚫은 상엽은 스킬을 쓰느라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한 페러독을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페러독의 눈빛이 빛났다.

상엽은 이를 보며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 생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회오리가 급격히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러독의 몸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회오리가 형성되었다.

두 개의 회오리는 서로 안팎에서 좁혀지며 충돌을 앞두고 있었다.

게다가 기회를 잡은 페러독이 모든 힘을 쏟아부으면서 상엽의 피부에 칼날이 꽂히고 있었다.

피부를 뚫을 정도의 위력인 것이다.

두 개의 회오리가 합쳐진다면 상엽의 몸이 완전히 찢어질 것이 분명했다.

상엽은 선택을 해야 했다.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

페러독의 얼굴에 미세하지만 자신감이 떠올랐다. 이를 본 상엽은 도박을 하기로 했다.

팟!

상엽은 페러독을 향해 뛰었다.

그곳에는 페러독의 몸에서 점차 범위를 넓히는 회오리가 있었다.

상엽은 차라리 충돌을 선택했다.

다시 한번 회오리를 뚫는 것이다. 그런데 상엽이 움직이는 순간, 희미하게 보이던 페러독의 모습이 완전히 회오리에 숨어 버렸다.

그럼에도 상엽은 멈추지 않았다.

‘급소만 피한다.’

그 생각을 하고 회오리로 들어섰을 때였다.

칼날 회오리가 피부를 찢기 시작할 때, 이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기세가 느껴졌다.

상엽은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회오리 안에서 겨우 몸을 틀었다.

서걱!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신의 스킬-바람의 검

날카로운 칼날이 상엽의 피부를 뚫고 오른쪽 어깨로 완전히 관통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파가 폭발했다.

팍!

상엽의 몸이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이 발생했다.

‘버티다니.’

어깨라고 해도 심장까지 찢어 버릴 수 있는 충격이었다. 페러독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툭.

그런데 예상과 달리 상엽의 오른팔이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록 심장을 터트리진 못했지만 확실한 기회를 잡은 페러독은 회오리를 거두고 상엽의 목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이겼다.’

페러독은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방어할 수단이 사라진 상엽의 오른쪽으로 검로를 잡았다.

유령 걸음.

상엽의 몸이 투명해지며 페러독의 빠른 검을 흘려 냈다. 하지만 이는 단 한 번의 임기응변일 뿐이었다.

페러독은 상엽의 몸을 통과한 검을 아래로 내리며 발목을 그으려 했다.

상엽이 이를 겨우 피해 내자 페러독은 다시 상엽의 오른쪽을 노렸다.

그런데 페러독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챙!

상엽의 오른손이 멀쩡히 나타나서 그의 검을 막은 것이다.

신의 스킬-꼬리 자르기

신의 스킬-꼬리 회복

상엽이 가장 최근에 완성한 신의 스킬이었다. 이것이 실제로 펼쳐지는 건 처음이었다.

페러독은 확신했던 검이 해머에 막히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몸을 향해 강력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파이어스의 망치였다.

상엽이 왼손에 다른 해머를 꺼내서 휘두른 것이다.

쾅!

페러독은 겨우 금속 장갑을 세워 이를 막았다. 하지만 직접적인 타격으로 인해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더 강력한 기운이 다가왔다.

“이게 진짜야.”

쾅!

드디어 상엽의 진짜 공격이 페러독의 몸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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