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61화 (259/300)

# 261

“지금부터 건설하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스트라인버그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물 조각들을 분해해야 합니다. 가치로 따지면 100만 코인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분해가 가능해?”

“저라면 가능하지요.”

스트라인버그는 양팔을 벌리며 자신의 능력을 찬양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차원이동이라는 거, 정확히 어떤 거야?”

“차원과 차원은 완벽한 수평을 이루고 있어 닿지 않을 뿐, 그 거리가 먼 것은 아닙니다. 수평선에 수직으로 다리를 하나 놓으면 연결이 되는 거지요. 물론 그 차원의 에너지로 인해 다리가 오래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갈 수 있는 차원이 몇 개나 돼?”

“제가 길을 아는 건 다섯 개 정도입니다.”

“거기 전부 사람이 살아?”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이곳뿐입니다. 다른 차원에는 다른 존재가 살지요. 신도 있고, 이곳 사람들이 외계인이라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마족도 있고 요정도 있지요.”

스트라인버그는 상엽이 관심을 가지자 더욱 거창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차원의 존재들은 전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요.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같은 겁니다. 물론 차원을 연결하는 건 특별한 능력이지만 말입니다.”

결국 스트라인버그의 이야기는 자기 자랑으로 끝났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다녀왔을 때, 요정 친구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녀왔다고?”

“하하. 전 그런 사람이지요. 차원을 마음대로 오고 가는 그런 능력자란 말입니다. 이런 제가 요정계에 잠시 다녀온 건 특별한 게 아닙니다. 물론 다른 사람은 절 특별한 시선으로 보지만 말입니다.”

상엽은 스트라인버그가 말을 좀 짧게 해 주길 바랐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저게 사는 의미니까.’

존중하는 것이다.

“이번에 마스터의 무기 재료를 만드느라 세 개의 차원을 다녀왔습니다. 물론 그 전에 준비해 둔 것도 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마스터의 무기에는 네 개의 차원 재료가 섞여 있습니다. 엄청난 무기가 될 거라는 뜻이지요.”

마치 자신이 전부 만든 것 같은 말투였다.

“그들도 프로토에 대해서 알아?”

“아, 그것 말입니까?”

스트라인버그는 지금까지와 달리 말문이 막히는지 눈알을 굴렸다.

“네가 이야기했지?”

그의 수다스러운 성품이라면 참지 못했을 것이다. 잔뜩 허풍을 부리며 선심을 쓰는 것처럼 정보를 풀어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하하. 그게 제가 꼭 말하려던 건 아니고…….”

“다른 차원에서의 일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어쨌든 그들의 반응은 어때?”

“유일신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히 있습니다. 일종의 독재 같은 것이니까요. 프로토가 유일신이 된다는 것은 그들 차원에 대해서도 모든 권한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특히 마계와 요정계는 반발이 극심합니다. 원래부터 신들의 지배에서 벗어난 차원이었으니까요.”

독재라는 말에 상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뱀파이어 로드와 거래를 해야 하니까 준비해.”

“알겠습니다.”

상엽은 대화를 끝내고 다시 일본으로 넘어왔다.

이제 상엽은 등록된 상점과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다. 코인도 여전히 모으고만 있었다.

‘이 사람들도 불쌍하네.’

그들은 프로토의 감시자 역할을 병행했다. 그렇지만 무너진 나라의 상점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졸업할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상점은 더 이상 갓코인 유저들이 찾아오지 않았고, 당연히 졸업도 불가능했다.

영원히 프로토의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레나는 어떻게 됐을까?’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지금은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있을 거야. 그렇게 믿자.’

현재로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최선이었다.

“확인했나?”

뱀파이어 로드는 상엽을 다시 만나자 바로 거래 조건을 물었다.

“가능해. 준비하라고 지시했어.”

로드는 상엽에게 성의를 보여 주고 싶었는지 납치한 인간들을 모두 풀어 준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도쿄에서 비참한 삶을 살 것이다.

“얼마나 걸리지?”

“한 달.”

“좋아. 그럼 보름 후에 그년을 내가 밖으로 유인해 주지.”

“실패하면 네가 먼저 내 손에 죽을 거야.”

“실패할 리가 없지. 너보다 그년이 날 더 죽이고 싶어 할 테니까.”

뱀파이어 로드는 자신의 성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보름 후 자정. 서울 강남으로 유인하겠다.”

“약속 지켜.”

상엽은 날짜를 정하고 뱀파이어 로드와의 만남을 끝냈다.

‘너도 그날 죽을 거야.’

이 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 * *

미사일 공격은 예상대로 직접적인 효과가 없었다.

모두 프로토가 만든 먹구름에 막힌 것이다. 하지만 전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먹구름에 의지하던 변종 새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을 명확히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미사일을 쏜 여섯 개의 국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코드 제로에 적극 협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먹구름이 사라지면 바로 쏴.

많은 위성들이 호주를 주시했고 언제든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췄다.

호주에 압박을 주는 정도의 효과는 충분한 것이다.

“인간들이 날뛰기 시작하는군.”

하얀 수염이 내려온 인자한 모습의 노인은 천장이 뚫린 30층 건물의 스위트룸에 머물고 있었다.

나체로 침대에 누운 노인의 몸은 운동을 좋아하는 청년처럼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님,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벌레들은 발아래서 잠시 꿈틀대는 법이니까요.”

속이 모두 비치는 가운 하나만 걸친 여인이 노인의 귀에 아슬아슬한 숨소리를 섞으며 말했다.

“잠시 비천한 노예에게 주인님의 기분을 풀어 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시겠어요?”

그 요청에 노인은 웃고 말았다.

“넌 정말 대단한 여자군.”

“주인님의 만족이 제 유일한 목표랍니다.”

심장 위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허리를 숙이는 모습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지내는 게 즐거울 수 있다니.”

“미천한 모습으로 변하신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지. 날 더 즐겁게 한다면 다시 선물을 줄 것이다.”

“제게 가장 큰 선물은 주인님의 관심입니다.”

프로토와 이하나.

그들은 하늘이 보이는 공간에서 격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 후, 이하나는 프로토의 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더 노력해야겠어요.”

“부족한 것이 있느냐?”

“제가 부족해요. 주인님을 좀 더 만족시켜 드리고 싶은데 몸이 따라가질 않네요.”

이하나의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프로토가 이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죄송해요.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프로토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품에 안겨 있던 이하나의 몸이 천천히 떠올라 누워 있는 프로토의 위에 자리했다.

“부끄러워요.”

빛에 휩싸인 이하나는 사지를 벌린 채로 프로토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지만 그녀는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다.

프로토는 그런 이하나의 표정이 좋았다. 어떤 행동에도 이처럼 다양한 표정을 보여 주는 여자였다.

지금처럼 순진한 모습으로 정복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 때도 있었고, 보고를 할 때는 뛰어난 비서처럼 지적인 모습이었다.

요부가 되기도 서슴지 않았으며, 프로토의 상상을 뛰어넘는 행위를 제안하기도 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다.’

프로토는 잠시 이하나의 몸을 감상했다.

“아름답군. 탄디아의 장인이 빚은 조각상 같구나.”

“주인님의 것입니다.”

“그래. 바로 내 것이지.”

프로토는 손가락을 세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하나의 하얀 피부에 균열이 생기며 선이 그어졌다.

이하나는 아랫입술을 악물며 고통을 참았다. 고개를 세차게 저었지만 그것마저 프로토에겐 자극적으로 보였다.

“곧 끝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하나는 프로토와 눈을 마주쳤다.

진한 사랑을 담은 눈길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시선을 고정했다.

“잘 견뎌 주었다.”

프로토의 목소리도 따뜻했다. 그리고 이하나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이불처럼 프로토를 덮었다.

‘거의 다 왔어.’

이하나는 프로토를 꼭 안은 채로 이런 생각을 했다.

‘신을 내 것으로 만든다.’

프로토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녀의 눈빛은 독사처럼 빛났다.

* * *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가 멈췄다.

하루 동안 비밀 기지를 무너트릴 것 같은 소음을 만들었던 소리가 드디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완성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동희와 스트라인버그가 마지막 작업에 들어갔다.

닷새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는 긴 작업이 이어졌다.

대장간은 상엽조차도 출입 금지였고 숨소리조차도 조심스러운 긴장감이 퍼졌다.

침묵의 닷새였다.

그 닷새가 끝났을 때, 비밀 기지 전체에 괴이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완성이다!”

스트라인버그의 외침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그 기운에 무기를 꺼냈을 것이다.

“상엽아!”

동희도 대장간을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상엽은 그 부름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은 괴이하다고 느끼는 그 기운이 상엽에겐 더없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강해.’

피를 응축해 놓은 것처럼 비리고 묵직한 기운이었다. 그 기운에 느껴지는 힘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느낌이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운은 아니지만 해머에겐 오히려 어울리는 능력이기도 했다.

“가자.”

상엽은 동희의 안내를 받고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탈진한 채로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는 용소가 있었다.

“완성했습니다.”

“고마워.”

용소는 말할 기운도 없는지 손으로 모루 위에 있는 해머를 가리켰다.

검붉은 해머였다.

투박한 느낌의 손잡이와 자루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빽빽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검붉은색으로 인해 문양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수십 개의 주문의 섞여 있었다.

손잡이와 자루의 투박한 느낌과 달리 해머는 화려하고 웅장했다.

미세한 돌기가 해머 전체를 감쌌지만 높이가 낮아서 충격을 전달하는 데에도 문제는 없었다.

돌기들이 만들어 낸 마름모의 틈새 역시 숨겨진 문양들로 가득했고, 무엇보다 해머 자체가 뿜어내는 어둡고 묵직한 기운이 일품이었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실 것입니다. 워낙 강한 힘이라 제어하려면…….”

용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엽이 해머를 잡았다.

짜릿한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몸 전체로 퍼졌다. 강한 전류가 몸을 타고 도는 것 같았다.

상엽은 그 기운이 별로 불쾌하지 않았다.

야생마를 조련하듯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 기운을 달랬다.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짜릿한 기운이 끝나자 묵직한 힘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이번에는 저항이 아니었다.

그 힘은 상엽의 근육으로 스며들며 하나의 몸이 된 것처럼 그곳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심장이 단단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해머가 하늘을 향하도록 들어 올렸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역시 상엽이야. 바로 적응할 줄 알았어.”

“이 정도는 돼야 악마성의 기둥을 가질 자격이 있지.”

악마성의 기둥.

상엽이 새로 얻은 해머의 이름이었다.

“새로 얻은 악마의 기운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세 명의 장인들은 상엽의 특징을 전부 감안해서 무기를 제작했다.

실제로 상엽이 해머를 쥐자 발산되는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일반인들은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였고,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세 명의 장인들도 땀을 흘렸다.

상엽은 그들의 상태를 보며 힘을 조율했다. 주먹에 힘을 주고 빼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움직일 수 있었다.

어느새 해머가 신체의 일부처럼 편안해진 느낌이었다.

“날 진짜 악마로 만들었네.”

상엽은 웃었다. 그리고 세 명의 장인들을 향해 진심을 담아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마워.”

그 한마디에 장인들도 힘든 기색을 밀어내며 웃음을 보였다.

약속했던 보름이 지났다.

“동희야.”

상엽은 약속 장소인 한국으로 가기 전에 동희를 불렀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어?”

“오로지 고통만 주는 거야? 다른 목적 없이?”

“응. 그냥 고통만.”

동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치명적인 상처가 없이 자살하게 만들 수 있어.”

“무슨 뜻이야?”

“사람의 뇌는 참 많은 역할을 하거든. 그래서 고통이 너무 끔찍하면 정신을 잃게 하는 거야.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런데 그걸 넘어서는 고통이 지속되면 뇌가 어느 한 부분을 포기해. 우린 그걸 미쳤다고 하고.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야. 그런데도 고통이 멈추지 않으면 뇌는 죽음을 선택해.”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거지?”

“응. 어렵지 않아.”

동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뱀파이어가 된 사람도 그렇게 만들 수 있어?”

“신도 가능할 거야.”

“그럼 준비해 줄래? 곧 그럴 일이 있을 거야.”

상엽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동희는 순진한 느낌으로 웃고 있었다.

“악마는 동희 네가 더 어울려.”

“응?”

“칭찬이야.”

상엽은 동희처럼 순진하게 웃어 주고 비밀 기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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