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60화 (258/300)

# 260

도착한 곳은 어두운 석실이었다.

불빛 하나 없는 곳은 큰 건물의 지하실인 듯했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러운 숨소리가 들렸고, 간간이 고통을 참는 신음 소리도 섞여 있었다.

휙!

상엽은 마법진을 통과하자마자 귀를 간질이는 소리를 듣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서늘한 바람 소리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푹!

망자의 손길이 위협을 느낀 방향으로 날아가자 살이 꿰뚫리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쾅!

상엽은 한 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해머로 뱀파이어의 머리를 터트렸다.

그 소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포로들이 눈을 떴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에 대답해 줄 틈이 없었다.

곧바로 또 다른 뱀파이어가 상엽을 공격했고, 또 한 명은 급히 자리를 떴다.

상엽은 다가오는 뱀파이어를 무시하고 지하실을 나가려는 뱀파이어의 뒤통수에 해머를 꽂았다.

그 후에 다시 등을 노리고 재차 공격을 하는 뱀파이어를 처리했다.

한때는 한 명에게도 위협을 느끼던 뱀파이어였지만 이제는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유령아, 찾아.”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주변을 살폈다.

그곳은 지상이 없는 방공호였다.

‘도쿄 타워.’

허리가 부러진 도쿄 타워를 보며 이곳이 도쿄 외곽의 방공호임을 알았다.

위층이 없는 만큼 뱀파이어 로드의 모습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서 박쥐 한 마리가 내려왔다.

‘유령아, 피해.’

상엽은 추종자를 물리고 박쥐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박쥐는 곧 지상에서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뱀파이어 로드.’

드디어 뱀파이어 로드가 나타났고 상엽은 지하실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지하실 문이 열렸다.

로드는 지하실에 수하들이 없는 것을 보더니 내부로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상엽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뱀파이어 로드를 덮쳤다.

로드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었는지 상엽이 채 닿기도 전에 그 자리를 떠났다.

‘잡는다.’

상엽은 좁은 통로를 빠르게 지나는 뱀파이어 로드를 쫓았다.

그들은 곧 지상으로 올라갔고 하늘로 이어지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히잉!

지옥마가 나타나자 뱀파이어 로드는 자신이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몸을 돌려 반격에 나섰다.

그런데 그 반격은 예전처럼 강력하지 않았다.

‘상처가 있었군.’

상엽은 뱀파이어 로드의 스킬을 피해 내고 빠르게 접근전을 시도했다.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갔지만 결국에는 상엽의 손이 뱀파이어 로드의 뒷덜미를 잡았다.

“도망가려고 하면 머리가 깨질 거야.”

지난번에 특이하게 도망가는 것을 보았던 터라 상엽은 분명히 경고를 했다.

“인간 따위가…….”

“넌 지금 그런 인간 따위에게 잡힌 거야.”

“죽여라. 뭘 망설이느냐?”

“망설이는 거 아니야. 서로 거래할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면 반드시 죽일 테니까.”

상엽의 말에 로드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일단 대화부터 하자고.”

상엽은 뱀파이어 로드를 지상을 집어 던지고 자신도 내려왔다.

“거래라고 했나?”

“일단 네가 왜 이 꼴이 되었는지 알고 싶은데.”

로드는 고민하는 듯했다.

“잘 생각해.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당장 우리의 적이 같을 수는 있을 거 같으니까.”

상엽은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은밀히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실력이 절반 아래로 떨어질 만큼 상처를 입은 것도 의심스러웠다.

‘일단 확인하자. 어차피 이 녀석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어.’

상엽은 여유를 가지고 로드의 대답을 기다렸다.

“버림받았다.”

긴 기다림 끝에 나온 말이었다.

-진실이에요.

성아가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뱀파이어 퀸과의 싸움에서 밀린 건가?”

로드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넌 여기서 뭘 하려고 했지? 사람들은 왜 납치한 거야?”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뱀파이어 로드는 결심을 굳혔는지 모든 사실을 말해 주었다.

테니아에서 상엽에게 패한 뱀파이어 로드는 프로토로부터 인간 세계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번 작전에서 완전히 제외된 것이다.

뱀파이어 퀸에게 모든 권한이 넘어가자 로드는 참지 못하고 명령을 어겼다.

뱀파이어 퀸을 직접 제거하려 한 것이다.

“그 싸움에서 패배했다.”

“비참했겠네.”

“그년의 힘이 아니다! 모두 주인님이! 아니 그 망할 절대신이 그년에게 홀려서 내어 준 힘이다.”

“홀려? 신이 사람한테 홀린다고?”

“그년이 가진 유일한 특기지. 절대신의 흥미까지 유발할 정도였으니.”

상엽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신까지 유혹한다고?’

단순히 절대신에게 선택을 받은 노예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럼 지금 상처는 이하나에게 당한 거야?”

“그렇다.”

프로토에게 당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상처를 치료한 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했어?”

“그년을 죽여야지.”

“방법은 있고?”

한동안 막힘없이 대답을 하던 로드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없는 거야?”

“당연히 있다!”

상엽은 설명을 기다렸지만 로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어. 그럼 서로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뭘 원하지?”

“이하나의 위치.”

“난 뭘 얻을 수 있지?”

“이하나를 내가 죽여 주지.”

서로 원하는 바가 같았다. 이를 알게 된 로드의 입가에 처음으로 웃음이 걸렸다.

살기가 진하게 묻은 웃음이었다.

“착각하지 마. 그렇다고 너와 내가 동등한 건 아니니까.”

상엽은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넌 위치를 말해 주기만 하면 돼. 이하나를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한 건 위치도 알아낼 수 있다는 거지?”

“물론이다. 난 뱀파이어 로드로서 일족의 위치를 모두 알 수 있다.”

“좋아. 그럼 이하나는 지금 어디 있지?”

“호주. 프로토의 보호 아래 자신의 군대를 만들고 있다.”

“군대라고 했어?”

“멍청한 뉴벨 녀석들이 악마의 굴로 걸어 들어간 거지. 그 녀석들은 전부 뱀파이어가 될 것이다.”

상엽은 이하나가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골치 아프게 됐네.”

“거래 조건을 바꾼다면 이하나를 호주 밖으로 빼 주겠다.”

상엽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이하나는 나를 확실히 제거하고 싶어 한다. 내 위치가 발각되면 바로 여기로 달려올 것이다.”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탈출. 이 차원을 떠날 것이다. 그러려면 너의 힘이 필요하다.”

단번에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이를 알아차린 로드가 추가 설명을 했다.

“난 프로토가 없는 차원으로 탈출할 것이다. 그곳에서 다시 힘을 모으겠다. 그러려면 차원문을 열어야 하는데 신의 힘이 필요하다.”

“그건 어디 있는데?”

“1급 신의 블랙 상점에서 열 수 있다.”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고?”

“그렇다. 물론 상대 차원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만 알면 차원을 얼마든지 열어 준다는 말이었다.

“프로토가 가만히 있을까?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 이 차원을 없애 버릴 텐데.”

상엽의 말에 로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갓코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무슨 뜻이야?”

“갓코인의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건 프로토가 만든 것이지만 수많은 신이 동의한 시스템이다. 프로토가 독단적으로 무너트릴 수 없다. 그것은 신의 협약을 깨트리는 일이다.”

설계는 프로토가 했지만 수많은 신의 힘이 합쳐져서 만들어졌기에 개인 권한은 없다는 뜻이었다.

“프로토의 진짜 목적이 뭐야? 여러 신의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나는 게 그 녀석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 건데?”

“최강의 전사를 만들어서 신들의 전쟁을 끝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유일신이 되는 것이지.”

“그놈의 유일신이 뭐라고.”

“인간이라면 그 힘을 이해할 텐데. 욕심으로 뭉친 존재이지 않나?”

“난 모르겠는데.”

상엽이 인정하지 않자 로드는 비난하듯이 말했다.

“모든 차원의 모든 생물, 그리고 모든 자연과 환경을 지배하게 된다. 언제든 무너트릴 수 있고, 언제든 다시 만들 수도 있지.”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거랑 뭐가 달라?”

“바로 그거다. 정말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으려는 거지.”

“미친 새끼들.”

유일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분노했지만 상엽의 의문은 여전히 남았다.

“갓코인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프로토와 같은 편이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

당장 상엽만 해도 프로토에 반기를 들고 있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1급 신의 상점이 핵심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1급 신의 상점이라…….”

어떤 식으로든 1급 신의 상점에서 프로토가 원하는 장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실체는 로드도 알지 못했다.

“그럼 약속하기가 애매한데. 1급 신의 상점에서 차원을 열 수 있지만, 그곳에 프로토가 숨겨 둔 뭔가가 있다니. 약속할 수 없겠어.”

상엽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1급 신의 상점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다.”

“뭔데?”

“신의 신전을 만드는 녀석. 그 녀석이라면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만들 수 있다.”

스트라인버그에 관한 말이었다.

“둘이 직접 만나게 할 수는 없어.”

“상관없다. 내가 탈출할 수만 있다면.”

거래는 의외의 방향으로 흘렀다.

“기다려. 확인하고 다시 올 테니까. 그때까지 사람은 더 이상 건드리지 마.”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아메리카 대륙의 비밀 지역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반가운 인물이 많았다.

이제 정신적 충격에서 회복한 박광신을 비롯해서 세뇌에서 벗어난 사공강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상엽을 보자 면목이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숙였다.

“왜 이래? 이제 전쟁 시작이야. 그런 표정으로 전장에 설 수 있겠어?”

“동생, 미안해. 너무 큰 짐을 맡겼어.”

“내가 원래 힘이 세. 짐 따위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도울게. 기대해도 좋아.”

사공강은 허리만 숙일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 프로그램에 들어왔어. 그래서 당분간 말을 못해. 목이 완전히 재구성되는 중이거든.”

사공강도 새로운 전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상엽아, 밥 먹었어?”

“응. 다행히 먹었어.”

“다행히?”

“너 귀찮게 안 해도 되잖아.”

“헤헤. 역시 넌 생각이 깊어.”

동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인물들도 차례로 만났다.

“안녕, 씨앗.”

아마존의 다섯 여전사는 동희 프로그램의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꽤나 지쳐 보였지만 거친 분위기는 남자들을 압도했다.

“스트라인버그는?”

인사를 끝낸 상엽은 목적을 말하며 스트라인버그를 만났다.

“대장간에 있어. 요즘 우리가 몇 가지 작업을 하고 있거든.”

용소는 여전히 신의 무구를 만들고 있었다. 이미 블랙 해머들에게 일괄적으로 지급이 되었지만 후속 작품을 만드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더욱 강력한 무구를 만들기 위해 대장간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했다.

스트라인버그와 용소, 동희의 조합은 연구에 대한 시너지를 크게 높였다.

서로의 연구 결과를 아낌없이 공개하며 필요한 물품들을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특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용소는 풀무질을 하느라 상엽이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엽은 주변에 늘어놓은 부품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함마를 만드는 거야?”

“응. 네 걸 만들고 있어. 기대해. 우리 힘이 모두 들어간 거니까.”

“나보다 다른 사람 먼저 작업하지 그랬어?”

“그 작업도 진행 중이야. 그리고 네 건 한 번도 안 만들었잖아.”

동희는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실제로 세 명의 특별한 인물들이 모든 힘을 쏟아서 만드는 중이었고, 이제 막바지 작업이었다.

두근!

상엽은 붉게 달아오른 해머의 머리를 보자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다.

자연스레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었다.

‘뭐지?’

두근!

해머를 보고 있자 심장 박동은 더욱 커졌다.

깡! 깡!

용소의 망치질까지 더해지자 상엽은 온몸이 달아오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상엽아, 왜 그래?”

동희의 질문이 들렸지만 상엽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주 강렬한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다.

상엽은 자신도 모르게 해머로 손을 뻗으려 했다. 그 순간 뭔가가 상엽의 손목을 잡았다.

그 손길에 급작스러운 한파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차가워졌다.

“아직은 아닙니다.”

상엽을 막은 이는 용소였다.

“후우.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다행입니다. 이 무기가 주인을 유혹한 걸 보니 마음에 든 것 같습니다.”

“요물이네.”

상엽의 평가에 용소가 웃었다.

“내가 요물을 좋아하긴 해. 다루는 법도 잘 알지.”

상엽은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른 해머가 벌써부터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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