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58화 (256/300)

# 258

코드 제로와 테리아 그룹은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

철저히 준비된 습격이었다.

그들은 상엽도 모르고 있던 테리아 그룹의 비밀 장소까지 알아냈다.

현재 코드 제로가 몸을 피하고 있는 벙커를 제외한 모든 시설이 습격을 당했고, 레노도 부하들의 희생을 통해 경우 탈출에 성공했다.

테리아 그룹과 코드 제로가 가진 자산은 전부 뉴벨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테리아의 정보를 넘긴 국회 의원들도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아저씨.”

레노는 블랙 해머가 잡아 온 스무 명의 국회 의원 중의 한 명 앞에 섰다.

50대 후반의 금발 사내는 나이에 비해 건장하고 탄탄한 체구를 가진 자였다.

인자한 인상에 깊은 눈이라 사람의 경계심을 푸는 힘이 있었다.

다만 지금은 왼쪽 발목이 부러지고 오른쪽 어깨에는 사하르의 칼이 꽂혀 있었다.

꽤 실력 있는 블랙 유저라서 회복을 막기 위해 꽂아 둔 것이다.

“아버지랑 친구셨잖아요.”

레노의 말투는 진한 원망이 묻어 있었다.

“미안하구나.”

덴마크 의장 로드니.

그는 은퇴한 테리아 그룹의 회장의 친구였다. 가장 친한 친구라 다양한 정보를 빼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고문했나요?”

상엽은 레노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복수.’

테리아 그룹이 습격당하던 그날. 회장이 사망했다.

갓코인 유저도 아니었던 은퇴한 사업가는 친구의 손에 희생되었다.

모든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봤을 때, 엄청난 고문과 협박이 있었을 거라고 예상됐다.

“아버지께서 끝까지 하나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살아남았네요.”

로드니는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는지 레노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긴 거예요.”

레노는 그렇게 말하며 단검을 꺼내 로드니의 정수리에 꽂았다.

꽤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레노는 그러지 않았다.

눈물을 꾹 참으며 배신자의 머리에 단검을 꽂는 것으로 끝냈다.

“전부 제 마음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상엽은 레노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레노는 이미 이곳으로 오기 전에 결정을 내린 듯, 또다시 한 명을 제거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명을 지나친 그는 또 한 명의 뒷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상대의 답답한 신음과 단검으로 전달되는 떨림이 선명했음에도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자들은 온 마음을 다해 레노가 자신을 지나가길 기다렸다.

지금 이 순간, 레노는 실제로 사형 집행관이었다.

“제, 제발.”

한 명이 레노의 행동을 보고 몸을 돌려 손을 비볐다.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레노는 이를 보더니 사내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당당히 눈을 마주치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없이 사내를 제거한 레노는 허리를 펴며 섰다.

그러더니 살려 준 자들 앞에 뭔가를 놓았다.

녹색 액체가 든 병이었다.

“독약이다. 이걸 마시고 죽을 확률은 절반이지. 죽지 않고 버텨 낸다면 모든 죄를 묻지 않고 살려 주겠다. 미리 말하지만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레노의 말에 그곳에 있는 열 명의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마시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레노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자의 정수리에 다시 한번 단검을 꽂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던 자들이 빠르게 독약을 마시기 시작했다.

생존자 아홉 명이 모두 독약을 마시더니 목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레노는 그 장면을 꼿꼿이 서서 지켜보았다.

‘독하네.’

상엽은 그가 건넨 액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동희가 만든 약이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죽어.’

절반만 죽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레노가 사용한 것은 사람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드는 독약이었다.

상엽은 이를 알면서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레노는 그들이 죽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그는 일부러 그들에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그것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상엽은 상대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인 것까지만 확인하고 시선을 돌렸다.

상엽의 숙소에도 필요한 장비들이 숨겨져 있었고 이를 해체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전 작업 중의 하나였다.

“사하르, 잘 지켜. 본부 좀 둘러보고 올게.”

사하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명령을 받아들였고 그 틈에 숙소를 나섰다.

본부에서는 데이터 이전 작업이 한창이었다. 삼십 명의 기술자들이 빠르게 움직였고 그중에는 상엽과 안면이 있는 인물도 많았다.

그들은 코드 원을 보더니 모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힘든 상황에 웃음을 잃은 자도 있었지만 그 원망의 대상을 상엽으로 삼지는 않았다.

상엽은 그것만으로도 마음 편하게 그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사흘.’

일단 사흘은 이들을 지켜야 했다.

숨어 있던 코드 제로가 세상에 나온 셈이라 노리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본부를 둘러보던 상엽에게 레노가 찾아왔다. 그는 복수의 여운이 남았음에도 평소처럼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다 끝났어?”

“네. 전부 죽었습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너처럼 똑똑하게 행동하진 못했을 테지만.”

레노는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큰 고통과 절망을 안겨 주었다.

“최대한 빨리 복구해서 코드 제로를 다시 부활시키겠습니다.”

“고마워. 지금 코드 제로가 절실해. 특히 뱀파이어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해.”

지금 상엽이 가장 답답한 부분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 달 안에 절반 이상의 기능을 복구시키겠습니다.”

“그게 가능해?”

“계속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시설까지 활용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믿고 맡길게. 잠깐 밖으로 나갈까?”

그들은 전략적인 부분에 대한 대화를 간단히 끝내고 자리를 옮겼다.

“이 녀석들이 정원 관리를 형편없이 했네.”

본부와 상엽의 숙소 사이에는 작지만 잘 정돈된 공원이 있었다.

상엽뿐만 아니라 본부의 인원들도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 관리가 철저했다.

그런데 지금은 바닥을 쓸어 냈을 뿐, 관리되지 않은 풀이 제멋대로 자랐고 관리가 되지 않은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자라고 있었다.

“직접 만든 곳이 아니라 애정을 쏟지 않았을 것입니다.”

“빼앗은 도시의 축소판이네.”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게 되겠지? 테니아를 제외한 나라는 여기처럼 대충 청소하고 이용만 하는 거지.”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확신해?”

“직접 관리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나 비난하는 거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허를 찔린 상엽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레노의 얼굴에는 작게나마 웃음이 떠올랐다.

상엽도 이를 원했기에 잠시 그가 즐길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레노는 금세 웃음을 지우며 상엽에게 물었다.

“악마가 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려고. 이 싸움을 끝낼 거야.”

그 말을 들은 레노는 상엽의 앞을 막고 마주 섰다.

“저도 악마가 될 것입니다.”

“힘든 길을 가는 건 나 혼자로도 충분해.”

“그래서 혼자 맡겨 둘 수가 없습니다. 제가 나누겠습니다.”

“어쩔 생각이야?”

레노는 이미 결심을 한 듯했다. 그의 성격상 지금의 감정과 기분으로 이런 말을 할 자가 아니었다.

벙커에 있으면서 많은 계획을 세웠고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을 처음으로 상엽에게 말했다.

“전 세계 경제권을 가지겠습니다.”

“무섭네.”

“테리아의 방식으로 경제 체계를 개편할 것입니다.”

“전 세계 돈을 다 가지겠다는 거지?”

레노는 상엽의 간단한 정리에 다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네.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테리아는 기술과 재력이 있으면서도 도덕성을 지켜 왔다.

“나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 되겠네.”

“코드 원을 뛰어넘진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데?”

레노는 아공간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더니 상엽에게 내밀었다.

“테리아 그룹의 회장직이 비어 있습니다. 이미 이사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코드 원을 추천했습니다.”

“응?”

상엽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론이었다.

“전 영원히 부회장에 있을 것입니다. 테리아 그룹이 전 세계의 경제권을 장악하면 그건 코드 원의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해야 합니다.”

“이유가 있어?”

레노는 진지한 표정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절 막을 사람이 필요해서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상엽은 레노의 진심을 이해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사악한 악마가 되겠다는 거네.”

“제가 우리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절 막아 주시기 바랍니다. 힘이 아니라 이 직책으로 말입니다.”

레노는 상엽보다 훨씬 잔인하고 거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스스로도 감당을 할 수 없기에 상엽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알았어.”

상엽은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여기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전 세계의 돈을 먹는 게 이렇게 쉽다니.”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입니다.”

상엽은 레노가 내민 서류에 사인을 했다.

“이것으로 코드 원은 테리아 그룹의 회장이 되셨습니다.”

레노는 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직접 결재를 해야 되고 그런 건 아니지?”

“필요에 따라 하셔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거 괜히 수락한 거 같은데. 좀 봐주면 안 될까?”

상엽의 엄살에 레노가 다시 웃었다.

웃음을 잃었던 그가 상엽으로 인해 세 번째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전부 말입니다.”

“그거 알아?”

레노의 감사를 들은 상엽도 보답으로 진심을 말했다.

“난 미안해.”

그 말로 레노는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 * *

사흘이 무사히 지났다.

코드 제로는 다시 벙커에 숨었고 그 과정에서 영국의 우주 항공 기관에 대한 습격이 이루어졌다.

코드 제로에 영국의 기술이 단번에 넘어왔고 위성에 대한 독점적인 사용권을 설정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몇 년이 걸릴 일이지만 힘으로 해결을 하자 단 하루면 충분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상엽의 행보는 모든 집단이 주목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자들은 팬텀이었다.

팬텀의 회의장은 지금까지와 달리 고성이 오갔다.

항상 이기는 입장이었던 그들에게 상엽의 행보는 예상치 못한 재앙과 같았다.

“같은 블랙 유저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회장에 있는 열 명의 간부들 중에 대부분은 배신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맞서는 방법에 대한 의견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를 어떻게든 회유해야 합니다.”

“이미 회유하긴 늦었소! 우리가 많은 배려를 했음에도 폭력으로 답변을 했단 말이오!”

“지금 싹을 잘라야 합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그렇지만 단 한 명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팬텀의 대통령 페러독.

그는 아무 말도 없이 회의장에서 오가는 고성을 듣기만 했다. 그러다 아군끼리 감정을 드러내는 상황까지 오자 손을 들어 발언을 막았다.

“정상엽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 것 같은가?”

그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다시 격론이 벌어졌다.

“최정예를 파견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우리 힘으로 누르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회의장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희생이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기회에 제거하는 것이 앞으로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앞으로를 위해서 좋다?”

마지막 말에 의문을 붙인 페러독이 좌중을 둘러봤다.

“정상엽을 제거하려면 우리 힘의 절반 이상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 다음 뱀파이어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지. 콜렉터.”

말을 시작한 페러독은 현재 상황을 전부 말했다.

“그들은 지금도 힘을 모으고 있다. 어느 정도 힘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지.”

페러독의 말이 길어질수록 나머지 아홉 명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정상엽은 우리에 대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그 칼이 우리를 향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뉴벨과 정상엽이 싸움을 하도록 하는 것이지.”

이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다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방법이 있으십니까?”

용기를 낸 사내 한 명이 물었다. 이에 페러독은 간단한 결론을 말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이 자리가 있는 것이지.”

페러독은 그제야 눈빛에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밥그릇 빼앗긴 개처럼 짖는 건 그만두고 사람답게 방법을 말하란 말이다.”

그 한마디로 회의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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