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57화 (255/300)

# 257

24시간이 지났다.

“단 하나의 길드도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예상외였다.

“이하나가 끼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의 코드 제로라면 명확한 결론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간단해져서 좋네.”

상엽은 지금 정세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뉴벨과 팬텀. 두 집단을 무너트리면 더 이상 갓코인 유저 대결은 없어.”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습니다.”

“이 시스템을 빨리 파괴해야겠어.”

시스템을 파괴하면 프로토가 나타날 것이다. 갓코인을 포기하면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파괴하면 프로토와 싸울 수 있어.”

“단순히 그것 때문이십니까?”

“아니. 그 녀석들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게 우선이야.”

갓코인 시스템이 사라지면 성장도 끝난다.

“코드 원의 성장도 멈추게 됩니다.”

“그건 감안해야지. 최대한 가는 데까지 가는 걸로 만족할 수밖에.”

스스로의 힘에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어디를 먼저 공격하시겠습니까?”

“유럽부터.”

“집단이 아니라 지역으로 공략하시는 겁니까? 자칫하면 그들을 연합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간 싸움이야. 유럽부터 남쪽으로 내려갈 거야. 걸리는 놈들은 전부 처리할 거고.”

“알겠습니다.”

“화이트 해머와 코드 제로는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집중해. 그 자리에 앉아서 당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삼파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은 상엽 혼자 시작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세력으로 보자면 가장 약한 집단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엽의 존재는 모든 약점을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시작한다.”

상엽은 지옥마의 등에 올랐다.

그런데 지옥마가 날아오르기 전에 누군가 상엽에게 다가왔다.

“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하르였다. 평소에는 이처럼 먼저 다가와서 상엽의 행동을 막는 경우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상대가 다름 아닌 사하르였기에 상엽은 지옥마에서 내려왔다.

상엽이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표정을 하자 사하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들을 너무 보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하려고 기다렸습니다.”

그 말에 상엽은 속내를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미안해. 내가 지나쳤지?”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저희들을 아끼고 계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들은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전사들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상엽은 사하르가 이처럼 말을 길게 하는 걸 처음 보았다. 그만큼 마음속에 오랫동안 묻어 두었다는 뜻이다.

‘너무 아끼긴 했어.’

그는 일부러 위험한 전투는 홀로 싸우는 방법을 택했다. 슈렌트 길드를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훌륭한 군대인 블랙 해머가 있음에도 언제나 잔당 소탕 정도를 맡겼다.

‘한 명이라도 죽는 게 싫어서.’

이미 절반 이상이 사라진 블랙 해머에 더 이상 사상자를 내고 싶지 않았다.

“저희들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사하르는 상엽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인정해. 블랙 해머들 전부 모아 줄래?”

명령이 내려지자 사하르는 모든 말을 멈췄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블랙 해머들이 상엽 앞에 도열했다. 상엽은 긴말보다 한참 동안 100명의 전사들과 눈을 마주쳤다.

“단 한 명이 죽어도 슬플 거야. 너희들 개개인이 전부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전사들은 상엽의 진심에 눈빛이 흔들렸다.

“힘든 싸움이 될 거야. 그동안 치렀던 어떤 전투보다 무모하고 위험할 거야. 그래도 끝까지 갈 거야. 만약에 내가 먼저 죽더라도 너희들이 남아서 끝까지 싸워야 돼. 이 싸움은 상대를 전멸시키기 전까지 끝나지 않아.”

흔들리던 전사들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같이 가자. 그 끝이 지옥이든, 천국이든. 우리 손으로 만드는 거야.”

전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함성을 질렀다.

시작은 영국이었다.

원래는 팬텀 소속의 블랙 나이츠가 있던 나라였지만 상엽으로 인해 해체가 된 전례가 있었다.

블랙 나이츠가 사라진 후로 영국은 뉴벨과 팬텀의 격전지가 되었다.

그렇게 잠시 팬텀이 지배를 했지만 독일의 슈렌트 길드의 활약으로 다시 뉴벨의 땅이 되었다.

뉴벨 입장에서는 몇 안 되는 승리 지역이라 그 의미가 남달랐다.

상엽이 런던의 뉴벨 지부에 도착했을 때,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상대가 지부를 버리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꽤 의미가 있는 지역을 완전히 포기하고 떠난 것은 이번 싸움에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동한다.”

상엽은 적이 없는 곳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다만 정리해야 할 것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형, 잘 지냈어?”

코드 제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부는 여전히 숨어 있지만 각지에서 숨을 죽이던 요원들이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그 첫 활동에 나선 이는 오상식이었다.

“영국은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조심해. 분명히 형을 노릴 거야.”

“은밀히 진행하겠습니다.”

오상식은 영국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간단히 말해서 깃발을 꽂는 작업인 것이다.

아직 상엽이 이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테지만 미리 작업을 해 놓는 것이 필요했다.

‘도시 시스템을 우리가 가져야 돼.’

아직 국가가 유지되는 곳에는 활용할 시스템이 많았다. 코드 제로가 숨어 버린 탓에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덴마크로 간다.”

상엽의 결정에 오상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덴마크는 코드 제로를 만든 테리아 그룹의 본사가 있던 곳이다. 그리고 코드 제로의 본부가 있었다.

상엽이 사라지고 제일 먼저 뱀파이어와 화이트 유저들에 의해 무너진 곳이기도 했다.

현재는 팬텀이 뉴벨을 몰아내고 본부를 이용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그대로 넘어간 것이다.

“코드 제로에 전해.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말하라고.”

코드 제로가 덴마크를 원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직 복구할 시스템이 있었고, 테리아 그룹 차원에서도 숨겨 놓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코드 제로는 상엽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코드 제로 시스템을 복구해야 돼. 숨어 있는 녀석들을 찾아내야 하니까.”

상엽은 정보력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현재는 세뇌를 시킨 화이트 해머의 정보에 기대는 상황이었다.

“정보 시스템 복구를 위해서 필요한 건 전부 말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상엽은 지금까지 일부러 참고 있던 말을 했다.

“레노에게 전해. 복수부터 하고 가자고.”

테리아 그룹의 부회장 레노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오상식은 상엽의 말만으로도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상엽은 오상식의 대답을 듣고 곧장 덴마크로 이동했다.

덴마크는 그레이 상점 등록 지점이 있었다.

블랙 해머들도 전략적으로 이미 등록을 해 놓은 곳이었다.

“바로 전면전이야. 그냥 쓸어버려.”

등록 지점을 이용한 공격은 자연스럽게 기습적인 형태가 되었다.

“바로 따라붙어.”

상엽은 상대가 다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지옥마를 불러 먼저 본부로 뛰었다.

직선으로 날아간 그는 채 5분도 되지 않아 예전 코드 제로의 본부 입구에 닿았다.

팬텀 덴마크 정보 지부.

전에 없던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 자식들이 내 집에서 뭐하는 거야?”

상엽은 입구의 경비를 무시하고 본부로 들어갔다.

블랙 해머의 이동이 발각된 것은 3분 전이었다.

그레이 상점 근처에 카메라가 있었고 전사들이 모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레이 상점의 특성상 단번에 이동할 수 없었기에 한 명씩 시간을 두고 넘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처음 넘어온 자가 상엽이라는 점이 그들을 긴장시켰다.

“모든 정보를 파기하고 떠난다!”

이런 명령이 내려졌다. 이미 상엽이 팬텀에게 선전 포고를 했을 때부터 내려진 매뉴얼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정보를 삭제하기 시작했고 책임자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라.

이것이 매뉴얼의 마지막 명령이었다. 이를 위해 모든 장비 근처에 폭약이 설치되고 있었다.

상엽에게 이 시스템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임무가 끝났으면 바로 탈출해! 기다리지 말고!”

자신이 맡은 임무가 끝난 자들이 상점 소환권을 이용해 본부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블랙 해머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이동이 불가능했다.

“폭파 준비!”

책임자는 목소리를 높이며 부하들을 재촉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렸다.

“내 집을 어떻게 한다고?”

상엽이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직후에 경비의 보고가 들렸다.

-정상엽이 입구를 통과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유령 걸음으로 벽을 통과한 탓에 어떤 소음도 남기지 않았다.

‘어차피 죽는다.’

책임자는 이 점을 알고 결정을 내렸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려 했다.

부하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그냥 이곳을 폭파시키려 한 것이다.

“거기까지.”

우득!

버튼을 누르기 직전, 리모컨을 쥔 손목이 으스러졌다. 그리고 리모컨은 바닥에 떨어졌다.

“전부 죽여.”

유령 군대가 소환되었다.

뒤늦게 전투 요원들이 도착했지만 어차피 상엽에게 위협이 되는 자는 없었다.

유령 군대는 소환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모든 자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비전투 요원이라 유령 군대는 일방적인 학살을 시작했다.

“루시. 이 녀석들이 뭔가를 삭제하고 있어.”

-모든 시스템을 그대로 정지시키는 프로토콜이 있어요. 그걸 발동하세요.

“어떻게 하는 건데?”

상엽은 잠시 전투에서 벗어나 루시의 조언에 따라 움직였다.

“안 돼.”

-최고 관리자 권한이 변한 거예요. 잠시만요.

루시는 숨어 있는 코드 제로의 책임자를 찾아 방법을 알려 주었다.

-백도어가 있어요. 코드 제로의 책임자만 아는 경로니까 건드리지 못했을 거예요.

“백도어?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비켜. 넌 가서 싸움이나 해.”

누군가 상엽의 등을 두드렸다.

적설이었다.

상엽은 구원을 받은 신도 같은 표정이었다.

“난 싸움이나 하러 갈게.”

적설에 이어 블랙 해머들이 도착했다.

“전부 처리하고 폭약 제거해. 그리고 루시에게 주요 지점에 대한 정보가 도착할 거야. 전부 쓸어버려.”

“알겠습니다.”

적설에 의해 시스템 삭제가 중단되었고 연구원들도 살아남지 못했다.

“넌 좀 더 살아 있어야겠어.”

상엽은 책임자의 관자놀이에 이마오의 실을 꽂았다. 이하나가 세뇌에서 탈출하면서 여유가 생긴 하나였다.

코드 제로의 본부를 되찾는 데에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기본적인 시스템은 손상이 없었고 팬텀에 대한 정보까지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곳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었다.

-기술자들이 필요한 것들을 가져가는 작업을 할 거예요. 그때까지만 지켜 주세요.

“얼마나 걸려?”

-이틀은 필요해요. 장비까지 옮겨야 해서요.

코드 제로는 본부에 있는 주요 시스템만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적설, 이제 너도 가서 싸워.”

“날 다양하게 부려 먹네.”

“지금 너랑 나의 관계가 그래.”

“인정해.”

상엽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한 시간 후.

상엽 앞에 스무 명의 사내가 잡혀 왔다.

코드 제로 본부에 있는 거처에서 상엽은 스무 명의 사내를 하나하나 살폈다.

“중요한 분들이신데 너무 거칠게 모시고 왔네.”

그들의 고급스러운 양복은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저항이나 도주를 했던 자들은 신체의 일부가 부러지기도 했고, 겨우 목숨만 붙어서 잡혀 온 자도 있었다.

“잘나신 국회 의원들께 무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잡혀 온 자들은 덴마크의 국회 의원들이었다.

단순히 권력자라고 잡혀 온 것은 아니었다.

“변명의 기회를 줄게. 그냥 방관만 해도 되는데 적극적으로 코드 제로를 배신한 이유가 뭐야?”

블랙 해머가 잡아 온 국회 의원들은 모두 같은 비밀 단체 소속이었다.

그 단체가 만들어진 계기가 바로 코드 제로 본부의 습격 사건이었다.

그리고 테리아 그룹을 순식간에 무너트리고 이에 대한 기술과 이권을 모두 나눠 가졌다.

상엽이 사라지고 테리아 그룹의 비밀 장소와 숨겨진 재산, 코드 제로의 본부와 장비실까지 모든 정보를 뉴벨에 넘긴 자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때문에 코드 제로와 테리아 그룹은 방어 매뉴얼을 제대로 발동시키지도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변론을 잘 준비해 둬. 곧 판사가 도착할 거니까.”

상엽의 말이 끝날 때쯤, 한 사내가 사하르의 보호를 받으며 본부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뵙습니다, 코드 원.”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아. 진심으로 미안해.”

“많은 과정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반드시 역경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상엽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테리아 그룹의 부회장 레노.

“자, 심판관이 도착했어. 긴장들 해.”

상엽은 레노를 그들 앞에 세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