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56화 (254/300)

# 256

슈렌트 길드의 붕괴는 여러 가지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상엽의 행보가 독해졌다는 것도 있지만, 화이트 길드를 연합하려는 의도도 충격적이었다.

이런 상엽의 결정에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팬텀이었다.

그들은 상엽이 화이트 연합을 구성한 뒤에 자신과 싸우려는 것인지, 아군이 될 것인지를 예상할 수가 없었다.

“코드 원, 괜찮으십니까?”

상엽은 말이 없었다.

화이트 길드에게 주어진 24시간 중에 아직 20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루시는 슈렌트 길드를 무너트린 상엽의 감정이 걱정되어 직접 독일로 날아왔다.

“괜찮아. 내가 신이 되면 전부 다시 살릴 테니까.”

“그런 계획이셨습니까?”

“보상이 되진 않겠지. 이기적인 결정일 수도 있고. 그래도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

상엽의 말을 듣던 루시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절대신이 되실 생각이십니까?”

“사람들을 전부 살리고, 신이 이 땅에서 사라지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지.”

“프로토가 그냥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힘으로라도 내가 절대신이 돼야지.”

상엽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얻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이것이 상엽의 목표였다.

그 싸움이 이 땅에서 끝날지, 또 다른 행보가 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적설 좀 불러 줄래?”

블랙 해머가 잔당 소탕을 하면서 적설도 베를린으로 왔다.

적설을 만난 상엽은 그동안 미뤄 두었던 질문을 했다.

“레나가 납치됐다고?”

“콜렉터 녀석들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마 지금쯤 똥줄이 타고 있을 거야. 녀석들은 네가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거든.”

“암흑의 신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거네.”

“맞아. 그래서 그들은 애초에 지옥마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어. 가장 강력한 힘이지만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거든.”

상엽도 엄청난 노력과 인내로 겨우 통과했다. 콜렉터의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네가 사라지고 사흘 후에 납치됐어. 그 뒤로는 행방을 몰라. 조사를 하면서 몇 가지 알게 되긴 했는데 레나를 직접 보진 못했어.”

상엽은 시계를 보았다.

‘20시간.’

그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큰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레나를 찾으러 갈 거야?”

“콜렉터 녀석들에게 경고는 해야지.”

“레나가 목적이야? 콜렉터가 목적이야?”

“우선순위는 콜렉터.”

상엽의 대답에 적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실망인데. 거칠지만 로맨틱했던 사내였는데.”

“모든 전쟁이 끝나면 제대로 로맨티스트가 될 거야. 기대해.”

상엽은 웃었다. 적설도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다행이네. 웃는 건 그대로라서.”

“이기기 위해서 자제하는 중이야. 난 원래 웃는 걸 좋아하는 놈이라고.”

“알았어. 이제 좀 안심이 되니까 적극적으로 도와줘 볼까?”

적설은 상엽의 허락을 받고 송연지를 불렀다.

송연지는 적설과 함께 있던 상엽에게 눈을 흘겼지만 감정을 오래 표출하진 않았다.

“콜렉터를 치려면 어디로 가야 돼?”

“불가능해요. 원래 흩어져 있는 자들이니까.”

“그럼 방법이 없어?”

“당연히 방법은 있죠.”

콜렉터에 속해 있던 송연지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는 상엽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였다.

콜렉터에서 탈퇴한 이후로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전 가옥을 지키는 자들이 있어요. 콜렉터에는 300개의 안전 가옥이 있는데 이곳이 안전한지 정기적으로 확인을 하거든요.”

송연지는 의외의 수단으로 콜렉터를 추격할 수 있다고 했다.

“안전 가옥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하게 되면 관리부에서 직접 확인을 하게 돼요. 그 관리부에겐 여러 정보가 있거든요.”

“똑똑하네.”

“원래 제가 오빠보다 조금 더 똑똑했잖아요.”

“인정해. 그런데 시간이 꽤 걸리겠네.”

그에게 주어진 20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빠가 원하면 제가 해 볼게요. 원래 제가 하려던 일이었으니까.”

“음.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아닐걸요.”

송연지는 드디어 참았던 말을 했다.

“전 뉴벨이나 팬텀보다 콜렉터가 훨씬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야?”

상엽도 콜렉터가 빠르게 힘을 모은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분명히 견제해야 할 집단이었다.

그런데 송연지는 그것보다 훨씬 높게 평가했다.

“처음 갓코인 유저가 나타났을 때부터 콜렉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어요.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는 착각이죠. 초반에는 분명히 그랬어요. 하지만 콜렉터의 길드원들은 애초에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는 자들이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 미래에 근접해 있죠.”

그들은 전투 능력을 포기하면서 정보와 유산, 유물을 모았다. 이것은 단순히 모으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성공했어요. 수호신을 독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넌 그들이 어느 정도 힘을 가졌다고 생각해?”

“현재로서는 가장 강력한 집단이라 생각해요. 게다가 전쟁에도 휘말리지 않았잖아요. 화이트와 블랙이 싸우고 나면 그들과의 힘 차이는 더 벌어질 거예요.”

송연지의 말이 끝났을 때, 상엽은 적설과 루시를 보았다.

“너무 오바하는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야.”

적설은 숨기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꼬마 아가씨가 트레저 헌터 출신이라서 콜렉터를 높게 평가하는 건 알겠는데 나도 콜렉터에 대해서 꽤 조사를 해 봤어. 그렇게 과대평가할 정도는 아니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적설과 송연지는 서로를 흘겨보았다.

“그만.”

결국 상엽이 그들의 감정 싸움을 말렸다.

“연지가 정보를 알아내는 걸로 해. 필요한 인원은 알아서 차출하고.”

“알았어요.”

“목적은 콜렉터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거야. 그 이상은 접근하지 마.”

상엽은 콜렉터에 대한 부분을 송연지에게 맡겨 두고 당분간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예정된 24시간이 12시간 남았을 때였다.

상엽이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있을 때, 루시의 이어폰으로 다급한 연락이 왔다.

“팬텀의 대통령이 만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나자고 해.”

상엽은 그와의 만남을 피하지 않았다.

“의도를 드러내실 생각이십니까?”

“피할 이유가 없잖아.”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상엽은 신중한 의견을 말하는 그녀를 보았다.

“루시, 난 네 능력이 부활하기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네?”

“자신감을 가지라고. 넌 충분히 훌륭하니까.”

루시는 코드 제로가 보관하던 유물 조각을 이용해 힘을 꽤 복구한 상태였다.

하지만 죽기 전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지나치게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두려워하지 마. 죽으면 또 살려 낼 테니까.”

그 말에 루시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잠시 고개를 숙인 그녀는 결심을 했는지 당당한 표정으로 상엽을 보며 말했다.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오시죠.”

“바로 그거야.”

상엽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루시를 환영해 주었다.

상엽과 팬텀의 대통령이 만난 곳은 모스크바였다.

러시아는 팬텀의 우호 국가로 현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어 있었다.

중국과 미국이 무너지고, 화이트 연합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은 것이다.

하향 평준화로 이루어진 최고 자리라 평가는 엇갈렸지만 가장 강력한 국가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러시아가 위험을 감수하고 모스크바로의 입성을 허락한 것은 이런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그들이 만난 곳은 모스크바의 축구장이었다.

한때는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로 수만 명이 함성을 지르던 장소였다.

하지만 갓코인 유저들이 나타난 이후로 축구는 더 이상 최고의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나마 유지되던 인기는 갓코인이 세상에 공개되는 시점부터는 관중들이 찾지 않았다.

일반인들의 운동 능력이 더 이상은 놀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엽이 도착한 축구장은 꽤나 정돈이 되어 있었다.

단순히 경기장뿐만 아니라 관중석과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잘 다듬어진 잔디를 밟고 축구장 중앙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상엽을 기다리는 자가 있었다.

팬텀의 대통령 페러독.

페러독은 180cm 정도의 신장에 균형 있는 몸매를 가진 40대 초반의 사내였다.

군인처럼 경직된 표정이지만 눈빛에는 여유가 넘쳤고, 뒷짐을 지고 있는 자세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상엽은 별다른 인사 없이 페러독의 정면에 섰다. 정확히 한 발 거리였다.

“이제야 만나는군.”

“인사는 생략해. 듣고 있는 녀석도 없는데.”

넓은 축구장에는 숨어서 지켜볼 공간이 많았다. 관중석과 중계석, 스카이 박스까지 있는 구조라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훔쳐볼 수 있었다.

하지만 페러독은 그러지 않았다.

상엽이 추종자로 확인한 결과 축구장에 있는 사람은 페러독이 유일했다.

그뿐만 아니라 축구장 근처에도 팬텀의 인물들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면 어떤가?”

“거절할게.”

상엽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개심이 느껴지는군.”

“어차피 싸워야 할 사이니까.”

이 말에 페러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무 쉽게 의도를 드러내는 것 아닌가?”

페러독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팬텀이 상엽의 적인지, 아군인지, 아니면 아직 양쪽의 기회가 다 있는지를 파악하려 했다.

그런데 상엽은 너무나 간단히 결론을 주었다.

“우리가 전면전을 할 만큼 사이가 나빴던가?”

“이제 그런 걸 따질 시간은 지났잖아.”

상엽은 페러독의 강렬한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1등을 가려야 할 시기야. 우린 전부 1등을 위해서 달려왔고, 이제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어.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해?”

“명분 따위는 의미가 없다는 건가?”

“그건 갓코인을 선택할 때 이미 받아들였잖아. 무한 경쟁. 그리고 1등만 살아남는 거.”

상엽은 그렇게 말하면서 또 하나의 방법에 대해 말했다.

“이 경쟁을 포기해. 그럼 싸울 이유도 없어.”

“크크. 그렇지. 누구든 포기할 권리는 있지.”

“포기하는 놈은 안 건드려. 팬텀에도 그렇게 전해. 팬텀을 떠나서 조용히 사는 놈까지 추적하진 않는다고.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을 거야.”

상엽은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선전 포고와 항복 권유를 동시에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애초에 항복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해야 할 말을 듣게 되다니. 기분이 묘하군.”

아직까지는 팬텀이 상엽의 집단보다 우위였다. 특히 팬텀의 최상위 전사들은 실력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나보다 앞서서 신의 삼정을 방문한 녀석이 있을 거야.’

상엽이 파괴 상점을 이용할 때마다 먼저 신을 선점한 자가 있었다.

상엽은 그가 페러독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내가 한 가지 조건을 말해도 될까?”

“신중하게 말해. 난 당장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역시 거친 사내군.”

상엽의 협박에도 페러독은 흔들림 없이 준비한 말을 했다.

“팬텀으로 들어오라는 말은 포기하지. 누구 밑에 있을 사내는 아니니까.”

“그래서?”

“연합은 어떤가? 난 자네의 집단을 인정할 테니 자네도 팬텀을 인정하게.”

“그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언젠가 깨지겠지. 그때는 나도 협상이 아니라 칼을 들지. 1등은 그때 가려도 늦지 않아.”

꽤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그런데 상엽은 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 협력이 언제 깨지는지 이미 아는 것 같은데.”

“물론이지.”

상엽은 그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자신이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기에 페러독도 그럴 거라 믿었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프로토를 죽이는 순간까지. 그리고 1등이 된 자는 절대신에 도전하겠지.”

“역시 알고 있었어?”

“진실을 알게 되는 방법은 다양한 법이지.”

상엽은 잠시 대화를 멈췄다.

‘화이트 유저를 먼저 처리하고 프로토와 맞서 싸운다. 그리고 1등을 가린다.’

계획만 놓고 보면 완벽했다. 하지만 상엽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거절할게.”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못 믿어서.”

지금까지 팬텀과 상엽 사이에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과거가 결국 현재를 망치는군.”

“거창하게 포장하지 마. 나쁜 짓을 한 놈은 결국 나쁜 놈이야. 이게 내 결론이지.”

협상은 결렬됐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전쟁뿐이었다.

“다음에는 전장에서 보겠군.”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둘의 만남은 여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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