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55화 (253/300)

# 255

슈렌트 길드원들은 답답한 상황에 빠졌다.

진형을 갖추고 전진하는 유령 군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나마 초반에는 공세를 취하며 유리한 입장이었지만 성아가 합류하면서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슈렌트 길드원들은 유령 군대를 소멸시키려 했고, 유령 군대는 길드원들을 묶어 두는 것으로 충분했기에 여유가 있는 쪽은 유령 군대였다.

“혼자서 버틸 수 있겠어요?”

하트만은 전황을 바꾸기 위해 유령 군대를 처리하기로 했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방법밖에 없어.”

엘렌이 유령 군대 섬멸에 합류하고, 그때까지 하트만이 버티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엘렌은 하트만이 혼자 버틸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해야 돼.”

하트만은 엘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렸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견을 나눌 여유는 없었다. 결국 엘렌은 길드원들의 전투에 합류했다.

“무모하네.”

상엽은 상대의 계획을 이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팟!

공중을 밟은 상엽이 빠르게 하트만을 향해 접근했다. 하트만은 애초에 상엽을 잡기보다 시간을 끌기로 마음을 먹었다.

‘잘못된 판단이야.’

상엽은 스킬을 쓰지 않고 접근을 시도했다.

강력한 스킬에 대비하던 하트만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채로 접근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런 싸움이라면 자신 있다.’

하트만은 자신감을 가지기도 했다. 상엽의 강력한 스킬이 그만큼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이 된 것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큰 착각이었다.

상엽은 해머와 망자의 손길로만 전투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육탄전이었다.

하트만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기도 했기에 기존의 계획과 다르게 적극적인 전투를 펼쳤다.

처음에는 하트만의 봉이 상엽을 압박했다. 그중에는 급소는 아니지만 상엽의 몸에 적중하기도 했다.

‘철판을 때리는 것 같군.’

힘보다 속도에 치중한 공격으로는 상엽의 움직임을 막을 수조차 없었다.

피부 자체의 방어벽이 워낙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격을 성공한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있었다.

하트만은 속도를 더욱 올렸고 특기를 십분 발휘했다. 그리고 드디어 상엽의 목에 봉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닿았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평소보다 강한 힘으로 봉을 뻗었다.

츳!

칼날은 상엽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예상했던 피는 보이지 않았다.

스친 힘으로는 피부를 뚫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격을 막은 상엽의 표정을 봤을 때, 하트만은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쾅!

상엽은 일부러 급소를 보여 주고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해머는 하트만의 봉에 막혔지만 그 충격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자동으로 발동되는 화산의 힘이 폭발을 일으켰고 하트만이 처음으로 한 발을 물러섰다.

그때부터였다.

상엽은 하트만을 압박하면 기회가 될 때마다 효율적인 공격을 했다.

굳이 급소를 노리지 않고 오히려 작은 상처들을 쌓았다.

‘어떻게…….’

수세에 몰리자 하트만은 자신의 생각에 큰 착각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강하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상엽은 강했다.

서로 신의 힘이 전혀 없이 싸운다고 해도 이길 수 없을 만큼 능숙한 전투를 펼쳤다.

‘벗어나야 한다.’

하트만이 상황을 파악하는 순간, 상엽의 공격이 변했다. 이제는 상처가 아니라 급소를 직접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하트만의 마음을 읽어 내는 듯했다.

쾅! 쾅!

피하는 것보다 막아 내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중심을 잃었을 때, 상엽의 해머가 그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쾅!

강력한 한 방이었다.

하트만은 양손을 교차하며 공격을 막았지만 흔들린 중심으로 인해 버틸 수가 없었다.

쿵!

그의 몸이 통나무처럼 쓰러지더니 바닥에 긴 선을 남기며 50미터나 밀려났다.

하트만은 굳이 저항하지 않고 밀려나는 힘을 이용해 바닥을 차고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다시 한번 해머가 보였다.

콰쾅!

또 한 번의 충격에 하트만의 몸이 크게 비틀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를 악물고 막아 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하트만은 피해를 보더라도 반격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미처 스킬을 펼치기도 전에 상엽이 측면으로 돌기 시작했다.

‘예상하고 있다.’

상엽은 위기에 몰린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예상했다. 그리고 이 예상이 성공하면서 또 한 번의 공격 기회를 잡았다.

‘차라리 제대로 맞고 거리를 벌리자.’

큰 충격이 있겠지만 지금은 상엽과 멀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한쪽 손으로 해머를 막으며 발에 힘을 주었다. 충격파를 이용해 몸을 띄울 생각이었다.

‘이런!’

그런데 기다리던 충격이 닿지 않았다.

해머는 속임수였다.

푹!

망자의 손길이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나마 신의 스킬이 발동해 완전히 관통되는 것을 막았지만 꽤나 큰 상처였다.

그리고 공격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망자의 손길에 옆구리가 찔리는 순간, 절묘한 시간 차로 다시 해머가 날아들었다.

쾅!

하트만의 몸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이번에는 중심을 잡지도 못한 충격이었다.

하트만이 바닥을 구를 때, 상엽은 드디어 스킬을 펼쳤다.

‘파괴전차.’

상엽의 몸이 화염에 휩싸이며 강렬한 돌진을 시작했다. 모든 힘을 실은 파괴전차가 주변의 땅을 모두 뒤집어 놓았고 공기마저 찢어 버렸다.

콰콰콰!

하트만이 엄청난 기세로 돌진하는 파괴전차를 보았을 때는 이미 피하기가 늦은 상황이었다.

‘끝이다…….’

하트만은 이렇게 판단했다. 그때, 뭔가가 그의 앞을 막았다.

“멈춰!”

엘렌이었다. 이를 본 하트만은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반면 돌진을 하는 상엽은 엘렌이 끼어드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악마가 되기로 했지만 한쪽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동시에 테니아의 비참한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망설이지 말자.’

상엽은 결국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쾅!

엘렌이 파괴전차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대신 그 작은 저항으로 하트만은 몸을 굴려 목숨을 건졌다.

‘엘렌.’

상엽은 엘렌이 파괴전차에 부딪칠 때의 표정을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슬픔과 원망이었다.

죽는 순간의 절박한 그 표정이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정상엽!”

엘렌을 잃은 하트만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모공으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피범벅이 된 하트만은 악귀와 같은 표정으로 상엽을 향해 뛰었다.

-신의 스킬, 지옥문의 배려.

죽음을 담보로 마지막 힘을 짜낸 것이다.

하트만은 죽음을 불사하며 공세에 나섰다. 상엽의 해머가 그의 어깨를 찍었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공격을 계속했다.

그는 오직 상엽을 죽이기 위해서 움직였다. 다른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상엽은 이런 전투에 익숙했다.

시간을 끌면 이긴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거리를 벌리고 다가오면 정면이 아니라 측면으로 피했다. 그가 몸을 돌리면 반대 방향으로 돌아 시야를 어지럽혔다.

광기에 물든 하트만은 거칠었지만 정교하진 않았다. 힘과 속도가 올라간다고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상엽의 전투 경험이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툭. 툭.

결국 피를 쏟아 낸 하트만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투박한 걸음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이는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끝내자.’

상엽은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하트만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하트만은 다시 광기를 보이며 공격에 나섰다.

유령 걸음.

상엽은 단숨에 하트만의 몸을 통과했다. 그의 후방을 잡은 것이다.

이제 한 방이 남았다.

그때였다.

촤르르!

상엽과 하트만 사이에 붉은 장막이 치솟았다. 엄청난 기세로 치솟는 방어벽을 보았지만 상엽은 해머를 멈추지 않았다.

쾅!

상엽은 솟아오르는 붉은 장막을 해머로 깨트렸다. 하지만 장막이 깨졌을 뿐, 그 뒤에 있던 하트만까지 제거할 수는 없었다.

‘뭐야?’

하트만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붉은 빛에 휩싸여 있었다.

상엽이 마무리를 하려는 찰나, 하트만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를 따라 하늘을 본 상엽은 그동안의 냉정한 마음이 깨지고 말았다.

“이하나.”

구름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이하나였다.

“선물 고마워. 덕분에 맛있는 사내를 얻었어.”

이하나는 반가운 친구를 대하듯이 손을 흔들고는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상엽이 재빨리 지옥마를 불러 따라갔지만 이하나와 하트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푸르!

지옥마는 불쾌한 듯이 투레질을 했지만 상엽은 아니었다.

“진정해. 어차피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상엽은 하트만을 놓친 걸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제 전부 적이야. 한 명이 더 있다고 달라질 건 없어.”

다음에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상엽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정리하자.”

하트만이 사라졌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많은 적이 있었다.

상엽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전장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슈렌트에는 훌륭한 전사들이 많았다. 독일을 지키는 힘이었고 화이트 연합 뉴벨에서도 핵심 전력이었다.

하지만 상엽이 전장에 뛰어들자 그들은 더 이상 훌륭한 전사가 아니었다.

펑!

상엽은 오랜만에 광기의 외침을 사용했다.

늑대인간이 된 상엽은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험이 필요해.’

상엽은 실전에서 광기의 외침을 유지하려 했다. 난전이 펼쳐지면 해머보다는 늑대인간의 모습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전장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늑대인간 상엽의 행동이 철저히 제어되기 시작했다.

이성이 광기를 지배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피를 갈망하지 않았고, 빠른 움직임과 날카로운 손톱으로 상대의 급소를 찔렀다.

전투에 능숙한 슈렌트의 전사들이지만 어떤 대응을 하기에는 신체 능력 차이가 너무나 극명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늑대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저공비행을 하는 전투기처럼 전장을 헤집고 다니는 상엽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거리를 벌렸다고 그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여유가 생긴 성아가 지팡이를 높게 드는 순간, 모든 전사들의 몸이 평소보다 몇 배는 무거워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어에 치중했던 유령 군대가 공세에 나섰다.

유령 군대는 그동안 참아 왔던 본능을 괴성으로 표출하며 전사들을 압박했다.

이제 전사들은 상엽과 유령 군대를 모두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죽여라!”

“혼자는 죽지 않는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전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상엽과 유령 군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전황이 바뀔 만큼의 변수는 없었다.

그들은 끝까지 싸웠지만 결국 전멸하고 말았다.

쿵.

마지막 한 명이 유령 군대 대장에게 당하면서 전투는 끝났다.

“수고했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상엽은 유령 군대의 수고를 치하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슈렌트의 본부는 이미 폐허로 변했고, 반경 2킬로미터에는 어떤 생명체도 살아 있지 않았다.

베를린 중앙에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저긴 아직 사람이 많네.”

운 좋게 충격의 범위에서 벗어난 지역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테니아는 불빛도 사라졌는데.”

상엽은 그 모습이 왠지 야속하게 느껴졌다.

“루시, 잔당 소탕 시작해.”

상엽은 불빛에서 시선을 거두고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슈렌트 길드는 독일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고 수십 개의 지부가 있었다.

상엽은 이들을 철저히 섬멸하기로 했다.

잔당 소탕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블랙 해머가 독일 전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뉴벨 소속의 길드장들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슈렌트 길드를 도와주는 것은 상엽의 다음 목표물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백림정에 의해 공문으로 전달되었다.

-화이트 해머로 들어오지 않는 길드는 전부 적으로 간주한다.

이 간단한 말이 불러온 파장은 엄청났다. 그리고 상엽은 보란 듯이 가장 중심이 되는 슈렌트 길드를 무너트렸다.

그렇게 잔당 소탕이 끝났을 때, 상엽은 백림정을 통해 다시 한번 공문을 보냈다.

-24시간 안에 결정하라.

단 하루.

화이트 길드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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