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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코인-251화 (249/300)

# 251

한국은 변해 있었다.

깨끗하고 활력이 넘치던 서울은 지저분하고 비린내 가득한 도시가 되었다.

쓰레기가 바람에 굴러다니고 보수가 되지 않은 건물의 옥상에는 변종 새들이 앉아 있었다.

변이 인간들이 어두운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수색했고, 불야성을 이루던 네온사인들은 뿌연 먼지와 새들의 배설물로 가득했다.

‘이게 한국이라고?’

상엽은 서울 강남을 걷고 있었다.

늦은 밤도 아니지만 빌딩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고, 오가는 차도 없었다.

나름대로 한국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이처럼 비참했다.

크아!

변이 인간 한 명이 상엽을 보고 이빨을 드러내며 튀어나왔다.

상엽은 변이 인간의 접근에 굳이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이 인간이 지척에 달했을 때, 망자의 손길이 튀어 나갔다.

푹!

변이 인간은 목이 꿰뚫리며 빛으로 부서졌다.

그 후로 많은 변이 인간들이 나타났지만 상엽은 그저 차 없는 도로를 걸을 뿐이었다.

수백 명의 변이 인간이 공격을 시도했지만 전부 망자의 손길로 충분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자 더 이상 그를 향해 달려드는 변이 인간은 없었다.

대신 한 여인이 넓은 교차로 중간에서 상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엽은 지금까지와 같은 걸음으로 여인 앞에 섰다.

“건방지네.”

“호호. 오랜만이야.”

교태가 잔뜩 묻은 웃음을 흘린 여인은 상엽 앞에 뭔가를 던졌다.

그것은 은빛 바늘이었다.

유산 이마오의 실.

“이하나.”

“호호. 여왕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되지.”

뱀파이어 퀸.

이하나가 얻은 새로운 직책이었다.

프로토가 선택한 뱀파이어 퀸은 이하나였다. 그 과정에서 이마오의 실은 제거되었고 뱀파이어 퀸으로 한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넌 비참하게 죽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과연 그럴까?”

상엽은 이하나와 더 이상 언쟁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다시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불과 열 걸음 정도였고 상엽은 바로 공격에 나섰다.

망자의 손길이 스프링처럼 튀어 나갔다. 그런데 이하나는 망토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망자의 손길을 막아 냈다.

망토는 조금의 손상도 없었고 이하나의 표정에 나타난 여유도 그대로였다.

게다가 상엽의 이어지는 공격을 예상했는지 멀찌감치 뒤로 물러났다.

상엽은 그녀의 반응과 상관없이 속도를 높이며 따라가려 했다.

그 순간, 뭔가가 앞을 막았다.

꽤 단단한 느낌이라 상엽은 힘을 주어 이를 밀어내려 했다.

쾅!

상엽의 주먹이 단단한 방어벽에 막혔다.

모든 힘을 다한 일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처럼 간단히 막힐 힘도 아니었다.

주먹이 막힌 상엽은 곧바로 해머를 꺼내며 다시 한번 벽을 쳤다.

찰나의 순간에 이어진 연속 공격이라 상대의 방어벽은 회수되지 않은 그대로였다.

챙!

해머가 닿자 방어벽이 깨졌다. 그리고 방어벽을 만들었던 자의 얼굴이 보였다.

“사공강, 어떻게 된 거야?”

상엽을 막은 이는 사공강이었다. 그는 신의 힘까지 발휘하며 상엽을 막아섰다.

“너도 뱀파이어가 되다니.”

상엽 앞에 나타난 이는 사공강이었다. 한때는 상엽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사내였다.

본래부터 뛰어난 외모였던 그는 뱀파이어 특유의 망토도 꽤나 잘 어울렸다.

다만 평소에 보이던 친절한 웃음이 사라지고 감정을 지운 것 같은 무표정이 익숙해진 듯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공강은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인간일 때의 성격과 말투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마루나를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사공강이 대답을 할 때, 한참 떨어진 건물의 옥상에서 이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여인을 위해서 백 명을 죽인 로맨틱한 남자야.”

이하나는 웃으며 사공강의 과거를 언급했다. 그런데 상엽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날 막을 거야?”

상엽은 이하나를 무시하고 사공강에게 물었다.

“그래야 합니다.”

“넌 죽을 거야.”

“조심하십시오.”

사공강은 그렇게 대답했고 갑자기 눈빛이 변했다.

신에게 자신을 맡긴 것이다.

쾅!

신의 힘을 받아들인 사공강은 곧바로 상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상엽은 해머를 옆으로 눕히며 이를 막아 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쪽 손으로 해머를 놓으며 힘을 흘려 내고 몸을 옆으로 틀었다.

소리는 컸지만 상엽은 그 힘을 제자리에서 흘려 낸 것이다. 그리고 바로 망자의 손길로 반격에 나섰다.

챙!

사공강도 빠르게 다가오는 망자의 손길을 검으로 막아 냈다. 그리고 몸을 숙이며 상엽의 발목을 그으려 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예전의 상엽 같으면 물러나면서 피했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상엽은 해머를 아래로 내리며 검의 경로를 막고 팔꿈치를 세우며 반격에 나섰다.

그 장면에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이하나였다.

‘저런 싸움을 한다고?’

그녀는 상엽에 관한 모든 자료를 조사했다. 그런데 이런 싸움은 그녀의 자료에 없는 것이었다.

놀라운 동작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초근접전에서도 상엽은 신의 힘을 빌린 사공강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근접전은 이길 줄 알았는데.’

해머의 특성과 사공강의 검술을 감안했을 때,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상엽은 해머를 쓰지 않고도 사공강을 압도했다.

‘못 이겨.’

결국 이하나는 결단을 내렸다.

츠츠츳!

그녀의 망토가 상승하는 기류로 인해 하늘로 솟구쳤다. 그 순간 수천 마리의 박쥐가 그녀의 망토에서 쏟아져 나왔다.

박쥐들은 붉은 눈을 빛내며 유도 미사일처럼 현란한 궤도를 그리며 상엽을 덮쳤다.

처음에는 무시하려던 상엽은 박쥐들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상엽이 있던 자리로 박쥐가 떨어졌다.

퍽!

박쥐는 바닥에 닿자 물 풍선처럼 핏물을 사방으로 뿌리며 흩어졌다.

그러자 아스팔트 도로가 녹기 시작했고 비릿한 냄새가 주변으로 퍼졌다.

엄청난 독성을 가진 피였다.

그리고 다른 박쥐들은 일제히 궤도를 바꾸며 상엽을 따라왔다.

화르르!

상엽은 뒤로 크게 뛰어오르며 다가오는 박쥐들을 향해 화염을 날렸다.

부채꼴로 퍼진 화염은 다가오는 박쥐들을 단숨에 태워 버렸다.

그렇지만 박쥐를 전부 제거했을 때, 사공강과 이하나는 보이지 않았다.

이하나가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다른 뱀파이어와 달리 판단이 아주 빨랐다.

“짜증 나네.”

상엽은 이하나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불쾌했다. 그런데 스킬과 판단도 꽤나 훌륭한 것을 보자 짜증이 솟구쳤다.

“악마가 나한테 했던 거보다 더 잔인하게 죽여 주지.”

이하나를 떠올리며 상엽은 다시 길을 걸었다.

‘어차피 날 막을 수밖에 없어.’

상엽이 한국에 온 것은 이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없었더라도 한국에는 꼭 와야 했다.

-뱀파이어 공장이 한국과 일본에 있습니다.

루시가 알려 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실이었다.

한국과 일본.

이곳은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일반인들이 인질로 잡혀 있었다.

이는 단순한 인질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뱀파이어로 전염시키기 위한 준비였다.

실제로 이미 많은 인원이 뱀파이어로 변해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뱀파이어들은 특수한 훈련을 받는 터라 일반적으로 전염되는 자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 공장부터 제거해야 돼.’

상엽이 한국으로 온 이유였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하기에 뱀파이어 퀸이 직접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청와대에 본부가 있으며 서울 곳곳에 주거 지역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배급되는 식량으로만 생활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살아남은 인구는 5백만 명이었다.

10퍼센트만 남은 것이다. 그들은 모두 서울의 일정 지역에 갇혀 있었다.

굳이 울타리를 칠 필요는 없었다.

-밖으로 나오면 죽는다.

이것이 유일한 규칙이었다. 그러다 필요할 때는 뱀파이어들이 가서 인간을 잡아 왔다.

도시 전체를 변종 새들이 감시하고 있기에 외출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주인님, 사람이 있습니다.

상엽은 드디어 거주 지구로 들어섰다.

강남의 대규모 빌딩과 아파트 단지는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는 지역이었다.

거주 지구로 들어서자 변종 새들이 괴성을 지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지 상엽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상엽이 거주 지구 깊숙이 들어왔을 때였다.

“살려 주세요!”

누군가 상엽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도로변에 위치한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에 먼저 반응한 것은 상엽이 아니었다.

창문이 열리자 변종 새가 먼저 화살처럼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퍽!

상엽은 기회가 있음에도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

‘함정일 수도 있어.’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실제로는 아주 예민한 상태였다.

적진의 중심에 홀로 들어온 그는 주변의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첫 희생자가 발생한 이후로 직접 소리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창문에서 지켜보는 눈이 많아졌다.

상엽은 계속해서 주거 지역을 걸었지만 뱀파이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상엽이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쳇.’

여기서 사람을 탈출시킬 방법이 당장은 없었다.

결국 상엽이 해야 할 일은 이하나와 뱀파이어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깊숙이 들어오면 나타날 거라 생각했지만 이하나는 상엽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끝까지 짜증 나게 하네.”

이하나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뱀파이어 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이하나라는 사실은 상엽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때, 하늘을 가득 메운 변종 새들 사이에서 붉은 독수리가 나타났다.

마치 상엽을 유혹하는 듯했다.

“건방지게.”

상엽은 함정임을 알면서도 하늘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새들을 향해 화염을 날렸다.

변종 새들은 명령을 받았는지 빠르게 양쪽을 흩어지며 화염을 피했다.

그리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모였다.

도약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엽도 상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찾았습니다.

추종자가 원하던 보고를 했다.

새들을 조종하고 있다면 분명히 직접 보이는 곳에 뱀파이어가 있을 거라 판단하고 추종자를 보냈다.

상엽은 새가 아니라 근처의 건물로 뛰어들었다.

마치 인간들이 갇혀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챙!

유리를 깨트리고 들어간 상엽의 앞에는 벽을 부수고 도망치는 뱀파이어의 등이 보였다.

푹!

하지만 상엽의 반응이 빨랐다.

뱀파이어의 등을 악마의 기운이 꿰뚫어 버린 것이다.

상엽은 꼬챙이처럼 뱀파이어의 몸을 매달고 있는 검은 기운을 움직였다.

그리고 망자의 손길이 다시 가시가 되면서 뱀파이어를 완전히 제압했다.

망자의 손길에 매달린 채로 상엽 앞에 선 뱀파이어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상엽을 보자 바로 피를 뱉어 냈다.

스스스.

그가 뿌린 피는 아르마딜로의 방어벽에 막혔다. 상엽은 무표정한 얼굴로 뱀파이어를 보다 결정을 내렸다.

쾅!

그의 머리에 해머가 닿았다.

심문이나 세뇌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뱀파이어 한 명을 잡았지만 정황이 바뀔 것은 없었다.

“노예 주제에 주인을 놀려?”

히이잉!

상엽은 결국 지옥마를 불렀다.

악마의 힘을 얻게 된 후로 지옥마는 다시 한번 모습이 변해 있었다.

온몸이 화염으로 타올랐고, 지옥마의 의지에 따라 화염이 공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엽을 등에 태운 상태에서는 공포를 자극하는 붉은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푸르!

“하늘부터 정리한다.”

지옥마는 기다렸던 명령을 듣자 곧장 하늘로 솟구쳤다.

예상대로 함정이 있었다.

상엽이 지옥마와 함께 솟구치자 붉은 독수리가 스스로의 몸을 태우며 붉은 레드홀을 만들었다.

화염의 소용돌이는 주변의 모든 것을 강렬하게 빨아들였다.

“지랄한다.”

그런데 상엽은 그들의 함정을 간단히 파괴해 버렸다.

절망의 파동.

레드홀을 집어삼킨 30미터 지름의 원형 파동은 주변에 있던 변종 새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렸다.

“작전이 실패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화염에 휩싸인 지옥마와 상엽이 한국의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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