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상엽은 정말 개처럼 싸웠다.
난쟁이의 두 개의 송곳이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비켜 가서 몸에 꽂혔다.
그 상태에서 상엽은 난쟁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개처럼 난쟁이의 목을 물었다.
난쟁이가 손에 힘을 줄 때마다 피를 토할 것 같았지만 상엽은 끝까지 입을 벌리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야.’
그 생각으로 버텼다. 그러자 상엽의 입 안에 고이는 피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상엽의 피가 아니었다.
상엽은 이를 인지하는 순간 목을 크게 젖혔다. 그러자 난쟁이의 목이 뜯겨져 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그리고 상엽은 반대쪽을 다시 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오직 난쟁이의 살점을 뜯어내는 데에만 집중할 때였다.
갑자기 입에 물고 있던 난쟁이 살이 재로 흩어졌다.
‘이겼어.’
그제야 상엽은 난쟁이가 소멸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후우.”
상엽은 구멍이 난 배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나타난 악마 탄야가 상엽을 불쾌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다운 싸움이었어. 딱 어울리네.”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보네. 애처럼 투덜거리는 거 보니까.”
탄야의 눈빛은 더욱 매서워졌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두 번이 남았어.”
“빨리 시작해. 시간 없으니까.”
상엽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알았다. 거인과 난쟁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정신이 들 때마다 늦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궁금해. 인간의 눈물은 어떤 맛일지.”
“뭔 개소리야?”
“곧 알게 되겠지.”
탄야는 다시 석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탄야가 떠난 자리에 익숙한 물건 하나가 있었다.
“오함마.”
파이어스의 망치였다.
-낄낄! 선물이야! 잘 쓰라고!
상엽은 얼른 파이어스의 망치를 들었다. 손에 닿는 감각이 익숙했다.
예전보다 조금 무겁게 느껴지긴 했지만 휘두르는 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스킬들은 발동되지 않았다.
‘이것만 있으면…….’
무기를 다시 찾은 것만으로도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였다.
세 개의 그림자가 상엽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세 개의 그림자가 점차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상엽은 불같은 화가 솟구쳤다.
“미친 악마 새끼가!”
-낄낄! 잘 해보라고.
눈앞에 선 세 명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감정이 사라진 얼굴로 상엽을 보고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레나였다.
특유의 관능적인 매력은 그대로였지만 유혹하는 듯한 눈빛은 홀린 것처럼 멍하게 변해 있었다.
두 번째 인물은 상엽이었다.
거울처럼 똑같이 생긴 상엽은 똑같은 파이어스의 망치를 들고 있었다.
세 번째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누나…….”
상엽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누나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악마의 두 번째 시험.
폭력에 슬픔을 더한 시험이었다.
무기를 쥐여 준 것은 더 잔인한 싸움을 하라는 도구였다.
-뭐해? 어서 죽여! 빨리 죽여야지! 낄낄!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바람 소리가 났다.
깡!
상엽이 해머를 휘두른 것이다.
-어떻게…….
“탄야, 널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버린다.”
상엽의 해머는 누나를 향하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공격한 것이다.
“미친 새끼! 넌 선을 넘었어!”
탄야는 슬픔을 이용하려 했다. 그리고 자신을 죽여야 하는 딜레마를 계획했다.
그런데 상엽은 이런 상황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분노였다.
대상에 대한 슬픔보다 악마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컸다.
“진짜 누나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 여기에는 이성이라는 것이 있었다.
-인간은 감정에 지배당하는 동물이 아니었나?
“무슨 개소리야?”
인간에 대한 분석이 어떻든 상엽은 세 명의 그림자와 전투를 시작했다.
-아직 자신하지 말라고.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죽게 되면 기분이 달라질 수도 있잖아?
탄야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판단을 믿는 듯했다.
‘망할.’
상엽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의 그림자는 단순히 모습만으로 상엽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해.’
거인과 상엽의 신체 능력만큼 그들의 실력에는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림자는 세 명이 동시에 공격을 하는 터라 상엽은 버틸 수가 없었다.
슬픔과 폭력.
이것이 두 번째 시험이었다.
“쳇.”
해머가 생겼지만 상엽은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의 협공에 결국 뒤로 밀리기 시작했고 심장을 찔리고 말았다.
자신의 심장을 찌른 그림자는 레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레나는 심장을 찌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누나 역시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상엽의 목을 찔렀다. 마지막으로 거울처럼 상엽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림자가 해머를 휘둘렀다.
쾅!
상엽은 머리가 터지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상엽은 다시 눈을 떴다.
확실히 충격이 있었다.
슬픈 눈으로 자신을 찌르던 그들의 모습이 악몽처럼 기억에 남았다.
-낄낄! 큰소리치더니!
“닥쳐.”
상엽은 분노했다. 여전히 슬픔보다 분노가 컸다.
또다시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기술로 이겨야 돼.’
그 방법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에 난도질을 당하고 머리가 깨지면서도 상엽은 이 생각만 했다.
사람의 감정은 덤덤해지기 마련이다.
-정말 이상한 인간이야!
“닥쳐, 집중해야 되니까. 세 번째 시험이나 준비해.”
상엽은 끈질겼다.
악마 탄야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수백 번의 죽음이 상엽의 영혼까지 망가트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반대였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지? 신도 견디지 못할 시험일 텐데.
상엽은 시간이 갈수록 독해졌다.
-인간의 독기가 이 정도라고?
그리고 배웠다. 상대의 공격을 배우고, 필요한 건 스스로 익혔다.
죽음은 그에게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안전장치와 같았다.
300번이 넘게 죽었을 때, 상엽은 기술만으로 세 명의 공격을 버텨 냈다.
그러다 500번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상대의 몸에 해머가 닿았다.
600번을 되살아났을 때, 드디어 상엽은 자신의 거울을 깨트렸다.
쾅!
상엽의 해머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림자의 머리를 터트렸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의 칼이 그의 급소를 파고들었다.
머리를 터트린 그림자는 다시 살아났다.
‘세 명을 전부 죽이라는 거지?’
상엽은 계속 싸웠다.
그렇게 천 번째 싸움이 시작됐다.
상엽은 다가오는 세 개의 무기를 아슬아슬하게 모두 피해 냈다.
반격의 틈이 보였지만 오히려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찾아갔다. 한 명을 죽이면 두 명에게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나 그림자의 뒤로 돌아가자 세 명의 진형이 흐트러졌다. 그런데 여기서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공격을 할 것처럼 속이고 빠르게 몸을 숙이자 그의 목과 심장이 있던 곳으로 무기들이 지나갔다.
상엽은 그 틈에 레나 그림자의 발등을 해머로 찍었다. 그리고 옆으로 그으며 누나 그림자의 무릎을 부쉈다.
유리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신의 힘을 가졌을 때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는 신중하고 정확한 한 방을 노렸다. 그러다 드디어 아무런 피해 없이 자신의 그림자를 깨트렸다.
한 명을 처리하고 빠르게 물러난 상엽은 두 명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역시 신중하게 레나의 그림자를 처리했다.
남은 건 누나의 그림자뿐이었다.
상엽은 슬픈 눈을 하고 있는 누나의 모습에 어떤 동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냉정하게 전투를 펼칠 뿐이었다.
단 한 명을 상대로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피하는 데 집중하며 완벽한 기회를 노렸다.
수십 번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 내자 드디어 기회가 생겼다.
위기를 느낀 누나의 그림자는 애처로운 눈으로 상엽을 보았다.
동공이 흔들렸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쾅!
상엽은 거침없이 그림자의 머리를 터트렸다.
천 번의 죽음을 앞두고 일궈 낸 승리였다.
“기분 더럽네.”
동요는 하지 않았지만 누나의 모습을 깨트린 것이 결코 유쾌하진 않았다.
상엽은 해머를 든 채로 광장 중앙에 있는 석상을 보았다.
“낄낄! 그만두라고. 난 여기 있으니까.”
상엽의 생각을 파악했는지 탄야가 석상을 빠져나왔다.
“넌 내 손에 죽을 거야. 분명히.”
“그건 세 번째 시험을 통과하고 말해.”
마지막 시험이 남았다.
“빨리 시작해. 시간 없으니까.”
“이미 시작됐어.”
“무슨 소리야?”
“마지막 시험.”
사람의 형상이던 탄야의 모습이 갑자기 거대해지며 광장의 천장에 닿을 듯이 커졌다.
-날 이겨라. 이것이 마지막 시험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상엽을 막았던 모든 제약이 풀렸다.
온몸에 힘이 넘쳐 났고 유령 군대가 스스로 상엽의 뒤를 지켰다.
그리고 성아가 상엽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악마의 모습이 워낙 압도적이라 상엽은 든든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거기다 묘한 의심도 생겼다.
“야, 싸우기 전에 하나 묻자.”
-악마와 대화를 원하느냐?
“닥치고 대답해.”
상엽은 해머를 늘어트린 채로 앞으로 나가면서 탄야에게 물었다.
“세 번째 시험이 원래 이거였어?”
탄야는 지금까지와 달리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특유의 웃음소리도 없었다.
“에라이, 치사한 새끼야. 못 이길 거 같으니까 종목을 바꾸냐? 네가 그러고도 인간을 비난할 자격이 있어?”
-낄낄! 그러니까 악마지. 어차피 계약 위반도 아니야. 난 세 번째가 뭐라고 미리 말한 적이 없으니까.
악마의 시험 세 번째는 분노였다.
분노로 영혼을 파괴하는 시험이었다. 그런데 탄야는 상엽이 이것도 통과할 거라 생각하고 종목을 바꿔 버렸다.
“이게 마지막일 거 같으면 처음부터 싸웠으면 됐잖아.”
-낄낄! 네놈이 화내는 모습을 보니까 즐거워지는데.
“악마라는 새끼가 품위가 없네.”
-닥쳐라! 인간!
탄야는 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았다.
“뭐, 잘됐네.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었는데.”
상엽도 사실을 확인했을 뿐, 마지막 시험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상엽은 의외로 성아를 비롯한 모든 군대를 문신으로 되돌렸다.
그 상태에서 다시 탄야에게 물었다.
“세 번째 시험도 부활은 되는 거지?”
탄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되겠지. 우리 계약에 이런 게 있었잖아.”
상엽은 처음 시험을 치르기 전에 했던 가장 중요한 말을 떠올렸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게 내기 조건이니까.”
몇 번을 죽어도 탄야는 이길 수 없었다. 상엽이 스스로 포기해야 내기가 끝나는 것이다.
“자, 그럼 잘 부탁해.”
상엽은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포기하게 될 것이다.
“아니란 거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상엽은 바닥을 차며 거대한 탄야의 머리를 향해 뛰었다. 그 순간 바닥에서 엄청난 용암이 솟아올라 상엽을 덮쳤다.
아르마딜로의 방어벽.
상엽은 모든 스킬을 되찾았다. 그런데 용암은 순식간에 방어벽을 녹여 버렸다.
이로 인해 상엽이 잠시 당황했을 때, 뭔가가 상엽을 향해 다가왔다.
엄청난 속도에 상엽은 피할 틈이 없었다.
푹!
뭔가가 상엽의 몸을 관통했다. 그것은 탄야의 손가락이었다.
거대한 손가락은 상엽의 가슴을 모두 뚫어 버렸다.
탄야는 손가락에 꼬치처럼 매달린 상엽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네놈이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백만 번을 죽어도 날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을 하며 탄야는 손가락에 있는 상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여전히 목숨이 붙어 있는 상엽의 몸을 음식처럼 씹어 버렸다.
상엽은 다시 눈을 떴다.
“미친 새끼가!”
뭔가에 먹힌다는 것은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다.
‘일부러 힘을 돌려준 거야.’
어떤 미련도 없이 힘의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만큼 탄야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낄낄! 너의 주제를 알았느냐?
“지랄한다. 이제 시작이야.”
상엽은 시간을 끌지 않고 두 번째 전투에 들어갔다. 그런데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열 번을 죽었지만 탄야에게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성아, 어떻게 된 거야?’
-그는 유일신에 도전했던 악마였어요. 프로토와 잠시지만 대등하게 싸울 정도였어요.
상엽은 그 말을 듣더니 놀라기보다 오히려 웃음을 보였다.
“잘됐네. 저 녀석만 이기면 프로토하고도 해볼 만하다는 거지?”
고통은 상엽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망과 포기는 애초에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악마 덕분이라니. 기분이 묘하네.”
생각을 바꾼 그에게 지금의 시련은 절망이 아니라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