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악마와의 내기가 시작됐다.
모든 것을 건 내기였지만 결코 공평하지 않았다.
“방식은 간단해. 세 번의 시험이 있고 그걸 통과하면 네가 이기는 거야.”
“치사한 새끼.”
“뭐?”
“너는 세 번 중에 한 번만 이기면 된다는 거잖아. 위대한 악마라면서 아주 치사해. 인간 따위에게 말이야.”
“낄낄낄! 그래서 내가 악마지. 공평한 건 천사한테나 가서 찾도록 해.”
탄야는 상엽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언제든 죽여 달라고 해. 그럼 편안해질 거야.”
탄야는 그 말을 남기고는 중앙에 수정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부서졌던 석상이 다시 생겼다.
-첫 번째 시험을 시작하지.
탄야의 목소리는 다시 살기가 가득한 악마의 음성으로 되돌아왔다.
-첫 번째 시험 주제는 이거야.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힘을 주어 주제를 말했다.
-폭력.
악마에 어울리는 단어였다.
이길 수 없는 폭력은 대상자에게 무기력함을 준다. 그 무기력함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저항을 멈추게 된다.
저항을 멈춘 후에도 폭력이 계속되면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단을 찾는다.
만약에 당장 이것을 피할 수단을 찾지 못한다면?
죽음이 유일한 방법이 된다.
폭력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상대를 절망에 빠트리는 방법이었다.
‘포기하면 진다는 거지?’
상엽은 이 내기의 본질을 그제야 깨달았다.
‘진짜 잔인한 놈이네.’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것.
이것이 악마가 원하는 결론이었다.
‘절대 포기 안 해.’
상엽은 의지를 다지며 시험을 기다렸다.
첫 번째 시험은 간단했다.
광장 안으로 근육질의 3미터 거인이 나타났다. 우락부락한 근육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였다.
상엽은 그와 싸워야 했다.
그런데 신의 힘을 모두 잃은 상엽에게 남은 것은 순수한 인간의 신체뿐이었다.
힘의 차이가 너무나 극명했다.
퍽!
그나마 그동안의 전투 경험이 있어서 상엽은 거인의 주먹을 피하고 옆구리에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돌을 때리는 느낌만 남았다.
쾅!
오히려 행동이 멈추면서 거인에게 한 방을 맞고 말았다.
관자놀이를 강타한 주먹으로 인해 정신이 멍해졌다. 그럼에도 투지를 발휘해 반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거인에게 솜방망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낄낄!
악마는 재미있다는 듯이 상엽의 발악을 지켜봤다.
‘망할.’
상엽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닥에 드러눕는 신세가 되었다.
기본적인 신체 능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인은 그런 상엽을 짓밟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가 부러진 상엽은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다.
‘죽음.’
그 단어만 떠올랐다.
-걱정 마. 안 죽어. 이 방에서 죽는 건 오직 네 선택만으로 가능해.
상엽은 불과 10분 만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죽음이 더 편할 때도 있구나.’
악마가 원하는 그대로였다.
온몸이 부서지고 내장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상엽은 죽지 않았다.
-너무 시시한데. 이제 그만 죽여 달라고 말해.
악마는 실망했다는 말투였다.
상엽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구타 속에도 악마의 말은 정확히 들었다.
이미 모든 뼈가 부러져서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상엽은 샌드백처럼 무자비한 발길질을 견뎌야 했다.
그러다 감각마저 희미해질 때쯤, 거인이 상엽의 머리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무게를 실어 조금씩 누르기 시작했다.
-낄낄! 이 장면을 기다렸어.
상엽은 본능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얼굴이 무너지고 뇌가 구겨지는 느낌은 잊고 있던 생존 본능을 자극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주 천천히 잔인할 정도로 느리게 상엽은 자신의 머리가 구겨지는 것을 경험했다.
상엽은 다시 눈을 떴다.
그는 분명 죽음을 경험했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낄낄! 다시 시작이야.
“치사한 새끼.”
-아직 힘이 남았네. 그런데 목소리에 힘이 많이 빠졌는데?
상엽은 머리가 짓밟힐 때의 느낌을 정확히 기억했다. 그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원래 힘만 있었어도…….”
-낄낄! 무슨 소리야? 지금 네 모습이 원래 힘인데.
상엽이 뭔가 반박을 하려는 순간, 또다시 누군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거인과 달리 키가 1미터도 되지 않는 난쟁이였다.
힘은 압도적이지 않지만 민첩성이 뛰어났다.
난쟁이는 양손에 송곳을 쥐고 상엽에게 달려왔다.
상엽은 난쟁이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지만 금세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상엽의 손목에 송곳이 박혀 버린 것이다.
하나는 두 개가 되었고, 곧 상엽의 신체에는 수십 개의 송곳이 박혔다.
또다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난쟁이는 송곳으로 피부를 찢어 신경을 뜯기 시작했다.
난쟁이는 상엽의 고통에 웃기 시작했고 고문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마지막은 심장이 뚫리는 것이 선명히 느껴지도록 천천히 송곳을 꽂았다.
상엽이 또 한 번 잔인한 죽음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폭력은 잔인했다.
두 번의 죽음 이후로도 같은 과정은 계속되었다.
열 번이 스무 번이 되고 금세 서른 번이 되었다.
-낄낄! 이제 인간에 어울리는 표정이 됐네?
상엽의 눈빛에서 생명의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멍한 정신으로 또 다른 고통을 기다리는 신세였다.
다시 거인이 나타나 상엽의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폭력은 효과적이었다.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 상엽마저도 무기력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게 내 힘인가?’
신의 힘이 사라진 상엽은 거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엽은 지난 스무 번의 싸움에서는 단 한 번의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마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틴 것이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퍽!
광대뼈가 무너지는 충격에 상엽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다시 잔인한 시간이 시작됐다.
오십 번의 죽음이 반복됐다.
-낄낄! 그래도 칭찬해 줄게. 그 정도면 인간치고는 꽤 버텼어.
다시 거인이 나타났다.
상엽은 몸이 전부 회복되었음에도 축 늘어진 몸으로 거인을 맞이했다.
-낄낄! 더 잔인하게 죽어! 그 표정이 꽤 재미있단 말이야!
거인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퍽!
상엽이 처음 싸웠던 때처럼 반격을 했다.
주먹은 번개같이 꽂혔지만 이번에도 거인에게 충격을 주지 못했다.
거인은 처음 싸웠을 때처럼 상엽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휙!
그런데 상엽이 이를 피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또 한 번 주먹을 뻗었다.
그 순간, 거인이 발을 들어 올려 상엽의 몸을 밀어 버렸다.
두 번의 반격.
하지만 세 번째는 거인의 주먹에 막히고 말았다.
그 후부터는 다시 끔찍한 시간이었다.
다시 난쟁이가 나타났다.
난쟁이는 평소처럼 상엽의 주위를 돌다 등을 보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상엽은 오히려 송곳을 배로 받아 냈다. 몸이 꿰뚫렸지만 난쟁이의 이동은 멈췄다.
상엽은 필사적으로 난쟁이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난쟁이는 힘으로도 상엽에게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상엽은 지금보다 더 심한 난도질을 당했다.
악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버틸 수 있는 거지? 당연히 죽여 달라고 빌어야 하는데?
일흔일곱 번의 죽음이 이어졌다.
그런데 상엽은 오히려 눈빛이 살아나고 있었다.
상엽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악마는 대답을 듣고 싶은지 상엽의 앞에 직접 나타났다.
“인간의 의지? 투지? 그런 거야?”
“지랄하네.”
상엽은 악마에게 독설을 퍼부은 후에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억울해서.”
“뭐?”
“억울해서 이렇게는 못 죽겠어.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꺼져.”
탄야는 상엽의 말이 진심임을 느꼈다.
“인간이 어떻게…….”
“저 자식들 전부 밟아 주고 넌 제일 마지막이야. 아마 네가 죽여 달라고 하게 될 거야.”
상엽은 탄야가 보여 주었던 비웃음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탄야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성장한다고?
상엽은 성장하고 있었다.
신의 힘을 잃었고 신체 능력도 그대로지만 기술이 늘고 있었다.
공격을 피하고 주먹으로 상대를 때리는 힘이 달라졌다.
빠르게 움직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주고 다시 뒤로 빠졌다.
5분 만에 쓰러지던 상엽은 점차 그 시간이 길어졌고 이젠 거인과의 싸움에서 한 시간을 버텨 냈다.
숨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바닥을 구르며 발목을 노렸고 주먹으로 안 되면 팔꿈치, 머리로 들이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고문이 사라졌다.
화가 난 거인이 상엽을 제압하지 않고 단번에 죽이는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난쟁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좀 싸움 같지?”
상엽은 심장이 찔리더라도 난쟁이를 끌어안고 육탄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입에 닿는 모든 것을 물어뜯었다.
난쟁이 역시 어느 순간부터 상엽을 곧바로 죽이기 시작했다.
전투는 계속됐다.
압도적인 신체 차이는 영원히 극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2백 번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거인은 더 이상 상엽을 잡을 수 없었다.
상엽은 거인의 주먹과 발등이 아니라 팔꿈치와 무릎을 보기 시작했고, 어깨와 허벅지가 움직이는 순간에 반응을 했다.
퍽! 퍽!
이젠 한 번의 공격을 피하고 두 번의 주먹을 꽂았다.
잘 훈련된 파이터처럼 상엽은 스스로 기술을 연마하며 거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우둑!
그러다 드디어 거인의 몸이 균열을 보였다.
수십 번을 두드린 옆구리의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다.
거인은 괴성을 질렀고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상엽은 침착하게 이를 피했고, 부러진 자리를 계속 타격했다.
하지만 상엽의 체력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으아!”
상엽은 처음으로 괴성을 지르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그 함성은 상엽의 투지가 살아났다는 증거였다.
우둑!
또 하나의 뼈를 부러트리자 거인은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상엽은 침착하게 접근하며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공격하다 반대편으로 목표를 바꿨다.
그렇게 거인의 시선이 돌아갔을 때, 상엽의 발이 정확히 부러진 자리를 때렸다.
쿵!
거인이 고통에 쓰러졌다.
이에 상엽은 거인의 등 뒤로 돌아가 손가락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거인의 눈으로 찔러 넣었다.
“네 친구가 자주 하던 짓이야.”
난쟁이가 선호하는 공격 패턴을 그대로 거인에게 돌려준 것이다.
그때부터는 사냥꾼과 사냥감이 바뀌었다.
상엽은 체력을 회복하며 기회를 노리다 거인을 조금씩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쿠쿵!
드디어 거인이 쓰러졌다. 상엽은 그럼에도 방심하지 않고 빠르게 거인의 머리로 접근했다.
양팔로 목을 감고 거인의 머리를 잡은 상엽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몸을 비틀었다.
우둑!
단단하게 버티던 거인의 몸이 결국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이겼어…….”
기술만으로 일궈 낸 승리였다.
목숨을 잃은 거인의 몸은 붉은 재로 흩어졌다. 동시에 상엽의 거친 호흡은 빠르게 진정되었다.
늘어졌던 근육이 다시 탄탄해졌고 어지럽던 정신도 맑아졌다.
회복이 된 것이다. 이는 다음 싸움을 의미했다.
“이제 네 차례야.”
난쟁이와의 싸움이 남았다.
상엽은 또다시 혈투를 벌였다.
죽은 거인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엽은 난쟁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난쟁이하고만 추가로 오십 번을 싸웠지만 언제나 죽는 쪽은 상엽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변화가 있었다.
전투 시간이 급격히 짧아졌다.
난쟁이는 이제 상엽을 제압하는 것을 포기하고 곧바로 죽이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다.
상엽은 이것을 기회로 삼았다.
‘이번엔 잡는다.’
속도를 이길 수는 없었다. 신체 능력이 성장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난쟁이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난쟁이는 평소처럼 주변을 돌며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 상엽의 시선이 쫓아오지 못하자 등을 노리며 다가왔다.
난쟁이도 매번 패턴을 바꾸는 터라 공격을 완전히 예측할 수는 없었다.
이에 상엽은 생각을 바꿨다.
‘급소를 노릴 거야.’
과정은 예측할 수 없지만 결과는 예상할 수 있었다. 난쟁이가 노리는 급소는 세 곳이었다.
목, 심장, 명치.
최근 싸움에서는 언제나 이 세 곳 중에 한 곳을 노렸다.
지난 싸움에서도 이를 예측하며 전투를 펼쳤지만 언제나 변수가 생겨서 성공하지 못했다.
‘바로 판단해야 돼.’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상엽은 확인할 수 있는 난쟁이의 움직임만으로 목표를 예상했다.
‘심장!’
상엽은 왼손을 심장으로 옮겼다.
푹!
난쟁이의 송곳이 그의 손을 관통했다.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그 순간 상엽은 이를 악물며 관통당한 손을 오므려 난쟁이의 손을 잡았다.
“자, 개싸움 시작.”
상엽은 난쟁이를 안고 뒹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