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42화 (240/300)

# 242

한 명의 뱀파이어가 다가왔다.

그는 마치 환영한다는 듯이 상엽의 등에 망토를 덮으려 했다.

툭.

망토는 마치 주인을 찾은 듯이 상엽의 어깨를 살짝 감싸며 바람에 펄럭였다.

그리고 망토를 덮어 준 뱀파이어는 천천히 송곳니를 드러내며 상엽의 목으로 얼굴을 가져왔다.

그렇게 송곳니가 상엽의 피부에 닿으려 할 때였다.

“징그럽게.”

쾅!

뱀파이어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상엽은 어깨에 있던 망토를 떼어 내서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지금까지 이런 짓을 해 놓고 믿으라고?”

상엽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돌아갈 리가 없었다.

“노예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이건 고맙게 가질게.”

“탈출해야 해요.”

성아도 상엽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금이 엄청난 위기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길 수 없는 상대예요.”

상엽도 같은 생각을 했다.

한 명을 처리했지만 여전히 아홉 명의 뱀파이어가 있었다. 그들만 해도 이길 확률이 높지 않은 싸움이었다.

“걱정 마. 안 죽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상엽은 자신의 힘을 믿었다.

-하찮은 인간에게 기회를 주었음에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구나.

“이건 감사해.”

그는 생명초의 마지막 조각을 챙겼다.

이걸로 생명초는 완성되었다. 누나를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 하는데.’

기습으로 한 명을 처리했지만 그걸로 전황이 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절대신 프로토는 진짜 힘을 보여 주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상엽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성아, 널 여기서 빼내 주면 이 녀석들 따돌릴 수 있어?’

성아는 상엽의 생각을 엿보며 계획을 확인했다.

-잡힐 거예요. 아직 제 힘을 전부 찾지 못했어요. 설사 찾았다 하더라도 프로토를 따돌릴 수는 없어요.

상엽은 자신이 희생해서 번개의 장막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날 살리면 될 줄 알았더니.’

성아에게 에레나의 생명초를 주고, 이를 통해 자신을 살리면 빠져나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회생도 아직 사용할 수 없어.’

광전사의 정수를 얻는 과정에서 회생을 사용한 터라 이것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당신을 살린다고 지금의 힘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어요.

이건 상엽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그냥 살리기만 하는 건가?’

아무 힘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난다면 그것 또한 좋은 방향이 아니었다.

“결국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는 거네.”

상엽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 상엽의 결정을 인지한 뱀파이어들에게 프로토의 명령이 전달되었다.

-죽여라.

간단한 명령이었다. 이에 아홉 명의 뱀파이어들이 무기를 세우며 상엽에게 다가왔다.

푸르!

상엽을 태운 지옥마는 불쾌한 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발을 굴렀다.

충격파가 지상으로 퍼져 나갔지만 뱀파이어들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내려가자.’

상엽은 차라리 지상에서 싸우기로 했다. 독구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는 의도도 있지만,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지상이 편했다.

변이 인간과 괴수들이 있지만 공중에서 제약을 받는 것보단 나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결국 상엽은 지옥마를 문신으로 돌리고 스트라이크로 뱀파이어들을 밀어내며 호주 땅을 밟았다.

“뭐해? 덤벼.”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괴수와 변이 인간들을 쓸어 내자 그다음은 뱀파이어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사투였다.

채 3분도 되지 않아 상엽의 온몸은 피로 물들었다.

지금까지 단단하게 버텨 주던 압축피부마저 균열을 일으키며 피를 쏟아 냈다.

쾅!

피투성이가 된 상엽의 어깨로 또 한 번 날카로운 손톱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공격에 성공한 뱀파이어의 머리도 터져 버렸다.

이미 유령 군대는 뱀파이어들에 의해 전부 소멸했고, 성아도 처음부터 전투에 합류한 상태였다.

“후우.”

상엽은 피로 물든 얼굴로 남은 상대를 노려보았다.

‘4명.’

3분간의 사투로 뱀파이어 5명을 처리했다.

뱀파이어들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는지 표정에 독기가 떠올랐다.

“모기 새끼들. 덤벼.”

상엽은 이를 악물고 다시 전투를 펼쳤다. 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특히 뱀파이어들이 쓰는 스킬 중에 피를 독으로 바꾸는 부분이 문제였다.

이미 상처가 생긴 상엽은 이 스킬을 막을 수가 없었고 느리지만 피가 독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엄청난 고통뿐만 아니라 현기증이 상엽을 괴롭혔다. 조금 전부터는 시야가 흐려지기도 했다.

‘위험하다.’

위기감이 들었지만 멈출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때, 뱀파이어들은 상엽을 압박하기 위해 지금까지와 다른 행동을 했다.

갑자기 뒤로 물러나는 대신, 변이 인간과 괴수들에게 공격을 지시한 것이다.

상엽은 몰려드는 변이 인간과 괴수들을 향해 강력한 스킬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땅이 뒤집히고 몇천에 이르는 사상자를 만들었지만 이것은 상엽에게도 충격으로 되돌아왔다.

‘망할.’

뱀파이어들은 괴수와 변이 인간이 벌어 준 시간 동안 상엽의 피를 독으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

현기증이 점점 더 심해졌고, 눈에 보이는 사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기는 전부 잡고 간다.”

결국 상엽은 다가오는 변이 인간의 머리를 밟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뱀파이어들은 거리를 벌리며 전투를 피했다.

‘하나.’

상엽은 공중에서 고스트 실드를 밟고 자리를 옮기며 계속 추격만 했다.

뱀파이어들이 그 행동을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다섯 번의 도약이 끝났을 때였다.

지금까지와 달리 해머를 쥐고 도약만 하며 거리만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광전사의 정수.’

상엽은 광전사의 정수로 힘을 압축했다.

‘파괴전차.’

먼저 세 번을 압축한 파괴전차가 펼쳐졌다. 상엽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뱀파이어 한 명을 들이받았다. 워낙 빠른 속도라 뱀파이어는 피할 틈이 없었다.

다급히 몸이 흩어지는 스킬을 사용했지만 파괴전차가 빨랐다.

쾅!

파괴전차에 부딪친 뱀파이어가 그대로 소멸하고 상엽은 기세를 몰아 두 번째 희생자를 만들었다.

상대가 급히 피하긴 했지만 팔각 대시로 방향을 바꾸면서 끝내 들이받은 것이다.

두 명을 처리한 상엽은 나머지 두 명의 위치를 보고는 파괴전차를 멈췄다.

‘절망의 파동.’

이 역시 이미 두 번을 압축해 두었다.

상엽이 휘두르는 해머가 만든 원형의 직선 파동은 뱀파이어 한 명을 순식간에 가둬 버렸다.

뱀파이어는 스킬을 사용해 빠져나가려 했지만 압축된 파동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촤랏!

결국 또 한 명의 뱀파이어가 파동과 함께 사라졌다.

남은 뱀파이어는 한 명.

‘유령아.’

마지막 남은 뱀파이어를 향해 뛰면서 상엽은 지금까지 숨겨 두었던 추종자를 활약시켰다.

추종자가 긴 곡선을 그리며 마치 스킬처럼 뱀파이어에게 날아갔다.

뱀파이어는 본능적으로 추종자를 피하려 했다. 그러자 성아가 주변 공기를 급격히 압축하며 뱀파이어의 행동을 막았다.

‘지금 처리해야 돼.’

압축된 힘을 쓴 터라 상엽은 호흡에 무리가 올 정도로 지쳐 있었다.

이미 많은 피를 흘렸고, 독성이 몸을 지배한 터라 두 번의 기회는 없는 상태였다.

고스트 체인.

성아가 뱀파이어의 행동을 느려지게 했을 때, 상엽이 고스트 체인을 썼다.

하지만 뱀파이어는 다가오는 체인을 단검으로 모두 끊어 내며 성아의 영역마저 벗어났다.

‘지금.’

상엽은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곳에 절망의 파동을 다시 쏘았다.

뱀파이어는 파동이 다가오는 순간, 예상했다는 듯이 지상으로 하강하며 범위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가 지상에 닿기 전에 거대한 언덕이 올라오며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상엽이 거산을 소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틈에 상엽의 스트라이크가 터졌다.

쾅!

첫 번째 스트라이크는 망토를 뚫었다.

유령 잔상.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이 뱀파이어의 가슴을 무너트렸다. 상엽은 충격에 밀려나는 뱀파이어를 뒤쫓았다.

“끝이다.”

쾅!

또 한 번의 스트라이크가 결국 뱀파이어의 머리를 터트렸다.

그런데 현기증이 심해진 상엽은 상대를 처리하는 순간,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쿵.

상엽은 중심을 잃고 바닥을 뒹굴었다.

“하아, 하아.”

호흡마저 쉽지가 않았다.

상처도 컸고 체력도 고갈되었다. 수십 번이나 강력한 스킬을 쏟아부은 터라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렸다.

열한 명의 뱀파이어를 직접 처리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지만 그는 웃을 수가 없었다.

변이 인간과 괴수들이 여전히 그를 노리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상엽은 다시 전투를 펼치려 해머를 잡았다. 그런데 변종들은 일정 거리에서 원형의 포위망을 만들 뿐,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프로토.”

변이 인간과 괴수들 중의 일부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상엽은 시야를 답답하게 만들던 먹구름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상엽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번개 장막도 사라졌고 하늘을 가리던 먹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달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하늘이지만 구름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그리고 사람 형상의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수염이 길게 늘어진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하얀 로브로 품위를 더하고, 한 손에 쥔 지팡이는 도사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눈빛만큼은 악귀처럼 분노에 차 있었다.

-프로토예요.

절대신 프로토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상엽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공포를 느꼈다.

그저 눈에 담긴 힘만으로도 심장이 금방 폭발할 것 같은 폭탄처럼 심하게 뛰었다.

하지만 공포는 잠시였다.

피범벅이 된 상엽의 얼굴에도 똑같은 분노가 떠올랐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프로토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귀를 강타했다. 잠잠해졌던 심장이 그 한마디에 다시 요란하게 뛰었다.

“닥쳐.”

상엽은 말을 모두 듣지도 않고 거절했다. 그리고 해머를 휘둘렀다.

파괴의 일격.

프로토의 바로 옆에 거대한 해머가 생성됐다. 그런데 프로토는 이를 피하지 않았다.

쾅!

프로토는 지팡이를 든 손을 해머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금빛 방어막이 형성되었고 이것만으로 파괴의 일격을 막아 냈다.

파괴력만 보자면 상엽이 가진 최고의 힘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손동작 하나로 막혀 버린 것이다.

‘이길 수 없어.’

상엽은 이를 분명히 알았다. 그런데 알아차린 시간이 너무 늦었다.

프로토는 상엽을 굴복시키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죽어라. 여전히 하찮은 인간이여.”

강력한 번개가 프로토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상엽은 이를 피하지 않았다.

“혼자는 안 간다.”

상엽은 오히려 프로토를 향해 뛰어올랐다.

-멈춰요!

놀란 성아가 상엽의 행동을 말렸다. 하지만 그녀라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지직!

상엽의 몸에 프로토의 번개가 꽂혔다.

살점이 터져 나갔고 근육마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상엽은 멈추지 않았다.

‘한 방이면 돼.’

그는 압축피부와 고스트 체인, 고스트 실드를 오직 한 곳에 모았다.

해머를 쥔 오른손.

그 상태에서 상엽은 단 한 방에 모든 것을 걸었다.

죽음을 건 도박은 그의 몸을 완전히 파괴하기 시작했다. 상엽은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점점 가까워지는 프로토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어리석은 인간.”

그 한마디를 하는 프로토의 얼굴에는 진한 비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툭.

그리고 상엽의 해머는 힘이 빠진 채로 프로토의 지팡이에 걸렸다.

‘졌어.’

온몸의 피부가 모두 벗겨지고 근육의 대부분이 손상된 채로 겨우 프로토에게 닿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의 해머에는 조금의 힘도 실려 있지 않았다.

“죽어라.”

사형 선고를 하는 판사처럼 프로토는 상엽에게 죽음을 지시했다.

그리고 더욱 강력한 번개의 힘이 모였다.

‘누나, 미안해.’

지난 시간이 꿈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프로토의 몸에서 강렬한 번개가 상엽의 몸에 떨어졌다.

상엽은 저항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을 감지 않고 다가오는 번개를 끝까지 보았다.

억울했다. 이렇게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툭.

뭔가가 상엽의 몸을 물고 빠른 속도로 번개를 피했다.

번개는 바닥에 꽂혔지만 곧이어 또 다른 번개가 빠르게 달려가는 물체를 뒤쫓았다.

지옥마였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뛰기 시작한 지옥마는 금세 전장을 벗어났다.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프로토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무리 지옥마가 빠르다고 해도 그를 따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엽의 몸을 입으로 문 지옥마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 순간, 지옥마 앞에 암흑의 신전이 나타났다. 동시에 지옥마의 몸에 프로토의 번개가 닿았다.

번개에 맞은 지옥마의 몸이 순식간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옥마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몸이 절반 이상 소멸되었음에도 지옥마는 펼친 날개를 접지 않았다.

하지만 번개의 속도보다 앞설 수는 없었다.

신전을 눈앞에 두고 결국 지옥마의 날개마저 소멸하고 말았다.

절망.

이를 느낀 건 성아였다. 이렇게 상엽이 소멸하면 자신의 삶도 끝이었다.

그때, 지옥마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유일하게 남은 앞발로 공중을 걷어찼다. 그리고 입을 벌려 물고 있던 상엽을 놓아주었다.

“이놈!”

프로토는 분노했다.

신전 입구로 던져지는 상엽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옥마는 소멸했지만 결국 상엽은 정신을 잃은 채로 신전의 입구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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