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이런…….”
상엽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았다.
그가 도착한 곳은 오사카의 도톤보리였다.
광동성을 정리한 상엽은 잡아 온 사내를 블랙 해머에 맡기고 곧바로 일본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일본은 그가 봐 왔던 모습이 아니었다.
데스문과 연락을 하려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고, 한국의 박광신도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첫 기습이 데스문이었던 거 같아.
일본 최고 집단을 순식간에 무너트린 것이다.
데스문에 더 이상 희망을 걸 수 없게 된 상엽은 도톤보리의 식스헤븐으로 달려갔다.
거리는 이미 변이 인간들로 가득했고, 하늘은 변종 새들이 뒤덮고 있었다.
팬텀에서 파견된 지원군들은 이제 막 도쿄에서 전투를 시작했으니 오사카를 구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리.”
데스문이 무너진 상황에서 상엽과 관련된 일본인은 아이리가 유일했다.
그는 아이리라도 구하기 위해 도톤보리를 뛰기 시작했다.
상엽을 발견한 변이 인간들은 곧바로 야성을 보이며 달려들었다.
공격이 시작되자 도톤보리에 가득한 변이 인간들 전부가 상엽을 향해 뛰었다.
그 숫자만 1만에 달했고, 파도가 치듯 상엽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상엽은 앞을 막는 변이 인간들을 파괴전차로 처리하며 식스헤븐으로 뛰었다.
저녁 8시.
한창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올 시간이었지만 도톤보리 대부분에 불이 꺼져 있었다.
그나마 불이 켜진 것도 자동으로 맞춰진 시간에 켜진 듯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망할…….”
식스헤븐의 간판도 마찬가지였다.
고급스러운 유리 벽은 산산이 무너졌고 간판은 겨우 끝 글자만 걸쳐져서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상엽은 불길한 예감을 안고 식스헤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 뭔가가 상엽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엽은 반사적으로 반격을 하려다 갑자기 다가오는 칼을 맨손으로 잡았다.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리를 지키던 심부름센터 출신의 사내였다.
자신을 형님이라 부르며 아이리를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하던 자이기도 했다.
상엽에게 칼이 붙잡힌 사내는 곧바로 입을 벌리며 다가왔다. 날카로운 이빨이 목을 노렸지만 상엽은 움직이지 않았다.
콱!
결국 사내의 이빨이 상엽의 목에 닿았다. 하지만 상엽은 멀쩡했다. 오히려 사내의 이빨이 깨져 나갔다.
“미안하다.”
상엽은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이 날 것처럼 가슴이 쓰렸다. 하지만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쾅!
결국 상엽의 해머가 사내의 머리를 깨트렸다. 그리고 또 다른 변이 인간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모두 심부름센터의 사내들과 식스헤븐의 웨이터들이었다.
상엽은 이를 악물며 그들을 처리했다.
“망할.”
가슴이 답답해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모든 사내들을 제거한 상엽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들이 없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그들은 식스헤븐의 홀에 모여 있었다.
이곳에 있다가 전부 변이 인간이 된 것이다.
‘혹시?’
상엽은 재빨리 추종자로 식스헤븐을 수색하게 했다.
-여자들이 갇혀 있습니다.
상엽은 추종자가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여성들의 대기실이었다. 그런데 대기실로 가는 복도에 수십 개의 철판이 있었다.
냉장고를 비롯해 강도가 있는 것으로 수십 겹이나 복도를 막아 놓은 것이다.
그렇게 여자들을 숨겨 놓은 그들은 몰려드는 변이 인간과 싸웠다. 그 결과는 패배였지만 결국에는 여자들을 지켜 낸 것이다.
“미안해.”
그들은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아이리를 지켜.
어쩌면 그 한마디를 죽는 순간까지 품었을지도 몰랐다.
“으아아!”
상엽은 울분을 토해 냈다. 그 목소리에 변이 인간들이 식스헤븐으로 몰려들었다.
“친위대.”
상엽은 여자들이 모여 있는 복도에 친위대를 소환하고 변이 인간들을 향해 뛰었다.
쾅! 쾅! 쾅!
분노한 상엽은 변이 인간들을 풍선처럼 터트리기 시작했다.
“개새끼들!”
한 번의 폭발에 수십 명의 변이 인간들이 재로 흩어졌고, 해머에 닿은 변이 인간은 어김없이 온몸이 터져 버렸다.
“죽어!”
미친 사람처럼 해머를 휘둘렀다.
끝도 없는 폭음과 괴성, 찢어진 살점과 핏자국이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
그럼에도 상엽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과격해졌다.
1만 마리의 변종들과 한 명의 인간.
숫자로 판단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돌연변이 인간과 신의 대결.
이것이 훨씬 어울리는 평가였다.
신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상엽에게 변이 인간은 그저 불속에 뛰어드는 나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쾅!
결국 마지막 변이 인간이 해머에 무너졌다.
“으아아!”
더 이상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상엽의 아픔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빌딩에 반사되는 괴성의 메아리가 사라졌을 때, 거짓말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그 무거운 침묵이 상엽의 정신을 깨웠다.
“정신 차리자.”
그는 이를 악물고 식스헤븐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복도를 막고 있던 철판을 모두 치웠다.
마지막 철판을 치워 냈을 때, 그곳에는 아이리가 서 있었다. 아이리는 상엽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품에 안겼다.
그녀의 뒤에는 식스헤븐에 출근했던 모든 여자들이 있었다.
이를 본 상엽은 아이리를 밀어냈다.
“떠날 준비해.”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마. 화내고 싶지 않으니까.”
상엽의 낮은 목소리에 아이리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너희들을 지키려고 몇 명이 희생했는지 잊지 마. 그러니까 무조건 살아. 오직 그것만 생각해.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내 손에 죽을 테니까.”
아이리를 살렸다는 사실이 상엽은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저 의무감만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고 상처가 아문다면 아마 달라질 것이다.
“알았어요.”
상엽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아이리를 비롯한 여인들은 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헬기가 올 거야. 그때까지 기다려.”
잠시 후에 그녀들을 태울 헬기가 도착했다.
일본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변종 새만 100만 마리가 넘어. 변이 인간은 이미 천만 명으로 늘어났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야.
박광신은 자신이 분석한 데이터를 상엽에게 넘겼다.
-이대로는 한국도 위험해.
그런데 상엽에겐 다시 딜레마가 생겼다.
루시가 다급히 연락을 한 것이다.
-호주에서 대규모 변종 새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다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상엽은 곧바로 박광신에게 연락을 취했다.
“테니아를 지켜야 돼. 그쪽 일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어.”
이번에도 상엽은 테니아를 선택했다. 이는 예외가 있을 수 없는 사안이었다.
“루시, 내가 직접 갈 거야. 블랙 해머는 방어에 집중하도록 해.”
상엽은 지옥마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그는 위성을 통해 전송되는 새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상엽이 변종 새와 거리를 좁혔을 때, 상대는 방향을 바꿨다.
변종 새들이 다시 호주로 돌아간 것이다.
그사이, 일본에 자리하던 변종 새들이 한국으로 올라갔다.
상엽은 짜증이 솟구쳤지만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막을 거야.’
이미 도쿄에 있던 팬텀이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피해가 있겠지만 그들이라면 변종 새를 막기에 충분한 힘이 있었다.
“날 노리고 있단 말이지?”
상엽은 이 부분이 불쾌했다.
“호주라…….”
상엽은 아직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호주 쪽을 보았다.
길게 펼쳐진 바다를 조금만 더 이동하면 호주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인사는 하고 가야지.”
상엽은 호주를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엽의 앞에 거대한 먹구름이 나타났다. 호주를 감싸고 있는 먹구름은 직접 눈으로 보자 그 규모가 훨씬 컸다.
호주라는 거대한 땅을 모두 뒤덮고도 근해를 모두 가린 먹구름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코가 짜릿한 느낌을 받은 상엽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이동을 멈췄다.
“독구름이었네.”
단순한 먹구름이 아니라 강한 독성을 가진 구름이었다.
상엽은 구름 아래로 이동했다. 그런데 구름의 아래쪽을 보는 순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구름이 만들어 낸 그늘에 서로 날개를 비비며 소음을 터트리는 아기 새들이 있었다.
독구름에 만들어진 수십만 개의 둥지로 변종 새들이 연신 먹이를 나르고 있는 것이다.
독구름은 단순히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변종 새를 만들어 내는 부화장이기도 했다.
상엽은 이 장면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해머를 움켜쥔 상엽이 목표를 결정하는 순간, 두 눈은 피가 맺힌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신의 스킬 절망의 파동.
콰콰콰!
상엽이 휘두르는 해머에서 직선으로 지름 30미터의 거대한 원형 파동이 퍼졌다.
3킬로미터까지 뻗어 간 원통의 충격파는 끝에 닿자 유리처럼 깨지며 사방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거칠게 빨아들인 공기는 수천 개의 칼날이 되어 범위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찢어 버렸다.
파동이 일어난 자리에 있던 둥지들은 모두 갈가리 찢어졌다.
상엽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머 끝에 이번에는 붉은 빛이 모여들었다. 상엽은 이를 파동의 여파에 닿지 않은 둥지를 향해 날렸다.
빛은 목표물에 명중하자 갑자기 지름 1킬로미터의 거대한 원으로 퍼져 나갔다.
쿠쿠쿵!
그리고 원반처럼 퍼진 붉은 빛은 거꾸로 된 폭포처럼 하늘을 향해 피를 쏟아 냈다.
피를 닮은 빛에 닿은 모든 물체는 염산을 뿌린 것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먹구름마저 상엽의 스킬에 녹기 시작했고 짧은 순간이지만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신의 스킬 데스 서클.
3급 블랙 상점에서 완성한 이르타르의 힘이었다.
끼아아!
둥지가 공격당하자 변종 새들은 괴성을 지르며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하지만 곧바로 상엽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뭐해? 덤벼야지.”
상엽은 멀지 않은 거리에서 방황하는 변종 새를 향해 먼저 스킬을 퍼부었다.
그제야 위협을 느낀 변종 새들이 본능에 따라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곧 변종 새들은 상엽을 피하기 시작했고 지상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제야 상엽은 자신이 호주의 근해를 지나 지상이 보이는 지점으로 왔음을 알았다.
“저건 뭐야?”
호주의 해변을 본 상엽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만 명의 변이 인간들이 상엽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옥이 돼 버렸네.”
호주의 해변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아름답던 항구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을씨년스러운 그늘 아래 움직이는 것은 변이 인간과 변종 새, 그리고 아마존에서조차 보지 못한 진짜 괴물들이었다.
곤충과 동물을 개조한 듯한 괴물들은 하늘에 있는 상엽을 이미 적으로 간주했는지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친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호주에는 문명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땅에서는 화산이 분출하는 것처럼 위로 솟아오른 검은 연기가 하늘의 독구름에 닿아 있었고, 갈라진 땅에서는 매캐한 가스가 솟구치고 있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잖아.’
상엽은 그곳이 지옥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빠져야겠어.’
여차하면 제대로 싸워 볼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직접 호주의 상태를 보자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아직 더 준비해야 돼.’
땅에서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워낙 압도적이었다.
‘내가 죽으면 끝이야.’
상엽이 원하는 확률은 50퍼센트였다.
반반의 확률만 돼도 상엽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나마 예전에는 적은 가능성만 있어도 전투를 시작했지만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면서 변한 것이다.
“돌아가자.”
결국 상엽은 지옥마의 방향을 틀었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피하기만 하던 변종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먹구름 끝으로 모여들었다.
근해를 가리던 먹구름 끝에 변종 새들이 만든 긴 장막이 펼쳐진 것이다.
‘그물?’
상엽은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단 빠져나가자.”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상엽은 겹겹이 쌓인 장막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런데 그가 장막을 향해 해머를 휘두르기 직전, 갑자기 새들을 뚫고 뭔가가 튀어나왔다.
엄청난 속도에 상엽은 아르마딜로의 방어벽을 만들었다.
쾅!
방어벽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 충격으로 인해 상엽의 이동이 멈추고 말았다.
“자신 있다 이거지?”
“어리석은 놈.”
천진에서 보았던 망토의 사내가 상엽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