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36화 (234/300)

# 236

은빛 갑옷이 쓰러지면서 상엽은 막혀 있던 파괴력을 쏟아 냈다.

은빛 갑옷의 역할은 단순히 신의 힘을 약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광전사들의 능력 향상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때문에 상엽과의 실력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결국 상엽은 분노의 돌진으로 남은 광전사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쾅!

마지막 남은 전사의 투구가 상엽의 해머에 박살 나면서 전투가 끝났다.

그 순간, 그들을 막고 있던 콜로세움이 땅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거대한 콜로세움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그리 희망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달빛이 은은히 비추는 공동묘지.

그곳에는 100개의 무덤이 있었다.

상엽은 이끌리듯 나무 묘비가 세워져 있는 무덤 앞으로 갔다.

-100인의 용맹한 전사들이 이곳에 잠들다.

신에 대항했던 100명의 인간들.

그들은 신의 불합리함에 맞서 목숨을 걸었지만 또 다른 신의 자존심으로 인해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상엽은 방금까지 전투를 치렀던 자들이지만 그 용기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아저씨들, 이제 편히 쉬어.”

그 말을 할 때였다.

-그대의 운명은 우리와 다르기를.

묘한 느낌의 말이 끝나자 묘비마저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달빛이 범위를 넓히며 상엽과 다섯 여전사를 비췄다.

그 빛은 따뜻했다. 그리고 조금씩 그들의 몸에 낡은 철제 갑옷을 채웠다.

갑옷이 천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피가 차갑게 식는 대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에서 시작된 열기는 곧 차가운 피를 용암처럼 끓어오르게 했고, 이는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열기에 몸이 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차가운 투구가 머리에 씌워졌다. 그 냉기가 몸에 퍼진 열기를 다시 식혔다.

그렇게 명검을 만드는 망치처럼 열기와 한기를 반복한 뒤에 몸을 감쌌던 갑옷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달빛에 뛰어노는 반딧불 무리처럼 녹색을 품은 가루는 마치 작별 인사를 하듯이 흔들리면서 멀어졌다.

그리고 머리 위를 크게 맴돌다 허무할 정도로 깨끗하게 사라졌다.

“광전사의 정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귀 뒤에 새겨진 작은 문신이었다.

검은 방패와 은색 검이 교차한 문신은 엄지손가락 크기였다.

“이건 유산이 아니네.”

광전사의 정수는 강화를 하는 유산이 아니었다. 신의 힘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강화를 할 필요도 없이 문신이 새겨지는 순간 바로 힘을 발휘했다.

“광전사의 의지.”

이는 꽤나 특이한 능력이었다.

“힘을 모은다.”

발휘하는 힘을 모아서 한 방에 터트리는 기술이었다.

대신 힘을 모으는 과정에 시간이 필요했고, 세 배의 힘이 소모되었다.

조건이 된다면 파괴의 일격을 최대 다섯 번까지 모아서 한 방에 터트릴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스킬만 가능했고 힘을 모을 때 들어가는 소모값은 더욱 커졌다.

한 번을 모으는 데는 두 배, 두 번째는 세 배, 세 번째는 네 배, 네 번째는 다섯 배, 다섯 번째는 여섯 배로 파괴의 일격을 다섯 번 모으려면 총 스무 배의 힘이 소모되었다.

이는 광전사들이 신을 상대할 수 있었던 특별한 능력으로 은빛 기사가 힘을 보관해, 필요할 때 나눠 주는 방식이었다.

“활용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어.”

상엽은 광전사의 스킬이 마음에 들었다.

“이거 괜찮은데?”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겠어.”

상엽은 여전사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들도 같은 스킬을 얻었음을 알았다.

시험을 같이 치렀고 같은 보상을 받은 것이다.

“잘됐네.”

어차피 힘은 나뉜 것이 아닌 터라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자, 이제 나갈까?”

무너진 콜로세움에 회색빛의 고리가 남아 있었다. 그것이 출구임은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멋진 전투였어, 광전사 아저씨들.”

상엽은 여전사들과 함께 광전사의 영역을 떠났다.

아마존은 변해 있었다.

변종왕의 둥지 주변은 몰려든 변종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지만 숲 전체의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변종이 한 마리도 없는 거 같은데.”

변종이 되지 않은 곤충과 파충류, 새들이 안전한 것을 알았는지 이미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숲속을 한참 동안 걸었지만 단 한 마리의 변종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상엽은 여전사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난 이제 가 봐야 돼.”

그녀들은 상엽의 전투를 본 이후로 더 이상 씨앗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막아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의외로 상엽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같이 갈래?”

여전사들은 이해하지 못한 눈빛이었다.

“씨앗 찾으러 가야지. 내 주변에 훌륭한 씨앗이 많아.”

그 말에 여전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더니 자신들끼리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긴 씨앗이 없어.”

“다른 남자가 여길 들어오진 않을 거야.”

“이제 변종이 없어서 여긴 심심할 텐데.”

“부족을 번영시켜야 돼.”

“의무를 다하자.”

그들은 빠르게 의견을 모았다. 그 대화를 모두 들은 상엽은 그녀들이 대답하기 전에 조건을 달았다.

“뭐든 강제는 안 돼. 그리고 내가 너희들을 존중하듯이, 너희들도 다른 세계의 문화를 존중해야 돼.”

어려운 말보다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강제와 강요는 안 돼. 아군을 향한 폭력은 더더욱 안 되고.”

“유혹은?”

“그건 돼. 대신 한 명만 유혹해.”

상엽은 최대한 간단한 조건을 달았다.

“대신 6개월 동안은 유혹하지 마. 다른 세상의 문화를 배우는 시기라 생각해. 적응 기간은 필요하니까. 너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로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여전사들은 상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에게 상엽은 이미 일반적인 남자가 아니었다. 모든 말에 깊은 신뢰와 믿음이 있었다.

“자, 그럼 가자. 새로운 세상이야.”

상엽은 상점 소환권 대신 아공간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루시가 마련해 준 비행기는 시카고 북부에 도착했다.

여전사들은 비행기 안에서 불편한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옷이 꼭 필요해?”

이잔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상엽에게 물었다.

“문화야. 좀 더 자유로워도 되니까 일단 그걸 입다가 스스로 판단해서 원하는 걸로 입어.”

“쓸데없는 문화가 많네.”

“좋은 문화도 있잖아.”

상엽은 비행기 창밖을 가리켰다.

그녀들은 당연히 비행기를 처음 타 봤다. 아마존 하늘에도 비행기는 날았기에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언니, 이거 맛있어.”

전용기 안에는 많은 음식과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었다. 귀여운 인상의 여전사가 마시는 건, 위스키였다.

위스키를 물처럼 들이켠 여전사는 다른 음식들도 전부 하나씩 먹어 보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많은 것에 관심을 가졌고 뭐든 직접 맛보고 만져 보는 것을 선호했다.

“넌 별로 관심 없어?”

“아니, 궁금해.”

이잔카는 동료들과 함께하지 않고 상엽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냥 네 옆에 있는 게 좋아서.”

“말했지? 뭐든 강제는 안 돼.”

“유혹은 된다고 했으니까.”

“6개월 후에.”

“기대해. 네가 사는 세상보다는 내 유혹이 강할 테니까.”

상엽은 자신감에 찬 이잔카를 보았다.

“넌 그럴 자격이 있어.”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상엽은 은근히 6개월 후가 기대되기도 했다.

블랙 해머와 여전사들이 만났다.

그들의 만남은 과격했다.

사하르는 다섯 명의 전사를 뽑았고, 여전사들과 전투를 펼쳤다.

싸움은 치열했다.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여전사들이 블랙 해머 다섯 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블랙 해머들도 특유의 투지를 발휘하며 다시 균형을 맞췄다.

“그만.”

사하르는 그들의 전투를 멈추도록 했다.

“서로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면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대를 죽일 생각이 없으면 사용하지 못하는 스킬이 많다. 그래서 그들끼리의 싸움은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 전투로 블랙 해머들은 여전사들을 얕보지 않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라 여자를 깔보는 시선이 있어서 상엽이 일부러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훌륭한 씨앗들이 많이 보여.”

여전사들도 블랙 해머의 거친 매력을 인정했다.

전사로서 서로를 인정한 그들은 더 이상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블랙 해머가 늘어나는 거야?”

“아니, 루시가 관리할 거야.”

상엽은 그녀들을 블랙 해머에 소속되게 하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우리 편이 아니니까. 그리고 루시가 훨씬 잘할 거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여전사들은 루시가 맡기로 했다. 루시도 상엽의 명령을 거절하지 않았다.

-제가 알아서 관리하겠습니다.

관리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사고를 못 치게 막는 것부터 결국에는 진심으로 상엽의 편에 서게 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 말이었다.

“그럼 이제 내 일을 하러 가 볼까?”

여전사들 문제를 정리한 상엽은 그제야 상점 소환권을 꺼냈다.

‘320억 코인.’

그가 보유한 그레이 코인이었다.

레나를 만난 곳은 영업 막바지의 클럽 대기실이었다.

그녀는 도도한 표정으로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을 이용해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줄래?”

상엽은 레나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도 있네.’

무대에서 즐기는 모습과 당당한 일상생활의 레나만 보던 상엽에게 작업에 집중하는 레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것도 매력적이네.’

상엽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레나는 상엽을 의식했는지 작업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이어폰을 뺐다.

“미안해. 한창 느낌이 좋아서.”

“방해한 거면 내가 미안하지.”

“오늘은 왜 이렇게 젠틀하실까?”

“그래야 야성적으로 변했을 때, 충격이 크잖아.”

상엽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오늘 내가 코인을 좀 야성적으로 쓸 거라서.”

“표정을 보니까 무지 기대되는데.”

레나는 거절하지 않고 손을 잡았다.

“320억 코인…….”

엄청난 수치를 확인한 레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에 상엽은 명품을 현금으로 사는 느낌으로 말했다.

“지옥마. 20단계까지.”

레나는 여전히 놀란 표정을 하다가 그 말에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으며 상점의 역할을 수행했다.

“101억 5808만 코인이야.”

“진행해.”

상엽은 망설임 없이 100억이 넘는 코인을 결제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친위대 20단계까지.”

유령 군대도 20단계를 결정했다. 이것은 앞으로 대규모 전투가 많아질 것을 대비했기 때문이다.

‘군대를 확실히 키워야지.’

블랙 해머와 여전사들까지 합치면 앞으로 상엽의 군대는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상엽은 이를 위해 다시 100억을 지불할 생각이었다.

“자, 잠깐.”

그런데 평소와 달리 레나가 진행을 멈추고 상엽을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지금까지 상엽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망설임과 주저하는 모습은 레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을 정도로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왜 그래?”

상엽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눈가를 보고는 정신이 멍해졌다.

‘눈물.’

레나는 웬일인지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며 상엽은 잊고 있던 말을 떠올렸다.

-의무가 끝나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 거야. 그들은 갓코인 유저도 아니고,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었다가 깨어난 걸로 기억하고 있어. 기억이 조작된 거지.

상점 졸업.

상엽이 100억 코인을 다시 소모하면 상점으로서의 의무가 끝나는 것이다.

“레나,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 말에 결국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대답할 수 없어.”

감정이 폭발하는 데에도 그녀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깐 멈춰도 될까? 그러길 원해?”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상엽이 먼저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녀는 왜 눈물을 흘리는 걸까?

상엽은 여러 예상을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졸업이 하고 싶은 걸까?

그 반대일까?

그저 지난 시간이 생각나서 우는 것일까?

그때, 레나가 상엽을 꼭 끌어안았다.

“널 잊고 싶지 않아.”

그 한마디로 명확해졌다.

레나는 이렇게 상엽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하루만.”

운명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알기에 레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딱 하루만.”

그녀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상엽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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