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32화 (230/300)

# 232

하루가 지났다.

상엽은 엄청난 숫자의 변종을 사냥했고 하루 만에 1억 5천만 코인을 획득했다.

1급 사냥 지역의 2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선다면 2억 이상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아직도 따라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아, 진짜 독하네.”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사들의 추격은 계속됐다. 게다가 다른 문제도 있었다.

“유령아, 나 지금 너한테 실망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스트라인버그가 말했던 재단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재단은 고사하고 힌트도 없었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 말을 하던 상엽은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 원주민이면 알 수도 있을 텐데.”

뒤따라오는 여전사들은 지금까지 추격을 하면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었다.

“유령아, 딱 하루 더 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상엽은 추종자를 믿고 하루를 더 밀림에서 보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끝도 없이 전투를 치르고, 여전사들을 피해 달아나는 게 그가 하루 동안 한 일이었다.

-한 번 더 기회를…….

“수고했어.”

상엽은 단박에 추종자의 요청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네.”

상엽은 그녀들에게 재단의 행방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도망가는 것도 지겹고.”

좋게 해결할 생각이지만 여차하면 싸울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상엽은 상대가 추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기다리기 시작하자 여전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추종자의 보고에 상엽은 그녀들의 상태를 살폈다.

여전사들은 한 지역에서 숨을 죽인 채로 나무 위로 올라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적을 기다리는 암살자 같은 모습이었다.

‘뭐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종자가 먼저 그 이유를 알아냈다.

‘재규어.’

아마존의 최상위 포식자 재규어였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20만 코인이라. 너무 많은데.’

무려 20만 코인짜리 재규어가 100마리에 달했다.

그들을 이끄는 붉은 가죽의 재규어는 100만 코인을 가지고 있었다.

추격을 하던 여전사들이 재규어의 포위망에 갇힌 것이다.

재규어들은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포위망을 좁혔다.

커다란 덩치임에도 날렵하게 나뭇가지로 올라갔고, 일정 거리로 접근하자 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사냥감을 소리로 더욱 압박하는 것이다.

숲이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익숙한 사냥꾼으로서 소리로 상대를 속이기도 했다.

선두에 있던 재규어들이 몸을 낮추며 옆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소리로 혼란을 주었고, 그사이에도 거리는 꾸준히 좁혀졌다.

그러다 결국 여전사들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세 명이 동시에 뛰어올라 높게 자란 수풀에 숨어 있는 재규어들에게 화살을 날렸다.

단검과 창을 든 여인은 나뭇가지에 있는 재규어들을 노리며 탈출로를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숲 전체에 재규어의 포효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붉은 재규어가 내지른 포효에 숲 전체로 진동이 퍼졌고 그것을 시작으로 사냥이 시작되었다.

재규어들은 상엽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했다.

여전사들도 모두 처리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탈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재규어들의 공격은 날카로웠지만 여전사들의 합격도 만만치 않았다.

동시에 접근한 재규어 중의 한 마리를 일제히 공격하며 처리하고 다시 흩어졌고, 그중의 두 명은 다시 탈출로를 찾기 시작했다.

전투 시간은 1분이지만 그사이에 벌어진 공방전은 치열했다.

그러다 창을 든 여인이 포위망에 있던 재규어 두 마리를 안쪽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단검을 든 여인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활을 쏘던 세 명이 단검을 든 여인을 뒤따라 포위망을 탈출하려 했다. 그러면서 세 명은 줄이 걸린 화살로 창을 든 여인의 탈출을 도우려 했다.

그때, 붉은 안개가 날아가는 화살을 덮쳤다.

투둑.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화살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냥 가!”

창을 든 여인이 외쳤다.

겨우 확보한 탈출로를 포기하는 것은 무리였다.

“빨리!”

결국 창을 든 여인은 오히려 포위망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동료들이 구하러 오기 전에 가능성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것이 나머지 4명을 살리는 길이었다.

혼자가 된 여인은 이를 악물고 사투를 벌였다. 재규어들 틈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격을 가했다.

그녀의 투지는 재규어 세 마리를 처리하는 성과를 냈고 온몸이 피로 물들었음에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보던 붉은 재규어가 나서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크앙!

포효와 함께 시작된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붉은 재규어는 여전사의 등에 접근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여전사의 머리를 갈랐다.

그때, 여전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돌리며 오히려 재규어의 목에 창을 찔러 넣었다.

“넌 죽이고 간다.”

이를 악문 여전사는 온 힘을 다해 창을 밀어 넣었다. 거대한 붉은 재규어가 그 힘에 밀려 바닥에 긴 선을 그으며 밀려났다.

크릉!

하지만 끝내 창은 재규어의 가죽을 뚫지 못했다. 그리고 긴 이동이 멈췄다.

‘끝.’

반격은 실패였다.

이미 그녀의 등에는 지척까지 다가온 재규어가 뒤통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쾅!

예상치 못한 폭음이 들렸다. 그리고 첫 번째 폭음이 끝나기 전에 다음 폭음이 이어졌다.

“뭘 멍하니 있어?”

그리고 여인의 허리를 거친 사내의 손이 감쌌다. 그리고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무 위로 올라간 후에야 여전사는 자신을 구출한 사내를 알아보았다.

“씨앗.”

“정상엽. 이게 내 이름이야. 여기 잠깐 있어.”

“나도 싸우겠어.”

“그럼 친구들부터 도와주든지.”

“친구?”

“저기 있잖아.”

여전사는 그제야 상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재규어의 포위망을 뚫으려 전투를 벌이는 동료들이 있었다.

끝내 도망가지 않은 것이다.

그녀들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들었다.

“너희들은 나랑 놀아야지.”

상엽은 유령 군대를 소환해 일반 재규어들을 막고 자신은 붉은 재규어를 노렸다.

붉은 재규어는 지금까지 보았던 다른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 봤자 재규어.’

상엽이 알고 있는 재규어의 행동 패턴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저 빠르고 강할 뿐이었다.

이것이 비슷한 실력에겐 위협이 되겠지만 상엽에겐 아니었다.

쾅!

한 번의 공격을 피한 후에 왼쪽 앞발을 찍고, 빠르게 뒤를 돌아서 왼쪽 뒷발을 무너트렸다.

중심이 무너진 재규어는 재빨리 돌아서려 했고, 이것이 상엽이 원하던 움직임이었다.

“꼭 머리부터 내밀면서 돌아서지.”

쾅!

상엽은 재규어의 행동을 예측하고 머리에 해머를 꽂았다.

단 세 번의 공격으로 붉은 재규어를 처리한 상엽은 곧장 남은 재규어 소탕에 나섰다.

대장이 쓰러지자 재규어들은 분노에 찬 포효를 하며 상엽에게 달려들었다.

상엽은 피하지 않고 선두에 있는 재규어에게 스트라이크를 꽂았다. 퍼져 나간 충격파로 재규어들이 흔들리자 상엽은 앞으로 뛰쳐나가며 망자의 손길을 길게 뻗었다.

바람처럼 지나간 상엽의 주변으로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살아 있는 재규어는 더 이상 없었다.

시끄럽던 숲이 다시 고요해졌다.

그 적막 속에서 상엽은 붉은 재규어가 남긴 조각 하나를 챙겼다.

“우와.”

놀라서 숨 쉬는 것도 잊고 있던 여전사 중의 한 명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최고의 씨앗이야.”

키가 작고 보조개가 들어간 둥근 얼굴에 귀여운 외모가 특징인 여전사가 감탄사에 이어 말했다.

“저 씨를 꼭 가져야겠어.”

“우리 부족을 위한 하늘이 준 기회야.”

바로 옆에서도 겨우 들릴 정도의 혼잣말이었지만 상엽은 똑똑히 들었다.

“이봐! 아가씨들! 누구보고 씨앗이래?”

상엽은 살아 있는 재규어가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여전사들을 보았다.

그러자 직접 구출을 받았던 창을 든 여전사가 상엽 앞에 내려섰다.

“날 가져.”

“응? 보통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아?”

“열흘 동안 네 거야.”

“뭐가?”

“날 마음대로 하라고. 치욕적인 것도 참을 테니까. 전사의 긍지를 꺾지만 않는다면 뭐든 좋아. 대신 네 씨앗에 대한 권리는 포기해. 내가 알아서 키울 테니까.”

상엽은 대화만으로도 정신이 멍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여자를 참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도 정말 좋아하거든. 그런데 이런 방식은 아니야.”

“내가 예쁘지 않아서?”

“아니. 그렇진 않아. 솔직히 정말 예뻐.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본 어떤 여자들보다 매력적이야.”

실제로 눈앞에 있는 여인은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진한 매력이 느껴지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선명한 이목구비에 당당한 표정은 가장 화려한 무대에 서는 최고급 모델을 연상시켰다. 게다가 남자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도 있었다.

다섯 명 중에서도 창을 든 여전사는 특히 관능적인 매력이 강했다.

“내가 구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다면 다른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상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머지 네 명도 곁으로 내려섰다.

“언니가 싫으면 날 가져.”

“난 이런 날을 대비해서 따로 연습도 했어.”

“씨앗을 주면 행복을 주지.”

“넌 잠시 누워 있기만 하면 돼. 금방 끝날 거야.”

그녀들은 각자 자신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있는 터라 상엽은 시선 처리에 애를 먹었다.

“그만!”

결국 상엽은 그녀들의 말을 멈추게 했다.

“문화 차이가 있으니까 인정할게. 그러니까 너희들도 내 문화를 인정해.”

상엽은 결국 이 문제부터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다양한 취향이 있어. 그런데 난 그런 취향 아니야. 단순히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사랑을 하진 않는다고.”

“그럼 뭐가 더 필요하지?”

“정신적 만족. 그리고 즐거움. 배려 등등. 뭐 필요한 건 많아.”

다섯 명의 여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이해 못 했으면 됐어. 그럼 이건 이해하지? 어떤 일도 강제로 시켜서는 안 된다.”

이 말은 그녀들도 이해했다.

“우리가 너보다 강하지 않으니까 강제로 시킬 수 없지.”

물론 이해 방식이 조금 다르긴 했다.

“어쨌든 좋아. 선택권은 나한테 있고 난 너희들 중에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만해.”

“씨앗은 뿌리고 나면 바로 재생이 될 텐데. 왜 그렇게 아끼는 거지?”

“그거야…….”

상엽은 자칫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할 뻔했다. 워낙 황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 답을 찾아냈다.

“내 아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지. 아버지가 된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희들에게 그냥 맡겨 놓고 떠날 수는 없어.”

“그럼 여기서 살아.”

“그럴 수가 없어서 너희들을 거절하는 거야. 아마 나는 꽤 이른 시간에 이 시간을 후회할 거야.”

상엽은 진심을 말했다.

‘분명히 후회하겠지. 미쳐 버릴지도 몰라.’

씨앗이라는 말만 듣지 않았다면 상엽은 많은 가치들을 내려놓고 즐겼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내가 너희들을 구해 줬으니까 한 가지만 물어볼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창을 든 여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무늬가 있는 재단을 찾고 있어.”

상엽은 바닥에 원이 이어진 문양을 그렸다. 그런데 이 문양을 본 여전사들의 표정이 변했다.

“알고 있구나?”

상엽은 확신했다. 이에 여전사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창을 든 여전사가 결심한 듯이 말했다.

“이 숲의 지배자 영역을 표시하는 재단이야.”

상엽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맞아. 바로 그게 내가 찾는 거야.”

상엽은 웃었지만 여전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 위치만 알려 주면 나 혼자 갈 거니까.”

“그럴 수 없어.”

“왜?”

“넌 찾지 못할 테니까.”

상엽은 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보이지 않으니까.”

그 말에 상엽은 스트라인버그의 저택을 떠올렸다.

평소에 보이지 않다가 진동에 의해 나타나는 건물.

재단이 그렇게 지어져 있는 것이다.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면 찾을 수가 없도록 설계되었다.

“어디라고 말해 주면 찾아갈 수 있어?”

상엽은 그 말에 할 수 있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곳은 밀림이었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재단의 위치를 완벽히 알긴 어려웠다.

“내가 안내할게. 이게 조건이야.”

창을 든 여전사가 승부수를 던졌다.

“내 씨앗을 탐내지 않는다면 좋아.”

“아니. 그건 안 돼. 목숨을 걸고 가야 하니까.”

“그게 씨앗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 정도 가치는 있어야 해.”

상엽은 묘한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강제는 안 돼.”

“좋아.”

“네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참을 수 없게 만들 거야.”

그들의 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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